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단풍이 아름다울 수 있는 날씨 조건≫
가을이라고 매해 단풍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평소에 나무를 눈여겨 보는 편인데 어느 해인가 직장 마당에 있는 오래된 중국단풍이 노란 단풍의 제왕인 은행나무 단풍과 비견할 만큼 화사한 단풍이 드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게 눈에 띄는 대로 보고 판단하던 단풍을 유심히 보게 되었는데 특별히 아름다운 단풍은 대략 5년에 한 번 정도였다. 내 관찰에 의하면 아름다운 단풍이 들려면 갑자기 날이 추워야 한다. 따뜻한 날이 이어지는 가을은 단풍이 제대로 들기 전에 잎이 말라 붙으면서 그대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 다음 조건은 일단 단풍이 든 다음에는 비가 오지 않고 따뜻한 날이 이어져야 그 단풍을 오래 볼 수 있다. 아무리 예쁜 단풍도 비가 오거나 특히 강풍을 동반한 비가 오면 바로 떨어져 버린다. 위의 내용은 과학적인 내용이 아니라 내 개인적인 관찰이기 때문에 틀릴 수도 있다.
올해는 비교적 단풍이 아름다웠던 해였고, 중간에 비가 오지 않아 단풍을 오래 볼 수도 있었다. 갑작스런 추위와 단풍이 든 후 비가 오지 않는 두 가지 조건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게다가 직장을 그만 두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여행을 다닐 수 있어서 단풍을 볼 기회가 어느 때보다 많기도 했다. 덕분에 단풍과 무관하게 들렀는데도 포천 산정호수와 국립수목원, 고창 선운사와 예산 수덕사를 12월 초까지 계속 다니면서 단풍을 두루 볼 수 있었다.
≪11월 25일에 본 고창 선운사의 보너스 단풍≫
고창 선운사는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찰이다. 갈 때마다 다른 모습을 볼 수 있고, 당우들이 다양해서 보는 재미(!)가 크기 때문이다. 봄에 가면 동백꽃을 볼 수 있고, 여름에는 현란한 배롱나무꽃과 꽃무릇을 볼 수 있다. 가을 역시 화려한 단풍이 그 어떤 단풍 명소 못지 않다. 어느 해인가 들렀을 때 단풍 성수기였는데 그림자조차 빨갛게 물들어서 '단풍' 하면 이곳이 내 머리에 각인 되었을 정도이다. 더 아름다운 곳도 있겠으나 특별히 단풍을 쫓아다니지는 않으니 내 눈에는 이곳이 최고의 단풍 명소이다.
올해도 11월 25일에 들러서 단풍은 생각조차 안 했다. 요즘 계속 사찰을 집중적으로 둘러보는 중이라 선운사도 다시 보고 싶은 생각에 선택했는데 단풍이 덤으로 붙은 것이다. 전에 들렀을 때에는 주차장에서 선운사에 이르는 입구의 길과 계곡길과 단풍이 아름다워서 그것만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시간 여유가 약간 있어서 선운사에서 도솔암으로 가는 계곡 상류로 올라갔다. 그랬더니 입구 못지 않은 아름다운 단풍이 계곡을 따라 이어져서 있었다. 결국 시간이 부족해 도솔암까지 가는 것을 포기하고 도솔폭포에서 발길을 돌렸지만 미련이 남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다.
<선운사 입구의 선운산 도립공원 관광 안내소>
주차장에서 선운사까지의 거리가 상당히 길다. 그래서 나처럼 여행사 상품을 이용하거나 단체로 움직일 경우 절에서 주차장까지 나오는 시간 계산을 잘 해야 한다. 나도 사천왕문에서 20분을 예상하고 나왔다가 마지막에 100m 달리기 수준으로 뛰어 숨 넘어가기 직전 상태로 겨우 세이브했다. 우리 가이드 역시 시간 가늠을 제대로 못해 절로 올라가는 스님들의 승용차 앞을 가로막고 애원(!)해서 히치 하이킹했다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관광 안내소에서 공짜로 복분자주를 나눠주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지만 나는 보는 게 중요해서 패스! 이곳을 지나 노점상들이 몇 개 있는 곳을 지나면 아름다운 단풍길이 이어진다.
<선운사 입구의 노점상과 단풍길 시작점>
입구 초입에는 은행나무, 좀더 올라가면 단풍나무 단풍이 아름답다. 하지만 은행잎은 단 1개도 없이 다 떨어진 상태였다.
<선운사 입구의 벚나무길>
이곳 벚나무들은 꽃이 핀 봄이나 가을의 붉은 단풍이 모두 아름답지만 다 떨어졌다. 남아 있는 것은 빨간 단풍나무뿐이다.
<도솔계곡(선운천)의 화려한 단풍>
계곡 양쪽의 단풍이 거의 졌음에도 불구하고 얼마 안 남은 빨간 단풍들이 양과 무관하게 현란하다. 올 들어 본 단풍 중 최고였다. 특히 이곳은 다 지고 얼마 안 남은 단풍을 물에 비친 반영이 보완하는 느낌이다. 나는 이 계곡을 도솔천으로 기억하는데 구글에서는 '도솔계곡'으로, daum 지도에서는 '선운천'으로 표기해서 헷갈린다. 이 계곡의 끝(!)에 있는 저수지와 그 아래의 폭포는 각각 '도솔제'와 '도솔폭포'이다.
