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김정희 선생 고택≫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추사고택은 조선후기의 실학자이자 서화가, 금석학자인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김정희의 증조부 김한신(金漢藎, 1720~1758)이 영조의 딸인 화순옹주(和順翁主, 1720~1758)와 혼인하여 예산과 서울의 땅을 하사 받은 후 김한신이 1750년경에 건립했다. 건축 당시 예산의 집은 53칸 규모로 충청도 53개 군현에서 한 칸씩 건립비용을 분담해서 지었다고 하며, 1976년에 안채, 사랑채, 사당 등 20여 칸을 복원해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김정희 선생은 서울에서 생활했고 성묘와 독서를 위해 자주 이곳에 머물렀다. 추사고택 주변에는 김정희 선생의 묘역과 고조부 김흥경의 묘역, 백송(白松), 월성위 부부(김한신, 화순옹주)의 묘역 및 화순옹주의 홍문(紅門)이 있다. 또 선생 집안의 원찰이었던 화암사(華巖寺)가 있고, 화암사 뒤편에 선생이 바위에 새긴 '詩境', '천축고선생댁(天竺古先生宅)', '소봉래(小蓬萊)' 등의 글자가 남아 있다.
추사고택은 당시의 전형적인 상류주택으로 건물 전체가 동서로 길게 배치되어 있으며, 사랑채는 동쪽, 안채는 서쪽에 있다. 남자주인이 머물며 손님을 맞이하던 사랑채는 'ㄱ'자형으로 남향이며, 안채와 분리되어 있다. 안채는 'ㅁ'자형으로 중앙의 안마당을 중심으로 사방이 막힌 구조이며, 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지 않도록 판벽을 설치했다. 특이한 점은 안채 내의 부엌이 난방용으로만 쓰이고 요리를 위한 부엌을 따로 둔 점인데 이는 왕족인 화순옹주가 살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추사 영정을 모신 추사영실(秋史影室)은 김정희가 세상을 떠난 뒤 아들 김상무가 세운 사당이다.
<예산 김정희 선생 유적, 김정희 선생 고택>

<예산 김정희 선생 유적 안내도>

<추사기념관에 있는 김정희 선생 고택 미니어처>
조감도 같은 상황이라 현장에서 주택을 보는 것보다 고택의 전체적인 배치와 상대적인 건물 크기를 파악하기 쉽다. 위에서부터 추사영실(사당), 'ㅁ'자 구조의 안채, 'ㄱ'자 구조의 사랑채, 솟을대문이다.

<예산 김정희 선생 고택 솟을대문>

<김정희 선생 고택 사랑채>
사랑채는 'ㄱ'자 남향집으로 온돌방이 남쪽에 한 칸, 동쪽에 두 칸 있으며, 나머지는 대청과 마루로 되어 있다. 대청 쪽으로 난 문은 모두 들어열개 문으로 위로 활짝 열 수 있어 개방적이다. 손님을 접대하고 문학적인 유희를 즐길 수 있는 사랑채의 특성이 잘 살아 있는 구조이다. 고택에 김정희 선생의 장서 수만 권이 있었으나 1910년 무렵의 화재로 불타버렸다.


<예산 김정희 선생 고택 전경>
오른쪽부터 솟을대문, 사랑채, 안채이다. 사당은 왼쪽 끝 안채 모서리 뒤에 있다.

<김정희 선생 고택 사랑채 마당의 석년(石年, 해시계)>

<김정희 선생 고택 사랑채 동쪽방과 대청>



<김정희 선생 고택 사랑채 남쪽방>

<1976년에 복원하기 전의 김정희 선생 고택 상태>

<동쪽문으로 본 김정희 선생 고택 안채>
안채는 'ㅁ'자 모양으로 6칸 대청에 안방, 건넌방, 부엌, 광 등을 갖추고 있는데 6칸 대청은 흔치 않은 규모이다. 대청 대들보에는 김정희가 쓴 것으로 보이는 글씨가 붙어 있었다. 여성들의 생활공간인 안채는 밖에서 바로 보이지 않는 구조로 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안채 내의 부엌은 난방용으로만 쓰이고 요리를 위한 부엌은 따로 둔 점이다. 이는 왕실 주택 구조로 왕족인 화순옹주가 살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김정희 선생 고택 안채 북쪽의 부엌>
난방을 위한 아궁이만 있고 요리를 위한 시설은 없다. 맞은편의 부엌도 마찬가지이다.


<김정희 선생 고택 안채 동쪽과 남쪽면>

<김정희 선생 고택 안채 마당에서 본 동쪽문>


<김정희 선생 고택 안채 건넌방>

<김정희 선생 고택 안채 남쪽문과 부엌>
이쪽 부엌도 맞은편 북쪽의 부엌처럼 요리를 위한 시설이 없다.


<김정희 선생 고택 안채 남쪽문>

<김정희 선생 고택 안채>

<안채쪽에서 본 김정희 선생 고택>
사진 왼쪽 끝 뒤쪽에 사당의 담이 보인다.

<김정희 선생 고택 마당의 살구나무와 떨어진 살구들>

<김정희 선생 고택 남쪽 중문>

<김정희 선생 고택 추사영실(秋史影室)과 안채 서쪽면>

<김정희 선생 고택 추사영실(秋史影室) 문 안팎>


<김정희 선생 영실(影室)과 추사영실(秋史影室) 현판>
김정희가 세상을 떠난 뒤 아들 김상무가 세운 영당이다. 선생의 평생의 벗 권돈인은 영당 세우는 일을 돕고 추사체로 '秋史影室'이라는 현판을 직접 썼다. 또 김정희의 제자였던 이한철에게 대례복을 입은 김정희의 초상을 그리게 한 후 초상화에 찬문(畵像贊)을 쓰고, 김정희를 추모하는 여덟 수의 시를 지어 김상무에게 주었다. 현재 초상화의 원본은 간송미술관에 있다.

<김정희 선생 고택 추사영실(秋史影室)의 김정희 초상>

<안쪽에서 본 김정희 선생 추사영실(秋史影室)>

<뒤(북쪽)에서 본 김정희 선생 고택 안채, 추사영실>

<뒤(북쪽)에서 본 김정희 선생 고택 사랑채>


<뒤(북쪽)에서 본 김정희 선생 고택>
왼쪽부터 사랑채, 안채, 추사영실이다.

<안에서 본 김정희 선생 고택 대문>

<김정희 선생 고택 대문 안의 매실나무와 열매>
아래 사진은 화순옹주 홍문에 유일하게 있던 복숭아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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