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요르단

이스라엘, 요르단 여행8 - 세계 7대 불가사의 페트라

큰누리 2017. 2. 25. 15:26

이스라엘 요르단 여행 3일째인 1/14의 일정은...

와디 무집(요르단의 그랜드 캐니언)- 버스가 좁은 마을길에서 전화선에 걸린 사고- 케트라네 휴게소에서 차량 수리 및 쇼핑- 와디 무사 입구의 무리바(다툼의 샘)- 와디 무사의 페트라 관광.

 

 

*세계 7대 불가사의  : 내가 이전에 알았던 세계 7대 불가사의와는 좀 다르다. 최근에 여론조사 형식으로 선정한 것이기 때문에 브라질의 예수상은 인구가 많은 브라질 사람들 덕분에 덤으로 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는다고 한다.

-- 이집트의 피라미드, 요르단의 페트라, 이탈리아의 콜로세움, 인도의 타지마할, 중국의 만리장성, 브라질의 예수상, 페루의 마추픽추 --   

 

이번 여행에서 재미있는 법칙(!)을 발견했다. 중장기 여행일 경우 아침마다 기상 시간이 일정치 않아 헛갈리곤 하는데 외우기 쉬운 방법을 찾은 것이다. 이를 테면 6-7-8은 6시 기상, 7시 식사, 8시 출발이란 뜻이다.

 

새벽 5시에 아잔(이슬람교의 새벽기도 시간을 알리는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깼다. 다른 호텔에서는 몰랐는데 암만 리완호텔은 시내에 있어서인지 아침에 잠을 제대로 자기 힘들 정도로 시끄러웠다.

치즈, 요거트, 야채 등으로 가볍게 아침을 먹는데 회갈색 전통복장의 남편과 검은 부르카(니캅)를 쓴 부인이 앞에 앉았다. 눈만 빼꼼하게 내놓고 모든 신체를 시커먼 부르카(니캅)로 가린 부인이 어떻게 음식을 먹는지 궁금했다. 조심스럽게 관찰한 결과 빵을 뜯어 치즈를 곁들인 후 입 부분 오른쪽(천이 분리되어 겹쳐 있다)을 살짝 들춘 후 음식을 입에 넣고 바로 내렸다.

 

 

<피타(Pitta)와 팔라펠>

Pitta는 화덕에 둥글납작하게 펴서 구운 밀가루 빵을 말한다. 가운데를 잘라서 빈 속에 케밥, 양념한 쇠고기, 각종 야채 등을 넣어 샌드위치처럼 먹거나 후무스 등을 소스처럼 곁들여 먹는다. 그냥 먹어도 담백하고 구수하다.

후무는 중동지역에서 많이 먹는 소스로 삶은 이집트 콩(병아리콩), 올리브유, 마늘, 레몬을 넣어 만든다.

팔라펠은 콩, 곡식, 채소를 으깨 향신료를 넣고 반죽한 뒤 작고 동그랗게 튀겨낸 중동지역의 주식 겸 간식이다. 피타는 입에 잘 맞고 구수한데 팔라펠은 좀 짜고, 콩가루나 튀김을 좋아하지 않는 내 입엔 그저 그랬다.

 

요르단 현지 가이드는 TV 드라마 <미생>에 강한 애착을 가졌는지 이 음식이 드라마에 나왔다며 본인 돈으로 우리 모두에게 사서 이렇게 나눠주었다. 그 뿐 아니라 요르단 재래시장을 돌 때 따로 몇 곳을 보여주며 '<미생>의 어떤 장면에 나온 건물이다, 촬영 당시 현지인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다' 등을 힘주어 말했다.

 

 

<요르단의 그랜드 캐니언 와디 무집(Wadi Mujib)>

아르논 지방의 와디 무집(Wadi Mujib)은 해발 450m 높이의 협곡으로 원래는 물이 흘렀으나 현재는 말라붙은 황무지이다. 카락성이 총기사건으로 코스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대신 들른 곳으로 추측된다. 사진 분량 때문에 1장만 게재했지만 처음 접한 황야라서 상당히 인상 깊었다. 와디 무집은 바위산으로 된 페트라와도 다르고, 황토 사막인 와디 럼과도 다른 훨씬 삭막해 보이는 곳이었다.

말라붙은 황토 협곡에는 마을이 들어섰고 멀리 댐이 보인다. 최근에 개발 중인지 황토 비탈에 아스팔트 도로들이 만들어지고 지금도 한창 공사 중이었다. 전망대 주변에 쌓아놓은 돌담이 상당히 예뻐서 일행들이 이곳에서 사진촬영을 많이 했다.

