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宮집 일원≫
남양주 궁집 일원은 도시개발로 전통한옥이 사라져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한 예술가 부부(故 권옥연·故이병복)가 1970년대부터 궁집과 그 주변의 토지를 매입하고 서울, 경기 등에서 철거된 한옥을 옮겨 지으면서 현재의 형태에 이르게 되었다. 궁집을 비롯하여 용인집, 군산집, 다실, 초가 등 9채의 한옥이 시내가 흐르는 마을 옛길을 따라 자리 잡고 있으며, 2019년 무의자(舞衣子)문화재단에서 건축물과 토지를 남양주시에 기부하면서 시민들이 소중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릴 수 있게 되었다.
2010년 즈음해서 7, 8년 동안 능원묘 답사를 열심히 다녔고, 홍유릉과 유명 인사의 묘가 많은 남양주는 몇 차례 들렀었다. 심지어 홍유릉 때문에 밀려난 조말생 선생 묘역까지 들렀는데 이렇게 번듯하고 큰 규모의 전통가옥이 있는 것조차 몰랐다는 게 이상했는데 2019년에 남양주에 기부를 했다고 하니 당시에는 개인주택(!)이었기 때문에 공개적인 장소는 아니었던 듯하다.
33도를 넘고 바람 한 점 없는 이 날(25.8.28), 무려 1만 8천보를 걸으며 구리와 남양주 일대를 답사했다. 일행들 모두 기진맥진했고, 처음 참가한 분들도 꽤 되었는데 그분들은 '국립민속박물관 답사가 원래 이렇게 빡세냐?'며 다시 참가하는 걸 생각해 보겠다는 분도 있을 정도였다. 원래 그렇게 빡세지는 않지만 그래도 만만치는 않다! 참가자가 그렇게 힘들었는데 하루 종일 해설하신 임찬웅선생님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서양화가 권옥연과 무대미술가 이병복 부부≫
서양화가 권옥연(1923~2011)은 후기인상주의 화풍을 바탕으로 향토적이고 목가적 주제의 작품을 선보였으며, 대표작으로 <고향> 1948, <부인상>1951, <꿈>1960 등이 있다. 그의 호를 딴 무의자(舞衣子)문화재단을 설립하였다. 무대미술가 이병복(1927~2017)은 한국 연극계에 소극장 공연문화를 선도한 1세개 연극인이다. 한국적인 소재로 무대, 의상 등을 직접 만들어 다양한 연극 무대에 선보였으며, 극단 '자유'를 창단했다. 궁집과 주변 환경을 활용한 연극 공연을 다수 개최하였다.
<남양주 궁집의 무교동집>
궁집에 있던 가옥 중 맨 앞에 있는 이 집과 초가집 2가 답사에서 제외되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고 둘 다 양쪽 끝에 있다보니 시간에 쫓겨 누락된 것이다. 처음에는 궁집의 일부라고 생각했다가 사진 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안내도를 보고 찾기는 했지만 이에 대한 정보는 없다. 일반 가옥이 아니라 별채로 보이는 이곳은 따로 야자매트길을 따라 들어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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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宮집≫
국가민속문화유산
남양주 궁집은 영조(1694~1776)가 능성위 구민화와 혼인하는 막내딸 화길옹주를 위해 지어준 살림집이다. 나라에서 대목장과 재료를 보내어 집을 지었기 때문에 '궁집'이라 불린다. 문간채를 겸한 'ㅁ'자형 안채와 'ㄱ'자형 사랑채가 하나로 연결된 지붕면 아래 배치되어 있는 형태로, 당시 뛰어난 건축기술을 알 수 있으며 집의 규모는 31칸이다. 조선시대 가사규제에 따르면 옹주는 40칸 이내로 집의 규모가 제한되었기 때문에 안채, 사랑채 외에 행랑 등이 더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집은 화길옹주가 혼인해서 사망할 때(1765~1772)까지 살았을 것으로 여겨져 정확한 건축시기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인정된다.
<전면에서 본 (화길옹주) 궁집>

<남양주 (화길옹주) 궁집 배치도>
문간채를 겸한 'ㅁ'자형 안채와 'ㄱ'자형 사랑채가 하나로 연결된 지붕면 아래 배치되어 있는 형태로, 집의 규모는 31칸이다. 조선시대 가사규제에 따라 옹주는 40칸 이내로 집의 규모가 제한되었기 때문에 안채, 사랑채 외에 행랑 등이 더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채쪽(출입문)에서 본 궁집>
왼쪽은 사랑채, 오른쪽은 안채이다. 밖에서 출입하려면 안채는 대문으로 사랑채는 중문으로 들어가지만 내부에서는 사랑채 사랑방과 안채가 연결되어 있다.

