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윤씨 녹우당 일원≫ 사적 제167호.
전남 해남군 해남읍 녹우당길 135.
녹우당은 해남 윤씨의 고택이다. 윤선도의 4대 조부인 효정(호 : 어초은, 1476~1543)이 해남 연동에 살터를 정하면서 지은 15세기 중엽의 건물이다. 사랑채는 효종이 스승인 윤선도에게 하사했던 경기도 수원집을 현종 9년(1668)에 해상 운송하여 이곳에 이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윤선도(호 : 고산, 1587~1671)는 한성부 남부 명례방(현 서울 명동)에서 살다가 중년에 연동으로 내려와 해남 금쇄동과 완도 보길도를 내왕하면서 불후의 시조문학을 남겼다.
녹우당의 건축은 풍수지리에 따라 덕음산을 진산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으로 구성되고 행랑채가 갖추어져 조선시대 상류 주택의 형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경역에는 가묘, 어초은사당, 고산사당 등이 있으며, 입구에는 당시에 심은 은행나무가 녹우당을 상징하고, 뒷산에는 오백여 년 된 비자나무 숲(천연기념물 제241호)이 우거져 있다. 이곳에는 윤두서 자화상(국보 제240호), 윤선도 종가 문적(보물 제482호), 어부사시사집, 윤단학 노비허여문기 및 입안(보물 제843호) 등의 지정문화재와 3천여 건의 많은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고산 윤선도유적지 배치도>
녹우당은 후손들이 현재 거주 중이라 입장이 불가하고, 고산 사당과 어초은 사당도 미개방이다. 충헌각은 입장을 안 했고, 추원당도 들리지 못했다. 모든 유적지는 겉모습만 훑어보았다. 그나마 제대로 볼 만한 곳은 고산 윤선도박물관 뿐이었는데 우리가 들린 2023년 10월은 1, 2관 중 1관만 개방했고, 주어진 시간 30분 동안 안내인이란 분이 박물관 운영에 대한 이야기만 하며 시간을 거의 다 썼다. 후손들이 거주하는 녹우당을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하지만 박물관에서 개인적인 견해를 왜 그렇게 오래 들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늘어지는 내용들을 듣다 못해 우리들이 알아서 1전시실을 둘러보았지만 전시된 내용이 별로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개인 박물관으로는 가장 많은 서적이 소장되었다고 안내인이란 분이 설명했는데 1전시실에는 전시된 책 자체가 거의 없었다. 큰 기대를 하지 말고 사당과 녹우당 겉모습, 500 수령의 은행나무와 300년 수령의 곰솔을 보는 정도로 만족하는 것이 좋다. 시간이 된다면 녹우당 뒤편에 있는 비자나무 숲을 둘러보는 것도 괜찮겠으나 우리는 시간이 부족하여 패스! 이번에 들린 해남 여행에서 가장 기대에 못 미친 곳이었다.
<해남 고산 윤선도박물관>
박물관은 첫 번째 사진처럼 밖에서 보면 1층 기와 구조인데 전시실은 입장한 후 한 층 아래로 내려간다. 지하이지만 천장이 유리로 되어 있어서 지하라는 느낌은 없다.
<윤용의 미인도와 신윤복 筆 미인도>
지하로 내려가자마자 이 부조가 있는데 얼핏 보면 신윤복의 미인도 같지만 윤두서의 손자인 윤용의 미인도이다.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신윤복 筆 미인도(오른쪽)는 가슴쪽에 두 손을 모으고 조신한 자세로 옷과 노리개를 만지고 있고, 고산 윤선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윤용의 미인도(왼쪽)는 부조처럼 율동적으로 양 손을 들어 머리(가채)를 만지고 있다. (신윤복 筆 미인도는 나무위키에서 퍼옴)
<고산 윤선도박물관 1, 2전시실 배치도>
1전시실 : 해남 녹우당에 터를 잡고 조선시대 이후로 600여년 이상을 대대로 이어온 해남 윤씨 어초은파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사대부가의 삶에 대하여 보물급 고문서와 서책을 통해 알아본다.
