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大理) 숭성사(崇聖寺)와 삼탑≫
* 입장료 : 성인 75위안(16,500원)
* 경내 셔틀버스 : 왕복 35위안, 편도 20위안.
* 17시까지 약 한 시간 반 동안 숭성사와 삼탑을 둘러보았는데, 황실 사찰답게 지금까지 본 사찰 중 가장 규모가 컸다.
다리 숭성사(大理 崇聖寺)는 창산을 등지고 얼하이호(洱海)를 내려다보는 자리에 8세기 중반 남조국 시기(南詔國, 653~902)에 세워졌으며, 대리국 시대(大理國, 938~1254)에는 불교 문화의 중심지로 왕실 후원을 받아 번성했다. 원나라 이후 쇠퇴했고, 청나라 함풍제 시기의 대화재와 문화혁명을 거치며 삼탑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이 사라졌다. 2003~2005년 복원 과정에서 당~청나라 건축의 장점을 살려 재건했으며, 대웅보전은 북경 자금성 태화전을 본떠 지었다. 남조국은 중국 당나라 시기에, 대리국은 송나라 시기에 운남 지역에 있었던 왕국으로 불교가 번성했지만 원나라 때 멸망했다. 대리국은 관세음보살을 나라의 수호신으로 믿어, 당시 왕실 사찰이었던 숭성사에는 아차야관음전, 11면관음전, 우동관음전 등 무려 세 개의 관음전이 있었다. 주요 볼거리는 삼탑, 대종, 雨銅관음상, 아차야관음상, 佛都 편액 등이다.
다리 숭성사 삼탑(大理 崇聖寺 三塔)은 중앙탑과 남북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세 탑은 약 70m 간격으로 정삼각형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중앙탑은 唐대에 세워졌고 천심탑(千寻塔)이라고도 불린다. 높이 69.13m, 폭 9.9m의 16층 사각 벽돌탑으로, 각 층 감실에는 대리석 조각이 있고 기단부 앞뒤에는 석비형 부조 위에 5존불 부조를 새겼다. 남북탑은 12세기 宋대에 건립된 높이 42.4m의 10층 팔각 석탑으로, 탑신에는 불상, 연꽃, 화병 등이 새겨져 있다. 지진의 영향으로 남탑은 18도, 북탑은 12도 중앙탑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대리 숭성사(崇聖寺)와 삼탑 배치도≫
창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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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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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대관 石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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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숭성사碑銘 - 아차야(聖)관음각(자항보도 현판) - 회복중건숭성사기
구룡욕불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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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
관음보살-문수보살-아난- 석가모니 -가섭-보현보살-지장보살
(오존불, 석가모니 일생도와 16나한 목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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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전 고승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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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전, 나한당 - 관음전(11면관음보살) - 나한당, 천불전
제원보관음-나무심성구고관음-구고관음-보타락산관음-보문품관음-역장관음-나무고절해안관음-건국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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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전(호법미타존천보살)
미륵전(배불뚝이 미륵보살)
轉經筒(전경통) 金剛杵(금강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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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전(대흑천신, 사천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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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루 - 재신전 - 聚影池 - 약사전 - 종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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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崇聖寺-佛都 편액, 금강역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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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雨銅)관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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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건극대종(南詔建極大鐘)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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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성사 삼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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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龍池(삼탑 반영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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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하이호
<대리 숭성사(崇聖寺) 삼탑 사진>
윗 사진은 숭성사에 홍보용으로 전시된 삼탑 사진이고, 아래는 내가 촬영한 것이다. 15시가 넘어서부터 둘러본 데다 숭성사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배치되어 있어서 건물이나 탑을 찍을 때 난반사가 심했다. 뒤로는 창산(蒼山)을 등지고 앞으로는 얼하이호(洱海)를 바라보는 구조다. 사찰이 워낙 커서 걸어서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입구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가 아차야관음각부터 관람하며 내려왔다. 셔틀버스는 왕복 35위안, 편도 20위안이다.


<대리 숭성사(崇聖寺) 배치도>
숭성사는 아차야관음보살, 11면관음보살, 우동관음보살 등 세 분의 관음보살을 모신 관음의 성지이다. 숭성사는 뒤로는 창산(蒼山)을 등지고 앞으로는 얼하이호(洱海)를 바라보는 구조로 중앙의 주요 전각은 모두 동향(東向)이다.

