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구단, 정동 답사≫
25. 10.30. 국립민속박물관 전통문화지도사 조별 답사에서 내가 속한 2조는 환구단, 정동(덕수궁 주변)을 답사했다. 다른 조는 서촌, 국립민속박물관 2실(한국인의 일년)이었다. 3개 조가 돌아가면서 서울지역 답사를 하고, 우리 조는 국립민속박물관 2실에 이어 환구단, 정동을 답사했으니까 서촌만 남았다. 이 날 우리가 들린 코스는 *환구단- 덕수궁 돌담길의 구름다리 터(운교)- 정동교회- 중명전- 구 러시아 공사관- 고종의 길- 복원 중인 덕수궁 선원전*이었다.
정동에 가끔 들리긴 했지만 답사는 오래 전에 했기 때문에 확인 차원에서 환구단, 정동 답사에 참여했는데 예전에 비해 달라진 점이 많았다. 환구단이나 정동은 크게 달라진 점이 없었지만 공사 등으로 어수선했던 구 러시아공사관은 깔끔하게 정비가 되었고, 무엇보다 이전에 본 적이 없는 '고종의 길'이 생기고, 그 끝에 '덕수궁 선원전'이 복원 공사 중이어서 놀랐다. 몇 년간 안 들린 사이에 이런 변화가 있었다니... 예전에는 구 러시아 공사관 너머(미국대사관저 뒤)로 갈 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고종의 길'이 생기고 값비싼 서울 한복판의 공간을 되찾아 덕수궁 선원전을 복원하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환구단(원구단)≫ 사적
환구단(원구단)은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던 곳으로 황단, 원구단, 원단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남별궁 터에 1897년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황궁(현재의 덕수궁)과 마주보는 현 위치에 환구단을 세우고 대한제국이 자주독립국임을 대내외에 알렸다. 제사를 지내는 3층의 원형 제단(환구단)과 하늘 신의 위패를 모시는 3층 팔각 건물인 황궁우, 돌로 만든 북 석고, 삼문, 협문 등의 시설이 있었다. 1913년 일제는 환구단을 헐고 그 자리에 조선경성철도호텔(현재의 조선호텔)을 지었으며 현재 남아있는 것은 황궁우이다.
<환구단(원구단) 정문>
1960년대 말 철거된 후 행방을 몰랐다가 2007년 강북구 우이동의 그린파크호텔을 재개발하는 과정에서 정문이 바로 원구단 문임이 확인되어 이전 복원되었다. 원 위치는 지금의 서울광장 쪽이 아니라 조선호텔 쪽이고, 정면의 가운데 칸을 늘린 상태이다.

<석고(石鼓)>
석고는 광무 6년(1902) 고종 황제의 즉위 4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조형물이다. 3개의 돌북은 하늘에 제사를 드릴 때 사용하는 악기를 형상화한 것으로 몸통에 조각된 용무늬는 당시 최고의 조각 중 하나로 평가된다.

<환구단 삼문과 조형물들>
이곳의 돌 석수상들은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하는 고궁(!) 관련 조형물이다. 경복궁이나 다른 고궁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석수상이 압축된 것 같은 귀여우면서도 세련된 조각들이다. 작은 석수상은 기년전의 조각상들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환구단 삼문 양 옆의 석수상>
예전보다 벽과 틈이 더 벌어져서 안타깝다!

<황궁우의 남쪽면>


<황궁우 앞에서 본 삼문과 조선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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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정문이 인화문에서 대한문으로...≫
지금은 우리에게 '덕수궁 돌담길'로 알려진 남쪽 궁장에는 덕수궁 정문인 인화문(仁和門)이 있었다. 1902년(광무 6) 중화전과 중화문을 건립하면서 정면인 남쪽이 좁아 앞에 있던 인화문을 철거하고 현재의 대한문(大漢門, 당시의 대안문)이 정문이 되었다. 덕수궁은 원래 궁궐이 아니어서 궐외각사(의정부)가 멀리 떨어져있었기 때문에 인화문 앞에 있던 독일공사관 터를 사들여 궐외각사(의정부)를 새로 짓고 구름다리(운교)로 연결하고자 했다. 아래의 구름다리(운교) 외에 경희궁으로 이어지는 운교가 하나 더 있었다.
<덕수궁 남서쪽 궁장과 구름다리(운교) 터>
아래 사진은 막 물들기 시작한 덕수궁 돌담길 주변의 단풍들이다.


<덕수궁 궁장 옆의 조형물>
위에서 납작하게 누른, 볼 때마다 묘한 느낌을 주는 인물상들...

