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인천

세종대왕 시대의 과학발명품들

큰누리 2015. 7. 6. 18:28

사진은 세종대왕과 그의 비 소헌왕후의 합장릉인 영릉(英陵) 입구 세종전 앞에 전시된 것들이다. 조선시대에는 과학이나 기술은 경시되었으며 과학자들도 장인이라 하여 사회, 경제적으로 천시되었다. 그러나 세종대왕은 과학기술을 국가의 중요한 발판이라 여겨 선진 과학기술을 받아들이고 발전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다.

기술 습득을 위해 인재를 선발하여 중국에 유학을 보내고 이들에게 공동연구를 하도록 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장영실, 정초, 정인지, 이천 등 우수한 과학자들의 활동으로 훌륭한 성과를 이룩할 수 있었다.

 

 

<간의(簡儀)>

천문대에 설치한 중요한 천문관측기의 일종으로 적도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만들었다. 오늘날의 각도기와 비슷한 구조이며 혼천의를 간소화한 것이다. 대간의는 경회루 북쪽의 간의대에 설치하고 소간의는 대간의를 이동할 수 있도록 축소한 것이다.

 

 

 

<혼상(渾象)>

1437년(세종 19)에 제작된 것으로 제작 당시 경복궁 안에 있었다. 하늘의 별들을 보이는 위치 그대로 둥근 구면에 표시한 천문기기로 별이 뜨고 지는 것, 계절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을 측정할 수 있다. 현재 안동 도산서원과 경주 민속공예촌 신라역사관에 1개씩 소장되어 있다.

 

 

 

<천평일구>

1437년(세종 19)에 제작된 해시계 중의 하나로 구조는 시반, 용주, 남북을 잇는 가는 줄, 남북 못으로 이루어져 있다. 용주로부터 남쪽 못까지 연결된 실은 하늘의 적도면과 일치하도록 되어 있는 시반면 중앙을 수직으로 통과하며, 태양빛에 의해 시반면 위에 맺힌 실 그림자로 그 때의 시간을 알 수 있다.

시반에는 하루를 12시로 매시를 초, 정 눈금으로 나누어 사용하였는데, 시반 앞면은 하절기에 뒷면은 동절기에 사용하였다. 전시된 천평일구는 7배로 확대하여 복원한 것이다.

 

 

<현주일구>

1437년(세종 19)에 만든 일종의 해시계이다. 남북을 잇는 가는 줄을 지구의 자전축 방향과 일치하도록 추를 달아 팽팽하게 당기도록 설치하여 이 줄의 그림자를 둥근 시반에 나타나게 하여 가리키는 눈금을 보고 하루의 시간을 측정한다. 시반은 양면에 눈금이 새겨져 있다. 시반에 나타나는 가는 줄의 그림자가 여름철에는 시반의 윗면에, 겨울철에는 시반의 밑면에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윗면의 눈금은 춘분에서 추분까지 사용하고 밑면은 추분에서 춘분까지 사용한다.

 

세종 당시에는 휴대용 해시계였기 때문에 손바닥만한 크기였으므로 전시된 현주일구는 7배로 확대 복원한 것이다.

 

 

<혼천의>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여 천문시계의 구실을 하였던 천문기구로 선기옥형, 혼의, 혼의기라고도 한다. 1433년(세종 15)에 정초, 정인지 등이 자료조사를 하고 이천, 장영실 등이 제작하였다. 삼국시대 후기 이후부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만원권 지폐의 모델이다.

 

 

 

 

<정남일구>

1437년(세종 19)에 제작된 해시계의 일종으로 지남침이 없이도 남쪽방향을 결정하여 시간을 측정하는 천문기기이다. 남북 기둥을 잇는 사유환 축은 지구 자전축인 하늘의 북극방향과 일치하고 동서로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있으며 축 끝에 추를 달아 정남일구의 수평을 잡도록 하였다.

