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공주 공산성, 청양 장곡사 입구 칠갑산 맛집

큰누리 2025. 2. 14. 16:15

 

≪공주 공산성≫ 사적 제12호.

백제가 서울 한성에서 웅진으로 도읍을 옮긴 이후, 웅진도성 안에 있었던 왕성이다.  북쪽으로 금강이 흐르는 해발 110m 공산의 능선과 계곡을 따라 쌓은 천연의 요새로, 성벽 전체 길이는 2,660m이다. 백제시대에는 토성과 석성이 함께 있었으나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다시 쌓았다. 처음에는 웅진성으로 불렀다가 고려시대 초에는 공산성, 조선 인조 이후에는 쌍수산성으로 불렸다. 백제 무왕31년(630) 사비(부여)의 궁궐을 수리할 때 5개월 동안 머물렀으며, 조선후기에는 총청감영이 설치되기도 하였고, 이괄의 난(1624) 때에는 인조가 이 성으로 피난했다.

성 안에는 백제시대 추정 왕궁터를 비롯하여 임류각과 연지 등 백제왕궁 관련 유적 4곳의 문터(금서루, 진남루, 공북루, 영동루), 쌍수정, 쌍수사적비, 명국삼장비, 영은사, 연지 및 만하루 등 백제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적들이 남아 있다. 2015년 7월 8일,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공주 공산성 국가유산 관람료 및 입장 / 관람시간>

일반인 입장료는 3,000원, 입장시간은 하절기(09:00~17:30), 동절기(09:30~16:30), 관람시간은 마감시간에서 30분 후이다.

 

<공주 공산성 입구의 세계유산 표석>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는 공주(웅진) - 공산성, 무령왕릉 및 왕릉원, 부여(사비) -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정림사지, 능산리고분군, 나성, 금마저(익산) - 왕궁리유적과 미륵사지이다.

 

<공산성 금서루 입구 비석군>

금서루 입구 비석군은 공주와 관련된 인물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들로, 공주에 흩어져 있던 비석들을 모아 놓은 것으로 송덕비와 제민천교영세비 등 47기가 있다. 대다수는 인물의 공덕을 칭송하는 내용을 새긴 송덕비인데 '영세불망비, 청간선정비, 거사비, 만세불망비, 유애불망비, 청덕선정비' 등의 글이 새겨져 있다.

 

<공산성 금서루 입구 비석군, 목사 김효성의 비>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공주 목사 김효성(1585~1651)을 기리기 위해 1828년 순조 28)에 세운 비로 처음 옥룡동에 세울 때에는 거북 모양의 받침돌, 몸돌, 머릿돌이 있었으나 현재 위치로 옮기면서 받침돌이 사라져 사각형으로 대신했다고...

 

<공산성 금서루 입구 비석군, 제민천교영세비>

공주시 향토문화유적기념물 제20호, 1817년(순조17) 제민천인 대홍수로 범람하고 제민천교가 붕괴되자 이를 재건립한 사실을 기리는 비석이다.

 

<공산성 금서루(錦西樓)의 안팎>

금서루는 공산성 4개 성문 중 서쪽 문루로 성 안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지만 1859년에 편찬된 <公山誌>의 기록과 지형적 여건을 고려하여 1993년에 복원하였다.  

 

<공산성 동서남북의 깃발>

공산성 성벽 동서남북에 배치한 깃발은 송산리 6호분 벽화에 있는 사신도를 재현한 것이다. 깃발의 바탕색 노랑은 우주의 중심색이라고 생각하여 중하게 여겼다. 깃발의 테두리는 사신도의 각 동물이 상징하는 색(방향)을 따른 것으로 동 청룡, 서 백호, 남 주작, 북 현무를 각각 배치하였다.

 

<공산성 금서루 누각 위와 성벽>

금서루 좌우 성벽의 깃발은 노랑 바탕에 백호 그림, 삼각형 테두리도 흰색이다. 바탕색이 바래서(!) 주황으로 보인다.

