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인천

화성 궐리사와 오산의 고인돌 유적

큰누리 2015. 5. 2. 14:01

<화성 궐리사>

화성 궐리사(실제로는 오산시에 소재)는 매년 유림과 후손들이 봄, 가을 공자의 탄신일과 기일을 기하여 석전의 예를 올리는 서원적 사당이다. (PS : 석전 - 문묘에서 공자를 비롯한 4성 10철 72현의 제사를 지내는 의식) 궐리사는 원래 공자의 64대손인 공서린이 은행나무를 심고 서재를 세워 후학을 양성했던 곳이다. 은행나무에 북을 달아 두드리며 제자들의 학문을 독려했는데 그가 죽자 은행나무도 말라죽었다고 한다.

 

공서린선생은 조선 중종 때 문신으로 대사간을 역임하고 좌승지로 부임할 당시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15년간 옥고를 치렀다. 석방 후 경기황해 양도 감사와 대사헌을 역임하고 청백리로 선정되는 등 성품이 곧고 기개가 높으며 문장이 뛰어났다. 궐리사 안의 은행나무 옆에는 2010년에 세운 선생의 유허비가 있다.

현재의 화성 궐리사는 조선 정조가 재위 16년(1792)에 공서린선생의 서재 자리에 화성궐리사를 창건하고 친필을 사액했다.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정책으로 없어졌다가 1900년에 다시 세우고 1981년에 강당을 세웠다.

 

'궐리(闕里)'란 중국 산동성 곡부시에 있는 공자가 태어난 마을이다. 궐리사는 공자를 모시는 사당을 통칭하며 우리나라에는 강원도 강릉과 충북 제천에도 있었지만 현재는 논산의 노성과 경기도 오산(화성)에만 남아있다. 화성궐리사는 앞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며 맞배지붕의 건축구조이다. 동쪽에 강학공간인 행단이, 중앙에 공자의 사당인 성묘가, 서쪽에 성현들의 상을 모신 성상전 등이 있다.

 

궐리사에는 공자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한 성묘본당(경기도 기념물 제147호)과 공자의 일생을 화폭에 담은 성적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2호)가 있다. 성묘 서쪽에는 1983년 공자의 고향인 곡부시에서 기증받은 대형 석조성상과 안자, 증자, 자사, 맹자상을 모신 성상전이 있다. 기타 공자문화전시관과 공자가 삼천 제자에게 강학을 하던 중국 곡부시 공묘(공자 사당)의 행단과 유사한 행단이 있다.

 

 

<궐리사 성적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2호.

성적도는 공자의 76대손인 공재헌이 1904년 중국 산동성에서 구한 것을 본떠 만들었다. 공자의 생애를 새긴 피나무로 만든 목판으로 총 60장이며, 크기는 가로 70cm, 세로 32cm의 크기이다.  --사진은 NAVER 지식iN에서 퍼옴-- 

 

 

 <화성 궐리사 홍살문과 외삼문>

홍살문은 신성한 영역을 알리는 표시이다. 우리가 답사한 날, 유감스럽게 문이 닫혀있어서 외관만 보았다. 외삼문에 붙은 '闕里祠' 현판은 홍살문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화성 궐리사 대소인하마비>

 

 

<화성궐리사 안내도>

외관만 보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성묘와 성상전을 볼 수 없었다. 다른 건물이나 공자상은 외부에서나마 볼 수 있었다. 

 

 

<화성궐리사의 강학공간인 행단>

 

 

<화성궐리사 은행나무와 공서린유허비>

공서린선생은 이곳에 서재를 짓고 은행나무를 심은 후 은행나무에 북을 매달아 두드리며 학문을 독려했다고 한다. 은행나무는 공서린선생 사후 말라죽었으나 정조가 수원성을 지을 때 이곳에서 까마귀가 울어 와보니 죽은 나무에서 새싹이 돋았다고 한다. 전하는 대로라면 공서린선생이 심은 은행나무가 맞지만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고, 크기로 보아 오래된 은행나무인 것은 확실하다.

 

 

<화성궐리사 양현제>

 

 

<화성궐리사 숭인문(서문), 공자문화전시관, 양현제>

 

 

<화성궐리사 공자문화전시관, 숭인문(서문), 양현제>

 

 

<오산 고인돌공원의 광대나물>

 

 

 

≪오산 금암리 지석묘군≫ 경기도 기념물 제112호.

경기도 오산시 금암동에 위치한 청동기시대의 9기의 바둑판식 고인돌들이며, 덮개돌은 땅 위에 드러나 있지만 아래의 돌은 흙속에 묻혀 자세한 구조는 알 수 없다. 규모가 큰 것은 덮개돌의 길이가 6m이다. 산자락을 중심으로 공원에 흩어져 있는데다 고인돌이라고 한눈에 알아볼 만한 특별한 점이 없어서 일반인의 눈으로는 식별이 어렵다. 강화도에 있는 규모가 어마어마하고 잘 생긴 북방식 고인돌을 연상하면 실망스럽다.

 

금암리 고인돌군은 '그냥 크기가 조금 큰 바위' 정도로 밖에 인지되지 않아 우리 일행 중 대부분은 모든 고인돌을 찾는 것을 포기했다. 아래의 2기는 그나마 공원 입구에 있어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오산 고인돌공원의 금암리지석묘군 제6호>

 

 

<오산 고인돌공원의 금암리지석묘군 제5호>

 

 

<오산 고인돌공원>

이 공원 안에 '평범한 바위' 같은 9기의 고인돌이 흩어져 있다. 사진 속의 바위들은 고인돌이 아니다.

 

 

 

<경기도의 고인돌 안내문>

 

 

 

<오산 외삼미동 고인돌> 경기도 기념물 제211호.

외삼미동 고인돌(지석묘)은 그나마 탁자식이고, 보존상태가 좋으며 외떨어진 곳에 있어서 알아볼 정도는 되었다.

 

 

 

<오산시 외삼미동 고인돌에서 본 동탄 신도시>

 

 

<종로 낙원상가의 나주곰탕>

우리가 아는 일반 곰탕은 사골을 우려내서 국물이 뽀얀데 나주곰탕은 맑은 것이 특징이다. 처음 먹었는데 부드럽고 깔끔하며, 고기 양도 넉넉해서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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