 

 

<와디 무집을 구경하고 나오다 발생한 사고>

와디 무집을 구경하고 현지 가이드가 쏜 <미생>에 나온 피타와 팔라펠을 나눠 먹는데 갑자기 '쿵' 소리가 나고 우리의 버스가 섰다. 좁은 시골길에 위로 늘어져 있던 전화선이 덩치가 큰 우리의 버스에 걸렸고, 그것을 모른 기사가 계속 운행하자 전봇대가 넘어지며 버스를 덮친 것이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지게차를 불러 전봇대를 세우고 날라간 버스 윗창을 수리하느라 1시간 이상이 걸렸다. 버스 운행에 문제가 생겨 여행에 차질이 생길까봐 모두 걱정은 했지만 그 와중에도 빈 시간을 즐겼다. 나는 마을을 둘러보며 석류, 냉이와 민들레, 가지 등의 식물을 촬영했고, 다른 이들은 구경 나온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다.

 

주변에서 가장 큰 케트라네휴게소에 들러 버스 천장의 문을 수리하는 동안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쇼핑을 했다. 일행들이 대체로 쇼핑을 즐기는 편이었는데 주변사람들에게 두루 나눠주기 위한 것보다 여행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거나 필요한 것을 구입하는 식이었다.

 

 

<와디 무사의 다툼의 샘(므리바)>

와디 무사는 페트라 외곽에 있는 도시로 요르단 관광의 꽃 페트라에 들르는 관광객들이 숙식을 해결하는 곳이다. 왕의 대로가 페트라를 통과하는데 이곳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출애굽)한 유대인들은 긴 방랑에 싫증을 내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당시의 왕이 지름길인 페트라 통과를 거부했다. 

므리바는 가나안으로 향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가 물을 공급하게 한 곳으로 모세와 여호와가 다툰(!) 곳이다. 백성들의 끊임 없는 불평과 여호와가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는 것에 분노한 모세는 이곳에서 백성을 모은 후 바위를 향해 물을 나오게 하라고 한 여호와의 명령을 어기고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내리치며 화를 내는 불충을 저질렀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반도에서 여호와에게 반역한 죄와 므리바에서의 모세의 불충 때문에 모세는 가나안에 입성을 못하고 느보산에서 죽었고, 모세를 따라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 1세대 역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아라바 광야에서 38년을 떠돌다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와디 무사>

버스에서 내려 조망한 페트라이다. 당시에는 밀가루를 반죽해서 짜놓은 것 같은 매끈한 중앙 부분을 페트라로 착각했다. 중앙도 넓은 의미로는 포함이 되지만 우리가 들른 페트라 시크(Siq, 협곡)와 그 너머 코스는 뒤의 바위산 속에 있다.

입구에 호텔 등의 숙소와 음식점들이 있다. 우리도 이곳에 있는 알콴타라 레스토랑(Alquantarah Restaurant)에서 케밥, 닭고기와 야채를 함께 볶은 즉석요리로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가장 맛있는 현지식이었다. 

 

 

 

<페트라 매표소>

페트라 입장료가 한화로 무려 90,000원이다!

자유여행을 한 블로거 들의 글을 보니 통합권을 끊으면 훨씬 싸고 날짜를 이어 볼 수도 있는 것 같았다. 중간에 뜻하지 않은 차량 사고로 날이 저물어 우리는 3시간 정도 밖에 볼 수 없었지만 페트라는 한나절이나 하루 정도만 보기엔 너무 아깝다! 해가 넘어가고 주변이 어둑해져서 우리는 바로 곁에 있는 실크 무덤도 포기하고 우른 무덤(항아리 무덤)까지 밖에 볼 수 없었다.

 

 

<페트라 입구 Djinn block(진 블럭)>

사진상으로 다소 칙칙해 보이지만 밝은 베이지색이나 황토색의 바위들이다. 붉은 페트라는 두 말이 필요 없는 명소지만 입구도 상당한 볼거리들이 있다. 구멍이 뚫린 곳은 대부분 무덤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입구에서 눈여겨 볼만 한 것은 정령의 집인 육면체의 Djinn block(진 블럭)과 기둥을 몇 개 늘어 붙인 것 같은 오벨리스크 무덤 등이다. 첫번째 사진 오른쪽과 두 번째 사진은 Djinn block(진 블럭)이다. 페트라에서 가장 유명한 알 카즈네(보물창고)를 비롯하여 이름이 붙은 명소는 신전이거나 무덤인 경우가 많다.

