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요르단

이스라엘, 요르단 여행6 - 갈릴리호수, 요르단 제라쉬1

큰누리 2017. 2. 20. 01:58

여행 둘째날(1/13) 일정은 이스라엘 갈릴리 티베리아스-베샨 국경 넘어 요르단-제라쉬 아르테미스 레스토랑에서 현지식(피타가 가장 맛있었던 곳)- 제라쉬 하드리안 황제 기념문- 히포드롬(전차경기장)- 제라쉬 남문에서 열주도로를 따라 북문까지- 북쪽 원형극장에서 언덕으로 역행- 아르테미스신전- 성 테오도르 성당 터- 남문 밖 생쥬스 코너에서 해갈- 유적 입구의 수공예품 마을에서 쇼핑- 여호아 야곱 씨름터- 암만 Liwan호텔 투숙.

 

 

제라쉬(Jarash, Gerasa)≫

요르단의 제라쉬(Jarash)는 수도  암만에서 북쪽으로 60km 떨어져 있으며, 해발 600m의 산속에 있는 고대 그리스 로마 유적 도시로 규모가 60㎢가 넘는다. 옛날 이름은 게라사(Gerasa)이며 동양의 폼페이 또는 1,000개의 기둥 도시라고도 불린다. 최초의 도시는 BC 332년 동방원정에 나선 알렉산더 대왕이 세웠다.

6세기 경에는 14개의 교회가 있을 정도로 기독교가 융성했다. 그러나 614년에 페르시아, 635년에는 이슬람군에 의해 점령 당했다가 726년 지진으로 폐허가 되었다. 현재의 모습은 1세기부터 3세기에 걸쳐 건설된 로마제국 전성기의 도시 유적이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AD 129년에 세워진 하드리안 황제 개선문, 히포드롬(전차경기장), 타원형의 중앙광장(Oval Plaza), 제우스신전아르테미스신전화려한 코린트식 대리석 기둥을 양쪽으로 세워놓은 열주도로(The Cardo),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2개의 원형극장, 대목욕탕 터, 교회 터, 시장 터 등이 있다.

 

1806년 독일인 Seetzer에 의해 발견되어 1920년부터 발굴작업이 계속되고 있으며, 유적지 중 25% 정도만 발굴되고 나머지는 아직도 땅속에 묻혀 있다. 현재까지 발굴된 로마의 유적지 중 보존상태가 가장 좋은 으로 알려져 있다. 3,000년 이상의 긴 역사를 간직한 제라쉬는 그리스 시대를 이어 로마시대에도 큰 도시로 성장했으며 고대 메소포타미아 왕들이 사용했던 왕의 대로의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1/12. 이스라엘 갈릴리호수 야경>

여행 첫째 날의 숙소는 갈릴리 티베리아스 지방에 있는 낡은 킹 솔로몬 호텔이었다. 호텔에서 호수를 조망한 것이다.

 

 

<1/13. 이스라엘 갈릴리호수 아침 풍경>

밤에는 몰랐는데 아침에 보니 호텔 숙소 창문으로 갈릴리호수가 제대로 보였다.

 

 

<티베리아스 갈릴리호수와 주변 풍경>

갈릴리호수는 몇 개의 지역에 둘러싸여 있는데 우리가 묵은 곳은 티베리아스 지방이라고 한다. 스테인레스 구조물에 -206m라고 써있다. 이곳이 해수면보다 200m이상 낮다는 느낌은 특별히 없으나 나는 다른 이들과 달리 높은 산에 올랐을 때처럼 귀가 계속 먹먹했다. 가장 낮은 곳은 사해바다(Dead Sea)로 해발로부터 -400m 이하이다.

 

쾌청하지만 약간 쌀쌀한 날씨였는데 호수에서 몇 사람이 수영을 하고 있다. 주변에는 규모가 큰 호텔들이 들어서 있고 제법 큰 배를 개조한 구조물도 있었다.

 

 

 

<베샨 국경초소>

갈릴리에서 버스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이스라엘에서 요르단으로 넘어가는 국경초소이다. 요르단으로 들어갈 때는 이곳을 통과했고, 이스라엘로 나올 때는 알렌비쪽 국경을 통과했다.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짐 검색은 따로 하고, 걸어서 이동한 후 지정된 버스를 바꿔 타는 등 꽤 까다로운 절차를 거쳤다.

 

이스라엘 뿐 아니라 요르단도 테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가 출발하기 얼마 전 코스에 있던 카락성에서 테러가 일어나 캐나다인 관광객과 경찰이 꽤 죽은 사고가 발생했고, 결국 카락성은 코스에서 제외되었다. 모든 국경이 그렇 듯 이곳도 당연히 엄격한 촬영금지 구역이다.

