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루는 남정현에서 가장 오래된 점이나 규모로 보아 '남정현 토루의 왕'으로 부를 만 하다. 전라갱토루군에서 차로 5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 유창루도 다른 토루군처럼 시내를 끼고 있었는데 웅장한 외관을 찍을 기회를 놓쳤다. 너무 커서 어느 정도 떨어져야만 전경을 찍을 수 있는데 그 적당한 거리가 주변의 건물이나 기타 이유로 인해 마땅치 않다는 이야기이다. 동해의 푸른바다님 내외분은 매표소에서 입장하자마자 유창루 조망을 하러 산으로 올라가셨다.
유창루는 다른 토루처럼 중앙에 사당이 있고, 나무로 만든 내부 기둥이 층마다 약간씩 비뚤어진 특성이 있다. 총 5층으로 각 층에 54개의 방, 총 270개의 방이 있다. 1층을 만드는데 1년 정도가 걸렸다는데 각 층을 축조하면서 건조하는 시간이 그 만큼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느림의 미학'이 필요했던 것이다.
<남정현 토루군 입구의 '모주석 만세' 토루>
이 토루는 눈을 부릅뜨고 찾아도 이름을 알 수 없었다. 토루 입구에 난데 없이 '모주석 만세'라는 선동적인 글귀만 있었다. 듣기로는 마오저뚱(모택동)이 생전에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 토루를 지나 조금 더 간 곳에 있는 취원루에도 다른 토루라면 응당 토루의 이름이 있어야 할 자리에 '모주석 만세'라는 글귀가 써 있었다.
<'모주석 만세'라고 토루 출입문에 쓰인 취원루>
이 토루의 이름을 찾느라 무지 애썼다! 토루 앞에 공산주의 개념에 걸맞는 열심히 노동하는 동상들이 있었고, 주변에 우리나라의 디딜방아 같은 게 있었다. 토루 내부를 들여다 보니 중앙에 관음상을 모신 사당이 있었다. 그게 본래의 모습이었을 텐데 그냥 본래대로 내버려두지...
<남정현 토루의 대표격인 유창루의 당당한 외관>
현지 가이드를 따라가다보니 유창루 외관을 촬영할 기회를 놓쳤다. 유창루를 관람하고 나오는 길에 관광용 사진에 의례 등장하는 보(물꼬) 너머로 유창루가 보였지만 귀찮아서 사진 찍는 것을 포기했다. 물꼬 넘은 위치 아니면 평지에서 전경 촬영은 불가능하고 조망 형태로 찍으려면 유창루 뒷산 정상으로 올라가야만 가능하다. 부실한 몸으로 짧은 시간 안에 산을 뛰어올라 촬영할 수도 없고, 물꼬 너머 보이는 전경은 그저 그렇고...
<유창루 출입구의 제비집>
우리나라에서 볼 때 '강남 갔던 제비'가 강남에서 지은 original 집이다. 우리나라 제비집은 진흙에 볏집 같은 마른 풀이 반쯤 섞여 있는데 강남의 제비집은 only 진흙이다.
<유창루 중앙의 사당, 관음청>
토루의 사당에 관음청, 혹은 관음당이 많은 것은 복건성 주민의 90% 이상이 불교신자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다와 접한 지역이고 해외로 나간 화교가 많은 곳이었기 때문에 바다의 수호신인 마조여신에 대한 신앙도 돈독하다.
<유창루 내부>
3층의 나무 지지대가 비뚤어진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혹자는 건물 구조상 필요한 과학적 구조라고 하고, 혹자는 스승이 일부러 비뚤어진 지지대를 만든 후 제자에게 바로 만들게 하기 위한 교육이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유창루는 1972년의 지진을 15도 기우는 것으로 버팀으로써 그 견고함을 증명했다. 오른쪽 뒤로 보이는 산 정상에 올라야 제대로 된 유창루 조망이 가능하다.
<유창루에서 탑하촌으로 가는 전동차>
유창루에서 1.8km 떨어진 탑하촌으로 가는 전동차이다. 걷기에 지친 나는 왕복 10위안을 주고 이 차를 탔다. 여행 일정이나 코스가 길 경우, 모두 보려고 욕심 부리지 말고 가끔씩 이런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번에 느꼈다. 이날 후반부 코스인 남보타사에서 지치고 사전 지식이 없었던 데다 가이드를 놓친 나는 대비전 안의 천수관음상을 놓쳤다. 지붕, 처마와 더불어 남보타사의 백미인데... 차 안에서 미리 설명하지 않고 꼭 북적이는 현장에서 설명을 한 현지 가이드가 미웠을 정도로 아쉬웠다.
<남정현의 탑하촌(타샤쿤)>
탑하촌은 장씨 집성촌으로 주민 평균 연령이 88세이며, 100세가 넘는 노인도 몇분이 있는 장수촌으로 유명한 볼거리라면 단연 덕원당이다. 시간이 널널하다면야 장수하는 노인들을 만났겠지만 갈 길이 바쁘고 고달픈 나 같은 여행객은 노 땡큐! 탑하촌 내면을 들여다 볼 시간은 없었지만 마을 중심을 흐르는 시내, 그 위를 유유자적하는 오리들을 보니 이방인인 나 조차 마음이 평화로웠다. 한 마디로 고즈넉한 마을이었다.
<탑하촌 정상의 덕원당으로 오르는 길>
문학 서적을 접한 소시적부터 '사하촌'이라는 단어가 내게 늘 막연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지금이야 당장 '절 아래 마을'정도로 이해하겠지만 한자어가 달린 당시에는 '사하촌'이란 단어가 이상향처럼 아련하게 느껴지곤 했다. 이곳 탑하촌 역시 정상에 있는 덕원당을 염두에 두고 지어진 이름 같다. 덕원당 바깥의 석조 깃대가 탑으로 변용된... 덕원당까지의 오르는 짧은 오르막 길에서 장수 마을 탑하촌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탑하촌 정상의 덕원당>
덕원당은 탑하촌에 있는 장씨의 사당이다. 풍수 최적지인 남향에, 사당 대문은 패루식이며 문루에 '장씨 가묘' 편액이 있다. 사당은 폐쇄적인 사합원 구조이며 지붕이 용, 봉황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사당 한 가운데 신감에 역대 조상의 신주가 있으며 장씨 가문의 역사를 기록한 <장씨 족보>가 보관되어 있다. 덕원당은 여러 차례 복구와 수리를 거쳤으며 건축 양식이 다른 곳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사당 앞 소택에 세워진 석조 깃대는 장씨 후손들이 타향이나 해외에서 성공한 내력을 기록하여 세운 것으로 다른 사당에서는 보기 힘들다고 한다.
<덕원당의 지붕 장식들>
중국 남쪽 지방의 권위 있는 사찰이나 유명 건축의 지붕은 대체로 이렇다. 용, 봉황, 꽃 무늬 장식이 대단히 화려하다.
<덕원당 전전(前殿) 지붕을 밖과 안에서 본 모습>
<덕원당 사당과 자갈로 무늬를 꾸민 조형이 돋보이는 바닥>
<복건성 여행 2일 차 저녁 식사>
손가락 한 번만 눌렀으면 되는데 어디에서 무얼 먹었는지 기록하는 것 조차 놓쳤다! 나, 멘붕이 온 것 아닌가? 왼쪽 중앙의, 우리 나라 삼겹살과 비슷한 음식이 주최 측에서 내세운 음식이었다. 졸깃하고 맛있었는데 중국 남쪽 지방의 음식이 의례 그렇 듯 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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