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인천

남양주 사릉(단종비 정순왕후)

큰누리 2025. 9. 13. 20:58

≪남양주 사릉(思陵)≫

사릉(思陵)은 조선 6대 단종(端宗)의 왕비 정순(定順)왕후 송씨(1440~1521)의 능이다. 정순왕후는 1454년(단종 2)에 왕비가 되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 해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물려주자 왕대비가 되었고, 1457년(세조 3)에 단종이 폐위되자 군부인으로 강등되어 정업원에서 생활하였다. 매일 정업원 뒤 산봉우리(동망봉)에 올라 단종이 머무는 영월을 바라보며 슬퍼하였다고 한다. 1521년(중종 16) 세상을 떠나자 단종의 누나 경혜공주의 시댁 해주 정씨 집안에서 선영인 양주 남군장리 북북동방향 언덕(현재의 위치)에 묘를 조성하고 제사를 지냈다. 1698년(숙종 24) 단종이 왕으로 복위되면서 정순왕후로 복위되었고, 평생 단종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하여 능의 이름이 사릉으로 불리게 되었다. 

* 정업원(淨業院) : 현 종로구 숭인동 소재. 왕실 여인들이 출가하여 수도하던 절.

 

<남양주 사릉 상설도 능침(능상) 아래쪽>

 

<남양주 사릉 상설도 능침(능상) 쪽>

 

≪해동 정씨 집안 선영에 정순왕후 묘가 있는 이유≫ 

정순왕후 능(묘)은 단종의 누나 경혜공주의 시댁 해주 정씨 집안의 선영인 양주 남군장리 북북동방향 언덕(현재의 위치)에 있다. 남편은 폐위되어 죽임을 당하고 자식도 없는 정순왕후를 따로 거둘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시누이 집에서 거둔 셈이다. 그러다가 숙종 때 정순왕후로 복원된 후 왕이나 왕비릉 주변에는 묘를 쓸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하마터면 원래 주인인 해주 정씨들이 다른 곳으로 이장될 뻔 했지만 겨우 예외 규정을 찾아 자리 보존을 할 수 있었다. 단종의 누나 경혜공주와 남편인 정종도 세조의 찬탈로 평온하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졌는데 , 남편 정종은 단종 복위와 관련되어 거열형(사지가 찢겨 죽는 형벌)으로 죽었지만 다행히 경혜공주는 세조가 살려두었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 정미수인데 아들을 작은어머니(세조비인 정희왕후)에게 맡기고 경혜공주는 불교에 귀의했다. 정미수는 정희왕후의 보호 아래 잘 자라 최고위직에 오르며 집안을 일으켰고 이곳이 그 자손들의 세거지가 되었다.

 

<홍살문쪽에서 본 남양주 사릉>

사릉 능침까지 잘 보인다. 원래 왕비릉이 아니었기 때문에 봉분의 석물들은 조촐하다. 홍살문 안쪽 바닥의 돌로 된 판은 배위(판위)이다. 홍살문(紅門)은 신성한 지역을 알리는 문으로 홍문, 또는 홍전문이라고도 한다. 배위(拜位)는 헌관이 제례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곳으로 이곳에서 절을 4번 하며, 판위(版位)라고도 한다.

 

<남양주 사릉(수라간과 수복방)>

사진상의 정자각 왼쪽은 수라간, 오른쪽은 비각과 수복방이다. 홍살문에서 정자각에 이르는 길은 향로·어로이다. 수라간(水剌間)은 제례 때 음식을 차리거나 데우는 곳이고, 수복방(守僕房)은 능을 지키는 수복들이 머무는 건물이다. 비각(碑閣)은 비석이나 능 주인의 업적을 기록한 신도비를 세워둔 곳이다.

 

<남양주 사릉의 정자각과 능상(봉분)>

왕릉의 정자각(丁字閣)은 제사를 모시는 건물로 제향 공간의 중심건물이다. 정청과 배위청으로 나뉘며, 두 개가 합쳐진 모양이 '丁'자 같다 하여 정자각이라 하고, 단청이 되어 있다. 정자각 왼쪽 목책 뒤로 살짝 보이는 판은 제례가 끝난 뒤 제물을 묻거나 지방을 태워 묻는 곳으로 예감(瘞坎) 또는 망료위(望燎位)라고 한다.

 

<남양주 사릉 비각과 비석>

 

<남양주 사릉 정자각 옆면과 정면>

 

<정자각에서 본 남양주 사릉의 입구쪽>

 

<남양주 사릉 정자각 내부와 사릉 기신제>

제례의 상차림인 진설도와 제기류, 기신제에 대해 안내되어 있다. 기신제(忌辰祭)는 역대 제왕과 왕후에 대한 기신제향 의식을 말하며, 조선시대 국가의식의 규정인 오례의(五禮儀) 중 길례(吉禮)에 해당된다. 사릉(思陵) 제향일은 매년 양력 7월 17일이다.

 

<사릉(思陵) 능침(봉분)으로 오르는 일행들>

왕릉 능침에는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우리는 국립민속박물관 답사 팀으로 참여했고, 사전에 허락을 받아서 사릉에서 안내하는 분을 따라 입장했다. 사릉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능 주변의 소나무가 무성하고 아름답다. 그런데 그 날(25. 08.18) 둘러본 남양주의 홍유릉과 이곳 사릉의 소나무 중 일부가 꺾이거나 갈색으로 죽은 게 보였는데, 소나무 에이즈 같은 '소나무재선충'이나 '솔잎혹파리'로 인한 피해가 아닌지 걱정되었다.

 

<사릉(思陵) 능침(봉분)쪽에서 본 입구쪽>

 

<남양주 사릉(思陵) 능침(봉분)>

후대에 왕비로 복위되었기 때문에 능이 조촐하다. 능 앞에 석마와 문인석(문석인), 망주석이 한 쌍씩 있고, 중앙에 장명등, 혼유석이 있다. 봉분을 둘러싸고 석양과 석호 1쌍씩 있으며, 곡장을 둘렀다. 

 

<남양주 사릉(思陵) 능침(봉분)>

 

<남양주 사릉(思陵) 혼유석과 장명등>

혼유석 뒤쪽은 망주석, 문인석, 석마이다.

 

<남양주 사릉(思陵) 문인석과 석마>

 

<남양주 사릉(思陵) 망주석과 석양>

 

<사릉(思陵) 안쪽에서 본 석양, 망주석, 석마, 문인석>

 

<뒤에서 본 사릉(思陵) 봉분(능상)>

 

<사릉(思陵)의 석양(石羊)과 석호(石虎)>

석양(石羊)은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돌로 만든 양, 석호(石虎)는 능을 수호하는 돌로 만드는 호랑이이다. 사릉의 석양은 바깥쪽에, 석호는 안쪽에 각각 1쌍씩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