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고창 선운사

큰누리 2023. 12. 7. 00:02

 

 

≪고창 선운사≫

선운사(禪雲寺)는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검단선사가 창건한 뒤 고려 공민왕 3년(1354)에 효정스님이 퇴락한 법당과 요사를 중수하였다. 조선시대에 행호극유(幸浩克乳)스님이 성종의 숙부인 덕원군의 도움을 받아 1474년에 2층의 장육전과 관음전을 완공한 이래 10여 년에 걸친 대작불사를 통하여 선운사의 옛 모습을 되찾아 숭유억불의 조선시대임에도 왕실의 원찰로 법통을 환하게 밝히게 되었다.

그러나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고, 이후 광해군 5년(1613) 봄에 일관스님과 원준스님이 힘을 합하여 1619년까지 6년에 걸쳐서 보전(寶殿), 법당, 천불전, 지장전, 부도전, 능인전을 중건하여 다시 사찰의 골격을 갖추게 되었다. 이후 1720년까지 중건과 중수가 계속되었고 그 뒤에는 외형적인 불사보다는 걸출한 고승대덕들이 많이 배출되어 사격을 드높였다. 

 

조선후기 화엄학의 대가인 설파상언(雪坡尙彦)스님과 조선후기 선문의 중흥조 백파긍선(白坡亘璇)스님을 비롯하여 구한말의 청정율사 환응탄영(幻應坦泳)스님, 근대불교의 선구자 석전 박한영스님이 선운사에 출가하거나 수행하시면서 당대의 불교를 이끌었던 명문사찰이 되었다. 

 

선운사 대웅보전은 보물 제290호이며 여기에 모셔진 세 분의 부처님들은 보물 제1752호이다. 박물관에 불보(佛寶)로 전시되어 있는 금동지장보살좌상은 보물 제279호이고, 영산전목조삼존불상, 육층석탑, 범종, 만세루, 화엄종주백파대율사대기대용지비를 비롯하여 석씨원류, 선운사사적기 등의 중요한 문화재들이 보존되어 있으며, 경내의 동백나무숲, 장사송, 송악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있다.   (현지 안내문 '선운사의 역사와 오늘'을 요약)

 

 

<선운사 일주문>

도솔산선운사(兜率山禪雲寺)란 현판이 붙어있다. 주차장 앞의 '선운사도립공원 관광 안내소'에서 이곳까지 들어오는데 제법 시간이 걸리고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꽃무릇, 가을에는 은행나무, 벚나무, 단풍나무 단풍이 아름답다. 기타 백파율사비, 재현한 고인돌 등이 있다.

 

 

<일주문에서 천왕문(극락교) 사이의 도솔계곡과 단풍>

단풍은 따로 앞글에서 다뤘다. 선운사 옆 도솔계곡은 정말 화려하고 아름다운 단풍명소이다.

 

 

<선운사 배치도>

아주 많은 전각이 있는 큰절이다. 지금도 가끔 헷갈리긴 하지만 이곳의 다양한 전각들을 보고 절의 전각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번에 보니 11번 관음전 옆에 지장보궁이 새로 들어섰다. 특이한 것은 잘린 사진 위에 있는 '승려노후수행마을'이다. 앞글에 올린 도솔폭포 가는 길에서 넘어지신 노스님도 그곳에 거주하는 분인 듯했다.

 

 

<선운사 천왕문과 사천왕상>

선운사 천왕문과 내부의 사천왕상들이다. 중앙은 북방 다문천왕과 동방 지국천왕, 오른쪽은 남방 증장천왕과 서방 광목천왕이다.

 

 

<선운사 범종각과 범종들>

중앙의 범종은 현재 사용하지 않고 오른쪽의 범종을 사용하는 듯하다. 중앙의 범종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31호로 높이는 129cm이다. 종신 4곳에 연화당 화문이 띠를 두르고 있고 그 유곽 안에는 9개의 연꽃이 있으며 보살상과 梵字를 새겼다. 몸체의 가운데 부분 銘文에 도편수 권동삼과 부도편수 이군술에 의해 개주(改鑄)되었으며 처영스님이 직접 주조 감독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선운사 만세루>

지정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53호.