 

 

<요르단의 선지자 엘리야의 고향>

구약성서에서 이름을 들은 바 있는 선지자 엘리아가 양을 치던 곳이라고 현지 가이드에게 들었다. 이곳은 산 중턱이며 중앙의 길이 아니라 사진 밖 우측으로 난 길로 정상을 넘어서면 제라쉬가 있다. 다소 삭막한 이스라엘의 산하를 보다가 파릇파릇한 이곳을 보니 신기했다.

 

기독교 혹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지명은 이스라엘만 연상했는데 요르단에도 이스라엘과 비슷한 수준과 양의 성지 유적이 있었다. 지금은 내전 때문에 들어가기 힘든 시리아에도 꽤 많은 기독교 관련 유적이 있다.

 

산 정상을 넘어서 아르테미스 레스토랑(먹거리에서 게재)에서 점심을 먹었다. 처음 접하는 요르단 식사라 호기심이 발동했는데 이스라엘과 큰 차이가 없었다. 아르테미스 레스토랑에서 처음으로 화덕에 굽는 빵(피타, Pitta)을 보았다.

아르테미스란 이름이 신경이 쓰여 사진 정리를 하며 자세히 보니 레스토랑에서 하드리안 황제 개선문이 일부 보였다. 제라쉬 유적 안에 아르테미스신전이 있어서 레스토랑 이름을 그렇게 붙였을 것이다.

 

 

 

<제라쉬 히포드롬(전차경기장) 남쪽 외관>

제라쉬 유적은 낮은 언덕을 올라 하드리안 황제 개선문으로 입장하는데 외곽에 있는 히포드롬이 언덕에서 가장 먼저 보인다. 밖에서는 타원형의 외관이 아름답지만 히포드롬 안에서는 공간이 워낙 넓어서 그냥 황량한 공간으로 보인다.

 

제라쉬 유적 관람을 할 때 현장에서 먼저 본 후 언덕에 올라 멀리 조망하듯 보는 방법을 병행했는데, 두 모습이 너무 달라 유적을 이해하는데 애를 먹었다. 촬영한 모든 사진과 안내도를 수 없이 짜맞추고 대조하며 총체적인 도시 구조와 건물 위치를 겨우 파악했다.

 

 

<제라쉬 입구의 하드리안 황제 개선문>

높이 13m이며, AD 129년에 예루살렘을 정복한 하드리안 황제를 기념하여 세운 것이다. 규모가 상당히 커서 거리를 둬야 전체 모습이 들어온다. 개선문 안쪽에는 자리를  잡지 못한 기둥머리, 건물 파편들이 쌓여 있다.

 

 

<하드리안 황제 개선문을 안에서 본 모습>

왼쪽은 거의 박살난 수준의 마리아노스 교회 터이고, 오른쪽은 히포드롬(전차경기장)이다.

 

 

<제라쉬 히포드롬(전차경기장) 외관>

건물 왼쪽에 밖에서 아름답게 보인 아치형 문들이 있고 오른쪽은 관람석이다.

 

 

<제라쉬 히포드롬(전차경기장) 출입통로>

천장의 아치의 켜를 따라 6층으로 된 관람석이 있다.

 

 

 

<제라쉬 히포드롬(전차경기장)>

이스라엘 가이샤라 해변의 히포드롬과 긴 타원형의 기본구조는 비슷한데 그보다 규모가 약간 작다(가이샤라는 2만명 정도 수용 가능). 관람석은 제라쉬 쪽 상태가 훨씬 양호하다.

15,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하며 현재 기초 구조와 관람석 일부가 남아있다. 성수기에는 하루에 두 번씩 로마 전차경주와 검투경기를 보여준다는데 우리가 들렀을 때는 우리 팀을 제외하고는 관람객이 거의 없어서 썰렁했다.  

 

 

 

<제라쉬 남문 진입로>

이곳의 위치를 이해하는데 무척 힘들었다. 유적 출입문(하드리안 황제 개선문)에서 오른쪽 위로 있는 길로, 일직선으로 제라쉬 남문과 이어진다. 그런데 왼쪽의 넓디 넓은 히포드롬(전차경기장)을 둘러보고 그대로 끝에 난 통로를 지나 'ㄹ'자 모양으로 한 바퀴 둘러 이곳으로 진입했으니 혼선이 생긴 것이다. 이 사소한 출발 때문에 유적 관람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도 위치 파악이 헛갈렸고, 사진 정리하면서 제대로 파악했다.

 

왼쪽 앞의 건물 터는 히포드롬과 이어지는 주거지나 관청 터로 보이고, 그 뒤(원경)는 공동묘지였다고 한다. 유적 안의 비잔틴 교회 터 옆에도 큰 공동묘지 터가 있는데 이곳에도 공동묘지 터가 있다.

 

 

<제라쉬 남문>

제라쉬 도시 유적 안에는 십자형의 2개의 대로가 있다. 동서로 뚫린 도로를 Decumanus라고 하고, 남북으로 뚫린 도로를 Cardo라고 한다. 우리는 남북으로 뚫린 Cardo(열주도로)를 남에서 북으로 관통하여 북문 앞에서 방향을 틀어 북쪽 원형극장을 본 후, 언덕으로 올라 북에서 남으로 되돌아 나왔다.

