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마도 여행4 - 가네다노키(金田)성 터, 고려문, 하치만구(팔번궁)

큰누리 2013. 12. 17. 22:05

가네다노키 성 터는 이즈하라의 淸水(시미즈)山 남쪽, 만송원(반쇼인) 앞쪽에 있다. PS : 현지의 안내문에는 '가네다노키(金田)성 터'가 아니라 '카네이시(金石)성 터'라고 쓰여있다.

 

가네다노키(金田)성 터에서 산자락으로 오르면 바로 시미즈(淸水)산성이 있다. 시미즈(淸水)산성은 그리 높지 않고 조선식 산성으로 불리는 만큼 올라갔음직 한데 당시에 날이 더워서였는지 생략하고 평지에 있는 이곳만 들렀다.

 

가네다노키(金田)성 터는 島分寺라는 절 터에 가옥을 몇 채 세우고 성벽 위주로 지은 성이었다고 한다. 국가사적이라고 하는데 현재 볼만 한 것은 櫓門이라 불리는 복원된 성문과 잔디가 깔린 넓은 정원 정도이다. 정원 한쪽에는 '이왕가 종백작가 어결혼봉축기념비'가 세워져 있어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가장 눈에 띄는 櫓門도 1990년에 복원된 것이라고 하니 국가 사적으로 지정된 이유는 성문 주변에 남아있는 성곽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의 유적도 마찬가지이지만 주변의 지형을 두루 볼 수 있는 곳에 올라 조망하지 않으면 성(城) 만큼 답사지로서 단조로운 곳도 없을 것이다. 그나마 '성'도 아니고 '성 터'이니 시각적으로 들어오는 게 없는 것이다.

 

 

<가네다노키(金田)=카네이시 성 터의 櫓門>

1990년에 복원된 것이라고 한다. 빈 터 같은 가네다노키(金田)성 터(카네이시 성 터)에서 그나마 가장 볼만 하다.

 

 

 

<가네다노키(金田)성 터의 정원>

 

 

<가네다노키(金田)성 터의 소우 다케유키백작 : 덕혜옹주 결혼 봉축비>

이 비는 대마도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건립한 것이라고 한다. 대마도인들에게는 자신들의 최고 권력자인 번주가 일국의 황녀와 결혼했으니 영광이었을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치욕적인 기념비이다. 옹주라고는 하나 고종황제의 고명딸이 이국의 변방에 있는 작은 섬의 번주와 강제로 결혼을 했으니 얼마나 조선을 의도적으로 능멸한 것인가.

 

당시에 나름 지식인이고 시인이었으며 인물도 훤칠한 소우 다케유키였지만 어쩌면 그도 정략결혼의 희생양일지도 모른다. 결국 그들은 제대로 된 결혼생활을 하지 못했고 하나뿐인 딸은 자살을 하고 말았다. 그후 덕혜옹주는 정신병에 걸려 오랜 기간 유폐되었다가 만신창이의 몸으로 해방이 된 후에야 겨우 평민자격으로 고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가네다노키(金田)성 터 입구의 유치원>

 

 

<대마민속자료관 앞의 고려문과 조선국통신사비>

대마민속자료관은 규모도 작고 내부 촬영 불가이다. <조선통신사 행렬도>를 비롯하여 주로 문서들이 소장되었던 걸로 기억을 한다. 고려문은 에도시대에 건립되었다고 하는데 현재의 것은 복원한 것으로 보인다. 바로 앞에 있는 조선국통신사비도 조선 통신사들이 오갔던 길목에 비교적 최근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조선통신사는 많을 때는 500명 정도여서 당시의 일본인들에게는 어마어마한 볼거리였다고 한다. 외국 사신으로서는 아마 최대 규모였을 것이다. 조선통신사는 대마도를 경유해서 일본에서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던 듯 하다. 임진왜란 후 도쿠가와 막부 때에는 260여년간 12차례의 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했다고 하며 그 때마다 도주(번주)는 3년 정도를 준비해야 했다고 한다.

 

대마도 이즈하라에는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유적이 많고 냇가 변에 행렬도 벽화도 있다. 현재는 8월 첫째주 토, 일요일에 '아리랑마쯔리' 란 이름으로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현한다고...

 

 

 

 

<대마도 하치만구(八幡宮)신사>

하치만구(八幡宮)신사는 장군이나 무사들과 관련된 곳이다. 応神天皇おうじんてんのう(오진텐노)를 주신으로 모신 신사이며 궁시의 수호신으로 무사들이 숭앙했다.

 

대마도 하치만구는 규모로 보나 역사로 보나 대마도의 유적 중에서 가장 볼거리가 있는 이라고 생각한다. 음침한 듯한 분위기, 이끼 낀 건물과 석물들에서 오래된 역사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유적이다. 사실 대마도의 유적들은 규모가 작아서 만송원(반쇼인)과 이곳을 제외하고는 유적이라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대마도 하치만구(八幡宮)신사 안의 신사>

일본의 신사 안에는 작은 신사들이 여러 개 있다. 신사 건물 처마에는 굵은 새끼줄을 걸고 사이에 흰종이와 모양을 낸 짚을 끼운다. 각자 원하는 신사 (건물) 앞에서 사진에는 없지만 늘어진 줄을 당긴 후 손뼉을 세번인가 치고 참배를 한다.

 

 

 

<대마도 하치만구(八幡宮)신사 본전>

오랜 역사도 느껴졌지만 해질 무렵에 사람이라고는 우리 일행 밖에 없어서 좀 으시시했다.

 

 

 

 

 

<대마도 하치만구(八幡宮)신사 본전의 마신상>

다른 팔번궁에서는 마신상을 본 기억이 없지만 하치만구(八幡宮)신사는 무사들이 떠받드는 신사이기 때문에 어울리기는 한다.

 

 

<대마도 하치만구(八幡宮)신사 본전의 측면과 뒷면>

자연스러운 한옥과 달리 처마의 목재들이 자로 잰 듯 반듯하다. 전형적인 일본 목조건물의 특징을 볼 수 있다. 뒤쪽에 소원을 적어 거는 오각형의 에마가 보이지만 우리가 들렀을 때 빈 에마를 파는 곳은 고사하고 사람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다.

 

 

 

 <이즈하라 개천의 벽화>

사진은 놓쳤지만 이 부근에 조선통신사 행렬도 벽화가 있다.

 

 

<첫번째 저녁을 먹은 万松閣과 메뉴>

어묵 샤브샤브와 도미회이다. 대마도의 음식들은 대부분 우리 입맛에 잘 맞는 편이지만 본토에 비해 양이 너무 적다. 우리는 이곳에서 무려 세끼를 먹었다. 돼지고기-소세지-가리비구이, 샤브샤브, 빈약한 아침상 등... 세끼 모두 메뉴가 달랐지만 빈약한 아침상(일본의 아침 밥상은 호텔 부페가 아니라면 대체로 빈약하다)을 제외하고는 맛은 괜찮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