만세루는 불법을 배우는 승려들의 강의실이다. 천왕문을 들어서면 바로 앞에 있고 그 뒤에 대웅보전이 있다. 사진에 보이는 왼쪽 건물은 대웅전 서쪽의 영산전, 오른쪽은 관음전 지붕 일부와 최근에 신축한 지장보궁이다.

 

 

<선운사 만세루 너머 서쪽의 전각들과 동백나무숲>

앞의 감나무와 배롱나무는 선운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붉은 기와 옆면을 보이는 아래 건물은 명부전, 위는 조사전이고, 중앙은 영산전이다. 영산전 뒤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 팔상전과 산신각이 있고 그 뒤에 천연기념물인 동백나무숲이 있다. 동백나무숲은 사진 중앙에 있는 짙은 초록색 부분이다.

 

 

<선운사 영산전 아래에서 본 대웅보전과 만세루>

 

 

<선운사 영산전>

영산전은 석가모니가 영산에서 불법을 설법하던 모습, 혹은 일생을 기리고 그 행적을 보여주는 전각이다. 원래 조선 성종 5년(1474)에 2층의 장륙전으로 지어졌으나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고, 숙종 39년(1713) 2층의 각황전을 세웠으나 전각이 무너져서 순조 21년(1821)에 단층으로 영산전을 지었다.

 

영산전에는 향나무로 만든 삼존불상과 16나한상을 안치하였다. 선운사 영산전 목조삼존불상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갈라보살과 미륵보살입상이 협시하고, 아래에는 16나한상이 봉안되어 있다. 석가여래좌상은 16각의 난간을 두른 나무 연꽃대좌에 앉아있고, 양쪽의 보살은 화려한 보관을 쓰고 연꽃을 들고 있다. 원래 건물 벽 안에 1821년에 그린 불교설화 벽화가 있었으나 지금은 성보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선운사 산신각>

왼쪽 사진은 영산전- 조사전- 팔상전- 산신각이다. 팔상전과 산신각은 영산전에 가려 앞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 사진은 산신각 내부인데 산신이 영험한지(!) 연등이 유난히 많이 걸려있고 오랫동안 예불을 드리는 신자가 있어서 방해가 되지 않도록 사진촬영도 멀리서 줌인했다. 

 

 

<선운사 산신각 뒤편의 동백나무숲과 동백꽃>

동백나무숲은 선운사 전역에 걸쳐 뒤쪽 숲에 있다. 난반사가 심해 사진 상태가 엉망이지만 숲이 꽤 깊다. 마침 백파율사비 앞 동백나무에 오른쪽 사진의 동백꽃 딱 1개가 피어있었다. 이곳의 동백은 초봄에 피었던 것 같다.

 

 

<산신각, 팔상전 앞에서 본 선운사 대웅보전과 연등>

왼쪽부터 관음전, 지장보궁이고 이어 대웅보전이 있다. 중앙은 만세루, 오른쪽의 가장 크게 보이는 전각은 영산전이다.

 

 

<선운사 팔상전>

팔상전은 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그린 팔상도를 봉안한 전각이다. 후불탱화로 영산회상도를 봉안하기 때문에 영산전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선운사에는 팔상전도 있고 영산전도 있는데 영산전에는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이 협시하고 있고, 팔상전은 팔상도 괘불과 작은 백불들이 봉안되어 있다. 

 

 

<선운사 조사전>

유일하게 문이 닫혀 있었다. 오래 전 기억으로는 조사(스님)들의 벽화가 봉안되어 있었다.

 

 

<명부전 앞에서 본 선운사 경내>

왼쪽부터 영산전, 대웅보전, 만세루이다. 어디에서 보아도 평지에서는 선운사의 모든 전각이 한꺼번에 보이지 않는다. 

 

 

<선운사 명부전> 

중앙의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협시한다. 저승세상 심판관인 시왕(十王)과 10명의 동자, 판관 2, 녹사 2, 문 입구에 장군상 2구 등 모두 29구가 봉안되어 있다. 지장전이라고 불리며 죽은 이들의 명복을 기원하는 전각이다. 어렸을 때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원색의 현란한 복장과 무서운 시왕들의 표정 때문에 접근조차 꺼렸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 생생한 표정, 특히 익살스러운 장군상의 표정이 좋아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전각이기도 하다.