 

동서도로인 Decumanus는 유적 중앙쯤에 있는 기념문 터에서 남북도로(Cardo, 열주도로)와 십자로 만난다. 언덕에서 보니 거의 발굴이 끝난 남북도로(열주도로)와 달리 동서도로는, 아래는 현재의 시가지 앞에서 잘렸고 위는 언덕에 묻혀 있었다. 사진의 문 왼쪽은 제우스신전이고, 중앙의 문 뒤로 멀리 타원형의 중앙광장(Oval Plaza)의 기둥들이 보인다.

 

 

<제라쉬 제우스신전 테라스와 동쪽 시장>

남문을 들어서면 제우스신전 테라스가 보이는데 규모가 커서 '이건 도대체 뭐지?' 라는 생각이 든다. 왼쪽은 제우스신전 테라스이고, 오른쪽은 동시장 터이다.

제우스신전 테라스와 병영 터를 지나야 타원형의 중앙광장(Oval Plaza)이 나타난다. 거기부터 우리가 사진 등을 통해 본 열주도로와 제라쉬의 유적들이 있다. 

 

 

<제라쉬 제우스신전, 병영 터

 

 

 

<제라쉬 중앙광장(대광장, Oval Plaza)>

뒤에 보이는 건물은 제우스신전이다. 남문을 지나 제우스신전 테라스, 시장 터 사이를 통과하면 타원형의 거대한 중앙광장이 나온다. 56개의 돌기둥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열주도로의 화려한 코린트 양식 기둥과 달리 기둥머리가 단정한 이오니아 양식이다.

파노라마 윗 사진은 앞으로 진행할 남북도로(열주도로)쪽으로 본 것, 아래 사진은 남북도로(열주도로)쪽에서 뒤돌아 본 것.

 

 

 

 

<제라쉬 남북도로(Cardo, 열주도로)>

남북도로(Cardo)는 총 길이가 800m에 이르는 제라쉬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중심도로이다. 도로 양쪽으로 늘어선 거대한 기둥 때문에 열주(列柱)도로라고도 한다. 거대한 대리석 기둥의 머리는 화려한 코린트 양식으로 조각했고, 도로 바닥은 돌을 정교하게 끼워 맞춰 깔았다.

 

 

<제라쉬 식품시장 터(The Macellum)>

중앙에 4개의 꽃잎을 가진 꽃 모양의 아담한 광장과 바깥쪽에서 'ㄴ'자 형으로 그를 둘러싼 작은 칸들이 있는 구조이다. 원형으로 된 시장 중앙에 육각형의 특이한 구조물이 있었는데 용도가 궁금했다. 분수 모양의 수로 같기도 하고... 평범하지만 특이라고 오밀조밀한 건물 배치가 아름다워서 인상에 남았다.

 

이곳에 있는 바닥의 기둥을 현지 가이드가 두드리자 맑은 소리가 났다. 속이 비었다는 의미이다.

 

 

 

<제라쉬 기념문 터>

지금은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지만 안내문을 보니 둥근 광장에 4개의 문이 있었다. 제라쉬 도시 안에서 가장 중심부였던 곳으로 보인다. 이곳을 중심으로 동서도로(Decumanus)와 남북도로(Cardo, 열주도로)가 갈린다.

 

 

<제라쉬 대목욕탕 터>

제라쉬 기념문 터에서 동서로 이어지는 지점에 있다. 로마인들은 목욕을 상당히 중시했던 것 같다. 제라쉬 유적만 해도 대목욕탕, 북문 부근의 서쪽 목욕탕, 아르테미스신전 맞은편의 플라쿠스 목욕탕이 있었는데 모두 규모가 상당히 컸다.

 

 

<제라쉬 동서도로(Decumanus)>

아래 사진은 동쪽으로 현재 제라쉬 시가지쪽으로 연결된다. 서쪽은 언덕에서 끊어져 있다. 중심도로인 남북도로(Cardo, 열주도로)보다 도로 폭이 약간 좁다.

 

 

<제라쉬 남북도로(Cardo, 열주도로)>

 

 

<제라쉬 대성당(Cathedral) 터>

성시에는 14개가 있었다는 성당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성당답게 규모가 가장 크다.

 

 

 

 

<제라쉬 님페온>

님페온은 분수를 뜻한다. 요르단 국왕이 (관광 홍보를 의식하고) 다른 수뇌부와 사진 촬영을 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님페온이란 단어가 붙은 곳은 항상 아기자기하다.

 

 

<제라쉬 아르테미스신전 입구>

제라쉬 유적 중 언덕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아르테미스신전 입구가 평지(!)에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을 못했다. 이것이 내가 답사기를 쓸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대충 보고 넘어가면 그만이지만 그게 싫은 나는 조금 더 파고 드는데, 그 '조금 더'에서 아주 많은 것을 발견하고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