 

<공산성 금서루에서 공산정, 공북루로 이어지는 성벽>

 

<금서루에서 남쪽방향으로 이어지는 공산성 성벽>

 

<공산성 남서쪽에서 본 공주 시가지>

 

<공산성 쌍수정과 쌍수정 사적비>

공산성 쌍수정(충청남도 문화유산) 충청도 관찰사 이수항이 1734년(영조10)에 인조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조선 16대 왕인 인조(재위 1623~1649)는 1624년 이괄의 난을 피해 공산성의 두 그루 나무 아래에서 6일간 머무르며 난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난이 끝난 후 인조는 자신이 기대었던 두 그루의 나무에 정3품의 벼슬을 내리고, 그 후로 공산성을 '쌍수산성'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수항이 세운 정자는 '삼가정'이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1970년에 해체하여 재건한 것이다. 공산성 쌍수정 사적비(유형문화유산)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공산성에 머물렀던 일을 기록하여 세운 비이다.

 

<공주 공산성의 추정 백제 왕궁지>

공산성 정상(쌍수정 아래)에서 발굴된 유물로 왕궁지로 추정한다.

 

<공주 공산성 추정 왕궁지 발굴조사>

 

<공주대학교의 추정 왕궁지 일대 조사 모습>

 

<공산성 백제시대 인공 연못>

공산성 왕궁 터에서 확인된 지름 9.5m, 바닥 너비 40~50cm의 인공 연못이다. 빗물을 받아 연못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화재 발생 시 소방용으로도 사용하였다. 연못 바닥에는 얇고 평평한 돌을 깔고, 연못 벽은 물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해 점토를 두껍게 채웠다. 

 

<추정 왕궁지에서 본 쌍수정과 쌍수정 사적비각> 

 

<공주 공산성 진남루(鎭南樓)>

충청남도 문화유산 자료. 진남루는 공산성의 남문이자 정문이며, 조선시대에는 삼남(三南)의 관문이었다. 공산성 사문 중 진남루와 북문인 공북루는 성문이 남아 있었고, 동, 서문은 터만 남아서 1993년에 동문 터에 영동루를, 서문 터에 금서루를 복원했다. 진남루는 여러 차례 고쳐 지었으며 지금의 성문은 1971년에 전부 해체하여 다시 세운 것이다. 진남루 좌우의 성벽 위 깃발은 붉은색의 테두리와 붉은 주작이 그려져 있다.

 

<공산성 백제 건물지>

주춧돌을 사용하지 않고 땅에 구멍을 파서 직접 기둥을 세운 굴건식 건물터이다. 1990년 발굴조사로 건물터 2곳과 구덩이 9개를 확인하였다. 이 건물터는 475년 백제가 웅진으로 천도하기 전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건물이 세워졌음을 뜻하는 것으로 웅진 천도 이전의 공산성 역사를 밝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공주 공산성 공산정과 공북루(北樓)>

왼쪽 위 정상의 공산정은 나뭇가지에 가려 가물가물... 

 

<공산성 공북루(北樓), 금강 너머로 보이는 공주 군밤축제장>

 

<점심을 먹은 청양 장곡사 입구의 '칠갑산 맛집'>

군밤축제, 공산성, 청양 얼음축제 등을 테마로 참가한 여행사 추천(!)으로 점심을 먹으러 들린 곳이다. 요즘은 당일 여행일 경우 여행비 단가를 낮추기 위해 여행사에서 대부분 점심 제공을 하지 않는다. 차라리 1만원~1만 5천원 정도인 점심값을 내고 주는대로 먹는 게 나같은 사람은 편한데 그렇게 생각 안 하는 참가자들도 많은 듯하다. 

다행히 여행사에서 소개한 이곳은 음식이 토속적이고 맛있었다. 처음엔 식당측에서 자꾸 나중에 들어가라고 제동을 걸어서 불편했는데 알고보니 고객들이 화상을 입지 않고 제대로 된 솥밥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모든 음식이 맛있었는데 특히 된장이 맛있어서 개인적으로 작은 통 2개를 사왔다. 밑반찬도 조금씩 판매하는데 주요 메뉴는 된장, 메주이다.

 

<청양 장곡사 입구 '칠갑산 맛집'의 메주들>

 

<청양 장곡사 입구 '칠갑산 맛집'의 나물비빔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