 

 

 

<선운사 대웅보전과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지정 : 선운사 대웅보전 (보물 제290호)

지정 : 선운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보물 제1752호)

대웅전은 절에서 특별히 숭배의 중심이 되는 주불을 모신 법당이다. 현재의 대웅전은 정유재란(1597) 때 거의 불에 탄 것을 광해군 때인 1610년에 다시 건축한 것이며 그 뒤로도 수차례 수리하였다. 선운사 대웅전은 높은 석축 위에 세웠고 정면이 측면에 비해 2배 이상 크다. 전체적으로 외관이 장중하며 안쪽 단청 벽화가 매우 아름답고 세련된 모습이다. 천장의 섬세하고 화려한 용들이 구름 속에서 선운사를 수호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협시하는 보살을 두는데, 선운사 대웅전은 소조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서방 극락정토의 주인인 아미타불과 중생의 병을 고쳐주는 약사여래불을 모셨다. 이 소조비로자나불삼불좌상은 나무 기둥을 세워 윤곽을 바로잡고, 흙을 바르고, 천을 덧씌운 뒤에 금박을 입힌 불상이다. 불상은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넓고 당당한 어깨, 긴 허리, 넓고 낮은 무릎 등 16세기부터 17세기 전반까지 유행한 장대하고 웅장한 형태미를 보여준다.  

 

 

 

<선운사 대웅보전(좌)과 영산전(우)의 옆 벽면>

 

 

<처음 들렀을 때 인상적이었던 대웅보전 앞의 배롱나무>

 

 

<선운사 전각들>

왼쪽의 만세루부터 시계방향으로 원경은 명부전, 조사전(일부), 영산전이 보이고, 오른쪽은 대웅보전과 육층석탑이다. 사진 이쪽 편에는 관음전, 지장보궁, 성보박물관 등이 있다.

 

 

<선운사 관음전과 지장보궁>

지장보궁은 선운사 천왕사 앞 안내문에는 없는 것으로 보아 최근에 세워진 듯하다.

 

 

<선운사 관음전>

 

 

<선운사 금동지장보살좌상>

지정 : 보물 제279호.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원하고자 몸소 지옥에 들어가 죄지은 중생들을 교화구제하는 부처이다. 고창 선운사 금동지장보살좌상은 머리에 두건을 쓰고 편평한 얼굴, 형식적이고 수평적인 옷 주름 처리 등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으로 청동 표면에 금칠을 했다. 

일제 강점기에 도난을 당해 일본으로 넘어갔으나 불상 주인의 꿈에 수시로 나타나 '본래 고창 선운사에 있었으니 그곳으로 돌려 보내 달라'고 했으나 무시했고 가세가 기울고 병이 들자 불상도 처분했다. 그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쳤지만 같은 일이 반복되자 마지막으로 소장했던 사람이 고창 결찰서에 신고하고 반환함으로써 도난 당한지 2년 만에 선운사로 다시 돌아왔다.

 사진은 1938년 11월 반환 당시를 기념하는 사진과 이 사건을 간략하게 정리한 내용(오른쪽 아래)이다. 금동지장보살좌상 원본은  현재 선운사 성보박물관에 있고 지장보궁 안의 불상은 복제품이다.

 

 

<선운사 지장보궁과 복제한 금동지장보살좌상>

서로 다른 크기의 금동지장보살좌상이 전각 안을 촘촘하고 화려하게 채우고 있다. 이런 봉안 방법은 흔치 않아서 이채로웠다. 불상 좌우의 공간에는 금색 글씨들로 양쪽 벽면을 가득 채웠고, 작은 칸에도 천불전처럼 지장보살을 봉안했다. 게다가 전각 이름도 '전(殿)'이 아닌 '보궁(寶宮)'인 점이 독특했다.  '보궁'은 '보전'보다 격이 더 높지 않을까?

 

 

<선운사 지장보궁 지장보살 양쪽 공간의 모습>

 

 

<지장보궁을 나오면서 본 선운사와 동백나무숲>

이 위치에서는 뒷산(도솔산)의 짙은 녹색 동백나무숲이 확실하게 보인다.

 

 

<선운사 천왕전 안쪽과 바깥의 극락교>

 

 

<도솔암, 도솔폭포 가는 길목에 있는 선운사 템플스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