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만산(晩山)고택≫
지정 : 국가민속유산
소재지 : 경북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288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만산(晩山)고택은 조선 후기의 문신인 만산 강용(姜鎔, 1846~1934) 선생이 고종 15년(1878)에 건립한 집이다. 선생은 중추원의 의관과 도산서원장 등을 지냈다. 1910년 이후에는 망국의 한을 학문으로 달래면서 마을 뒷산에 망미대를 쌓고, 그곳에 올라 국운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시를 읊었다고 한다. 이 주택은 11칸 규모의 긴 행랑채가 있고, 가운데에 솟을대문이 있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사랑마당이 있고, 정면에 측면 출입형의 'ㅁ'자형 본채가 있다. 사랑마당 왼쪽으로 서실(書室)이, 오른쪽에 토석 담장을 두른 별당인 칠류헌(七柳軒)이 있다. 사랑채에는 흥선대원군이 직접 쓴 '만산(晩山)' 현판이 걸려 있다. 또한 서실에는 '한묵청연(翰墨淸緣)'이라는 영친왕의 친필 현판도 걸려 있다. 이로 보아 당시 선생은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건물은 본채와 서실, 별당, 대문채처럼 조선후기 사대부가의 주택 구성을 고루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북 북부지방의 건축 특성을 잘 보존하고 있어 조선시대 건축 연구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만산(晩山)은 흥선대원군이 '대기만성의 큰 인물이 되라'는 뜻을 담아 직접 호를 짓고 편액을 써서 강용 선생에게 내려보냈다고 한다.
봉화 만산고택은 지역이 상당히 외진 곳임에도 이런 규모의 고택이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게다가 이곳뿐 아니라 닭실마을 권벌종택 같은 비슷한 규모의 다른 고택도 더 있다는 점 등이 '주택만으로도 봉화는 외진 곳이라는 편견'을 깨지게 만들었다. 돌아보면서 함양 정여창 선생의 일두고택이나 거창 정온선생의 동계종택과 많이 비교가 되었는데, 만산고택은 일두고택이나 종계종택에 비해 별당이 규모가 크고 서실이 별도로 있는 점이 달랐다. 두 주택에 비해 밀리는 점(!)이라면 사당이 남아 있지 않은 점과 안채 규모가 작은 점 등이었다. 만산고택에서 인상 깊었던 것 세 가지는 첫째, 각 건물에 촘촘히 걸린 현판(편액)들이었는데 알려진 고택에서 그 정도로 많고 유명한 현판은 처음이었다. 둘째는 사랑채와 별채의 선반(!)에 전시해 놓은 도자기잔들이었다. 마지막으로 입구부터 사랑마당, 별채마당, 안채마당에 만개한 미나리아재비, 작약, 민백미, 꽃양귀비 등의 꽃이었다.
<봉화 만산(晩山)고택 솟을대문>
왼쪽에 '독립유공자의 집'과 '명품고택'이라는 안내판이 붙어있다. 명품고택 아래에는 '문화체육관광부·한국관광공사 인증 우수 전통한옥문화체험 숙박시설'이라는 내용이 있다. 국보나 보물, 지방문화재 등이 아닌 경우 시설유지를 위해 숙박을 하거나 내부를 개조하여 영업을 하는 것이 허용되는데 그 경우인 듯하다. 안내자이신 임찬웅선생님도 그 부분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 문제는 관리를 하시는 후손께서 너무 연로하셔서 더 이상은 숙박을 할 수 없다고 한다.

<봉화 만산(晩山)고택 국가민속문화재지정서>
별채의 방에 걸려있던 것이다.

