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봉화 닭실마을 충재박물관

큰누리 2025. 8. 19. 21:12

≪봉화 닭실마을 충재박물관≫

주소 : 경북 봉화군 봉화읍 충재길 60

충재박물관은 종가에서 소장해오던 유물을 보관하고 전시하는 공간으로 2007년 9월에 개관하였다. 국가지정보물 5건 482점과 기타 조선시대의 유물 10,000여점이 소장되어 있다. 1995년 3월 문중의 기금과 후손들의 성금으로 충재 선생 종가에 '충재선생유물관'을 건립했다. 유물관은 그간 불안하게 관리된 유물을 안전하게 지키고 관람객에게 보여주었으나 주변의 전통건물과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는 비판과 온도·습도 조절 시설이 없어 유물이 손상되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2007년 청암정 뒤편에 현재의 충재박물관을 지음으로써 전시공간과 수장고까지 갖추어져 보다 나은 유물의 전시와 보존이 가능해졌다. 후손의 기증으로 소장유물이 늘어나고 있으며, 그간 소장해온 유물의 체계적인 관리와 이를 이용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진행 중이다. 

 

충재박물관의 국가지정문화유산(보물) 5건

1. 권벌 종가 고문서 : 일괄(15종 274점), 1986.11.29 지정

  *황보인의 과거합격자명단인 문과방목
  *권벌 모친 윤씨남매 재산분배기
  *중종이 권벌선생에게 내린 교서와 교지
  *관에서 개인의 문서를 확인, 인정하는 입안
  *관청에 개인의 청원을 하는 진정서 소지, 명문 

2. 권벌 종가 유묵 : 일괄(8종 14점), 1986.11.29 지정

  *조선 전기 김구의 초서체 족자 1점
  *퇴계 이황의 서첩
  *미수 허목의 <미수전>
  *明나라 초서체 대가 장동해의 필적 3폭
  *조선 중기 명필 필적모음집 <암장고적> 5책
  *<선조고적> 등

3. 권벌 종가 전적 : 일괄(15종 185책), 1986.11.29 지정

  *<우향계축>(1478)
  *과거 합격자 명단 <사마방목>(1406)
  *<문과잡과방목>
  *임진왜란 이전의 자료 충재일기 등

4. 권벌 충재일기 : 6책. 중종 2년~5년(1507~1510), 1963.01.21 지정

충재 권벌이 서울에서 관직생활할 때 쓴 일기
  *한원일기: 예문과 재직 시 1, 2책(중종, 1508.01.05~1509.09.14)
  *당후일기: 승정원 주서로 재직 시(중종, 1510. 03.01~03.30.) 
  *승선시일기: 승정원 승지 재직 시 1, 2책(중종, 1518.5.15~11.06.)
  *신창령추단일기: 승정원 주서 재직 시(중종 4, 150910.28.) 서얼출신 종친 신창령 이흔의 역모사건 전말을 추단한 기록

5. 근사록(近思錄) : 4책(고려 공민왕 19년, 1370), 1963.01.21 지정

 - 송나라 유학자인 섭채가 성리학의 기본이 되는 주돈이의 <태극도설>과 장재의 <서명> 등 중요한 문헌을 골라 만든 성리학의 독본으로 고려 공민왕 당시 뛰어난 성리학자인 박상충이 진주목사로 부임하는 이인민에게 선물한 것.

 

<봉화 닭실마을 충재박물관>

위치 : 경북 봉화군 봉화읍 충재길 60

영업시간 10:00~17:00 (동절기 10:00~16:00)

정기휴무 : 매주 월요일 

휴게시간 12:00~13:00

입장료 : 무료

연락처 : 054-674-0963

주차장 있음

 

≪충재 권벌(沖齋 權橃) 선생≫

충재 권벌(沖齋 權橃) 선생의 본관은 안동이며 자는 중허(仲虛), 호는 충재(沖齋) ·훤정(萱亭), 시호는 충정(忠定)이다. 연산군 2년(1496) 진사시에 합격하고 중종 2년(1507) 문과에 급제하여 史官과 三司 및 승정원과 각 조의 주요 요직을 두루 거쳤다. 고위관직에 재직할 때는 대의를 위해서 일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己卯士禍와 乙巳士禍의 화(禍)를 연이어 입었다. 특히 을사사화 때에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홀로 충순당의 문정왕후에게 나아가 윤원형을 위시한 소윤(小尹)일파의 전횡과 무고하게 화를 입은 윤임, 유관, 유인숙 등 삼대신을  구하는 논지를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당시 올린 <충순당입대계사(忠順堂入對啓事)>와 <논구삼신계(論救三臣啓)>는 그 내용이 너무나 충직하여 후세에 두고두고 회자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 평안도 삭주로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별세하였다. 선조 때 억울함이 풀어져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봉화(당시는 행정구역상 안동)의 삼계서원(三溪書院)에 모셔져 있다. 

