경상도

23.01.안동 봉정사

큰누리 2023. 4. 1. 21:50

안동 봉정사(鳳停寺)

천등산 남쪽 기륵에 자리한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능인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극락전을 중수한 이후, 조선 인조 3년(1625), 순조 9년(1809), 철종 14년(1863), 1972년 등 몇 차례의 중수가 있었다. 특히 1972년 극락전 해체 보수 때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발견되어 극락전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확인되었다.

 

봉정사는 안동에서 규모가 가장 큰 사찰로 국보 제15호인 극락전을 비롯하여 국보 제311호인 대웅전, 보물 제488호인 화엄강당, 보물 제499호인 고금당 등의 건물들이 있는데, 고려시대의 건물과 조선시대의 목조 건물들이 나란히 있어 우리나라 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외에도 삼층석탑, 만세루, 요사채 등의 건물이 있으며 부속 암자로 영산암과 지조암이 있다. 1,300년 이상 우리 불교문화를 계승하고 지켜온 종합 승원으로서 2018년 제 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봉정사를 포함한 7개 사찰이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안동 봉정사(문화재구역) 입장료>

 

 

<안동 봉정사 입구 숲길과 명옥대(鳴玉臺)>

주차장 앞의 매표소를 지나면 500여m 남짓 소나무 길이 있는데 조용하고 숲이 아름답다. 왼쪽에 명옥대(鳴玉臺)가 있다. 명옥대는 퇴계 이황(1501~1570)이 후학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던 곳을 기념하기 위해 현종 6년(1665)에 사림들이 건립한 누각 형태의 정자이다. 자연석 초석 위에 원형 기둥을 세우고 누마루를 설치하였고 정면 2칸, 측면 2칸의 구조이다.

 

 

<봉정사 일주문>

일주문은 사찰로 들어가는 첫번째 문이다. 봉정사 일주문은 자연석으로 허튼층 쌓기로 마무리한 기단 위에 세웠으며 '天燈山鳳停寺'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봉정사 일주문 안쪽의 숲길>

 

 

<안동 봉정사 배치도>

봉정사 본당 영역은 우리나라 最古의 건물이자 고려시대의 간결하면서도 강한 아름다움을 지닌 극락전과, 조선시대 최고의 대웅전, 고금당과 화엄강당, 무량해회, 스님들이 기거하는 공덕당, 만세루, 종각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질서정연한 건물 배치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단정하고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산사이다. 

 

 

<봉정사 만세루 아래의 보호수(소나무)>

180년 수령 소나무로 험난한 생을 반영한 것 같은 뒤틀린 가지와 잘린 옹이가 예술이다.  

 

 

<봉정사 협문, 공덕당, 대웅전>

출입문인 만세루가 공사 중이기도 하지만 관람객들은 협문쪽으로 절 아래를 돌아올라 봉정사 대웅전쪽으로 입장한다. 협문을 돌면 나무 서까래나 보가 돋보이는 단정하면서도 아름다운 건물들을 만나게 된다. 왼쪽은 궁궐에서 많이 본 협문(眞如門), 오른쪽 건물은 배치도에도 이름이 없는 스님들의 거처인 공덕당, 밝은 초록색 벽은 대웅전이다. 

 

 

<봉정사 무량해회, 화엄강당, 대웅전>

왼쪽 사진의 왼쪽부터 무량해회, 화엄강당, 대웅전이다. 사진들이 붙어있는 건물은 무량해회이며, 사진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1999년 4월 21일 봉정사를 방문했을 때의 사진이다. '조용한 산사 봉정사에서 한국의 봄을 맞다' 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봉정사 대웅전과 화엄강당>

 

 

<봉정사 대웅전> 국보 제311호

대웅전은 봉정사의 중심건물로 막돌허튼층으로 쌓은 자연석 기단 위에 세운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이다. 건물 앞의 툇마루는 사찰건축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예이다. 기둥 사이의 창문이나 벽체 등이 건립된 이후 변경되었으나 공포의 구성에서 힘 있고 단순한 수법은 초기의 다포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계단 옆 양쪽에 사찰의 행사나 법회 때 불상을 대신하는 괘불(탱화)를 걸어놓는 괘불대가 보인다.