2전시실(현재 미개방, 공사중?) : 우리나라 국문학의 대표적인 시인 고산 윤선도와 조선 후기 풍속화의 선구가 되었던 공재 윤두서의 생애를 알아보고, 윤선도와 윤두서의 학문·문학·그림·글씨 등에 대해 알아본다. (현지 안내문)
<고산 윤선도박물관 1전시실>
<고산 윤선도박물관 1전시실의 녹우당 관련 내용>
녹우당(綠雨堂)은 해남 연동마을의 해남 윤씨 종택을 일컫는다. 녹우(綠雨)는 녹음이 우거진 때 비가 내린다는 뜻과 선비의 변치 않는 절개와 기상이라는 의미도 담겨져 있다. 어초은파의 시조인 윤효정이 강진에서 해남으로 터를 옮긴 이후에도 지금까지 해남윤씨 녹우당의 터로 유지되어 왔다. 녹우당의 전체적인 구조를 보면 대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행랑채와 마당을 지나 그 옆면으로 배치된 사랑채, 서남쪽의 모퉁이에 있는 연못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다.
<고산 윤선도박물관 1전시실의 녹우당 미니어처>
<고산 윤선도박물관 1전시실의 녹우당 동영상 사진>
윗사진은 대문을 들어서 본 사랑채와 마당, 아랫단 왼쪽은 안채에서 본 사랑채, 오른쪽 사진은 사랑채에서 본 안채이다.
<고산 윤선도박물관 1전시실>
1전시실 안쪽에는 복원한 아양거문고와 고산(윤선도)유금, 서죽, 비녀와 호패, 상아홀, 나침반과 가죽 주머니 등이 있다.
<고산 윤선도박물관 2전시실 입구>
2전시실에는 윤두서 자화상과 고문서가 그나마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재 개방하지 않아(공사 중?) 볼 수 없었다.
<녹우당 옆에 있는 충헌각>
<해남 고산 윤선도유적지 녹우당과 은행나무>
미개방인데다 담장에 가려진 녹우당보다 입구의 은행나무가 더 유명하다.
<해남 고산 윤선도유적지 녹우당 대문>
<고산사당, 어초은사당, 비자나무 숲으로 가는 녹우당 옆길>
왼쪽은 올라갈 때, 오른쪽은 내려올 때 본 모습이다.
<녹우당 옆길의 수령 300년 곰솔>
왼쪽 사진 정면의 건물은 고산사당이다.
<고산사당(左)과 어초은사당(右)>
고산사당은 녹우당 담장이 끝나는 지점 오른쪽에서 먼저 보이고, 어초은사당은 어초은 윤효정의 사당으로 녹우당 뒤편의 비자나무 숲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다. 고산사당은 계단이 없지만 어초은사당은 앞에는 4단의 계단이 있을 뿐 양식이 거의 같다. 고산사당(孤山祠堂)은 고산 윤선도(1587~1671)를 배향하고 있는 불천지위(不遷之位) 사당이다. 고산 사후인 1727년(영조 3)에 불천지위로 지정되었다. 불천지위는 안사당에서 4대까지 모시고 묘로 가는 대신 영구히 사당에서 모시며, 보통 나라에서 공이 인정될 때 허락한 신위다. 매년 음력 6월 11일 이곳에서 기제사를 지낸다.
<녹우당 옆 어초은사당(左)과 고산사당(右)>
녹우당의 담장은 돌과 흙으로 투박하게 쌓았지만 그 자체가 아름답다.
<어초은사당에서 본 고산사당>
왼쪽은 어초은 윤효정의 사당, 오른쪽은 고산 윤선도의 사당이다.
<고산 윤선도유적지 어초은사당의 앞, 옆 모습>
어초은사당(漁樵隱祠堂)은 어초은 윤효정(1476~1543)을 배향하고 있는 불천지위(不遷之位) 사당이다. 윤효정은 덕음산 아래 이곳 백련동에 처음 터를 잡고 해남윤씨가를 중흥시킨 인물로 사당 뒤에는 윤효정의 묘가 있다. 녹우당 공간에서 어초은 제각, 어초은 묘와 함께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삼개옥문 적선지가(三開獄門 積善之家)'라 불리게 할 정도로 적선을 실천하며 가문을 빛내게 하였다. 매년 음력 11월 15일 시제사를 지낸다.
<고산 윤선도유적지 비자나무 숲 입구>
비자나무 숲, 어초은 묘도 둘러보고 싶었지만 단체로 움직이다 보니 시간이 부족하여 이 지점에서 되돌아 나와야 했다.
<고산 윤선도유적지 입구에 있는 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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