 

 

 

<페트라 입구의 오벨리스크 무덤, 트리클리니움 무덤>

윗 부분(뒤쪽)은 오벨리스크 무덤이고, 아래 부분(앞쪽)은 로마식 3면 테이블 같다 하여 트리클리니움 무덤이라고 한다. 

 

 

<페트라 입구의 버섯을 닮은 조형물>

이곳도 무덤일 가능성이 높다.

 

 

<페트라(Petra)>

페트라(Petra)는 요르단 남서부 내륙 사막지역의 해발 950m 고원 바위산에 있는 고대 도시로 'Petra'는 그리스어로 바위라는 뜻이다. 이곳은 아라비아의 대상들이 홍해와 지중해로 갈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왕의 대로(king's way)'의 중간 지점이었다. 지리적 잇점을 살려 향료무역으로 이 일대를 장악했던 유목민인 나바테아인들이 바위 틈에 도시를 건설했다. 나바테아인들은 페트라에 신과 사자를 위한 화려한 석조 건축물을 많이 남겼다.

 

좁고 깊은 골짜기를 따라 들어가면 극장과 목욕탕, 상수도 시설을 갖춘 고대 도시가 숨어있다. 페트라가 대상무역의 중심지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빗물을 받아 저장하고 도시 각지로 공급할 수 있는 급수 시스템을 갖추었기 때문이었다. 

번성하던 나바테안 문명은 AD 106년 이곳을 점령한 로마가 교역로를 다른 곳으로 돌리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6세기 경 발생한 지진에 의해 폐허가 되었다가 1812년 8월 27세의 스위스 청년 루트비히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발견되었다.

 

 

<페트라 협곡(Petra Siq) 입구의 홍수 조절 수로>

수로는 황량한 사막에서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이 살고 역사를 이룰 수 있었던 원천이다. 페트라 시크(협곡) 안에도 바위 아래 부분을 홈처럼 깎은 수로가 있지만 외부에는 가장 중요한 물 탱크가 따로 있다. 이곳은 단순한 물길이 아니라 저수지 형태의 대형 물 탱크였다고 한다.

이스라엘 요르단 여행에서 감탄했던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치수(治水)였는데 빗물을 체계적으로 모아 저장한 헤롯이 만든 요새들은 가히 경이로웠다.

 

 

<페트라 협곡(Petra Siq)과 수로>

온통 붉은 바위들이 정말 장관이다! 왼쪽 아래 부분은 페트라 전역으로 물을 공급하던 수로이다. 입구쪽에는 로마 점령기에 만든 아치형의 개선문 흔적도 남아 있다. 

 

 

<척박한 페트라 협곡(Petra Siq)에서 자라는 나무>

 

 

<구불구불하고 빛이 겨우 들어오는 페트라 협곡(Petra Siq)>

그나마 잘 나온 사진을 게재해서 그렇지 도로 양쪽의 높은 바위로 인해 사진이 제대로 찍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페트라 협곡(Petra Siq) 코끼리 바위 주변>

 

 

<페트라 협곡(Petra Siq)의 사비노스 알렉센도로스 스테이션(Sabinos Alexendoros Station)>

2세기에 사비노스란 사람이 페트라를 방문하고 남긴 흔적이다. 빨간 느낌표 아래의 조각 하단에 사비노스 알렉산도로스란 이름이 새겨져 있다.

 

 

<페트라 협곡(Petra Siq)의 낙타 대상 휴식처, 포장도로>

이 부근은 양쪽에 수로가 남아있다. 바닥에 돌을 다듬어 깐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에 '포장도로'라는 명칭도 따로 있었다.

 

 

<페트라 협곡(Petra Siq)의 알 카즈네(Al-Khazna, The Treasury, 보물창고)>

엄청난 높이에 붉은 바위 틈을 따라 난 좁은 통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 갑자기, 정말 갑자기 화사한 복숭아 빛 건물이 나타난다. 도저히 바위를 깎아 만든 건물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화사한 색깔과 완벽하리 만큼 매끈한 외관은 환상적이다! 앞면의 조각들은 마모되어 형태를 겨우 추측할 수 있을 정도지만 기둥과 건물의 기본적인 구조는 방금 깎은 것처럼 매끈하고 단아하다.