<봉화 만산(晩山)고택 사랑마당과 사랑채>

<봉화 만산(晩山)고택 서실(書室)과 사랑채>

<봉화 만산(晩山)고택 사랑채와 별당 칠류헌(七柳軒)>

<사랑채에서 본 봉화 만산고택 솟을대문과 11칸 대문채>

<봉화 만산(晩山)고택 사랑채의 현판 4개>
동쪽(윗단)에서부터 만산(晩山, 흥선대원군書), 정와(靖窩, 강벽원書), 아랫단은 사랑채 2통간 대청에 걸린 존양재(存養齋, 오세창書), 차군헌(此君軒, 권동수書) 현판이다. 晩山(흥선대원군書) 현판은 이화여대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여타 다른 현판도 사본이 섞여 있다. 정와(靖窩)는 이집의 별칭으로 강용은 이 명칭을 좋아했다고 한다. 만산고택에서 이 현판(편액)과 글쓴이를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봉화 만산(晩山)고택 서실(書室)과 현판>
왼쪽의 한묵청연(翰墨淸緣)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이 8살 때 쓴 글씨로 '문필로 맺은 맑고 깨끗한 인연'이란 뜻이다(어린애가 알고는 썼을까? 뜻이 너무 심오해서...). 오른쪽의 서실(書室)은 사랑채의 차군헌(此君軒)을 쓴 석운 권동수의 글씨이다. 서실은 자녀들의 공부방이었다고 한다.


<만산고택 사랑채 서쪽의 안채 출입문>

<사랑채와 서실에서 본 만산고택 대문채와 솟을대문>

<만산고택 안채 서쪽과 마당의 다육이 화분들>
안채는 생활공간이라 들어가지 않고 장독대와 다육이 화분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민 서쪽 마당을 보고 뒷뜰로 돌아나왔다. 세 번째 사진은 안채 서쪽 마당 안쪽에서 본 안채 대문이다.


<만산고택 안채 뒷마당>
이단으로 된 아랫 마당에는 꽃양귀비가 피어 있고, 벽에는 농기구 등이 세워져 있다.


<만산(晩山)고택의 토기 소줏고리와 맷돌>

<만산(晩山)고택 별채 칠류헌(七柳軒) 출입문>

<만산(晩山)고택 별채 칠류헌(七柳軒) 마루와 고무신>
빈 공간 곳곳에 엎어놓은 여분의 기와들이 마치 인테리어인 것 마냥 아름답다.

<만산(晩山)고택 별채 칠류헌(七柳軒)과 현판과 주련들>
칠류헌(七柳軒) 현판은 2개인데 이중 안쪽이 오세창 선생의 글씨인 듯하다.


<만산(晩山)고택 별채 칠류헌(七柳軒) 현판들>
별채 이름인 칠류헌(七柳軒) 현판은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오세창 선생의 글씨이다. 칠류(七柳, 월화수목금토일)는 천지기운의 순환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중국 육조시대 도연명의 모습을 투영하여 국운이 빨리 회복되기를 기원하는 집이란 의미라고 한다. 모사본인 어약해중천(魚躍海中天)은 주자 글이다. 아랫단의 사물재(四勿齋)는 한일동의 글, 백석산방(白石山房)은 김규진의 글이다.


<안쪽에서 본 만산고택 별채(七柳軒)의 주련과 현판들>

<만산고택 별채 칠류헌(七柳軒)의 서까래와 대들보>
이 고택은 춘양목으로 지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만산(晩山)고택 별채 칠류헌(七柳軒)의 편액>
'정와주인(靖窩主人)'이란 글로 보아 건립자인 강용 선생이 쓴 것으로 추측...

<만산고택 별채(七柳軒) 내부의 모사본 七柳軒과 위안스카이(淸, 원세개)의 글>

<만산고택 별채(七柳軒) 내부의 다기와 그릇들>
사랑채에 있던 다기와 이곳의 다기, 그릇의 양이나 질이 만만치 않을 듯하다. 고택과 어울리는 이 다기와 그릇들이 인상적이었다.

<숙박 장소로 쓰인 듯한 만산고택 별채(七柳軒)의 방>

<만산고택 별채(칠류헌)와 안채 사이의 문>
안채로 직접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있는 마당이 있다. 만산고택에는 이런 예쁜 중문이 4개나 있다.

<만산고택 사랑채 동쪽의 부엌과 안채로 들어가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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