<서울 정동교회(사적)>
서울 정동교회는 광무 2년(1898)에 준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개신교 교회 건물이다. 원래 115평의 십자형이었으나 1926년 증축 때 양쪽 날개부분을 넓혀서 현재는 175평의 네모형이 되었다. 원래 건물을 그대로 두고 양 날개 부분만 증축해서 원래 모습에 손상은 없다. 벽돌로 쌓았으며 곳곳에 아치형 창문을 낸 단순화된 고딕형이다.


<미국대사관저 옆길로 본 덕수궁 돈덕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동길을 걸을 때마다 무장한 경찰들 때문에 적잖게 위화감을 느꼈던 곳이다. 지금은 많이 완화되긴 했지만 그 느낌은 아직도 여전하고, 이 사진을 촬영하면서 누구도 뭐라 하는 이가 없었지만 어쩐지 전경이 막아설 것 같아 움찔했다. 그 골목 끝에 어디에서나 눈에 띄는 이국적인 덕수궁 돈덕전이 눈에 들어왔다. 순종이 즉위한 곳이며, 일제 강점기 때 헐렸다가 2023년 9월 26일에 개관되었기 때문에 아직도 존재를 모르는 이들이 많다. 나도 작년(2024) 봄에 처음 들렀다.

<정동 미대사관저 앞의 이영훈 작곡가 노래비>
유재하와 함께 한국형 발라드의 개척자로 불린 작곡가이다. 이문세가 부른 '휘파람, 소녀,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광화문 연가' 등을 작곡했다.

<'59년간 수고 많았어, 서소문 고가차도'>
정동교회 맞은편과 서울 시내 곳곳에 게시되어 있다. 철거되는 시설물에 이런 인간적인 위로의 문구(!)를 붙이는 게 재미있다.

<중명전 앞의 국립정동극장>

<중명전(重明殿)>
중명전과 예원학교 일대는 서양 선교사들의 거주지였다가 1897년에 경운궁(덕수궁)을 확장할 때 궁궐에 포함되었다. 중명전은 황실도서관으로 1899년에 지어졌으며, 경운궁 본궁과 이 일대 사이에 이미 미국공사관이 들어서서 별궁처럼 사용되었다. 처음에는 1층의 서양식 건물이었으나, 1901년 화재 후 지금과 같은 2층 건물로 재건되었다.
중명전 외에 환벽정, 만희당 등 10여 채의 전각들이 있었으나 1920년대 이후 중명전 이외의 건물은 없어졌다. 중명전은 고종이 1904년 경운궁 화재 이후 1907년 강제퇴위 될 때까지 머물렀던 곳으로,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한 비운의 장소이기도 하다. 일제가 외국인에게 임대하여 1960년대까지 외국인들의 사교장으로 사용되었다.

<구 신아일보사 별관(국가등록문화유산)>
1930년대에 미국 싱거미싱회사 사옥으로 사용되었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에 붉은 벽돌 치장 쌓기로 지어졌다. 우리나라에 재봉틀을 보급해 의복문화에 영향을 준 싱거미싱사는 일젝기에 미국과 일본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추방되었으며, 건물은 적산이 되었다.
8.15 광복 후 건물은 다시 싱거미싱사가 사용하다가 1969년에 신아일보사에 매각되었다. 1975년 3, 4층을 증축하여 신문사 별관으로 사용하다가 1980년 5공화국의 언론기관 통폐합 조치로 신문사는 경향신문에 강제 통합·폐간되었고 건물은 신아기념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1930년대까지 철근 콘크리트 구조는 관공서에만 사용되었는데 이 건물은 민간건축이면서 철근 콘크리트 구조를 사용했다 내부의 기둥과 바닥 구조, 벽난로 등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건축 기술사적으로도 가치가 있다.

<이화여자고등학교와 사주>
이화여자고등학교는 1886년 미국 선교사 스크랜턴 부인이 정동에 세운 한국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으로 당시의 이름은 이화학당이었으며 최초의 학생은 4명이었다. 교육은 미국인 여성 선교사들이 담당했으며 고종과 명성황후로부터 이화(梨花)라는 교명을 하사받았다. 그 뒤로 학생이 늘어나자 1897년 한옥 교사를 허물고 2층의 메인홀을 지었지만 6.25한국전쟁 때 불타버렸고, 현재 그 자리에 이화여고 본관 건물이 들어서 있다. 유관순 열사의 모교로 유명하다. 1910년 개설된 대학은 1925년 이화여전으로 개편되고, 1935년 신촌으로 분리 이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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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가톨릭수도원 첫 자리(정동수녀원 터)>
1887년 7월 26일 조선교구 장 블랑 주교가 조선의 고아들과 가난한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프랑스 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에 수녀 파견을 요청하자 1888년 7월 22일에 4명의 수녀가 조선에 입국했다. 수녀들이 현재 구 러시아 공사관(정동공원) 입구의 한옥에 머무르면서 조선에 가톨릭 수도공동체가 시작되었다. 수녀들은 같은 해 9월 7일에 종현(명동)으로 옮겼다.

