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고운사(孤雲寺)≫
소재지 : 경북 의성군 단촌면 구계리
고운사(孤雲寺)는 신라 신문왕 원년(681년) 의상(義湘)조사가 창건하고 그 후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이 여지(如智), 여사(如事) 두 대사와 함께 중건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사명대사가 승군의 전방기지로 식량을 비축하고 부상당한 승병의 뒷바라지를 하였으며, 석학으로 이름난 함홍선사(涵弘禪師)가 이곳에서 후학을 양성할 때는 무려 500명의 대중스님이 수행한 도량으로 유명하다. 고려시대에는 14개군의 사찰을 관장하며 암사와 전각이 366칸에 이르렀다고 한다.
현존하는 유물과 유적으로는 도선국사가 조성한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과 가운루, 삼층석탑, 연수전이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경내에는 28동의 고건물이 있다. 송림이 우거진 등운산(騰雲山)에 위치한 고운사는 속세에서 떨어진 듯한 청정 수행도량으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로서 5개군에 걸쳐 60여 말사를 관장하는 거찰이다. --현지 안내문--
2022. 10.23. 여행사를 통해 처음으로 의성에 들렀다. 의성은 마늘 산지라는 것 밖에 몰랐지만 여행사에 올라온 고운사(孤雲寺)에 대한 설명을 보고 이곳을 찾았다. 당시에 함께 본 조문국(召文亭) 사적지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규모 고대 무덤군이어서 상당히 놀랐고, 깊은 산속에 위치한 고운사 또한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과 큰 사찰 규모에 놀랐다. 여행 후 바로 글을 쓰는 편이지만 당시에 퇴직을 앞둔 시점이라 업무 마무리에 올인하고 싶어서 글쓰기를 미루었다가 바쁜 일정으로 깜빡하고 말았다. 그랬다가 지난 3월의 의성, 산청, 안동지역의 대화재로 걱정을 하면서 미루었던 의성 여행에 관한 글을 이제야 썼다. 대화재는 이렇게 순식간에 천 년이 넘는 문화재, 혹은 역사를 순식간에 삼킨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 고운사는 2025년 3월 25일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로 불행하게 가운루와 연수전, 범종각이 전소되고, 일주문을 비롯한 다른 전각은 그나마 다행히 살아 남았다. 주변에 나무가 없는 조문국 사적지는 멀쩡하고, 고운사 앞에 있던 최치원문학관은 전소되었다고 한다.
≪의성 고운사(孤雲寺)의 볼거리≫
* 약사전 : 보물인 약사여래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 명부전 : 예로부터 죽어서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고운사 명부전에 다녀왔다고 묻는다는 설화가 전해질 정도로 지장보살의 영험이 있다고 전해진다.
* 나한전 : 석가모니불과 16나한을 봉안한 법당으로 앞에서 고운사 전체를 감상할 수 있다.
* 호랑이 벽화 : 우화루 벽면에 있는 호랑이 벽화로 두 눈이 사람의 움직임을 따라다닌다. 용마루에는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또 하나의 호랑이 조각이 내려다 보고 있다.
* 우화루 : '꽃비 내리는 누각'이란 뜻으로 현재 찻집으로 이용된다.
* 가운루 : '구름을 타고 노니는 곳'이란 뜻으로 최치원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범종각쪽 풍경이 아름답다.
* 연수전 : 영조 20년(1744) 영조가 기로소에 들어가는 것을 기념하고, 왕실의 혈통과 역사를 적은 어첨을 보관하기 위해 지었으며 보물로 지정되었다.
<의성 고운사(孤雲寺) 현대식 일주문(?)>
일주문은 고운사 바로 앞에 있다. 이 문은 뭐라고 불러야 할지... 선문(禪門)?