<대리 숭성사(崇聖寺) 대웅보전>
윗사진은 숭성사 전시실의 홍보용 사진, 아래 사진은 입구에서 탄 셔틀버스 종착지인 대웅보전 남쪽면이다. 위에 아차야관음각(사진 왼쪽)이 있고, 가장 위쪽의 망해사에 오르면 숭성사와 얼하이호까지 제대로 조망할 수 있지만 우리가 들렀을 때에는 아차야관음각까지만 볼 수 있고, 그 이상은 진입금지였다.


<대리 숭성사(崇聖寺) 대웅보전 내부>
오존불과 다섯 보살·존자(관음보살- 문수보살– 아난- 석가모니- 가섭- 보현보살- 지장보살)가 봉안되어 있다. 뒷벽 전체는 석가모니, 보살, 16나한 등을 새긴 목각부조로 장식했다. 양쪽에 있는 장군상과 황금빛 용이 감싸고 있는 둥근 기둥도 아주 화려하다.


<대리 숭성사(崇聖寺) 대웅보전 뒷벽의 목각 부조>
높이 1.8m, 너비 117m 규모의 목각 부조로 석가모니, 삼세불, 불모(佛母), 관음보살, 16나한 등이 새겨져 있다. 대리국 장승온이 그린 '대리국범상도(장승온 화권)'의 내용을 옮긴 것이라고 하며, 2003~2005년에 새로 지어진 건물이니 최근 중국 작품이지만 스케일만큼은 인정해야 할듯...


<숭성사 대웅보전 아래의 11관음전과 오백나한당>
오백나한당은 남쪽(사진 오른쪽)만 보았기 때문에 당연히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사진을 정리하고 자료를 찾아보면서 좌우 양쪽에 오백나한당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숭성사 아차야(聖)관음각과 아래의 구룡욕불>
구룡욕불은 아홉 마리 용의 호위를 받으며 어린 석가모니가 목욕하는 장면을 표현하였다. 뒤에 보이는 전각이 아차야관음각이다.

<숭성사 아차야관음각(阿嵯耶觀音閣) 좌우의 비석>
왼쪽은 남쪽(왼쪽) 비각의 '대숭성사碑銘', 오른쪽은 북쪽(오른쪽) 비각의 '회복중건숭성사기(恢復重建崇聖寺記)'이다.

<숭성사 아차야관음(阿嵯耶觀音)보살상>
아차야관음보살(阿嵯耶觀音菩薩)은 중국 운남(雲南)성에만 존재하는 관음보살로, 남조국(南詔國)과 대리국(大理國) 시기에 나타났다. ‘아차야’는 범어 ‘아차리야’의 음역으로 ‘신성하다’는 뜻이며, 외적이 침입했을 때 바위를 진 노파를 보고 이 나라 사람들이 모두 힘이 세다고 믿어 물러났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에 노파를 관음의 화신으로 여기며 ‘바위를 등에 진 부석(負石)관음의 화신’이라 불렀다. 상반신을 드러내고 하반신에는 끈으로 묶은 긴 치마를 입었으며, 허리끈은 꽃으로 장식했다. 아래 사진은 전각 벽면의 위패들이다.


