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요르단

이스라엘, 요르단 여행10 - 요르단 유일의 항구 아카바

큰누리 2017. 3. 4. 22:21

이스라엘 요르단 여행 4일째인 1/15의 일정은...

페트라 파노라마 호텔- 킹스 웨이(왕의 대로)를 지나- 와디 럼 지프 투어- 카잘리 캐니언- 모래언덕 체험- 와디 럼에서 점심- 요르단 최남단의 유일한 항구 아카바- 아카바 글라스 보트 투어- 아카바 민속박물관-아카바城- 세렛 휴게소- 암만 칸자만 레스토랑에서 고기 꼬치구이- 암만 Liwan 호텔 투숙.

 

<아카바(Aqaba)>

아카바((Aqaba)는 '꼬리'란 뜻으로 와디 럼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홍해와 접한 휴양도시이다. 원래 사우디아라비아 땅이었으나 1965년 내륙국인 요르단이 사막의 일부와 12km의 홍해의 해안선과 맞바꾸면서 요르단 최남단에 위치한 유일한 항구가 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맞바꾼 사막에서 엄청난 양의 석유가 나왔지만 현재 요르단은 중동국가 중 드물게 석유가 전혀 나지 않는다. 대신 해안을 확보함으로써 홍해를 통해 인도양으로 나갈 수 있는 해로를 확보했다.

아카바만은 연중 섭씨 20도 내외로 수온이 따뜻하고 바다에 산호가 잘 발달해 일년 내내 스쿠버다이빙, 윈드 서핑, 수상 스키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아카바 맞은편에는 홍해를 사이에 두고 이스라엘의 항구 에일랏이 마주하고 있다. 항구이면서도 바다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는다.

 

 

<아카바 항의 다양한 유람선과 팔레스타인 깃발>

여행 내내 요르단 국기와 팔레스타인 기가 헛갈렸다. 우리 가이드는 빨간 삼각형 안에 하얀 별이 있으면 팔레스타인 기, 없으면 요르단 국기라 했다. 아카바항의 어마어마한 국기에는 하얀 별이 없고, 이 배 국기에는 별이 있다. 이스라엘 웨스트 뱅크(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은 거주는 이스라엘에서 하지만 국적은 요르단이라고 한다. 참으로 복잡한 중동의 민족, 국가 구성이다.

우리 일행은 아래의 바닥 중앙이 유리로 된 글라스 보트에 2팀으로 나누어 1시간 동안 글라스 보트 투어를 했다. 우리에게는 포근한 봄 같은 날씨였지만 이들에게는 추운 겨울이라 유람선이 거의 운행되지 않았고, 최고급 호텔의 비치 파라솔은 텅텅 비어 있었다. 

 

 

 

<아카바 항의 어마어마한 요르단 국기>

평양에만 대형 국기가 있는 줄 알았는데 아카바항에도 이런 대형 국기가 있어 항구 어디서나 잘 보인다. 아래 아카바 항의 어마어마한 국기에는 하얀 별이 없다.

 

 

<아카바항의 다양한 모습들>

겨울이라 우리 일행을 제외하고는 거의 관광객이 없었지만 그래도 다양한 배들이 떠 있다.

 

 

 

 

<바다에서 본 아카바항과 해변에서 즐기는 시민들>

 

 

 

<아카바만 해저의 탱크와 산호>

글라스 보트 투어를 하는 유람선 바닥이다. 이스라엘과 아랍국가 간의 전쟁인 6일 전쟁 때 가라앉은 것이라고도 하고, 요르단 국왕이 경계심을 키우려고 수장시켰다고도 한다. 이것도 신기하긴 하지만 대부분의 관광객은 눈길을 잠깐 주고는 아름다운 주변 풍광을 보느라 신경을 쓰지 않아 글라스 보트 투어란 말이 무색했다. 스쿠버 다이빙을 하면 다양한 산호와 아름다운 바닷속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이스라엘 항구 에일랏 VS 요르단 항구 아카바>

왼쪽 바다 건너편은 이스라엘 항구 에일랏, 중앙의 숲 뒤편은 요르단 국왕의 별장, 오른쪽은 요르단의 호텔들이다. 

 

 

<아카바의 호텔들>

호텔 마당까지 바다가 접해 있고 비치 파라솔이 늘어서 있어서 숙박비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우리나라 해안처럼 조석 간만 차도 나지 않는 것 같다. 우리가 투어를 하는 1시간 내내 바다가 잔잔했다.

 

 

 

<요르단 국왕의 별장>

중앙의 원형 건물은 초소일 것이고, 오른쪽 숲 뒤편이 국왕의 별장이라고 한다. 국경에 국왕의 별장이 있는 것이다. 이 상황만 보아도 요르단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이스라엘 에일랏>

반도인 우리나라와 달리 아주 좁은 만에 요르단, 이스라엘, 이집트가 접경을 하고 있는 게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돌아오는 길에 본 대형 요르단 국기와 유람선 정착장>

이렇게 멀리서 보면 척박한 산인데 가까이에서 보면 먹거리, 주거지 등 있을 건 다 있다.

 

 

 

<아카바 민속박물관>

아카바 유람선 선착장에 붙어 있는데 규모는 작지만 요르단인의 생활모습, 생활도구 등을 잘 볼 수 있다.

