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흥법사址>
강원도 문화재 자료 제45호
소재지 :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517-2.
영봉산 아랫자락에 있는 흥법사가 언제 처음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다. 적연국사 영준(英俊)이 932년(태조 15)에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것과 이곳에 있었던 진공대사탑비에서 진공대사가 940년(태조 23)에 이곳에서 돌아가셨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미 신라말에 거대한 규모의 사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절이 언제 없어졌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조선시대 전기까지 절과 진공대사탑비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1693년(숙종 19)에 이곳에 도천서원을 건립하였다가 1871년에 폐지하였다.
이 절은 1탑식 절 배치를 하고 있으며, 유물로는 보물 제464호인 흥법사지 3층석탑과 보물 제463호인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의 귀부 및 이수가 있다. 건물 터로는 탑의 동쪽 10m 지점 축대 위에 중문으로 보이는 터가 있고, 탑의 앞인 서쪽에 절의 중심 건물인 금당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샘과 여러 건물 터가 주변에 있고, 절의 북동쪽 산기슭에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 간 진공대사탑을 모셨던 자리가 남아있다.
이 절은 고려 태조가 흥법선원을 만들어 진공대사에게 교화를 맡기자 많은 사람이 모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인근의 정산리 거돈사, 여주 고달사 등과 더불어 고려 전반기의 선종계 절로서 큰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현지 안내문에 의함--
<흥법사지 3층석탑>
보물 제464호.
이 탑은 2중의 기단 위에 3층의 몸체부를 갖춘 고려시대의 일반적인 탑의 모습을 하고 있다. 1층의 기단에는 기둥을 새기지 않은 대신 안상(眼象)을 새기고, 그 안에 땅으로부터 꽃이 솟아나는 모습을 조각하여 고려시대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2층 기단의 면은 여러 장의 넓은 돌로 만들었으며, 모서리기둥과 버팀기둥을 새겨 놓았다.
기단의 갑석(甲石) 위에 탑의 몸돌과 만나는 부분은 3단으로 꺾어 놓았다. 탑의 몸돌은 한 면에 2개의 모서리기둥을 새겨 놓았다. 몸돌의 폭과 탑 몸체의 높이가 기단에 비해 지나치게 줄어 탑의 윗부분이 빈약해 보인다. 탑의 지붕돌은 윗부분이 두꺼우며 물매가 급하고, 추녀 끝을 약간 치켜올려 놓았으며 처마의 받침은 4단으로 꺾어 놓았다. 탑 위의 장식물로는 노반(탑 꼭대기층의 네모난 지붕 모양의 장식) 과 복발(탑 꼭대기의 주발을 엎어놓은 것 같은 장식)이 남아 있다. 높이는 3.2m이다.
--현지 안내문에 의함--
<흥법사지 3층석탑을 사방에서 본 모습>
이 탑을 기준으로 왼쪽(동쪽)에 중문이 있었고 , 오른쪽(서쪽)에 절의 중심인 금당이 있었다고 한다. 탑 이쪽 편에는 탑에 비해 상대적으로 웅장한 보물 제463호 흥법사지 진공대사 탑비의 귀부 및 이수가 있다.
<흥법사지 금당 터로 추정되는 곳>
흥법사지 금당 터로 추정되는, 흥법사지 3층석탑 서쪽이다. 탑을 기준으로 정확한 서쪽은 나무의 오른쪽이다.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 귀부 및 이수>
보물 제463호.
이 유물은 신라말 고승인 진공대사의 탑비이다. 진공대사는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고려 태조의 왕사가 되었고, 940년(태조 23)에 돌아가시자 태조가 직접 글을 지었다고 한다. 글씨는 당 태종의 글씨를 가려뽑아 새긴 것으로 왕희지체이다. 비의 본체는 파손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비의 받침 부분인 귀부는 짧은 목에 비늘을 새긴 용의 모습으로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으며, 머리 위의 네모난 구멍에는 뿔을 따로 조각하여 꽂은 것으로 보인다. 거북의 등에는 인근에 있는 거돈사지 원공국사승묘탑비와 같이 이중의 6각형 속에 만(卍)자와 연꽃무늬를 새겨 놓았으며, 네 발은 받침돌을 힘차게 딛고 있다.
비의 덮개 부분인 이수의 앞면 중앙에는 전서체로 '眞空大師(진공대사)'라고 새겨 놓았으며, 이 글을 중심으로 사방의 구름무늬 속에 상하 좌우로 얽힌 두 마리의 용이 서로 노려보고 있다. 옆면의 용도 하늘을 향해 움직일 듯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어 당시 조각에술의 높은 수준을 알 수 있다.
--현지 안내문에 의함--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 귀부 및 이수 정면>
이 사진이 익숙하면서도 어쩐지 어색해 보이는 이유는 귀부와이수 사이에 석비가 있어야 하는데 없기 때문이다. 비석 본체는 파괴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고 하니 파손상태가 심한 듯 하다.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 귀부 및 이수 측면>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 귀부 및 이수 뒷면>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 귀부 및 이수 측면>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 귀부 및 이수 뒤쪽의 석재와 조각들>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전시장의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와 석관>
보물 제365호.
2012. 7/8. 국립중앙박물관 답사 때 촬영.
통일신라 신덕왕과 고려 태조의 왕사였던 진공대사의 묘탑이다. 옆의 석관으로 미루어 고승을 화장 뿐 아니라 매장도 했음을 알 수 있다. 원주 흥법사터에 이 탑과 짝인 탑비 중 머릿돌과 받침돌이 남아있는데 크기도 엄청나게 크고 보존상태, 작품의 질도 훌륭하다.
진공대사의의 사리를 모신 흥법사지 진공대사탑과 석관은 신라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신라 말기의 퇴화된 작품에 비하여 고려 초기의 패기가 넘치는 우수한 작품으로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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