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열하일기 코스

열하일기 따라가기22 - 승덕 관제묘, 쌍탑산

큰누리 2016. 10. 3. 23:55

<열하일기 따라가기 8일차 일정4>

승덕 가화주점- 열하문묘- 보타종승지묘- 수미복수지묘- 보녕사- 승덕 자건대주루에서 현지식 점심- 승덕 관재묘- 쌍탑산- 3시간 20분 걸려 북경으로 이동- 북경 Holiday Inn Express 앞 아미원에서 현지식- 북경 Holiday Inn Express 투숙.

 

 

<승덕 관제묘(關帝廟)>

승덕 관제묘는 속칭 무묘(武廟)라고도 하며 여러 신으로 신격화한 촉나라 장수 관우상이 봉안되어 있다. 피서산장 정문(여정문) 서쪽 성벽에서 20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중국 유일의 황실 관제묘이다. 청나라 옹정 10년(1732)에 창건하였고, 건륭 25년(1760)에 대규모로 확장했으며, 도광제 때 다시 확장 수리했다. 건륭 43년(1778)에 대규모로 수리 및 확장공사를 진행하면서 원래 주요 전각의 재색 기와를 금색 유리기와로 교체해 격조를 높이고 황실사묘로 삼았다. 

 

건륭제는 '충의복마(忠義伏魔)'라는 친필을 하사했다. 후전에 어비 2기가 남아있다. 황제가 친히 향을 피우고 예를 올리면 대신들이 이어 향을 피우고 예를 올렸다고 하니 현재 남아있는 모습으로는 상상이 안 가지만 상당한 대우를 받은 관제묘이다. 청나라 때에는 매년 5월 13일에 관제묘에서 대규모의 모임을 주관하였으며 행사는 5일 동안 계속되었다고 한다.

 

 

<연암이 본 관제묘>

열하에 도착한 첫날밤 태학관(열하문묘)에서 함께 술잔을 기울일 이가 없음을 한탄하며 밤늦게 술을 마시고 잠이 든 연암은 꼭두새벽에 일어나 통역관에게 이끌려 일행과 함께 황제를 배알하기 전 관제묘에서 대기했다. 눈을 붙이자마자 일어났고 여독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날이 샐 때까지 잠깐 대기한 관제묘에 대해

'통관이 안내하여 큰 묘당에 들어가 쉬도록 했는데 지난 해에 새로 지은 관우의 사당이었다. 겹으로 된 누각과 전각에, 회랑은 굽이굽이 감돌고 사랑방은 첩첩으로 있다. 귀신 같은 솜씨로 조각을 했고 울긋불긋한 단청이 눈을 어지럽힌다. 

중략...   사당 안 곳곳은 북경의 관리들이 와서 머물고 있으며, 이 안에 거처하는 왕자들도 많다'고 했다.

 

내 눈에도 관제묘는 우리나라의 무당집처럼 알록달록하고 각 전각의 관우상들도 무속을 연상시켰다. 전각들도 단층에 날일(日)자 형으로 촘촘히 배치해서 연암이 묘사한 누각도 없었고, 왕자들이 거처할 만한 번듯한 사당으로 보이지 않았다. 북경의 동악묘는 상당히 재미있게 본데 비해 승덕의 관제묘는 황가 사묘, 황제가 직접 예를 올린 관제묘라고 보기에는 생각보다 왜소하고 초라했다. 하지만 관우가 중국인들에게 의리와 신의를 지킨 무장을 넘어 때로는 약사여래나 재물신, 성인으로까지 숭상되는 대단한 존재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관제묘 산문전>

계단 답도에 관우를 연상 시키는 단어 중의 하나인 '義'가 새겨져 있는데 최근에 손을 본 것인지 말끔하다. 산문 안에는 밖에서 보면 금칠을 한 복(福)이, 안에서 보면 재(財)가 써 있다.

 

 

<승덕 관제묘 배치도>

 

 

<승덕 관제묘 산문전 안의 백호신, 청룡신>

도가의 수호신이다.

 

 

 

<승덕 관제묘 숭성전(崇聖殿)과 내부>

관우가 들고 다녔다는 청룡언월도로 보이는 무기가 향로 앞에 세워져 있다. 다른 곳에도 청룡언월도가 있다.

청룡언월도는 무게가 82근(관우가 생존한 시기인 한나라 도량법으로 20kg), 길이 2m이다. 하지만 한나라 때에 언월도는 아직 사용되지 않았다고 하며, 아무리 기골이 장대해도 20kg짜리 칼을 들고 전장을 누비며 휘둘렀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승덕 관제묘 숭문전(崇文殿)>

 

 

<승덕 관제묘 약왕전(藥王殿)>

 

 

<승덕 관제묘 숭녕전(崇寧殿)>

 

 

<승덕 관제묘 충의전(忠義殿)>

 

 

<승덕 관제묘 재신전(財神殿)>

 

 

<승덕 관제묘 후전의 어비 2기>

마모로 글자 판독이 어려웠다.