<일주문에서 고운사(孤雲寺)로 들어가는 길>
우리가 들린 22년 10월 22일은 단풍이 막 들기 시작했다. 일주문에서 고운사 본채(!)까지 거리가 꽤 길고, 양쪽의 숲이 무척 아름다웠다. 진입로(산책로)에 단풍나무가 많아 당시에 일주일 쯤 뒤에 들렀다면 단풍이 최고조였을 것이다. 하지만 2025년 3월의 화재로 숲이 전소되어버렸으니... 며칠 전 고운사 스님들의 인터뷰를 보았는데 따로 조림을 하지 않고 자연적인 회생을 기다린다고 한다.

<고운사(孤雲寺) 입구의 부도, 대선사비, 팔만대장경공적비>

<고운사 대선사비, 팔만대장경 國照覺性大宗師譯經證義講解功0碑>

<고운사 양종정사함홍당(兩宗正事涵弘堂) 대선사비>
함홍대선사(涵弘大禪師)는 고운사에서 후학을 양성한 석학으로 500명의 대중스님이 수행했다고 한다.

<의성 고운사 입구의 템플스테이관(화엄문화템플관)>

<의성 고운사 입구>
왼쪽은 공양간이고, 오른쪽 나무 뒤로 일주문이 보인다.

<다양한 스타일의 고운사(孤雲寺) 안내도>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로서 5개군에 걸쳐 60여 말사를 관장하는 거찰이다. 25.03.25의 불로 많은 전각이 불에 탔다고 한다.



<의성 고운사(孤雲寺) 일주문>
상당히 화려하고 아름답다.

<의성 고운사(孤雲寺) 천왕문과 사천왕상>
사천왕상의 얼굴이 심하게 납작한 것이 특징이다.


<의성 고운사(孤雲寺) 고불전>
다행히 이번 화재에서 살아남은 전각이다. 특이하게 왕릉의 정자각처럼 '丁'자 모양이고 안에 형태가 많이 뭉그러진 아담한 석불이 봉안되어 있다.

<화재로 전소된 고운사(孤雲寺) 가운루(駕雲樓)>
고운사는 의상이 처음 만든 절로, 신라 말 최치원이 여지(如智), 여사(如事) 두 대사와 함께 가허루(駕虛樓)와 우화루(羽化樓)를 세웠다. 이후 최치원의 호를 따 고운사(孤雲寺)로 이름을 바꾸면서 가허루(駕虛樓)가 가운루(駕雲樓)로 바뀌었다. 가운루는 계곡 위에 우뚝 서 있는 누각형 건물로 조계문과 천왕문을 따라 들어서면 정면이 보인다. 후대에 여러 차례 고쳐 지은 기록이 남아 있다.
원래는 1층 아래쪽을 지나서 사찰로 들어갔지만 현재는 가운루 앞에 설치된 가운교로 들어간다. 가운루 안쪽은 계곡이었으나 지금은 메워져 잔디마당이다.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계곡 위의 누각은 다리의 기능을 하는데, 가운루(駕雲樓)는 다리와 강당의 기능을 함께 지니고 있는 독특한 구조로 자연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강당 기능을 하던 고운사(孤雲寺) 가운루(駕雲樓)>
아래 사진은 가운루(駕雲樓)에서 본 우화루(羽化樓, 왼쪽)와 범종각(앞)이다.


<고운사(孤雲寺) 가운루(駕雲樓)의 시(?)>
가허루(駕虛樓)로 표기되어 있다.

<고운사(孤雲寺) 우화루(羽化樓)와 범종각>
우화루(羽化樓) 왼쪽 끝 벽에 유명한 호랑이 벽화가 있다.

<연수전 앞에서 본 고운사(孤雲寺) 경내>
앞에 보이는 건물은 연지암과 당시에 공사 중인 명부전이다.

