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열하일기 코스

열하일기 따라가기20 - 승덕 외팔묘 수미복수지묘

큰누리 2016. 10. 2. 20:27

<열하일기 따라가기 8일차 일정2>

승덕 가화주점- 열하문묘-보타종승지묘- 수미복수지묘- 보녕사-승덕 자건대주루에서 현지식 점심- 승덕 관제묘- 쌍탑산- 3시간 20분 걸려 북경으로 이동- 북경 Holiday Inn Express 앞 아미원에서 현지식- 북경 Holiday Inn Express 투숙.

 

 

<수미복수지묘(須彌福壽之廟)>

건륭 45년(1780)에 지은 수미복수지묘(須彌福壽之廟)는 건륭제의 칠순을 축하하기 위해 열하에 온 판첸라마 6세의 행궁으로 건립되었다. 티베트의 찰십륜포(타시룬포)를 본떠 지었으며 타시(札什)는 부처님이 계신 수미산을 의미하고, 룬포(倫布)는 복수(福壽)를 의미한다. 

 

수미복수지묘는 산의 경사를 이용해 남북으로 건물을 배치했다. 입구(口)자 형의 대홍대 안에 중심 건물인 묘고장엄전이 있다. 묘고장엄전 천정은 금색의 목조 조각으로 장식했다고 하는데 보지는 못했다. 대홍대 위로 솟은 묘고장엄전의 두 층의 지붕은 모두 금박의 동기와(魚鱗瓦)를 씌워 휘황찬란한데 지붕을 장식하는데 황금 10만냥이 들었다고 한다. 지붕을 장식한 8마리의 금룡과 아래 층 지붕 모서리의 금괴수 장식은 만수탑과 더불어 수미복수지묘에서 가장 큰 볼거리이다.

수미복수지묘는 앞서 본 보타종승지묘에 비해 비정을 제외한 부속건물이 전혀 없어서 상대적으로 단출하다. 산문-비정-대홍대-묘고장엄전이 산세를 따라 남북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대홍대 북서쪽에 어린와를 씌운 길상법회전, 만법종원 앞에 금하전 정도가 있다. 가장 북쪽 산자락에는 티베트식 정원인  만법종원이 있고, 그 뒤에 한족 양식으로 만든 팔각칠층의 유리전탑인 만수탑이 있다. 만수탑은 사전정보가 없어서 놓쳤기 때문에 사진에 찍힌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수미복수지묘에서 가장 인상에 남은 것은 주불전인 묘고장엄전의 지붕이었다. 휘황찬란한 금빛도 한 역할을 했겠지만 그보다 더 눈에 들어온 것은 지붕마루와 모서리를 장식한 생동감 넘치는 용과 괴수 장식이었다.

 

대홍대 내부의 구조도 1층은 1루, 방향은 동전, 서전 하는 식이어서 현장에서 건물의 구조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묘고장엄전 1층에는 석가모니불과 사천왕 벽화, 황교(거루파, 겔룩파) 창시자인 총카파(宗喀巴)와 18나한상이 모셔져 있고, 2층에는 석가모니불과 양대 제자가, 3층에는 삼존밀종불상이 모셔져 있다. 1층에 봉안된 석가모니불과 사천왕상 벽화는 보았지만 2층과 3층의 불상은 대홍대로 이동해야 하는 관광객이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열하일기에 나타난 수미복수지묘와 판첸라마와의 만남>

피서산장에서 건륭제에게 하례 표문을 전하는 공식의례에는 정, 부사와 통역관만 참석할 수 있기 때문에 자제군관인 연암은 참석하지 못했다. 만수절 이후 황제의 부름에 대비해 피서산장에서 대기할 때는 연암도 동행해서 피서산장을 두루 구경하고, 출입이 불가능한 공식행사는 문틈이나 담장 너머로 관찰하는 열정을 보이며 열하일기 <산장잡기> 등에 자세히 기록했다.

 

칠순 행사 후 황제는 연행단에게 열하에 하례차 와 있던 판첸라마 6세를 만나도록 명령한다. 유생인 사행단은 불쾌해 하고 분노하며, 거부할 경우 닥칠 외교 분쟁이나 후환을 두려워하지만 연암은 기발한 상상을 한다. 사행단이 판첸라마와의 접견을 거부할 경우 황제가 그것을 빌미로 조선정벌까지는 안하겠지만 사행단을 운남이나 귀주, 잘하면 월남까지 귀양을 보낼 것이다. 그 때 자신도 따라가서 그곳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낭만적이냐고 기뻐하면서 하인에게 미리 작별까지 하고 술을 사오게 한다. 정말 엉뚱하고 기발한 상상이다.

 

하지만 연행단은 황제의 압력에 못이겨 결국 반선 액이덕니(판첸라마 6세)를 만난다. 수미복수지묘에서 고지식한 유생들이 까짓 이교도 우두머리 한번 만나면 뭐가 달라진다고 갑론을박하고 선물조차 처치 곤란해 했는지 현재의 우리로는 답답하고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벌어진다.

 

술을 마시고 태학관에서 쉬고 있던 연암은 연락을 받고 판첸라마의 접견에 동행하여 수미복수지묘, 판첸라마와 일행, 친견 절차에 대해 자세히 기록했다. 연행단은 몽골왕 옆에 주저앉는 어정쩡한 자세로 황제조차 머리를 조아리는 판첸라마에 대한 인사를 슬쩍 넘기는 해프닝을 벌인다. 판첸라마가 선물로 준 비단, 양탄자, 금불상의 처리를 놓고 고심하다 미리 국왕(정조)에게 보고한 후 불상은 묘향산의 사찰에 기증하고, 다른 물건은 은자 90냥을 받고 팔아 마두에게 나누어 주는 것으로 겨우 매듭을 짓는다.  