 

지평환에는 24방위와 24절기가 표시되어 있으며, 사유환 양 측면에 눈금이 새겨져 있어 정오에 태양의 남중고도를 측정할 수 있다. 시각을 알아보려면 사유환을 좌우로 움직이면서 규형을 남북방향으로 움직여 규형의 남쪽 구멍을 통과한 태양 광선이 시각선과 절기선이 그려져 있는 시반면에 닿을 때 정사각형으로 뚫린 구멍의 중앙에 나타난 시각을 읽으면 된다. 세종 당시에 제작된 정남일구는 남아있지 않으며 전시물은 세종대왕 실록에 기록된 치수를 3배로 확대하여 복원한 것이다.

 

 

<관천대와 적도의>

관천대는 조선시대 천문관측대로 일명 간의대 또는 첨성대로 부르기도 했다. 조선 초기에 왕립 천문기상대인 서운관을 2곳에 두었는데 세종대왕은 경복궁 안 서운관에 대간의대, 북부 광화방 서운관에 소간의대를 설치하여 관원들로 하여금 하늘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끊임없이 관측하도록 하였다. 임진왜란 때 모든 관측시설이 불타버려 숙종 14년(1688)에 다시 2개를 세웠는데 그 중 하나가 보물 제851호 관천대(창경궁 소재)이며 전시물은 그것을 본 뜬 것이다.

 

관천대 위의 적도의는 세종 때부터 꾸준히 변화 발전해 온 혼천의와 간의를 토대로 조선시대 후기에 남병철이 가장 손쉽고 편리하게 고안한 천문기기이다. 현존하는 유물은 없다. 적도의 관측법은 먼저 사유환을 이용하여 관측하려는 천체의 방향을 정한 다음, 규형의 두 구멍을 통해 찾고자 하는 천체에 맞춘다. 그 후 눈금을 읽어 천체들을 측정한다.

 

 

<규표>

일년의 길이가 정확히 며칠(365일 1/4일)인가와 24절기를 알아내기 위해 사용하던 도구이다. 수직으로 세운 막대 표가 정오에 만드는 해의 그림자 길이를 수평으로 눕힌 눈금이 있는 규로 재서 가장 긴 때를 동지, 가장 짧은 때를 하지로 정했다. 동지와 하지의 가운데에 해당하는 날을 봄에는 춘분, 가을에는 추분이라 하고 이 4절기를 뺀 나머지 20절기를 그 사이에 15일 간격으로 배열한 것이다.

 

하루 중 그림자 길이가 가장 짧은 때는 정오이며 규를 설치한 방향은 정확하게 그 지점의 남북방향이다. 전시된 규표는 세종 19년(1437)에 만든 것을 1/10로 축소하여 복원한 것이다.

 

 

<앙부일구(오목 해시계)>

앙부일구는 세종 16년(1434)에 처음 만들어져 조선말까지 사용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던 해시계의 일종이다. 앙부일구란 시반의 모형이 솥을 받쳐놓은 듯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그림자를 받는 면이 오목하다고 해서 일명 오목 해시계라고도 한다. 영침의 그림자를 이용하여 24절기와 시간을 측정할 수 있다.

 

위의 해시계는 보물 제845호 앙부일구(국립고궁박물관 소장)를 본뜨고 오늘날 시계를 적용하여 제작한 것이다.

 

 

 

<일구대>

일구대는 앙부일구(해시계)를 올려놓는 받침대로 화강암에 아름다운 조각을 해놓았다. 세종대왕은 서울의 혜정교(현재의 교보문고 뒤쪽)와 종묘 앞에 일구대를 만들고 그 위에 글을 모르는 백성을 위해 12가지 동물을 그린 앙부일구를 설치하였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공중시계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며 백성을 사랑하는 세종대왕의 치덕을 알 수 있다.

이 일구대는 왕실에서 사용하던 것으로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앙부일구대를 그대로 본떠 제작한 것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전척 석각천문도로 고구려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태조 4년(1395)에 처음 제작된 이 천문도는 중국의 석각천문도와 달리 1,467개의 별을 그 밝기에 따라 크기를 다르게 새겨넣은 과학적인 천문도이다.