 

<조선시대 주요 4대 사화(士禍)>

사화(士禍)란 조선시대에 정치적으로 반대파에 몰려 선비들이 참혹하게 재화를 입은 사건(현지 안내문)

* 무오(戊午)사화 : 1498년(연산군 4)에 유자광을 중심으로 한 훈구파에 의해 김일손 등 신진사류 화를 입은 사건. 

* 갑자(甲子)사화 : 1504년(연산군 10)연산군의 어머니 윤씨의 폐위 문제로 연산군이 임사홍을 중심으로 훈구파와 사림파 잔존세력을 제거할 목적으로 일으킨 사건. 

* 기묘(己卯)사화 : 1519년(중종 14)에 남곤, 심정, 홍경주 등의 훈구파들이 혁신을 감행한 조광조 등의 신진사대부를 제거한 사건

* 을사(乙巳)사화 : 1545(명종 원년)왕실 외척인 大尹과 少尹의 반목으로 일어난 사건으로 소윤의 윤원형, 이기 등이 대윤의 윤임, 유관, 유인숙 등을 몰아낸 사건 

 

<봉화 충재박물관>

 

<봉화 충재박물관의 '충재문집'>

 

<봉화 충재박물관의 '심경(心經)'과 '근사록(近思錄)'>

 

<충재선생의 홍패 '교지'와 문과급제 '시권(답안지)'>

위의 교지(敎旨)는 4품 이상의 관리를 임명할 때 발급하는 사령장이고, 바닥의 '三之二'라 적힌 종이는 충재선생의 문과급제 답안지시권(試券)이다.

 

<충재선생의 '유경상도관찰사권병서(임명장)'>

 

<충재선생의 수진 근사록(袖珍 近思錄), 보물>

이 책은 충재선생이 도포 소매 속에 넣고 애독하던 책으로 고려 때 인쇄되었다. 책의 앞부분에 정조의 어제서문이 적혀 있다. 충재선생이 관직에 있을 때 중종이 베푼 연회에서 이 책을 잃어버렸다가 중종이 돌려준 유명한 일화가 있다. 후대의 영조 및 정조는 근사록에 조예가 깊었던 충재선생의 책을 받아서 읽었고, 정조가 책을 돌려줄 때 앞부분에 '어제서문'을 적어서 주었다. 

 

<충재선생 불천위 제사상의 11층(?) 떡>

 

<충재 권벌선생의 불천위 제사상 차림>

 

<김구진묵(金絿眞墨, 이별서)>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가 발생하여 중종을 왕으로 세운 훈구파와 중종이 채용한 조광조 등의 신진사림세력이 대립하다가 신진사람세력이 숙청당한 사화이다. 충재선생은 두 세력의 중재를 위해 애쓰다 실패하고 부모님 봉양을 위해 삼척부사로 나갔다가 그곳에서 파직을 당했다. 이에 함께 관직에 있었던 자암 김구(김구)선생이 충재선생에게 써준 왕발(王勃)의 이별시이다.

 

<을사사화 때 충순당에서 문정왕후와 충재선생의 만남>

을사사화는 1545(명종 원년) 왕실 외척인 大尹과 少尹의 반목으로 일어난 사건으로 소윤의 윤원형, 이기 등이 대윤의 윤임, 유관, 유인숙 등을 몰아냈다. 충재선생은 수렴청정 중인 문정왕후를 찾아가 일을 바로 잡고, 무고하게 죄를 뒤집어 쓴 윤임 등 3명의 대신에 대한 구명을 주장했으나 소윤파의 미움을 받고 파직되어 고향인 유곡(달실)로 내려온다. 얼마 후 소윤파의 계략으로 발생한 양재역벽서사건에 연루되어 전라도 구례로 유배를 갔다가 평안도 삭주로 이배되었고, 그곳에서 사망한다. 사후 20년 뒤에 명예가 회복되고 다시 10년쯤 뒤에 忠定公 시호를 받았다. 

 

<충재 종가의 제례기구(촛대와 향, 촛대 받침대)>

유제촛대(좌우, 구슬을 엮은 듯한 황동제 촛대로 사진 윗부분이 잘림), 흑칠향좌아(중앙, 향로를 올려 놓는 받침대로 서랍에 향을 넣어둔다.), 좌우의 주칠향좌아(유제촛대 받침대). 

 

<충재선생 모친 윤씨 贈정경부인 교지(좌), 충정공 권벌 영의정 증직교지(우)>

 

<사망한 벼슬아치에게 내린 조선시대의 명예로운 관직들>

추증, 시호, 불천위.

 

<충재선생문집>

10권 5책의 충재 권벌 선생의 시문집으로 영조 28년(1752)에 만든 목판으로 인쇄한 것이다.

