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경희궁 담장길 따라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3

큰누리 2013. 4. 16. 23:52

<3차 답사 경로>

다시 경희궁 서쪽 담장에서 북쪽 담장으로 꺾이는 지점으로 이동→ 북쪽 담장 터를 따라 민가들이 많이 들어선 까닭에 담장 터 외곽(사직터널, 사직단 건너편으로)을 넓게 돌음→ 도정궁 터(사직터널 입구의 GS주유소 뒷 건물)→ 축구회관(경희궁 유구, 무덕문 터)→ 사직단→ 사직단 행차로→ 어의궁 터→ 종침교(송첨교) 터→ 봉상시(이왕직봉상시 / 이왕직아악부) 터→ 훈국 신영, 한성부 터

 

 

<경희궁 서쪽 담장에서 북쪽 담장으로 꺾이는 지점>

사진의 건물들 앞으로 북쪽 담장이 지났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지금은 민가들이 들어서 담장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막다른 골목이라 건물 앞으로 더 이상 진행할 수 없기 때문에 사직터널 앞 대로로 나가야 한다.

 

 

 

<사직터널>

터널 위 오른쪽의 종로문화체육센터 뒤로 서울성곽 서대문 구간이 지나기 때문에 서대문 쪽에서 답사는 이곳에서 출발하여 인왕산으로 진행한다.

 

 

<경희궁 북쪽 담장으로 추정하는 곳 바깥 구역 풍경들>

지척에 고급 아파트 단지가 있고 경찰청, 정부종합청사 등의 관공서가 포진한 서울 한복판 풍경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오래된 기와집을 제대로 촬영하고 싶었는데 골목에 나와 화덕에 불을 피우던 할머니 한분이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셔서 포기했다. 불편하게 사는 이들 입장에서는 내 관심과 무관하게 자신의 불편함을 바라보는 게 즐겁지 않을 테니까.

 

 

 

<경희궁의 북문인 무덕문 터로 추정되는 축구회관 건물> 신문로2가 1-131.

사직단 대문 맞은편의 광화문 풍림스페이스본과 파크팰리스 사이로 난 길로 꺾어들어간 지점에 있다. 풍림스페이스본 주상복합건물 신축 중 경희궁 담장 일부와 우물 터, 무덕문 터로 추정되는 유구가 발굴되었다. 무덕문은 경희궁의 북문으로 사직단과 연결되는 통로에 위치하며, 조사과정에서 지하 배수로와 기단의 흔적 등이 확인되었다.

 

 

 

<사직단 주변 건물지>

풍림스페이스본 주상복합건물 신축 과정에서 발굴된 조선시대 건물 터 3동과 우물 터, 담장 등으로 사직단 정문 건너편에 있다. 대지를 조성한 후 구덩이를 파고 하부 기초를 만든 후 그 위에 초석을 얹고 기둥을 세운 구조이다.

 

 

<경희궁과 사직단, 도정궁>

현재 일부 복원된 경희궁지와 아래의 궁궐도를 비교해 보면 경희궁 동, 북쪽은 상당 부분이 민가에 잠식된 것을 알 수 있다. 경희궁 동쪽의 서울역사박물관, 서쪽의 서울특별시교육청도 경희궁 궐안이었다. 도정궁에 대한 내용은 2014년 4월 20에 이순자선생님과 함께 하고 블로그에는 2014년 5월 6일에 올린 조선의 왕가(궁가)2 자세한 내용이 있다.

 

 

<건국대 안의 도정궁 경원당>

도정궁은 윗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사직단 남서쪽(사직동 252-82번지)에 있었던 선조의 아버지 덕흥대원군의 사당이다. 경원당은 도정궁의 사랑채로 추정된다.  '도정(都正)'은 종실관제의 하나로 대원군의 봉사손에게 주는 종3품의 벼슬이다.

흥선대원군이 역모혐의로 억울하게 죽은 덕흥대원군의 후손 이하전을 신원하면서 도정궁을 신축에 가까운 대대적인 보수를 했으나 1913년 12월의 화재로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1979년 7월에 성산대교를 건설하는 노선에 있었기 때문에 건국대학교로 해체 이전되었다.

 

 

<사직단 안내도>

지난 2012년 9월 12일의 부암동, 사직단 지역 답사 때 본 안내도보다 업그레이드 되었다. 북쪽과 동쪽의 붉은색 구역은 앞으로 복원될 곳이라고 한다.

 

 

<사직단(사적 제121호)>

왼쪽은 토지신을 모신 사단(社壇), 오른쪽은 곡식신을 모신 직단(稷壇)이다. 방위로 기준으로 따지면 사단은 동쪽에, 직단은 서쪽에 위치한다. 궁궐을 기준으로 볼 때 법궁(경복궁)의 동쪽에는 종묘, 서쪽에는 사직단을 둔다. 사직단에서는 1년에 4번의 대사와 중사(선농, 선잠, 우사)를 지냈으며, 기타 기곡제와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종묘는 왕실의 근원이며, 사직(토지와 곡식)은 나라의 토대이므로 왕조시대에 '종묘사직'이란 단어는 국가를 의미했다.

 

 

 

<사직단의 사단에서 본 신실과 석주>

사단(社壇) 위의 둥근 돌은 '석주'라고 하며 하늘(신)로 연결하는 일종의 안테나이다.

 

 

<내자시 터>

3호선 경복궁역 7번 출구로 나와 앞으로 100m 지점 인도(사직동 우편택배 취급국)에 있다. 조선시대에 쌀, 채소, 과일 등의 생필품을 궁궐에 공급하고 연회 등을 관장하던 기관이다.

 

 

이어 사직단 행차로(서울경찰청 앞길 및 두산광화문시대 후면에서부터 로얄빌딩을 경유), 인조의 잠저였던 어의궁 터(서울지방경찰청), 성종이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를 폐출할 때 허종, 허침 형제가 일부러 다리 위에서 낙마하여 나중에 화를 면했다고 전하는 종침교(송첨교) 터당주동에 있었던 왕실의 제사와 시호 등을 관장한 봉상시(이왕직봉상소, 이왕직아악부) 터현재의 구세군회관 근처에 있었던 훈국 신영 터 등을 답사했으나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뒷부분은 포기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