 

 

<측우기>

세종 23년(1441)에 발명된 세계 최초의 강우량을 측정하는 도구이다. 정육면체의 받침돌이 동그란 통을 받치고 있는 간단한 모양인데, 이 통에는 주척이라고 자가 있어 통 안에 고인 빗물을 잴 수 있다.

각 지방에서는 측우기를 이용하여 비가 내리기 시작한 시각과 비가 개인 시각을 기록하고, 비가 그친 후에 그릇에 고인 빗물의 깊이를 약 2mm 단위까지 측정하여 중앙에 보고하였다. 이러한 절차를 통하여 조선 초기인 당시에도 전국적인 강우량을 측정할 수 있었으며 대다수 백성들의 생업인 농업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

 

 

<수표>

세종 23년(1441)에서 세종 24년에 걸쳐 제작된 서울 청계천과 한강에 설치한 하천수위 측정도구이다. 수표의 발명은 측우기와 함께 강우시기가 7~8월에 몰려 있는 우리나라의 자연조건을 통계화하여 홍수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의 결실이었다.

세종 때 처음 만든 수표는 나무 기둥에 척, 치, 푼의 길이를 표시하고 돌기둥 사이에 묶어 하천에 세운 목재였으나 그 후 석재로 개량하였다. 이 수표는 원래 청계천 수표교 옆에 있다가 세종대왕기념관에 옮겨 보존하고 있는 보물 제838호 수표를 본떠 제작한 것이다.

 

 

<자격루>

세종 16년(1434)에 장영실 등이 제작한 물시계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저절로 움직여 시간을 알려주는 장치를 부착했다. 자격루의 작동원리는 맨 위에 있는 물그릇에 물을 넉넉히 부어주면 그 물이 아래의 작은 그릇을 거쳐 가장 아래의 길고 높은 물받이 통에 흘러든다. 물받이 통에 물이 고이면 그 위에 떠 있는 잣대가 점점 올라가 미리 정해진 눈금에 닿으며, 그곳에 장치해 놓은 지렛대 장치를 건드려 그 끝의 쇠구슬을 구멍 속에 굴려 넣어준다. 이 쇠구슬은 다른 쇠구슬을 굴려주고 그것들이 차례로 미리 꾸며놓은 여러 공이를 건드려 종과 징, 북을 울려 시간을 알려준다.

 

이 자격루는 중종 때 개량되어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복잡한 자동시보장치가 없어지고 3개의 파수호와 수수통만 남아 덕수궁에 보존되어 있는 국보 제229호를 본떠 제작한 것이다.

 

 

<풍기대>

풍기대는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측정하여 기상을 예측하기 위하여 깃발(풍기)을 세운 풍향기의 받침이다. 세종시대에는 농업기상학이 발달하여 기상관측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특히 강우량의 측정과 풍속의 관측이 중시되었는데, 풍기대는 우리가 만든 독특한 관측기기의 하나이다. 이 풍향기 석대는 맨 위에 깃대를 꽂을 수 있는 깊이 33cm, 직경 11cm의 구멍이 파여있고 여기에 좁고 긴 깃발이 달린 깃대를 세워 깃발이 날리는 방향과 세기를 측정하였다.

 

이 풍기대는 세종시대의 전통을 이어 받아 18세기에 만든 보물 제846호 풍기대(창경궁 소재)를 본떠 제작한 것이다.

 

 

아래 글은 2016. 8. 5. '열하일기 따라가기' 답사 때 들렀던 중국 북경 古관상대를 포스팅한 것이다. 비교해 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열하일기 따라가기13 - 영평부 고성, 이제고리, 북경 古관상대 (tistory.com)

'경기도. 인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천 재인폭포  (0) 2015.07.29
포천 비둘기낭 폭포  (0) 2015.07.28
여주 영녕릉(英寧陵)  (0) 2015.06.21
화성 궐리사와 오산의 고인돌 유적  (0) 2015.05.02
궁평항 방파제와 피싱 피어(fishing pier)  (0) 2015.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