 

이집트의 파라오가 이곳에 보물을 숨겨 놓았다는 전설이 사막 유목민인 베두인들에게 전해진 데서 보물창고(Al-Khazneh)라는 이름이 붙었다. 높이 43m, 폭 약 10m, 2층의 신전 형태의 건축물로 기둥과 그 사이의 조각 장식, 내부의 방 모두 사암 절벽을 파고 다듬어서  만든 것이다.

1층은 6개의 코린트 양식의 기둥이 있고 기둥 뒤쪽 좌우에는 심하게 마모되고 파손된 기마상이 있다. 2층 중앙의 여성은 풍요의 여신이며, 돌출된 면 좌우에는 마모가 심한 조각이, 뒤쪽 좌우에는 날개 달린 여신상 부조가 있다. 건물이나 기둥, 무늬들이 비교적 온전한데 비해 인물 조각상들은 파손이나 마모가 심하다.  

 

 

 

 

<돌아나올 때 본 알 카즈네(보물창고)>

주변이 어둑할 때 보아도 화려함 대신 차분함이 더해져 여전히 색깔이 곱다.

 

 

<페트라 협곡(Petra Siq) 알 카즈네(보물창고)의 정면 윗 부분>

건물 정면 중앙의 2층 꼭대기는 아래에서는 구분이 어렵지만 항아리 모양이라고 한다. 그 안에 페트라를 건설한 나바테아인들이 보물을 숨겨놓았다는 전설 때문에 보물창고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실제로는 나바테아 왕 아레타스 4세(BC9~AD40)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알 카즈네(보물창고)의 옆 모습>

 

 

알 카즈네(보물창고)를 지나면 다시 도로 양쪽으로 협곡이 짧게 이어지다 사방이 툭 트인다. 이 공간이 페트라 파사드 거리라고 안내문에 적혀 있었다. 파사드 거리에서 사방이 툭 트이는 양쪽으로 다듬다 만 것 같기도 하고, 혹은 마모된 듯한 높은 건물 모양의 조형물들이 바위산을 따라 늘어서 있다.

안내문에 따르자면 진행 방향을 바라보고 왼쪽은 앗시리아식 나바테안 무덤-시장 터(나바테안 거리)-로마식 원형극장이 이어진다. 맞은편에도 비슷한 조형물들이 있는데 우리 눈에는 비슷해 보이지만 왕가의 무덤이란 이름이 붙어 있고, 우나이슈 무덤, 우른 무덤이 이어진다. 오른쪽으로 실크무덤 등이 계속 이어지지만 날이 어두워져서 우리는 우른 무덤(항아리 무덤)에서 발길을 돌렸다.

 

 

<페트라 앗시리아식 나바테안 무덤>

 

 

<앗시리아식 나바테안 무덤 맞은편의 왕가의 무덤>

이름은 다르지만 윗 부분에 도드라진 2개의 가로 줄이 있고 표면이 매끄러운 점 등이 내 눈에는 비슷해 보였다. 굳이 차이점을 찾자면 출입구가 조금 더 정교한 느낌이 있다고 할까? 이름은 달라도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무덤으로 보인다.

 

 

<시장 터(나바테안 거리)와 낙타를 타는 소녀들>

우리는 이곳에서 조금 더 진행하다 발길을 돌렸지만 조사한 바에 의하면 페트라에는 두어 곳쯤 넓고 번화한(!) 곳이 있었다. 내 판단에 의하면 이곳이 그 중의 하나이며 주로 페트라를 건설한 왕족들과 관련된 무덤이 모여 있다. 넓게 따지면 파사드 거리 앞의 알 카즈네(보물창고)부터 우른무덤(항아리 무덤), 실크무덤 등이다.

뒤로 보이는 동굴 모양의 조형물도 모두 무덤들로 페트라의 우리가 본 구역에서 가장 많이 무덤이 밀집되어 있다. 오른쪽 끝에 살짝 보이는 로마식 원형극장은 무덤들 사이의 공간을 깎아 만든 것이다.

 

이곳을 지나면 중간에 넓은 평원이 있고 이후부터는 색스투스 무덤, 님페온, 열주거리, 비잔틴교회 등 로마 유적들이 이어진다. 평원이 끝나는 열주거리 끝에는 이곳 나바테안 거리(시장 터) 못지 않은 번화한 곳이 있음이 사진으로 확인 되었다. 내가 현지에서 자료로 파악했지만 정말 보고 싶었던 알 데이르(수도원)는 매표소 반대편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 일정으로는 들를 수 없었다. 그걸 보았더라면 닮은 듯 다른 알 카즈네와 비교도 되고 눈이 곱배기로 호강했을 것이다. 