<1900년의 러시아 공사관 사진>
달랑 3층 전망탑만 남은 현재로선 상상하기 어렵지만 번듯하고 규모도 큰 러시아 공사관이다.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이 설계했으며 다른 건물은 모두 없어지고 중앙의 전망탑만 남았다.

<구 러시아 공사관(현 정동공원)>
러시아 공사관은 1884년 조선과 러시아의 통상교육이 체결된 후, 1890년에 일대를 내려다볼 수 있는 지금의 자리에 세워졌다. 1895년 일본이 을미사변을 일으키자 위협을 느낀 고종이 1896년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겨 1년간 거주했다(아관파천). 한국전쟁 때 건물이 파괴되어 현재 탑 등 일부 시설만 남아있던 것을 1973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구하고 1977년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구 러시아 공사관에서 내려다 본 정동공원>
나무에 가려졌지만 몇 계단만 오르면 서울시내가 잘 보인다.

<정동공원의 조형물들>

<고종의 길>
이번 답사에서 가장 놀랐던 두 가지 중의 하나이다. '고종의 길'과 복원 중인 덕수궁 선원전이 그것이다. '고종의 길'은 덕수궁 돌담길에서 정동공원과 러시아공사관까지 이어지는 총 120m의 길이다. 1896년 아관파천(俄館播遷) 이후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 머물 당시 러시아공사관에서 덕수궁을 오갈 때 사용한 길로 추정된다.
러시아 공사관에서 미국 공사관 뒤쪽을 지나 영국 공사관까지 이어졌던 이 길은 1892년 미국 공사에 의해 미국 공사관의 이면도로로 개설되었다. 2011년 미국과 토지교환을 통해 해당 영역이 우리나라 소유가 되었고, 미국 공사관에서 측량한 결과를 토대로 작성한 1896년의 도면과 1900년대 초 촬영한 옛 사진 등 관련 자료를 검토하여 조성되었다.

<고종의 길 출발점과 끝부분>
'고종의 길' 입구는 구 러시아 공사관 아래 정동공원이다. 미국대사관저 뒤를 돌아 덕수궁 돈덕전 너머 담장 밖까지이며 아래에 복원 중인 선원전이 있다. 선원전 앞에 구세군중앙회관과 구세군사관학교, 경성방송국 터 등 정동 근대역사길 1코스가 있다. 윗사진은 시작점, 아래 사진은 끝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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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선원전(璿源殿) 터>
선원전(璿源殿)은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어진(御眞)을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고종이 대한제국기에 새롭게 황궁을 조성하면서 기존의 경복궁, 창덕궁 내에 있던 선원전 외에 1897년 경운궁(덕수궁)에도 선원전을 건립했다. 1900년 화재로 선원전이 전소된 후 1901년 현재는 남아 있지 않은 경운궁의 북문인 영성문(永成門) 부근에 선원전을 재건했다.
일제는 고종 승하 후 영성문과 선원전 일대 전각들을 훼철하고 부지를 매각했으며, 이 터에는 조선저축은행 사택과 경성제일공립고등여자학교 등이 세워졌다. 현재 문화재청에서 선원전 영역 일대의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경성제일공립고등여자학교는 1908년~1945년에 존재했던 일본인 여학교이며 광복 후 폐쇄되었다가 1946년~1959년까지 경기여자교등학교가 사용하였다.

<복원 진행 중인 덕수궁 선원전>
선원전 뿐 아니라 주변에 전각들이 있어서 부지가 상당히 넓다. 서울 한복판에서 이렇게 살아남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복원 중인 덕수궁 선원전 앞의 근대 건물들>
오른쪽은 구세군중앙회관과 구세군사관학교이고, 그 옆이 경성방송국 터이다. 경기여고도 이 부근에 있었을 것이다.

<구세군사관학교>

<파격적인 양식의 새문안교회>
새문안교회는 1887년에 정동의 언더우드 목사 사택에 세워진 장로교회로 처음엔 정동교회, 정동장로교회로 불렸다. 1907년 현재 위치(새문안로 79)로 이전한 후 벽돌 교회당을 세우고 새문안교회라고 불렀다. 2014년 교회를 철거하고 2015년~2019년에 현재의 건물을 준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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