 

<연산군일기세초지도, 권두인 준호구(準戶口), 우향계축 부진솔회축, 권래유서>

 

<연산군일기세초지도>

 

<권두인 준호구(準戶口, 국가유산, 보물)>

숙종 37년(1711), 충재선생의 후손인 권두인의 가족관계 증명서이다. 호적자료는 호구단자, 준호구, 호적대장 등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중 준호구(準戶口)는 호주의 신청에 의해서 관청에서 발급하는 문서이다.

 

<우향계축 부진솔회축(友鄕契軸 附眞率會軸, 병풍), 권래유서(하단)>

우향계(友鄕契)는 학덕있는 안동의 선비 13명이 성종 9년(1478)에 조직한 결사체이고, 이후 그들의 후손과 지역 선비들이 이어 만든 것이 진솔회(眞率會)이다. 우향계와 진솔회는 조선시대 중앙집권적 체제에서 파견된 지방수령을 보좌하기도 하고 이들을 견제하기도 했던 일종의 지방자치조직으로 오늘날의 지방의회와 유사하다. 우향계는 지금도 후손들에 의해 500년 넘게 유지되고 있다.

 

<충재박물관의 유물들>

 

<충재박물관의 유물 호패>

 

<충재박물관의 유물 각대>

 

<충재박물관의 유물 전각(도장)>

 

<충재박물관의 유물 갓과 탕건, 갓끈>

 

<충재박물관의 살림용 유물>

왼쪽부터 체, 주걱, 떡살, 되이다.

 

<충재박물관의 제사용 그릇들>

윗단은 유기, 아랫단은 죽세공예품과 목기이다. 전통 제기는 유기나 목기가 대부분인데 대나무로 만든 것은 처음 보았다. 

 

<석천정사 제영시(石泉精舍題詠詩)>

청암 권동보 詩, 석천계곡에 있는 석천정사(石泉精舍)와 관련된 시인 듯하다.

 

<복숭아 모양 은술잔과 주머니>

중종 연간(1500년대). 왕실 하사품으로 이 집안의 혼례식 때 사용했다.

 

<목판 인쇄법과 하당선생문집 목판(荷塘先生文集 木版)>

하당선생문집 목판(荷塘先生文集 木版)은 고종 29년(1892), 하당 권두인의 글을 모아 목판으로 간행한 문집이다.

 

<김종련 연명상소(金宗煉 聯名上疎)>

안동에서 노론과 남인세력의 갈등으로 촉발된 상소안동향교에 게시되었던 정조어필의 현판과 도산서원의 시사단비가 노론인 안관 등에 의해 파괴되자 그 부당함과 불법에 대해 탄핵하는 상소이며, 정조 22년(1798)에 일어났던 이 사건은 '무경일록(戊庚日錄)'에 그 전말이 잘 나와 있다. 연명상소문(만인소)은 조선의 여론정치를 엿볼 수 있는 것으로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사안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올리는 상소문이다. 주로 성균관 유생들이 주도하여 집단상소를 올리다가 16세기 이후에는 지방유생들이 주도했다. 특히 영남지역의 유생들이 만인소를 많이 올린 이유는 당시에 노론이 집권을 했고, 영남의 남인들은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집단적 의견을 중앙에 알리기 위해 왕에게 직접 상소를 제출했다.

 

≪편액(扁額)과 현판(懸板)≫

편액(扁額)은 흔히 현판(懸板)으로 통칭된다. 대개 가로로 걸기 때문에 횡액(橫額)이라고도 하나 세로로 써서 걸기도 했다. 편(扁)자는 원래 서(署, 관청)의 의미로 門戶 위에 제서(題書)함을 가리키며, 액(額)자는 이마, 즉 상(箱)의 뜻이다. 따라서 건물 정면의 문과 처마 천장 사이에 건물 명칭을 쓴 액자를 일컬었으니 넓게는 건물에 관련된 사항이나 묵객들의 서화가 담긴 일체의 현판도 편액이라 부르게 되었다. 편액은 건물의 얼굴이므로 해당 건물의 격식에 맞는 글씨를 택하는데 당대 명필이나 제왕의 어필(御筆), 문인 등의 개성있고 정신이 돋보이는 글씨를 등 선현들의 필적을 두루 살필 수 있다.  

달실(닭실)마을의 편액은 청암정, 석천정, 추원재, 삼계서원, 종가 등 많은 고건물에 오랫동안 걸려 있었으나 1980년대에 문화재 도둑들이 날뛰면서 편액에까지 손을 뻗쳤다. 안동권씨 문중에서는 도난방지를 위해 원본을 떼어내고 사본을 대신 붙여놓았는데 이곳의 편액은 건물에서 떼어낸 원본이다.

 

<충재박물관, 닭실(달실)의 편액들>

청암정(靑巖亭) 편액 원본, 미수 허목 선생의 청암정 편액 제자이다. 이곳에 있는 편액들은 도난방지를 위해 건물에서 떼어내 보관 중인 원본이다.

 

<明 태조 주원장 유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