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김정희 묘역≫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추사 김정희 선생과 부인 한산 이씨, 둘째 부인 예안 이씨 3명의 합장묘이다. 비문은 1937년에 후손인 김승렬이 짓고 새겼다. 유배지 제주도에서 돌아온 김정희는 아버지 무덤이 있는 경기도 과천에서 학문과 예술에 몰두하다가 71세에 생을 마쳤다. 죽기 전까지 글씨 쓰기를 계속 했는데, 봉은사 경판전을 위한 현판인 판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을 쓴 것이 죽기 사흘 전이었다고 한다. 장례식에는 그를 아는 수많은 사람이 조문하였고, 제자들이 다투어 스승의 죽음을 슬퍼하는 시문을 바쳤다.
<추사고택 남쪽에 있는 추사 김정희 선생 묘역>
비석, 상석과 망주석 2개, 처음 보는 작은 원기둥 받침 등의 석물이 있지만 유심히 보지 않으면 누구의 무덤인지 알기 어렵다. 부지가 넓은데도 3명을 합장한 것이 특이하다. 비석 앞면에는 '완당선생경주김공휘정희묘(阮堂先生慶州金公諱正喜墓)'라고 새겨져 있다. 원래 과천에 안장되었으나 1937년 선조들이 있는 이곳으로 이장했다.


<뒤에서 본 김정희 선생 묘역>
이 위치에서 왼쪽 200m 거리에 추사고택(김정희 선생 고택), 추사 김정희의 증조부인 월성위 김한신과 화순옹주 부부 묘, 화순옹주 홍문, 추사가 중국에서 가져와 심은 백송 등이 있고, 오른쪽에 추사기념관이 있다. 이들을 묶어 '김정희 선생 유적'으로 부르며 충청남도 기념물이다.


<추사 김정희 묘역과 화순옹주 홍문 사잇길>
김정희 묘역에서 북쪽에 월성위 김한신과 화순옹주 부부 묘가 있고(사진 왼쪽 위). 길 끝에 화순옹주 홍문(열녀문)이 있다. 앞으로 더 나아가면 용궁리 백송이 있지만 화순옹주 홍문까지 보았다.

≪월성위 김한신(月城尉 金漢藎)≫
영의정 김흥경의 아들 김한신은 13세에 영조의 둘째 딸 화순옹주와 결혼하여 월성위에 봉해졌다. 인물이 잘 생기고 총명하여 영조의 사랑을 받았으며, 벼슬은 오위도총부 도총관을 지냈다. 귀한 신분임에도 비단옷을 입지 않고 항상 겸손하게 몸을 낮추어 생활했다고 한다. 그는 특히 글씨를 잘 써서 시책문을 많이 썼으며, 전각에도 뛰어났다. 묘소 앞 비문에는 영조의 친필이 새겨져 있다. 기록에는 1758년에 병사했다고 되어 있으나 진실은 사도세자와의 말다툼 끝에 사도세자가 던진 벼루에 맞아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월성위 김한신(月城尉 金漢藎)과 화순옹주 부부 묘>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김정희의 증조부인 김한신과 부인 화순옹주의 합장묘이다. 규모는 아담하지만 옹주 부부 묘라 곡장과 문인석이 있다.



<월성위 김한신과 화순옹주 부부 묘의 묘비와 영조가 쓴 묘비 원본>
영조가 쓴 묘비 원본은 제주도 대정현의 '추사관'에 있다. 영조가 쓴 묘비 원본은 21.7.27에 대정현의 추사관에서 촬영한 것이다.


<위에서 본 월성위 김한신(月城尉 金漢藎)과 화순옹주 부부 묘>
문인석의 모자와 옷 뒷무늬가 아주 섬세하고 아름답다!


<월성위 김한신과 화순옹주 부부 묘에서 본 화순옹주 홍문>

≪굶어죽어 남편을 따라간 화순옹주(和順翁主)≫
화순옹주는 추사 김정희의 증조모이자 조선 영조(재위 1724~1776)의 둘째딸이며, 모친은 정빈(靖嬪)이씨이다. 영조 1년(1725)에 화순옹주(和順翁主)에 봉해지고, 영조 8년(1732) 월성위 김한신(月城尉 金漢藎, 1720~1758)에게 하가(결혼)했다. 김한신은 오위도총부 도총관, 제용감제조 등을 역임했다. 1578년 남편 김한신이 사도세자가 던진 벼루를 맞고 사망하자 화순옹주는 영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4일 동안 식음을 전폐한 뒤 남편을 따라 숨을 거두었다. 영조는 정절을 칭찬하면서도 부왕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 하여 정려를 내리지 않았다. 현재의 열녀문(홍문)은 조카인 정조(재위 1776~1800)가 내린 것이다. 화순옹주는 조선왕실에서 유일한 열녀이다.
<예산 김정희 선생 유적 화순옹주 홍문(和順翁主 紅門)>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약 200평의 대지 위에 낮은 담장을 두르고 출입문의 정면에 화순옹주 홍문(和順翁主 紅門)을 세웠다. 정면 8칸, 중앙의 오른쪽 칸에 문을 내었고, 문의 앞면에 홍살을 세우고 문 뒤에 붉은 칠을 한 현판이 걸려 있다.


<화순옹주 홍문(和順翁主 紅門) 내용>
홍문의 내용은 '열녀수록대부월성위겸오위도총부도총관 증시정효공김한신배 화순옹주지문(烈女綏祿大夫月城尉兼五衛都摠府都摠管 贈諡 貞孝公金漢藎配 和順翁主之門) 상지7년 계묘 2월 12일 특명정려(上之七年 癸卯二月十二日 特命旌閭)'라고 판각되어 있다.


<예산 화순옹주 홍문(和順翁主 紅門) 안쪽>

<예산 화순옹주 홍문 묘막 터>
화순옹주 홍문 묘막 터는 원래 55칸의 큰 건물이었으나 불에 타서 없어지고 현재 주춧돌만 남아있다. 관리가 잘 되어 깔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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