 

 

<수미복수지묘 산문>

 

 

<수미복수지묘 비정>

 

 

<수미복수지묘 대홍대 서쪽>

 

 

<수미복수지묘 유리패방>

 패방 좌우의 사나운 사자상을 대신한 코끼리상이 무척 귀엽다.

 

 

 <수미복수지묘 대홍대>

 

 

<수미복수지묘 유리패방과 대홍대>

 

 

<수미복수지묘 묘고장엄전 1층으로 가는 통로>

 

 

<수미복수지묘 묘고장엄전 1층의 석가모니불과 좌우의 사천왕상 벽화>

총카파상과 18나한상은 놓쳤다.

 

 

<수미복수지묘 대홍대 2루북전(2층)의 불상>

대홍대의 통로(계단)는 묘고장엄전이나 이곳 모두 북쪽에 있다. 오른쪽 앞 안내석에 앉아있던 관리인이 어찌나 매섭게 바라보던지 구경만... 컴컴해서 현장에서도 잘 보이지 않는다.

 

 

<수미복수지묘 대홍대 2루북전(2층)의 감실>

불전 앞 통로인데 작은 감실에 작은 불상들이 몇개 들어있다. 원래는 모두 들어있었으나 지금은 일부만 남아있다. 

 

 

<수미복수지묘 대홍대 2루북전(2층)에서 본 묘고장엄전과 남쪽>

왼쪽은 묘고장엄전, 오른쪽은 2루서전, 전면은 2루남전이다. 보통 대홍대는 회랑처럼 모든 층이 트여있으나 묘고장엄전은 대홍대 4면에 칸을 만들고 불상을 안치했기 때문에 2, 3층은 밖에 창을 댄 복도식으로 되어 있다.

 

 

<수미복수지묘 대홍대 2루서전의 티베트식 탑>

대홍대 안 회랑 통로를 반을 나누어 바깥쪽은 작은 칸을 만들고 각 칸마다 불상, 불탑 등을 안치했는데 내가 본 것은 2층 서전이었다. 남전도 마저 보고자 했으나 중간에 막혀있었다.

 

 

<수미복수지묘 대홍대 2루서전의 무량수불과 사자상불>

이 불상 외에도 무량광불, 한자 판독이 안 되는 또 다른 불상과 불교 관련 성물들이 더 있었다. 두어 곳에 감시카메라가 매달려 있고 촬영금지 픽토그램이 붙어 있었지만 관람객은 나 하나뿐이고 언제 다시 올 지도 모르니 그냥 찍었다.

  

 

<수미복수지묘 대홍대 2루남전에서 본 모습>

2루남전은 여기까지 들렀다. 왼쪽은 방금 지나오며 불상들을 본 이루서전, 오른쪽은 묘고장엄전이다. 전면은 이루북전이고, 그 너머로 만수탑과 판첸라마 제자들의 숙소로 이용된 금하전이 일부 보인다. 

 

 

<수미복수지묘 대홍대 3층 옥상에서 본 길상법희전(吉祥法喜殿)>

열하에 온 판첸라마 6세의 숙소로 사용된 곳이다. 2층 전각이며 지붕에 금칠을 했다. 

 

 

<수미복수지묘 가장 북쪽에 있는 만수탑과 금하전(金賀殿)>

이 구역은 티베트식 정원이다. 수미복수지묘의 또다른 볼거리인 만수탑은 놓쳤고, 이 사진이 그나마 가장 잘 나온 것이다.

 

 

<수미복수지묘 묘고장엄전 지붕의 황금용 장식>

지붕 마루에 도금이겠지만 상태가 아주 좋은 총 8마리의 황금 용이 장식되어 있다. 지붕에 황금 10만 냥을 쏟아부었다고 하니 (1냥이면 10돈, 10만냥이면 100만돈, 크헠...) 대단하다. 꿈틀거리는 용 장식들도 생동감이 넘친다.

사진은 묘고장엄전 편액이 있는 남쪽면으로 우진각 지붕이고, 모서리의 용 장식이 같아서 방향은 크게 의미가 없다. 그 아래 사진은 클로즈 업 한 것이다.

 


<수미복수지묘 묘고장엄전 지붕의 괴수 장식>

꼭대기 지붕은 8마리의 용으로 장식했지만 아래 층 처마는 머리가 봉황으로 보이는 괴수(목은 뱀의 비늘 같다)가 네 모서리에 장식되어 있다. 이 장식도 용 못지 않게 사실적이고 생동감이 있다.

  

 

<수미복수지묘 묘고장엄전>

동쪽 앞에서 서쪽을 본 것이다. 왼쪽 끝에 수미복수묘 남쪽에 있는 피서산장 북쪽 성벽 일부가 보인다. 

 

 

<수미복수지묘에서 본 동쪽 방향의 경추봉과 안원묘>

경추봉 아래 5시 방향 쯤에 외팔묘 중의 하나인 안원묘가 보인다. 

 

 

<수미복수지묘에서 본 서쪽 방향의 보타종승지묘>

 

 

<수미복수지묘 길상법희전, 만수탑, 묘고장엄전>

길상법희전은 판첸라마 6세가 열하에 왔을 때 숙소로 사용된 전각이다. 묘고장엄전처럼 황금으로 지붕을 장식했다. 만수탑 앞의 건물은 판첸라마 제자들의 숙소로 사용된 금하전이고, 만수탑과 금하전 사이에 티베트식 정원인 만법종원이 있다.

 

 

<수미복수지묘 서쪽 대홍대와 유리패방>

건물이 일자로 배열되어 있기 때문에 입구와 출구는 같다. 유리패방을 통해 동쪽으로 들어갔다가 서쪽으로 나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