≪화재로 전소된 의성 고운사 연수전(延壽殿)≫
지정 : 보물(에서 해제되었을 듯.)
고운사(孤雲寺) 연수전(延壽殿)은 영조 20년(1744) 영조가 기로소에 들어가는 것을 기념하고, 왕실의 혈통과 역사를 적은 어첩(御牒)을 보관하기 위해 지었다. 다른 건물과 달리 홀로 정남향이며, 앞에는 절에서 보기 힘든 솟을삼문을 세우고 만세문(萬歲門)이라는 현판을 붙여놓았다. 정면 3칸, 옆면 3칸의 '回'자형 정사각형 건물로, 가운데 칸에만 문과 벽을 만들어 어첩을 보관하고 있다. 나머지는 개방형으로 가운데에 방 1칸을 두고 반 칸 규모의 툇칸을 두른 독특한 모양이다.
연수전(延壽殿)을 가운데 두고 주변으로 담장을 둘러서 만세문을 통해서만 출입할 수 있는 독립적인 공간인데, 사당과 비슷한 형식이다. 고운사 연수전에는 왕의 위상과 무병장수, 부귀영화 등을 상징하는 화려한 단청과 벽화가 잘 보존되어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 왕실과 관련된 건물이 사찰 내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화재로 전소된 고운사 연수전(延壽殿) 만세문과 전각>


<고운사 연수전(延壽殿)의 화려하고 기품있는 단청과 벽화>
결이 또렷이 살아있는 기둥도 독특하고, 퇴색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검정 바탕에 사실적으로 화려하게 그린 단청과 벽화들이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아주 인상적인 건물이었다. 여러 모로 독특해서 한 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그런 건물이었는데...



<고운사 대웅보전과 내부>


<의성 고운사 삼층석탑 동, 서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지만,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에도 부처를 모신 것처럼 여기는 상징적인 곳이다. 고운사 삼층석탑은 언제 세워졌는지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지붕돌받침의 갯수, 각 층의 몸돌이 줄어드는 비율과 석탑의 규모로 볼 때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바닥돌부와 몸돌부, 특히 아래층의 바닥돌이 많이 깨져 있으며, 몸돌들의 위치가 원래 자리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탑의 꼭대기에 있는 장식 부분에는 노반과 복발, 양화가 얹혀 있다.

<의성 고운사 삼층석탑 남쪽면>

<의성 고운사 삼층석탑 북쪽면과 뒤의 요사채, 나한전>

<의성 고운사 삼층석탑과 역사 기록비>

<의성 고운사 나한전과 내부>
주불인 석가모니불은 극락전의 아미타불과 함께 외부 전시 중이다. 나한전 앞에서 고운사가 전체를 두루 감상할 수 있다.


<고운사 나한전에서 본 삼층석탑과 대웅보전>

<의성 고운사 나한전 옆의 요사채와 선원>

<의성 고운사 연지암과 삼성각>

<의성 고운사 삼성각과 공사 중인 명부전>

<의성 고운사 약사전과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46호)>
약사전에 봉안된 고운사 석조여래좌상은 광배와 받침대는 온전히 남아 있고, 불상도 오른손 일부를 제외하고 상당히 온전한 편이다. 불상의 머리는 꼬불꼬불한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카라(나발)이며 육계는 낮고 편평하여 불분명하다. 불상의 옷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있으며, 왼쪽 겨드랑이 밑에서 오른쪽 옆구리까지 옷주름을 같은 간격으로 표현하였다.
불상 뒤쪽의 광배는 끝이 날카로운 배 모양이다. 머리 광배와 몸 광배에는 연꽃과 덩굴무늬 등을 표현하였고, 가장자리에는 불꽃이 타오르는 모양을 표현하였다. 받침대 중 윗받침석은 연꽃을 위로 떠받드는 모양으로, 가운데 받침석은 팔각으로 모서리를 기둥 모양으로 장식하였다. 아래 받침석은 연꽃잎을 엎어놓은 모양이다. 광배가 불상보다 더 섬세하고 화려하게 표현된 고운사 석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 시대 9세기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의성 고운사 아거각, 적묵당>

<의성 고운사 만덕당(左)과 극락전(중앙)>
아래 사진은 극락전 내부이며, 주불인 아미타불은 외부 전시 중.


<고운사 우화루(雨花樓)와 마루의 종>


<고운사 우화루(雨花樓) 서쪽벽의 호랑이 벽화>
우화루 벽면에 있는 호랑이 벽화로 두 눈이 사람의 움직임을 따라다닌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용마루에는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또 하나의 호랑이 조각이 내려다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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