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경희궁 담장길 따라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1

큰누리 2013. 4. 16. 01:32

2013. 3/17. daum cafe 나홀로 테마여행 주관, 사학자 이순우 안내.


<1차 답사 경로>

흥화문(경희궁 정문, 서울역사박물관) 터→ 경희궁 숭정전→ 황학정 터→ 서울기상청(송월동)→ '월암동' 바위글씨→ 홍난파 가옥→ 문성묘 터('성동인우애지산학' 바위글씨)→ 베델 가옥 터→ 딜쿠사(테일러 가옥)→ 도정궁(덕흥대원군 사당) 터→ 사직단→ 사직단 행차로→ 경희궁 유구 확인 표석(무덕문 터)→ 어의궁 터→ 종침교→ 봉상시(이왕직봉상소, 이왕직아악부) 터→ 무관학교 터→ 훈국 신영 터(한성부 터)

 

-≪경희궁의 역사≫-

경희궁은 광해군의 이복 형제인 정원군(원종으로 추존)의 집 터(잠저)였는데 광해군이 즉위 9년(1617)에 이곳에 왕기가 있다는 말을 듣고 기를 누르기 위해 궁궐을 짓고 경덕궁이라 불렀다. 영조 36년(1760)에 경희궁으로 개칭했으며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운궁(덕수궁)과 더불어 조선시대 5대 궁궐의 하나였다.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으로 창덕궁, 창경궁이 소실되자 인조는 이곳에서 9년을 머물렀다. 이후 별궁으로 사용되었으며 숙종, 영조는 재위 시 상당 기간을 머물렀다. 경희궁에서 숙종, 영조, 순조가 승하했으며, 경종, 정조, 헌종은 즉위식을 거행했다. 

여러 차례의 화재와 풍화로 궁궐 기능이 거의 상실된 상태에서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숭정전, 회상전, 흥정당 등의 주요 전각을 제외한 나머지 전각을 경복궁의 자재로 썼고 이후 땅은 용동궁, 어의궁 등에 분배되어 궁궐 내에 경작지가 들어서 '뽕나무 궁궐'로 불렸다. 


1910년에 경희궁에 경성중학교가 들어섰고, 1925년에 경성공립중학교로 개칭→ 해방 후 서울고등학교가 들어섰다가 1980년 6월에 서초동으로 이전→ 동년 9월에 경희궁지(사적 제271호)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경희궁 구역 안에 서울특별시교육청(1981.8),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미술관(1988.8), 서울역사박물관(2002.5)이 들어서 상당한 면적을 잠식한 상태이다.

 

 

<경희궁 숭정전 앞 전경>

오른쪽의 흰색 건물은 옛 서울고등학교 건물이다. 사진 왼쪽의 푸른색 Citi 빌딩 왼쪽 뒤로 고종 황제가 덕수궁에서 황학정으로 활을 쏘러 가는 편의를 위해 한 때 구름다리가 놓여지기도 했다.

 

 

<경희궁 숭정문과 숭정전>

숭정전은 1617~1620년에 경희궁을 창건할 때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기와 건물로 지은 경희궁의 정전이다. 1926년 일제가 철거 매각하여 현재 동국대학교 안에서 정각원(법당,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0호)으로 사용되고 있다. 철거와 이후 사용 과정에서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고 지금은 법당에 맞게 내부가 변경되었다. 현재 경희궁 안의 숭정전은 원래 터에 남아있던 기단부와 전계석 위에 복원한 것이고 주변의 건물 몇 채도 함께 복원되었다. 

 

 

<경희궁 회상전 터>

경희궁은 정전인 숭정전을 중심으로 뒤에 후전인 자정전, 태령전, 흥정당 등이 있었다. 내전인 회상전은 숭정전 동쪽에 있었던 정면 7칸의 건물로 지붕에 용마루를 두지 않았다. 현재 회상전 터에는 방공호가 들어서 있다. 회상전 터 뒤로 보이는 언덕 위에는 후대에 고종이 세운 활터인 황학정이 있었다.

 

 

<회상전 터에서 황학정 터로 오르는 계단참의 제비꽃>

다른 곳에서는 아직인 제비꽃이 볕이 바른 이곳에서는 제법 보였다.

