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국민약골 경로부대의 경주 남산완전정복 1일차

큰누리 2012. 5. 31. 11:09

<경주 남산 역사문화유적지구>

 

 

  2009. 12. 25. 흐림

잠든 지 2시간 만에 새벽 5시 기상. 늦을까 조바심을 하며 아침을 먹고 약속 장소 강남역으로 가다. 7시 30분 도착. 일행인 천년사랑님과 동시에 도착하여 또 다른 일행인 퍼플 크리스탈님을 태우러 인덕원으로 향하다. 오늘부터 영하 7도까지 내려간다 해서 염려했는데 날이 끄느름해서 그렇지 아직은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두 분은 처음 보는 사이라는데 몇 년 지기처럼 말씀도 많고 웃음도 많다. 차안에서 경주 남산에 대한 책자와 카페지기이자 여행 리더인 광나루님이 준비한 안내 책자로 사전 공부를 하다.

 

광나루님의 안내 책자를 다 읽고 눈을 잠깐 붙였다 깨니 출발한지 2시간 반 만에 화서휴게소 도착. 화장실에 들렀다 나오는데 정확히 그 문 앞에서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다. 세상 참 좁기도 하다! 몇 년 전에 술자리까지 함께 한 그 친구 남편에게 인사한 후 아침을 거른 일행 두 분이 국수로 식사하는 틈에 출출한 나도 합류. 광나루님은 식사는 사양하고 차창에서 떨어진 내비 양을 붙이기 위해 간이 카센타로...

 

1시 조금 넘어 경주에 도착, 군산에서 버스를 타고 와 합류하는 아라비카님과 1시 20분 경 만나 점심을 먹으러 부성식당으로 출발,  정갈하고 맛있는 한식이 기억에 남다. 화단의 빨간 열매를 주저리주저리 단 남천과 엄나무, 금잔화도 볼 만하다.

 

 

<경주 남산 입구 부성식당의 남천> 

 

 

<경주 남산 입구 부성식당의 비빔밥>

 

 

차를 그 곳에 놓고 바로 옆의 포석정지마왕릉을 가다. 경주가 처음인 사람에게 유적 중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것이 첨성대와 포석정이라는데 나는 둘다 볼수록 괜찮다. 포석정에 꽤 여러 번 왔는데도 처음으로 물을 공급하는 우물 같은 곳을 보다. 아마 공 같은 돌덩이로 평소에 막아놨기 때문일 듯. 탱자나무를 따라 조금 걸어 6대 지마왕릉에 도착하다. 주변에 소나무가 우거지고 적당히 봉분이 큰, 전형적인 신라왕릉의 모습으로 특별한 점이 없다.

 

 

<포석정> 

 

 

<포석정의 水源> 

 

 

<경주 남산의 탱자나무> 

 

 

  <특징이 없는 포석정 인근의 지마왕릉> 

 

 

되돌아나와 배리 윤을곡의 마애불좌상을 보러 가다. 남산의 푸른 소나무와 오리나무류, 참나무류가 등산로를 따라 이어지다. 특히 계곡을 따라 이어진 등산로 주변에서 가장 많이 만난 것이 오리나무류이다. 사방공사용으로 심은, 줄기는 지저분하지만 열매가 가장 굵고 동그란 것이 사방오리나무매끈한 줄기에 녹색이 돌고 열매가 타원형인 것이 물(산)오리나무이다. 날이 따뜻한 지방이어서 벌써 같은 오리나무에 갈색의 묵은 열매와 연두색의 새 열매가 공존하다. 

안강형 소나무의 본 고장답게 온 산을 덮은 소나무는 다양한 모양새로 초록의 어린 나무와 중년 나무들이 어우러져 초봄 같은 분위기이다. 안성의 오씨 재실에서 수수를 닮았지만 이름을 몰라 궁금했던 개옻나무 열매를 식물안내판을 보고 알게 되다.

 

남산 곳곳의 식물안내판, 비슷한 식물 구분법, 이정표 등은 답사 내내 도움이 되다. 그 동안 둘러본 곳 중에서 경주 남산의 표지가 가장 훌륭하다. 그 외에 많이 본 나무는 감태나무와 대이다. 특히 대는 절이나 민가가 있었던 곳을 암시하기도 하고 우리가 간 절터나 석불, 마애불이 있는 입구에서 항상 발견되다. 부흥사에서는 烏竹을 보다.

