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구)서울역사

큰누리 2013. 10. 26. 18:10

<구)서울역사 / 사적 제284호)>

구 서울역사는 대한제국 시기인 1900년 서대문과 인천의 제물포를 연결하는 경인철도의 남대문역사로 처음 건립되었으며, 1925년 르네상스풍의 절충주의 건축양식으로 다시 지어졌다.
구 서울역사는 고전주의 건축의 대칭적 구성과 고전주의 건축방식에서 벗어난 중앙돔과 소첨탑 그리고 좌우 양날개의 모습이 특징적인 건축으로, 스위스의 루체른역사를 모델로 지었다. 1층 중앙홀을 중심으로 좌우에 대합실이 위치하였으며, 2층에는 서양식 레스토랑과 역무원의 사무공간이 위치했었다. 현재는 전시와 공연 그리고 교육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해방 후 서울역은 교통과 물량의 중심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1957년 남부역사, 1969년에 서부역사를 신설하였고, 1974년에는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면서 전국 철도의 중심이자 서울 대중교통의 허브로서의 역할이 더욱 강화되었다. 그러나 자가용이 보편화되고 2004년 고속철도(KTX)의 개통으로 구 서울역사의 기능이 상실되었다. 
이후 1925년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되어 시민과 소통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통일 후에는 대한민국과 유럽, 아시아 각지를 연결하는 관문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구)서울역사 안내문에 의함-

 

 

<구)서울역사 / 서울역문화관>

답사 일자 : 2013. 5/11.

답사코스 : 명동(성당)- 서울시청 구)청사- 환구단- 한국은행 본관(화폐박물관)- 숭례문- 구)서울역사- 중림동 약현성당- 손기정기념관

 

 

 

<서울역 광장의 왈우(曰愚) 강우규의사상>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안에 재현한 사형장 안에는 강우규의사(를 비롯한 몇분)의 사진이 걸려있다. 관행에 따라 일제가 형무소에서 찍은 죄수(!)사진인데 이 동상처럼 풍채가 좋은 분이 아니라 마르고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이다. 회갑을 넘은 나이에 거사를 결행한 분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선한 인상에 눈빛이 형형한 분이다.

 

동상 받침대 후면의 강우규의사에 대한 안내문은 아래와 같다.

강우규 의사(1859.6~1920.11)는 1859년 6월 5일 평안남도 덕천군 무릉면 제남리에서 가난한 농가의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셨다. 1883년 함경남도 홍원군 용원면 영덕리로 이주하여 함경도 일대에서 민족교육과 기독교 전도사업을 통하여 독립운동의 역군을 양성하셨고, 1910년 8월 경술국치로 국권이 상실되자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결심하셨다. 그후 1915년 길림성 요하현 신흥동으로 이주, 광동(光東)학교를 설립하여 청소년의 민족의식 고취와 기독교 전도사업을 통한 민족계몽운동을 펼치셨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동료들을 이끌고 만세운동에 앞장섰으며 이후 노인(老人)동맹단의 요하현지부장을 맡아 활동하셨다. 1919년 8월 5일 폭탄을 품은 채 삼엄한 경비망을 뚫고 서울에 도착, 9월 2일 남대문역두(현 서울역)에서 새로 부임하는 신임총독 사이토를 향하여 폭탄을 투척, 세계만방에 대한의 독립정신을 알리었다. 이듬해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셨다.

동상 전면 받침대에는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 형장에서 강우규의사가 남긴 아래와 같은 시귀가 있다.

단두대 위에 올라서니        (斷頭臺上)

오히려 봄바람이 감도는구나(猶在春風)

몸은 있으나 나라가 없으니  (有身無國)

어찌 감회가 없으리오        (豈無感懷)

 

 

 

<서울역 '정초(定礎)' 각자>

1919년 취임하면서 강우규 의사에게 저격을 당한 사이토 마코토가 1925년 서울역이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지어질 당시의 3대 조선총독이었으니 그의 글씨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치욕의 상징이어서 한국은행박물관의 이토 히로부미가 쓴 '정초'처럼 갈려나갔다. 사이토총독의 글씨가 맞다면 그의 필체는 달필, 힘찬 것도 아니니 별로였던 것 같다.

 

가끔 치욕의 역사를 지우고자 한 이런 상황을 보면 묘한 느낌이 들곤 한다. 아예 없애서 지워버리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그대로 남겨두어 다시는 그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볼 때마다 되새기는 것이 좋은지...

 

 

<구)서울역사 복원전시실2>

이발소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구)서울역사를 원형 복원하면서 나온 부자재와 역사적 사료들을 볼 수 있다.

 

 

 

 

 

<구)서울역사 복원전시실의 경인철도 건설 관련 사료>

최초의 서울역 모습, 개통 당시의 경인철도에 딸린 역 등을 알 수 있다.

 

 

 

<구)서울역사 2층 전시실에서 당시에 열린 레고전>

 

 

 

 

 

 

 

 

<구)서울역사 2층 동쪽 구역>

이곳 역시, 전시실로 사용 중이고 일부 방에 무대의상 등이 걸려 있었다.

 

 

 <구)서울역사 2층 동쪽 구역 전시실의 여가의 재발견(최범) 연장展>

오른쪽 벽의'ㅎ'자가 줄기에 걸려있는 것 같은 그림... 대학로의 조형물 중 낚시를 드리운 남자의 낚시대 끝에 걸린 'ㅎ'자와 같다. 같은 작가의 작품이다, 최범...

 

 

 

<구)서울역사 2층 동쪽 구역의 무대의상방>

구)서울역사 2층은 전시회 뿐 아니라 연극인들에게 공연장, 혹은 연습공간으로도 제공된다고 한다.

 

 

<구)서울역사에서 본 경의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