계곡 너머에도 목도 산책로가 있는데 무장애나눔길이다. 선운사 입구 계곡의 거의 지고 약간 남은 붉은 단풍이 다른 곳에 비해 왜 두드러질까 생각해보니 계곡 축대 위에 심은 꽃무릇 잎 때문이었다. 빨강과 보색인 녹색 꽃무릇 잎이 대비되어 서로 상승 효과를 내는 것이다. 만약 빨강과 주황, 노랑 단풍만 있었다면 그냥 화려하기만 했겠지만 녹색이 잡아주어서 깔끔하고 더 돋보이는 풍경이 되었다.
<선운사 앞에서 되돌아본 도솔계곡과 단풍>
<선운사 극락교, 사천왕문 앞의 단풍>
이 부근에는 아직도 단풍이 많이 남아있다.
<선운사에서 도솔암, 도솔폭포로 가는 길>
선운사에서 도솔암으로 가는 길이다. 계곡 건너편의 목도(무장애나눔길)로도 갈 수 있지만 이쪽 풍경이 더 아름답다. 양쪽의 도로는 템플스테이 앞 다리에서 연결되고, 조금 더 나아간 지점의 도솔폭포 앞에서 만난다. 이곳 선운사 담장 옆은 다소 썰렁하지만 선운사가 끝나는 지점부터 다시 화려한 단풍들이 나타난다.
<선운사에서 도솔암, 도솔폭포로 가는 길의 돌탑>
<선운사에서 도솔암, 도솔폭포로 가는 길의 서원암 입구>
<서원암 입구 주변의 도솔계곡과 단풍>
선운사에서 도솔암, 도솔폭포로 가는 길목에서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산자락 아래와 계곡 양쪽에 있는 꽃무릇 잎도 처음엔 몰랐는데 눈여겨 본 결과 이곳에서 꽃무릇 잎이란 걸 알았다. 잎으로만 유추해도 한여름의 꽃무릇이 단풍 못지 않게 얼마나 화려하고 아름다울지 가늠이 된다.
<선운사에서 도솔암, 도솔폭포로 가는 길의 꽃무릇 군락>
<선운사에서 도솔암, 도솔폭포로 가는 길의 돌다리(!)와 정자>
<도솔암, 도솔폭포로 가는 길에 되돌아본 풍경과 마애불>
마애불 왼쪽 위에 선운사 템플스테이가 있다.
<선운사 템플스테이 앞 다리와 GS 25 편의점>
시간이 모자랄 것 같아 도솔폭포에서 되돌아나오는 길에 이곳의 편의점에 들러 점심을 해결했다. 입구의 식당에서 풍천장어나 다른 음식을 먹을 예정이있지만 혼자 움직이다보니 먹을 수 있는 음식에 제한이 많고(2인분만 파는 경우가 많다!), 일단 시간이 모자랐다. 편의점 바로 앞에서 파는 어묵꼬치 2개와 사발면을 먹으니 가격도 저렴하고 든든했다. 만일 이곳에서 점심 해결을 안 했으면 쫄딱 굶을 뻔 했다. 편의점 옆의 넓직한 공간에서 의자와 식탁, 휴지, 젓가락, 뜨거운 물 등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서 고맙고 유용했다.
<선운사 템플스테이>
<선운사 템플스테이에서 도솔암, 도솔폭포로 가는 길>
왼쪽의 나무 다리를 건너서 직진하면 도솔폭포, 오른쪽으로 빠지면 도솔암이다. 이 주변은 두 번째 사진의 이름 모르는 활엽수와 참나무가 많았다.
<템플스테이에서 도솔폭포 가는 길의 노스님의 뒷 모습>
이 스님을 한동안 따라간 이유는 노쇄하셔서 걸음이 느렸기 때문이다. 앞지를 수도 있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아 조용히 따라가면서 몇 컷 촬영했다. 느린 걸음으로 조용조용 걷다 쉬다를 반복하셨는데 기력이 없는 분이 왜 혼자 산속을 걸으시는지 궁금했다. 나오면서 보니 입구쪽에 노스님들이 모여서 사는 시설이 있었는데 그곳에 거주하시는 분이었던 것 같다.
결국 이 스님은 얼마 안 가 길에서 넘어지셨고 놀란 나는 얼른 부축해 드렸다. 괜찮다며 바로 일어나셔서 마음은 놓았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였다. 잠깐 앉아서 쉬시던 스님은 바로 앞에 있는 도솔폭포에 들렀다 되돌아 나오며 강 건너 맞은편의 길에서 보니 스님 역시 천천히 되돌아 나오고 계셨다. 흐트러짐은 없었지만 수도자도 나이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선운산 도솔폭포>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 바로 위에 있는 도솔제(저수지) 보는 것도 포기하고 이곳에서 발길을 돌렸다. 도솔폭포는 템플스테이에서 300m 떨어져 있고 인공폭포이지만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운영 : 3월 ~11월까지 11:00~17:00까지 운영
특이사항 : 모터 과부하 방지를 위해 50분 작동한 후 10분씩 중지를 반복한다고 한다.
2010년 11월에 들렀을 때 쓴 선운사의 단풍에 대한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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