 

 

<경주 남산의 물(산)오리나무> 

 

 

 <경주 남산의 사방오리나무> 

 

 

 <경주 남산의 개옻나무>

 

 

내게 탱자나무와 대는 고향을 일깨우는 나무인데 새마을운동으로 탱자나무가 사라지다시피한 고향보다 유적지라서인지 옛 모습이 잘 보존된 경주에서 더 고향의 모습을 느끼다. 양지 바른 곳마다 풋풋하게 군락을 이룬 연두 빛 고사리도 화려한 꽃 못지 않게 아름답다.

남산자락에서 많이 본 사과나무는 대구만큼은 아니어도 이곳도 꽤 심는 듯하다. 답사지 근처에서 새 먹이용 감을 자주 보다보니 수확을 포기한 사과를 감으로 착각했다가 마지막 날에야 일행의 비웃음과 함께 사과란 걸 알다.

 

 

 <열매를 감으로 착각하게 한 경주 남산의 그 사과나무> 

 

 

남산 입구에서 15분 쯤 지난 지점에서 최초의 남산 답사지인 배리 윤을곡 마애불좌상을 만나다. 기역자형으로 된 두 개의 바위에 동쪽으로 한 분, 남쪽으로 두 분을 돋을새김을 했는데 바위 위가 앞으로 약간 경사져서 보존상태가 좋다. 모두 약사여래불로 동쪽의 불상은 황토 빛이 강하다. 안내판에서 불상의 예술성에 대해 인색하게 평하고 있으나 특이한 바위구조나 동쪽의 황토색 불상으로 인해 답답한 회색 바위보다 훨씬 정감이 들고 느낌이 좋다.

 

 

 <남산 배리 윤을곡 마애불좌상> 

 

 

 30여분을 걸어 부엉골 마애여래좌상을 만나다. 위에 처마처럼 바위가 있어 보존에 도움이 됐을 텐데 철 성분이 많은 바위 탓에 전체적으로 붉은 빛이 강하고 연화대좌 아래로 붉은 물이 줄줄 흐른 자국이 인상적이다.

 

 

 <경주 남산 부엉골 마애여래좌상> 

 

 

가파른 계단을 올라 10분 안쪽 거리의 부흥사에 도착하다. 요사채의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노승과 마른 수국, 광배를 두른 작은 동자석상, 사람들이 오가며 쌓은 돌탑, 본당의 벽에 걸린 용도를 알 수 없는 시옷자형의 나뭇가지들이 기억에 남다. 벌써 다리가 아프고 머릿속까지 땀이 차서 목을 축이고 잠시 숨을 돌리다.

요사채 옆의 오죽이 있는 개울을 건너 오른쪽 산길로 올라 늠비봉으로 향하다. 한나절 코스라 가볍게 생각했는데 걷고 오르는 코스가 많아 ‘이러다가 내일 못 일어나는 게 아닌가’ 싶은 걱정이 앞서다. 언덕배기를 오를 때마다 저절로 터지는 비명 ‘아이고’...

 

 

 <경주 남산 부흥사 앞의 烏竹> 

 

 

<경주 남산 부흥사의 용도를 알 수 없는 나무가지> 

콩나물 기를 때 시루 얹어놓는 가지가 아닐까?

 

 

거리는 짧지만 험한 늠비봉에 도착하니 아름다운 바위와 그 위에 우뚝 솟은 늠비봉 오층석탑이 신체적 고통을 한방에 날리다. 깎아지른 절벽 위의 바위가 일품이고(아마 남산의 바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울 듯) 그 위에 밀가루로 반죽하듯 탑을 세운 조상들의 정성과 솜씨에 감탄을 거듭하다. 탑 기단 폭을 더 키워서 안정감을 확보했더라면 예술적으로 기가 막힌 작품이었을 텐데... 하지만 탁 트인 주변 경치와 주변의 오묘한 바위가 아쉬움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탑은 바로 앞에서 보는 것도 좋지만 건너 편 바위에서 조망하면 더 아름답다. 오금이 저릴 정도로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세운 그 탑 위에서 처음으로 단체 기념사진을 찍다. 이어서 사과로 체력보충을 하고 다음 장소로 출발하다.

 

 

<경주 남산의 늠비봉 오층석탑>  

 

 

3시 50분 쯤 금오정에 도착하고 조금 더 올라 금오산 정상에 도착하다. 도중에 남산부석을 멀리서 조망하다. 천근만근인 몸을 금오봉 아래 황토길이 푸근하게 맞아주다. 내일 또 이곳을 지날 거란 말에 그 동안 올라오느라 고생한 게 떠올라 걱정이 앞서다.