<대리 숭성사 조사전(祖師殿)>

≪불교 선종의 조사들(6조사)≫
석가모니의 대표적인 제자는 아난과 가섭으로 석가모니 부처의 말씀(지혜)을 가장 잘 기억한 제자는 아난, 마음(법)을 잘 기억한 것은 가섭이다. 초기에는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교종이 우세했으나 나중에는 법(깨달음)을 중시하는 선종이 우세했다. 송나라 때 인도의 달마가 숭산 소림사에서 깨달음을 얻어 선종의 시조가 되었다. 달마가 소림사에서 3년 동안 수도하다가 나왔는데 할머니가 쇳덩이를 숫돌에 갈아 바늘을 만들겠다는 말을 듣고 깨달아 소림사로 돌아가 5년을 더 수도했다. 달마의 가르침은 혜가(慧可)→ 도신(道信)→ 승찬(僧璨)→ 홍인(弘忍)→ 혜능(慧能) 선사로 이어졌다.
<대리 숭성사 조사전(祖師殿)의 6조사>
조사전(祖師殿)에는 여섯 분의 조사가 모셔져 있다. 중앙에는 선종을 중국에 전한 초조 보리달마(菩提達磨)가, 전면 왼쪽에는 6조 혜능(慧能) 선사와 2조 혜가(慧可) 선사가, 오른쪽에는 3조 승찬(僧璨) 선사, 4조 도신(道信) 선사, 5조 홍인(弘忍) 선사가 있다. 2조 혜가 선사는 법을 구하기 위해 달마 선사 앞에서 팔을 잘라 왼팔이 없으며, 5조 홍인 선사는 우리나라 조계종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꼼꼼히 자료를 조사했지만 옮기는 과정에서 다른 내용과 함께 이 부분이 날아가버렸다, ㅠㅠ.
사진은 윗단은 6조 혜능(慧能) 선사와 2조 혜가(慧可) 선사, 두번째는 초조 보리달마(菩提達磨)와 3조 승찬(僧璨) 선사, 세번째는 4조 도신(道信) 선사, 5조 홍인(弘忍) 선사이다.



<대리 숭성사 11면관음전>

<대리 숭성사 11면관음전의 11면관음>
대리 숭성사의 11면관음보살 좌상은 얼굴이 11개, 팔은 양쪽에 8개씩 총 16개이다. 우리는 위에서 내려왔기에 대부분의 전각이나 불상을 뒷면부터 보았는데, 창살이 아름다운 열린 문틈으로 먼저 본 11면관음상의 뒷모습이 참으로 고혹적이었다. 좌상임에도 불구하고 높이 9m에 달하는 그 크기가 압도적이었다.


<대리 숭성사 11면관음전의 관음8화신>
11면관음전의 관음8화신은 모두 관음보살의 화신으로, 왼쪽부터 제원보관음보살- 나무심성구고관세음보살- 구고관세음보살- 보타락산관음보살- 보문품관음보살- 역장관음보살- 나무고절해안관세음보살- 건국관세음보살이다(명패에 어떤 상은 '관음', 어떤 상은 '관세음보살'로 다르게 표기되어 있다).

<대리 숭성사 나한당(羅漢堂)>
나한당(오백나한당)은 남쪽(사진 오른쪽)만 보았기 때문에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좌우 양쪽에 나한당(오백나한당)이 있었다.

<대리 숭성사 나한당(羅漢堂)>
나한당에는 250명으로 추정되는 사실적인 실물 크기의 인물상이 모셔져 있으며, 각기 다른 표정과 동작 덕분에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윗단의 대승금강은 전각을 지키는 수호신인 듯하고, 앞면(왼쪽)과 뒷면(오른쪽)의 모습이 완전히 다르다. 이런 무서운 형상의 불상은 송찬림사나 대불사 아래의 장족(티베트족) 불교 전시관에서도 본 적이 있다.


<대리 숭성사 나한당 옆의 천불전>
나한당이나 천불전 등은 중심 라인에서 벗어난 전각이기 때문에 남향, 혹은 북향이다. 이 방향의 나한당과 천불전은 북향이다.

<대리 숭성사 미륵전(彌勒殿) 1(아래)>
미륵전 때문에 좀 헷갈렸는데, 배치도를 보니 미륵전이 두 개였다. 왜일까? 아무튼 보조광불처럼 배가 불룩한 보살이 당당히 ‘미륵보살’이라는 이름으로 이 전각에 홀로 자리하고 있고...


<대리 숭성사 미륵전(彌勒殿) 2(위)>
이 보살은 중국에서 불법을 수호하는 ‘위태보살’이지만, 숭성사에서는 ‘호법미타존천보살(護法彌陀尊天菩薩)’이라는 이름으로 뒷쪽 미륵전에 있었다. 아래 사진은 호법미타존천보살 옆에 있는 불상인데, 이름도 모르고 공사 중이라 제대로 된 모습을 보지 못했다.


<대리 숭성사 천왕전(天王殿)>
두 번째 사진은 천왕전 중앙에 있는 대흑천신, 아래 사진은 사천왕상이다. 우리나라의 천왕전은 중앙에 보살을 봉안하지 않고 좌우에 사천왕상만 있는데 이곳 숭성사에는 특이하게 중앙에 대흑천신을 모셨다.