 

 

<황학정 터>

(주)사계절출판사 건물(경희궁 회상전 터 바로 뒤쪽) 쯤에 활터인 황학정이 있었다. 황학정은 광무 2년(1898) 독일 하인리히 친왕의 방한 때 고종이 관병식과 더불어 활쏘기 시범을 보여주기 위해 경희궁 회상전 북쪽에 지은 것이다. 일제 강점기인 1922년에 박영효의 청원으로 국유림인 현재의 위치, 사직공원 뒤로 옮겨졌다.

 

조선 시대에 궁술 연습을 위해 필운동의 등과정, 옥동의 등룡정, 삼청동의 운룡정, 사직동의 대송정, 누상동의 풍소정 등 5개의 사정(射亭)이 있었지만 현재는 황학정(서울유형문화재 제25호)을 제외하고 모두 사라졌다. 현재의 황학정은 5사정의 하나인 등과정이 있던 자리이다.

 

 

<현재의 황학정> 2012. 9/16 촬영. 

 

 

<경희궁과 서쪽 궁장지역 - 서울특별시교육청, 서울기상관측소>

왼쪽 건물은 서울특별시교육청이고 오른쪽의 작은 건물은 서울기상관측소이다. 능선처럼 보이는 부분을 따라 경희궁 서쪽 담장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며 서울특별시교육청은 경희궁 안이었다. 경희궁 서쪽 담장과 서울성곽 서대문구간은 서울특별시교육청 부근에서 상당히 붙어있다. 능선 너머 서울기상관측소 아래로 최근에 서울성곽 서대문 구간이 일부 복원되었다.

 

 

<경희궁에서 본 남쪽>

중앙 멀리에 남산이 일부 보인다.

 

 

<경희궁에서 본 동쪽>

 

 

<경희궁 서쪽 담장이 지났을 것으로 추측되는, 경희궁에서 서울기상관측소로 넘어가는 쪽문>

서울기상관측소 쪽에서 내려다 본 것이다. 전에 경희궁을 종종 들렀지만 뒤쪽의 서울기상관측소가 이런 식으로 연결되는 것은 처음 알았다.

 

 

<서울기상관측소(舊 경성측후소)>

경성측후소는 1907년 현재의 서울대병원 구내에서 인천관측소 경성지소로 출발하여 1913년에 낙원동 대빈궁 터로 옮겼다가 1932년 11월에 현 위치로 신축 이전하였다. 해방 후 국립중앙관상대(1949), 중앙기상대(1982), 기상청(1990)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998년 12월에 기상청이 보라매공원 신축청사로 이전하면서 현재의 건물은 서울기상관측소로 바뀌었다.

 

 

 

 

 

<서울기상관측소의 계절관측 표준목들>

서울기상관측소 뜰에 있는 개나리, 진달래, 벚꽃, 매화, 코스모스 등이 20% 이상 개화하면 서울 개화일이 된다. 서울에 첫눈이 내린 날의 기준점도 바로 이곳이다. 개나리 계절관측 표준목 뒤로 최근에 복원한 뽀얀 서울성곽이 보인다.

 

 

 

<서울기상관측소 서쪽의 백엽상과 인왕산>

 

 

<서울기상관측소에서 본 서울성곽과 풍경>

왼쪽의 성곽 바로 옆에는 서울특별시교육청이, 사진 오른쪽으로는 홍난파 가옥이 있다.

 

 

<서울기상청 아래의  TV드라마 '옥탑방 왕세자' 촬영지>

TV드라마 '해를 품은 달' 신드롬 이후 제작된 시공을 넘나드는 퓨젼 역사 드라마 '옥탑방 왕세자'를 처음부터 마지막 회까지 나름 재미있게 보았고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위해 옥상에서 이벤트를 연출하던 장면도 기억하는데 이 집하고 연결을 하자니 긴가민가 하다. 함께 드라마를 본 딸에게 이 집 맞냐고 물으니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앞집이 아니라 뒷집인 것 같다.

 

 

<월암동 바위글자>

월암동 바위는 '돈의문 밖 서성 아래에서 깜깜한 밤에도 오히려 밝은 빛이 나고 귀 기울여 들으면 은은한 파도 소리가 났다'고 하는데 지금은 글쎄... 이 지역의 재개발로 살아남을 지 조차 의심스러운 위기 상황이다. 답사를 하면서 본 바로는 이 부근의 낡은 집들이 재개발 때문에 이미 비었거나 이사 중이었다. 옥탑방 왕세자 촬영지 바로 아래 쪽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