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거돈사지(居頓寺址)>
사적 제168호.
소재지 :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 141-1.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 소재 신라 말~고려 초의 절터로 창건 연대는 미상이며 고려 초에 대사찰이었다. 약 7,500여 평의 절터 금당지에 전면 6줄, 측면 5줄의 초석이 보존되어 있어 본래 20여 칸의 대법당이 있었던 것을 추정할 수 있다.
금당지 중앙에는 높이 2m의 화강암 불좌대가 있고, 금당지 앞에는 보물 제750호 삼층석탑이 있다. 절터에 있는 민가의 우물가에는 탑 옆에서 옮겨왔다는 배례석이 놓여 있는데 크기는 각 변의 길이가 135, 85cm이며, 전면과 측면에 안상(眼象)을 조각하였고 상부에는 연꽃무늬를 조각하였다.
3층 석탑으로부터 북쪽 약 50m 지점에는 보물 제78호인 원공국사승묘탑비(圓空國師勝妙塔)가 있다. 이 탑비 서쪽 60m 지점에는 원공국사승묘탑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서울의 일본인 집으로 옮겼던 것을 1948년에 경복궁으로 옮겼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전시 중이다. 언제 폐사되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거돈사지와 삼층석탑>
거돈사지 삼층석탑은 금당 터 앞에 있기 때문에 거돈사 중심쯤에 해당한다. 이 정도로 넓은 절터는 흔치 않은데 얼핏 기억나는 바로는 여주 고달사지, 서산 보원사지 정도였다.
크기도 하지만 폐허가 된 절터가 아름답게 각인되어 5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사진과 추억을 들추어 글을 쓸 정도로 20123년 봄 당시의 폐사지(廢寺址) 답사(여주 고달사지, 원주 흥법사지, 원주 법천사지, 원주 거돈사지, 충주 청룡사지, 충주 정토사지)는 기억에 남았다. 그 때 보았던 다양하고 아름다운 승묘탑(부도)과 탑비도 기억에 선명하고 거돈사지는 폐사지 중 가장 아름답게 기억에 남았다. 터가 넓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기자기한 돌로 쌓은 축대와 부도로 올라가는 돌계단 등 오밀조밀한 절의 구조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삼층석탑을 중심으로 뒤에 금당 터가, 그 뒤 북쪽에 원공국사승묘탑이, 오른쪽(동쪽)에 원공국사승묘탑비가 있다.
<거돈사 삼층석탑>
보물 제750호.
소재지 :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
이 탑은 2중 기단 위에 3층탑을 세웠으며, 전형적인 신라 3층석탑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사각의 돌로 된 축대 안에 흙을 쌓고 그 위에 탑을 세운 점이 특이하다. 탑이 땅과 닫는 부분인 지대석(地臺石)은 4개의 크고 긴 돌로 만들었고, 그 위의 기단부는 위, 아래층 모두 모서리기둥 2개와 버팀기둥 1개를 새겨 놓았다.
탑의 몸돌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이 모서리기둥만 새겨 놓았다. 각층 처마의 받침은 5단으로 꺾여 있으며, 탑의 추녀 끝은 약간 치켜들려 있어 날렵하게 느껴진다. 추녀에는 풍경을 달았던 구멍이 보인다.
탑 위의 장식물로는 노반(露盤 - 탑의 꼭대기 층에 있는 네모난 지붕 모양의 장식)과 복발(覆鉢 - 탑 위의 주발을 엎어 놓은 것 같은 장식)이 남아 있으며, 전체적으로 2, 3층 몸돌의 높이가 1층에 비해 1/3로 줄어 드는 등, 폭과 높이가 줄어드는 비율이 적어 매우 안정된 모습을 하고 있다. 통일신라 후기의 탑으로 볼 수 있다.
<거돈사 금당 터와 불좌대>
금당지 중앙에는 높이 2m의 화강암 불좌대가 있지만 상태는 그리 좋지 않다. 금당도 앞의 3층석탑처럼 사각의 돌로 된 축대 안에 흙을 쌓고 그 위에 축조했음을 알 수 있다.