<대리 숭성사 천왕전(天王殿)의 대흑천신과 사천왕상>
윗사진은 대흑천신이고, 아래 사진은 사천왕상이다. 우리나라의 천왕전은 보통 중앙에 보살을 모시지 않고 좌우에 사천왕상만 두지만, 이곳 숭성사에는 중앙에 대흑천신을 모셨다.


<대리 숭성사 재신전, 약사전>
재신전은 천왕전 왼쪽(남쪽)에 약사전 오른쪽(북쪽) 옆에 있었지만, 늦어서 들르지 못했다. 재신전에는 관우상이 있지 않았을까?

<천왕전에서 내려다본 숭성사 산문>
인왕(금강역사)상이 있으니 우리나라로 치면 금강문이다.

<대리 숭성사 취영지(聚影池)>
안내도의 글자가 흐릿해 취영지(聚影池)로 읽었지만 확신은 없다. 숭성사에는 이 연못과 입구 쪽 맨 아래에 삼탑이 반영되는 천룡지(天龍池)라는 연못이 있다. 연못에는 잉어 몇 마리가 헤엄치고, 바위 위 인물은 한자로 새긴 글씨에 금분을 칠하고 있다.

<대리 숭성사 산문>
전면에는 '崇聖寺'와 '佛都' 편액이 걸려 있고, 안쪽에는 금강역사(인왕)상이 자리하고 있다. '佛都' 편액은 숭성사에서 꼭 봐야 할 유물로 꼽히지만,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래 사진은 산문 안쪽의 금강역사(인왕)상으로, 왼쪽은 입을 벌리고 공격 자세를 취한 나라연금강(아금강)이고, 오른쪽은 입을 다물고 방어 자세를 취한 밀적금강(훔금강)이다.


<숭성사 우동관음전에서 되돌아본 산문과 창산>

<숭성사 우동관음전(雨銅觀音殿)>
우동관음전과 우동관음(雨銅觀音)은 남조 중흥 2년(899)에 건립되었으나, 문화대혁명 때 소실되어 1999년에 재건되었다. 우동관음상은 높이 8.6m로 3층 건물 정도 크기이며, 연화대 높이 1.8m, 무게 11톤의 동상에 금박을 입혔다. 몸은 남성, 얼굴은 여성으로, 남조국 중후기에 남성 관음상에서 여성 관음상으로 변모하던 시기에 만들어졌다.


<숭성사 우동관음전(雨銅觀音殿)의 관음4화신(?)>
주변의 수월(水月)관음, 아차야(阿嵯耶)관음, 부석(負石)관음, 범승(梵乘)관음은 11면관음전에 있는 관음 8화신처럼 우동관음의 4화신인 것 같다. 아래 사진은 우동관음전에 있던 8보살(천수보살, 허공장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대세지보살, 대일여래, 부동존보살, 아미타불)이다. 오랜만에 숭성사에서 익숙한 보살들을 만났지만, 우동관음과의 관련성은 잘 모르겠다.


<우동관음전에서 본 대리 숭성사 삼탑>

<숭성사 남조건극대종(南詔建極大鐘) 대전>
안에 있는 대종이 꽤 유명한데, 문이 잠겨 있어서 볼 수 없었다. 이름으로 보아 남조 시대에 만들어진 것 같다.

<대리 숭성사 삼탑 북탑과 중앙 대탑>
윗단은 북탑으로 오른쪽으로 약간 기울어졌다. 아랫단은 중앙 대탑(千寻塔) 앞면과 모서리이다. 중앙탑은 唐대에 세워졌고 천심탑(千寻塔)이라고도 불린다. 높이 69.13m, 폭 9.9m의 16층 사각 벽돌탑으로, 각 층 감실에는 대리석 조각이 있고 기단부 앞뒤에는 석비형 부조 위에 5존불 부조를 새겼다. 남북탑은 12세기 宋대에 건립된 높이 42.4m의 10층 팔각 석탑으로, 탑신에는 불상, 연꽃, 화병 등이 새겨져 있다. 지진의 영향으로 남탑은 18도, 북탑은 12도 중앙탑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숭성사 삼탑 앞에서 본 얼하이호(洱海)>

<성약을 등진 대리 숭성사 삼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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