 

 

 

<봉정사 화엄강당(보물 제488호)과 대웅전>

화엄강당은 스님들이 경전을 공부하던 곳으로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남쪽에 2칸 부엌, 북쪽에 4칸 온돌방이다. 강당 용도였기 때문에 불당에 비해 낮은 기둥을 사용하였고, 측면 중앙에 사각 기둥 1개를 세워 대들보를 받쳤다.

 

 

<봉정사 무량해회>

정면 4칸, 측면 4칸의 겹처마 집에 마루와 칸벽을 설치하여 몇 개의 방으로 나눈 요사채이다. 요사란 스님이나 신도들이 불사를 관리하고 강당, 선당에서 수행하는 모든 수행자들의 의식주를 뒷받침해 주는 생활공간, 휴식공간이다.

 

 

<봉정사 대웅전 툇마루와 무량해회>

봉정사 극락전의 툇마루는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쉽지 않은 구조이다. 마당 동쪽 아래의 건물은 요사채인 무량해회이다. 

 

 

<봉정사 대웅전> 국보 제311호

검정색을 기조로 하여 무늬를 그리고 지붕을 천장 속으로 밀어넣은 보개천장에서 장엄함이 느껴진다. 내부 중앙 뒷면에 높은 기둥 2개를 세워 그에 의지해 불단을 만들었는데 기둥을 타고 오르는 용 그림도 인상적이었다.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지장보살, 관음보살이 봉안되어 있고 그 뒤 후불탱화로 아미타설법도가 있다.

대웅전은 건립 연대가 확실치 않으나 1363년에 극락전을 중수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비슷한 시기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내부 단청은 고려시대의 기법을 지니고 있어 건물과 함께 중요한 회화자료로 주목되고 있다. 

 

 

<봉정사 대웅전의 동종>

조선 순조 13년(1813)에 만들어진 동종으로 어깨 부분은 완만한 곡선을 이루다가 중간부분부터 입구까지는 거의 직선으로 처리되었다. 약식화되고, 형식화되고 19세기에 만들었지만 신라시대, 고려시대의 양식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동쪽에서 본 봉정사 대웅전>

 

 

<봉정사 대웅전의 아미타설법도>

왼쪽의 아미타설법도 앞 유리상자에는 '우담바라 꽃 핀 대웅전'이란 사진과 안내문이 있다.

 

 

<대웅전 쪽에서 본 봉정사 극락전>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 주심포 건물로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봉정사 극락전과 고금당>

극락전은 국보 제15호, 마당 아래의 건물 고금당은 보물 제449호이다. 고려 시대의 건물인 극락전과 달리 고금당은 맞은편에 있는 화엄강당과 함께 조선 중기의 건축이다. 고금당은 스님들의 참선을 위한 공간이었다.

 

 

<봉정사 극락전 편액과 천장, 닫집(보개)>

 

 

<봉정사 극락전 동영상>

 

 

<봉정사 극락전 내부>

불상의 수인으로 보나 당우 이름으로 보나 봉안된 불상은 아미타불이며, 대웅전처럼 2개의 기둥이 보개와 불단을 받치고 있는 형태이다. 불단은 이동식이라고한다. 협시보살이 없는 대신 후불탱화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그려 삼존도 형식을 취하고 있다. 건물은 외부처럼 내부도 간결하고 단정하다. 특이했던 것은 대웅전처럼 이곳도 불단 뒤쪽도 공간이 넉넉하고 그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다.

 

 

<정면에서 본 봉정사 극락전과 삼층석탑>

봉정사 극락전은 돌기단 위에 초석을 배열했으며 앞, 뒤 중앙에 판문을 달고 양쪽에 살창을 냈다. 판문과 살창은 고증을 통해 복원한 것이라고... 삼층석탑은 고려시대 중엽에 조성된 것으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2호이다.

 

 

<봉정사 극락전과 주변 건물들>

윗사진은 왼쪽 근경부터 범종각, 고금당, 극락전, 화엄강당이다. 범종각 위쪽에 기단이 있고, 그 위(극락전 아래)에 다시 기단이 있다. 범종각과 나란한 높이의 오른쪽에 봉정사 출입문인 만세루가 있으나 현재 공사중이다. 아래 사진은 기단 위 화엄강당 뒷편에서 본 고금당과 극락전... 

 

 

<범종각에서 본 성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