<삼층석탑(금당 터) 뒤쪽의 석축과 계단들>
이 돌 축대와 계단들 때문에 거돈사가 폐사지임에도 불구하고 정감이 있다. 중앙의 흰 점처럼 보이는 것은 원공국사승묘탑 재현품이다.
<거돈사 원공국사승묘탑(圓空國師勝妙塔) 재현품>
보물 제190호.
소재지 : 원주시 부론면 정산 3리(진품은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전시장).
이곳은 고려 초의 고승으로 거돈사에서 입적한 원공국사의 유골을 모셨던 원공국사승묘탑이 있었던 곳이다. 원공국사승묘탑은 부도(浮屠)의 일반형식인 8각형의 받침돌(하대석, 중대석, 상대석)과 몸돌(탑신), 지붕돌(옥개석), 보개로 되어 있으며 높이는 2.68m로 비례가 알맞고 중후한 품격을 가지고 있다. 탑에 새겨진 조각이 화려하고 장엄하여 1938년 보물 제190호로 지정되었다. 이 탑의 주인공인 원공국사는 고려 태조 13년(930)에 출생하여 현종 4년(1013)에 왕사가 되었으며, 현종 9년(1018) 89세의 나이로 입적한 고려 초의 고승이다.
일제강점기에 서울 일본인 집으로 가져갔던 것을 해방 후인 1948년 경복궁으로 옮겨 놓았고, 해방 이후 원위치로 환수되지 못하고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었다. 원주시에서는 2006년 12월 13일부터 2007년 11월 21일까지 국,도,시비 2억원을 들여 재현품을 제작(제작자 : 중요무형문화재 120호 석장 이재순) 설치하였다.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전시장의 거돈사 원공국사승묘탑 진품>
원주 거돈사지에 재현한 것은 복발 위에 연꽃과 다른 한 층의 장식이 더 있다.
<원공국사승묘탑 앞에서 내려다 본 거돈사지>
대 위에 조성된 3층석탑과 역시 대 위의 금당 터가 단연 돋보인다. 건물들의 주춧돌만으로도 거돈사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당간지주는 당시 이곳에서 더 떨어진 민가 부근에 있다고 한다.
<거돈사 원공국사승묘탑비(圓空國師勝妙塔碑)>
보물 제78호.
소재지 :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
절터의 동쪽에 위치한 이 탑비는 원공국사의 생전 행적을 기록한 것으로, 1025년(현종 16)에 건립되었다. 형식적으로는 신라 양식을 보이나, 세부적인 기법과 모습은 고려시대의 양식을 따랐다.
거북모양의 비석 받침대인 귀부(龜趺)는 꽉 다문 입에 용의 머리모양을 하고 있으며 , 양쪽 귀가 비늘같이 되어 있다. 등의 바탕에는 거북등무늬의 육각형에 만(卍)자와 연꽃무늬를 교대로 넣었다. 등 중앙에는 비석을 받치기 위한 비몸 받침을 만들고 안상(眼象 - 귀부 면석에 팔면의 오금곡선을 안쪽으로 파낸 모양)을 새겼다. 지붕인 이수는 구름 위에 두 마리 용이 여의주를 다투고 있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새겨 넣었다.
비석의 글은 최충(崔沖)이 지었고, 글씨는 구양순체로 김거웅(金巨雄)이 썼는데, 뛰어난 글씨체로 평가된다. 비석의 위와 아래에는 인동무늬와 당초무늬를 넣었다. 이 비의 내용에 따르면 원공국사는 8세에 출가하여 955년(광종 6)에 오월국으로 유학한 뒤 그 곳에서 불교를 강의하였으며, 귀국한 후에는 역대 왕들이 그를 숭상하여 대선사, 왕사 등으로 모셨다고 한다.
거돈사지 원공국사승묘탑(보물 제190호)이 절터 뒷편에 있었으나 현재는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원주 거돈사지 느티나무>
수령 1,000년
강원도 원주 보호수
수고 : 20m, 나무둘레 : 720cm.
천년이란 세월을 품고 거돈사의 흥망성쇠를 바라보며 석축을 깔고 앉은 듯, 혹은 먹은 듯한 고목의 위용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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