<출입문을 통해 본 궁집 안채>


<중문에서 본 궁집 사랑채>
건물 기둥들이 모두 둥글지 않고 네모나다. 궁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기억...

<화길옹주의 궁집 사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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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궁집의 용인집(송병준집) 입구>

<남양주 궁집의 용인집(송병준집) 배치도>
경기도 용인에 있던 송병준의 99칸 집 일부 40칸을 1979년 이곳으로 옮겨 지었다.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문간채를 겸한 사랑채가 경기지역 배치 방식인 튼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 글을 쓰면서 계속 드는 의문 하나, 송병준은 우리가 아는 친일파 송병준?

<남양주 궁집의 용인집(송병준집) 사랑채와 누마루>

<남양주 궁집의 용인집(송병준집) 출입문>
출입문 왼쪽에 보이는 옆모습은 'ㄴ'자형 사랑채, 전면은 'ㄱ'자형 안채이다.

<남양주 궁집의 용인집(송병준집) 내부>


<남양주 궁집의 용인집(송병준집)>
사랑채와 안채 뒤(동쪽)에서 본 모습이다. 왼쪽과 중앙은 'ㄴ'자형의 사랑채이고, 오른쪽은 'ㄱ'자형의 안채 끝쪽이다. 좀더 뒤로 물러나면 두 번째 사진처럼 보인다.


<남양주 궁집의 용인집(송병준집)의 사랑채 누마루>
누마루의 석재가 (화길옹주) 궁집 사랑채처럼 고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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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궁집의 초가집1>
초가집1 옆에 초가집 2가 있으나 거기까지 들리지 못했다. 초가집치고 규모가 상당히 크고 뒤쪽의 구조도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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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궁집의 군산집(신정왕후 조씨 친청집 일부)>
전북 군산에 있던 신정왕후 조씨(조선 23대 임금 순조의 며느리)의 친정집 일부를 해체하여 1981년에 옮겨 지었다. 날개채가 있는 'ㄷ'자형 대칭 평면으로 건물 중앙에는 5칸 규모의 매우 넓은 대청이 있다. 소유자였던 공연예술가(故 이병복)가 공연무대로 활용하였던 건물로 뒷마당에는 계단식으로 된 관람석이 설치되어 있다.




<남양주 궁집의 군산집(신정왕후 조씨 친청집) 뒷모습과 공연 관람석>


<남양주 궁집의 군산집(신정왕후 조씨 친청집 일부) 앞의 불상>
이 불상이 여기에 왜 있는지 모르겠으나 은진미륵처럼 높은 머리의 관 때문에 눈길이 갔다. 불상 뒤쪽 야산에 화길옹주 무덤이 있다고 하는데 그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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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궁집의 다실(낙성대 서당) 배치도>
서울 관악구 낙성대(강감찬 장군 유적지)의 서당이었으나,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확장 때 해체하여 1982년에 옮겨 지었다. 건물 동쪽 끝 전면으로 연못을 조성하여 연못 위에 장주초석을 사용한 누마루를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남양주 궁집의 다실(낙성대 서당)>


<남양주 군산집(신정왕후 친청)과 다실(낙성대 서당)>


<남양주 궁집 다실(낙성대 서당)에서 본 군산집(신정왕후 친청)>

<통로에서 본 남양주 궁집의 다실(낙성대 서당)>

<남양주 (화길옹주) 궁집 뒤쪽으로 추정>
나오면서 일행들과 들렀는데 어디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자재나 구조, 촬영한 시각으로 미루어 (화길옹주) 궁집이 유력하다.


<점심을 먹은 구리 토평 해탄식당의 돌판오징어볶음>

<인사동에서 저녁으로 먹은 나주곰탕>
답사가 끝난 후 몇몇 일행이 모여 저녁을 같이 하며 맥주도 한잔씩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반 기절을 한 탓에 집을 지나쳐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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