 

 

 

 

 

<아카바 성 앞의 후세인 빈 알리의 아카바 집>

보트 투어 후 아카바 민속박물관을 둘러보고 인근의 아카바 성으로 가는 입구에 있는 돌로 만든 대저택이다. 집의 크기나 모양, 재료 모두 눈에 확 들어와서 당시엔 누구 집인지 전혀 몰랐지만 일단 셔터를 눌렀다.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아랍권에서는 어마어마한 인물의 아카바 저택이었다. 이곳은 현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의 고조(할아버지)이자 이라크 왕국, 시리아 왕국의 고조인 알 샤리프 후세인 빈 알리의 아카바 저택이다. 이 글을 쓰느라 자료를 찾으며 안 사실인데 요르단 1 디나르 지폐의 모델이기도 했다.

사진 왼쪽 아래로 보이는 베이지색 철책 안에는 '1918 알 아사드'란 안내문이 붙은 우물이 있다. 대문에 '샤리프 후세인 빈 알리의 집 1917' 이라 적혀 있고, 우물 앞 석비에는 아래의 사진과 안내 글이 있다. 왼쪽 저택 끝 부분에 붉은 색 담으로 이어진 부분은 아카바 城이다.

 

 

<후세인 빈 알리(Sayyid Hussein Bin Ali) 1855~1931>

후세인 빈 알리는 이슬람교 창시자인 모하메드가 속한 하심(Hashim) 가문 출신으로 하심 가문은 역사적으로 메카, 메디나를 중심으로 한 아라비아 반도 서부지역(헤자즈지역}을 통치했다. 부친의 뒤를 이어 후세인은 샤리프가 되어 1908~1917년 헤자즈지역을 통치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16세기부터 이 지역을 통치하면서 하심家의 자치권을 인정한 오스만 제국과 협력했으나 카이로 주재 영국 고등 판무관 맥마흔과 서한을 교환하며 아랍 독립 지원을 약속 받고 오스만 제국과의 협력을 중단했다.

 

이후 영국인 정보장교 에드워드 로렌스와 협력하여 오스만 제국에 대항했고, 영국은 오스만 제국 멸망 후 오스만 제국이 다스리던 방대한 영토의 일부를 하심 가문에 자치권 형식으로 분할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 멸망 후 영국과 프랑스가 분할하여 점령하기로 한 1916년의 사이크스-피코 협정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약속한 1917년의 밸푸어 선언으로 통일된 아랍 독립왕국 건립이 어려워졌다.

이에 후세인은 자신의 헤자즈왕국(1916~1925), 차남 압둘라의 트랜스요르단 토후국(1921~ ), 3남 파이잘의 시리아 왕국(->이라크 왕국, 1921~1958)을 건설했다. 1924년 후세인은 모든 무슬림의 칼리프로 자처했으나 헤자즈 지역의 이븐 사우드에게 공격을 받아 메카, 메디나를 잃고 사이프러스에 유배되었다가 차남이 다스리던 트랜스요르단으로 건너가 1931년 사망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에서 요약 발췌--

 

강한 인상 만큼이나 야심도 있고 지도자로서 자질도 있었으나 격변하는 세계의 흐름과 당사자를 제외한 강대국의 야합, 주변 아랍국의 복잡한 민족 구성 등에 밀려 아랍 1인자의 자리에서 밀려났다. 스스로 힘으로 독립하지 못해 미, 소 등 강대국의 협상에 밀려 오늘에 이른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도 많다. 성적이 초라하지만 어쨌거나 현재의 요르단은 후세인 빈 알리의 유일한 적자라는 점에서 나름 정통성을 이어 가고 있는 셈이다. 

 

 

<아카바성>

아카바성은 14세기에 방어를 목적으로 지은 성으로 메카로 가는 순례자들이 쉬어가는 장소이기도 했다. 지금은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아카바 시내>

 

 

<아카바 성 앞의 모스크>

 

 

<아카바에서 암만으로 가는 길, 아카바 외곽>

베이컨처럼 켜가 있는 산 모양이 인상적이다. 이 부근을 지나며 척박한 땅 밑으로 흐르는 물을 이용해 수박농사를 짓는다는 비닐 하우스를 보았다. 당시의 모습으로 연상되지 않았지만 건조한 땅에서 자라는 그 수박이 그렇게 맛있다고 현지 가이드는 힘주어 말했다.

 

 

<아카바에서 암만으로 가는 길의 풍력발전기>

 

 

<아카바에서 암만으로 가는 길, 석양의 모스크>

 

 

<아카바에서 암만으로 가는 길, 세렛 휴게소>

여호와에 대해 회의와 불신이 많았던 출애굽 1세대가 세렛에서 돌에 맞아 죽고 2세들이 방랑을 시작한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 있는 휴게소로 규모가 꽤 크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세렛 주변의 고속도로 중앙에 거의 5m 간격으로 줄줄이 버린 폐타이어가 풍경의 일부처럼 보일 정도로 많았다는 점이다.

 

캄캄한 밤에 암만의 고급 양고기 구이 전문점인 칸자만에 도착하여 양갈비 2대, 안심 1덩이, 닭가슴살 구이 등을 먹고 숙소인 암만 Liwan호텔로 갔다. 물가 비싸다는 요르단, 그것도 암만의 고급 음식점이었지만 양고기 구이가 너무 짠 소금 소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