 

 

<승덕 관제묘 산문전>

앉아있는 남자는 실물 크기의 인형이다. 이 모습이 청나라 당시의 도교사원일 것 같다. 황가의 사묘였기 때문인지 청나라 역대 황제 12명의 초상화가 걸려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승덕 관제묘 산문전의 청나라 역대 황제 초상화>

초대 황제 누르하치(태조)부터 마지막 황제 부의(선통제)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쌍탑산 쌍탑>

연암 일행이 열하에 들어와서 처음 만난 곳이다. 연암은 '기이하고 절묘하게 생겼다. 우뚝 솟아 서로 마주 보고 있으며, 아래 위로 울퉁불퉁하지도 않고, 무엇에 의지하거나 기대지도 않았다. 한 곳에 치우치거나 기울지도 않고, 반듯하게 수직으로 단정하고 엄숙하며, 교묘하고, 화려하고, 웅장하고, 특이하다'고 했다.

 

바위 모양도 워낙 크고 특이하지만 그 높고 험한 정상에 세운 탑이 더 신기했다. 1,300여년 전 요나라 때 세웠다고 하는 형태가 서로 다른 벽돌탑인데 쌍탑사 정상에서 리프트 카를 다시 타고 건너편 정자로 건너 가야 탑이 제대로 보인다. 상부는 허물어지고 2층만 남은 남탑은 원래 그대로이고, 온전한 3층 북탑은 최근에 보수한 것이라고 한다. 남봉은 30m, 북봉은35m이며 쌍탑 아래에 쌍탑을 우러러보는 듯한 거북이 모양의 바위가 있다.

 

 

<리프트 카로 오르며 줌으로 당긴 쌍탑>

 

 

<리프트 카에서 내려 본 쌍탑>

바위가 워낙 크고 높아서 보는 각도에 따라 변화무쌍하다. 

 

 

<서로 다른 방향, 바로 아래에서 본 쌍탑>

 

 

 

 

<쌍탑 아래의 거북이를 닮은 바위>

 

 

<쌍탑 바위를 뚫어 세운 칠보루와 그 주변에서 본 쌍탑>

 

 

 

 

<쌍탑을 제대로 보기 위해 두번째로 탄 리프트 카>

그 동안 탄 리프트 카 중 고도가 가장 높고, 주변 바위들이 잔잔하지만 아름답다. 

 

 

<리프트 카 옆에 있는 걸어서 가는 길>

전망을 위한 정자까지 거리가 짧아 시간이 넉넉하다면 걸을 만한 거리이다. 중간에 와불이 있는 암자도 있었다. 골골한 나는 당연히 리프트 카를 선택했다.

 

 

<리프트 카를 타고 건너와서 본 쌍탑>

이 위치에서 보는 쌍탑이 가장 아름답다. 이번 답사에서 본 가장 독특하고 아름다운 경관이었다. 거리 차를 이용해 탑을 손바닥으로 떠받치는 것도 재미있고, 손가락으로 위에서 탑을 누르는 것도 재미있다. 남들은 제대로 열심히 찍어주었는데 내 것은 핀트가 맞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돌아오는 리프트 카에서 본 쌍탑>

 

 

<쌍탑산 주변의 산>

회적자색을 띤 바위들이 아름답다.

 

 

<승덕에서 북경으로 돌아오는 차창으로 본 풍경들>

쌍탑산을 마지막으로 8월 6일 오후부터 8월 7일 오후까지, 하루 한 나절 동안 발바닥에 땀이 나고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많은 승덕의 코스를 돌았다. 8월 6일 오후에 경추봉과 피서산장을, 8월 7일은 열하문묘와 3개의 외팔묘(보타종승지묘, 수미복수지묘, 보녕사)와 관제묘, 쌍탑산까지... 쌍탑산을 출발한지 3시간 여만에 북경의 홀리데이 인 익스프레스 호텔에 도착하여 앞의 식당에서 현지식 저녁을 먹고 긴 하루 일정을 마쳤다. 
사진은 승덕에서 북경으로 오면서 차창으로 촬영한 풍경들이다. 
맨 아래 사진은 오는 길에 목격한 교통사고 현장 사진이다.

 

 

 

 

 

<8/5에 이어 두번째로 묵은 북경 Holiday Inn Express>

 

 

<북경 Holiday Inn Express 앞의 현지식당 아미원의 메뉴>

사진에는 중국식 전병과 두부요리가 있는데 전혀 기억이 안 난다. 식사 후 룸메이트와 호텔 옆에 있는 대형 편의점에 들러 귀국 후 지인들에게 줄 펑리수 몇 개를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사고, 맥주 1캔을 사서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