 

금오봉 정상에서 왼쪽 아래로 난 험한 코스를 따라 20여분을 내려가 약수골 마애대불을 만나다. 길도 없고 험한데다 낙엽까지 쌓여 운동화를 신은 용감한 아라비카님은 엉덩방아를 몇 차례나 찧다. 신선암과 더불어 이번 답사에서 가장 난 코스였던 곳이다. 석양이 뉘엿할 즈음 험한 숲 속에서 만난 가늠이 어려울 정도로 큰, 그리고 목이 없는 마애대불이라! 

도피안사에서 본 비로자나불처럼 선명한 가로 세로의 옷 주름이 눈에 가득 들어오다. 예술적인 가치를 떠나 이처럼 험한 곳에 어마어마한 대불을 조성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절벽 같은 대불 위로 위험을 무릅쓰고 올라가니 목을 따로 만들어 붙인 구멍이 보이다. 오른쪽 어깨 위에 서서 일행과 기념촬영을 하는데 까마득한 낭떠러지라 온몸이 후들거리다. 목을 꽂은 구멍에 앉아 기념촬영을 요청했다가 독실한 불교신자인 천년사랑님께 엄청난 비난을 듣고 끌려 내려오다.

 

밧줄을 타고 곡예 하듯 내려오니 약수골 마애대불 발가락 앞에 안내판이 있고 불공을 드린 흔적이 있다. 발 한 쪽은 어딘가에서 뒹굴던 것을 찾아 맞춘 듯한데 어색하다. 위치를 잘못 잡은 건가, 아니면 애당초 조각을 잘 못한 건가? 논산 은진미륵불처럼 덩치는 어마어마하지만 예술적인 가치는 덩치에 못 미치는 마애석불이다.

바로 아래쪽 대나무 숲이 끝나는 곳에서 목이 잘린 항마촉지인 자세의 석불(남산 약수골 석조여래좌상)을 또 만나다. 대좌인 듯 무늬가 새겨진 돌들이 바닥에 방치되어 있고 안내판 하나 없다. 불상 뒤쪽이 기단이 있는 걸로 보아 원래 암자가 있었을 텐데 길바닥에 방치되어 있는 불상이 안타깝다.

 

 

<경주 남산의 부석> 

 

 

<경주 남산의 금오정> 

 

 

<경주 남산의 약수골 마애대불입상> 

 

 

마애대불입상 아래 쪽에 있는 <경주 남산의 약수골 석조여래좌상>

 

 

20여분을 내려와 약수골 입구에 도착하니 주변이 캄캄하다. 도중에 청회색 대리석(?) 반원형 판에 무궁화를 새기고 그 앞에 상석처럼 생긴 돌 아랫면에 무덤의 주인 이름을 새긴 전형적인 최근의 경주 무덤을 몇 기 만나다. 산 아래 쯤에서 산길 따라 군사건물임을 알리는 경고 문구가 철조망 군데군데 걸려있는 그 곳이 궁금했는데 바로 경주교도소란다. 교도소가 군대 소속이었나?

 

우리는 삼릉 앞에서 기다리고 광나루님은 차를 가지러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렸으나 20여분이 지나도 버스는 오지 않고 일행 모두 추위에 떨다. 그 사이 문화재답사 가이드인 경주 토박이 분과 연락이 되어 차를 타고 꽁꽁 언 일행들이 경주 명물이라는 칼국수 집으로 가다. 이름과 달리 맛은 별로인 칼국수를 먹고 가이드와 헤어진 후 숙소가 있는 울산의 등억온천호텔로 가다.

 

등억온천호텔은 울산에서 억새로 유명한 산자락 아래에 집단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데 숙박호텔에서 주는 1회용 온천욕 티켓으로 숙소 아래에 있는 온천장으로 가는 방식이지만 밤 8시까지라 시간이 지나 티켓이 무용지물이 되다. 방이 넓고 따뜻해서 피로에 지친 일행 모두 2인 1조의 방으로 흩어지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아 1만원에 3병 하는 병맥주를 숙소에서 사서 일행을 불러 한잔씩 하고 오늘의 답사지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다. 차로 이동할 때는 서먹했지만 그래도 하루를 같이해서인지 제법 가까워진 느낌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다.

 

인간 내비게이션에 독실한 불자인 천년사랑님, 느긋한 퍼플 크리스탈님, 새초롬하고 말 수가 적은 아라비카님, 기대에 못 미치는 일행의 굼뜬 동작에 적당히 예민해진 카페지기 광나루님... 굿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