 

 

<시장 터(나바테안 거리, 左)와 우나이슈 무덤(右)>

 

 

<해가 진 뒤의 시장 터(나바테안 거리)와 무덤군>

윗 사진과 비슷한 위치에서 나오는 길에 촬영한 것이다.

 

 

<우나이슈 무덤(Tomb of Unayshu)>

나바테안 거리(시장 터) 맞은편에 있다. 바로 옆에 있는 왕가의 무덤, 맞은편의 앗시리아 나바테안 무덤과 비슷하지만 앞면이 거울처럼 매끈하고 특이하게 출입구 위에 합(合)자형의 장식이 있다. 이 무덤은 라벨2세의 왕비를 수행했던 대신의 무덤이라고 하니 드물게 주인의 이름이 밝혀진 곳이다.

 

 

<로마식 원형극장>

AD 25년부터 나바테이아인들이 바위산을 반원형으로 움푹하게 깎아 만들었고 106년 이곳을 점령한 로마인들이 확장했다고 한다. 40여개의 계단으로 되어 있으며 6,0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다고... 무덤 주변의 바위산을 깎아 만들었기 때문에 주변의 구멍이 뚫린 곳들은 무덤이다.

 

 

<로마식 원형극장 맞은편의 환상적인 베이컨 무늬 동굴들>

이곳에 대한 설명을 따로 본 것이 없는데 페트라에서 내 기억에 가장 강하게 남은 곳 중의 하나이다. (내가 본 것 중) 건물은 알 카즈네(Al-Khazna), 우른 무덤(Urn Tomb) 등이 있다면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한 건축으로는 이 동굴이 최고였다. 최초의 용도는 무덤이었겠지만 빛이 잘 들고 깨끗하게 관리되는 것으로 보아 주거지로 사용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나는 이곳을 베이컨 동굴이라고 임의로 이름을 붙였다. 석회암 동굴이나 해식동굴은 그 동안 많이 보았지만 바위의 아름다운 켜(색상)가 그대로 살아있는 동굴은 처음이었다. 이 동굴부터 옆으로 이어진 우른무덤 사이에 있는 대부분의 바위들의 마아블링, 혹은 베이컨처럼 층을 이룬 색상은 그 자체가 예술이었다.

 

 

 

 

<우리의 페트라 종착지 우른 무덤(Urn Tomb)군>

웅장한 신전 형태의 무덤이다. 알 카즈네에 비하면 조형성이 떨어지고 완성도도 떨어지지만 내부에 들어갈 수 있어서 좋았다. 납골당 무덤, 항아리 무덤으로도 불리는데 정상에서 유골단지가 발견되어 붙은 이름이라고도 하고 중앙의 문이 항아리처럼 생겼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로마 점령기에는 법정으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정상의 건물(무덤)도 볼만 하지만 아래 부분에 아치형으로 무리를 이루어 늘어선 무덤들도 볼만 하다.

 

 

 

<우른 무덤(Urn Tomb) 정면>

 

 

 

<우른 무덤(Urn Tomb) 측면>

 

 

<우른 무덤(Urn Tomb) 안에서 출입구를 본 모습>
항아리 모양이다.

 

 

<우른 무덤(Urn Tomb)에서의 조망>

우리에게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중앙으로 난 길을 따라 열주거리, 님페온, 비잔틴교회 등 로마 유적들을 보았을 것이다. 사진 오른쪽 밖에도 우른 무덤 못지 않은 무덤들이 줄지어 있다. 나바테아인들은 어지간한 바위는 모두 구멍을 뚫어 신전이나 무덤을 만든 것 같다. 덩어리가 큰 바위산에는 정말 많은 무덤들이 밀집되어 있다.

해가 저물자 우리 일행만 남았다. 초라한 기념품 몇 가지를 늘어놓고 팔던 현지인들은 팔던 물건을 덮지도 않고 그대로 놓아둔 채 모두 돌아가고 없었다.

 

 

<마지막으로 돌아본 우른 무덤>

 

 

<페트라 입구에서 본 매표소쪽 야경>

거친 숨을  내쉬며 기진맥진한 몸으로 도착... 버스를 타고 20여분만에 페트라 외곽에 있는 파노라마 호텔에 도착했다. 언덕에 지었기 때문에 층 구별이 무척 난해했는데, 우리가 버스에서 내린 곳은 1층이 아니라 호텔 11층이었다. (당시로서는) 전망이 얼마나 좋을지 몰랐지만 온수가 제대로 안 나오고 물줄기가 약해 샤워할 때 무척 애를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