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요르단

이스라엘, 요르단 여행15 - 요르단 느보산 모세 기념성지

큰누리 2017. 3. 22. 23:50

이스라엘 요르단 여행 5일째인 1/16의 일정은...

암만 리완호텔- 암만 시타델(암만 성채), 암만 고고학박물관- 암만 구시가지, 재래시장 투어- 1시간 걸려 마다바 성 조지 교회(St.George Church) 도착, 모자이크 지도 관람 - 1시간 걸려 느보산 입구 도착, 현지식 점심 - 느보산 모세 기념성지, 성당 모자이크 관람 - 느보산 수공예품 센터에서 쇼핑 - 암만 리완호텔 투숙.

 

<느보산(Mt. Nebo)>

요르단왕국 마다바에서 북서쪽으로 약 10km 지점에 있는 높이 835m 산으로 느보산 벳볼 맞은편에 모세가 매장되었다고 전한다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한 지 40년 만에 느보산에 당도하여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120세로 죽었다모세와 출애굽 1세대가 가나안에 입성하지 못한 이유는 시나이반도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에게 반역한 죄와 시나이반도 카데스에서 바위를 향해 물을 나오게 하라는 명령을 어기고 지팡이로 바위를 내리친 불충을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한다어쨌거나 모세는 여호와의 말씀을 직접 전한, 전에도 후에도 없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느보산 모세 기념성지4~6세기에 수도원이 세워졌던 자리로 프란체스코수도회에서 관리한다1933년부터 1976년에 프란체스코수도회 성서연구소에서 모세가 가나안 땅을 두루 조망하기에 가장 적합한 느보산 시야가봉(Ras Siyagha, 710m)을 발굴했다이곳에서 모세의 죽음을 기념하여 4세기에 세운 소성당5세기에 지은 대성당 터가 발굴되었는데 대성당 터에서 모자이크화가 발굴되었다대성당 터에서 다양한 모자이크화가 발굴되었지만 제의방의 시골 풍경과 사냥하는 모습을 묘사한 모자이크가 가장 유명하다모자이크가 531년에 제작되었다는 기록도 함께 발견되었다.

 

 

<느보산 모세 기념성지 입구의 거대한 기념비>

2,00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문을 환영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한다.

 

 

<느보산 모세 기념성지 석비>

 네보산 시야가봉 모세의 기념비, 기독교 성지’라고 적혀 있다.

 

 

<느보산 정상의 모세 기념교회(Memorial Church of Moses)>

 옛 비잔틴 교회 터에 세운 교회로 바닥에서 6세기 경에 제작된 모자이크 그림이 많이 발굴되었다.

 

 

<느보산 모세 기념성지에서 조망한 풍경>

아무 것도 막힘이 없어 사방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으나 사진 왼쪽 밖에 위치한 예루살렘 방향은 시계가 나빠 조망 상태가 좋지 않았다. 비교될 만한 나무나 특징적인 언덕이 없어 산 아래의 마을이나 마을의 나무들이 작은 점처럼 보인다. 우리가 여행 중 들른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많은 곳이 이런 스텝, 혹은 황야 같았지만 이곳은 사방이 거칠 것이 없이 뚫린 정말 특별한 곳이었다. 이런 지형적인 특징 때문에 모세가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죽었을 것으로 추측하는 이유일 것이다.

 

 

<느보산 모세 기념성지의 'The Abu Badd'>

파이살리아라는 옛 마을의 비잔틴 수도원에서 문으로 사용되었던 돌이다. 크기가 상당하고 연자방아처럼 둥근 모양 때문에 이곳에서 기념사진 촬영을 많이 한다.

 

 

<모세 기념교회(Memorial Church of Moses)에서 되돌아 본 입구쪽>

오른쪽 위에 'The Abu Badd'가 보이고 바로 아래쪽에 비잔틴 시대의 교회 유적이 보인다. 비잔틴 시대의 주요 교회 유적은 현재 기념교회가 들어선 장소를 중심으로 3면으로 건물 터가 남아있고 이곳은 기념교회 동쪽이다. 

 

 

<모세 기념교회(Memorial Church of Moses) 동쪽>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무엇 하나 거칠 것 없이 모든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다.

 

 

<모세 기념교회 앞의 놋쇠 뱀(Brazen Serpent) 기념물>

이탈리아 출신의 지오반니 판토니가 제작. 

구약성서 <민수기>에 의하면 출애굽 중 끊임없이 불평하고, 의심하고, 반란까지 일으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벌하기 위하여 여호아는 불뱀을 보내 물어 죽이게 했다. 불뱀에 물린 자는 여호와의 명령으로 모세가 장대에 만들어 매단 놋쇠 뱀을 보고 죄를 고백한 후 바라보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이 기념물이 십자가 형태인 이유는 예수가 자신의 죽음을 예언할 때 위의 내용을 말하며 모세의 놋쇠 뱀을 본 것처럼 부활하는 예수를 바라보면 기독교인들은 영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느보산 모세 기념교회 앞 전망대의 이정표>

제리코, 예루살렘, 베들레헴, 헤로디움, 헤브론 등이 60km 안쪽에 있으나 이 방향(북쪽)은 유난히 시야가 흐려 잘 보이지 않았다.

 

 

<모세 기념교회 앞의 놋쇠 뱀(Brazen Serpent) 기념물과 비잔틴 시대 교회 유지>

 

 

<느보산 모세 기념교회와 앞의 우물 터로 보이는 유적>

두 번째 사진은 기념교회 밖에 있는 포도주 장식 뚜껑과 위에 줄을 거는 것으로 보이는 장치가 있는 유적이다. 모양이나 구조가 우물처럼 보이지만 크기가 좀 작아서 정확한 용도를 모르겠다.

 

 

 

<모세 기념교회 출입문 안쪽 좌우에 걸린 모자이크>

 

 

 

<느보산 모세 기념교회 내부>

이곳은 비잔틴 시대의 교회 터 위에 현재 프란체스코 수도회에서 가건물처럼 외벽과 바닥을 보강한 형태의 교회이다. 미사를 위한 교회라기보다 유적보호를 위한 공간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사진 정면은 중앙제단이고 철계단이 설치된 왼쪽 공간은 성직자들이 미사를 준비하는 제의방 터였다고 한다.

 

기둥을 기준으로 4칸으로 나뉜 작은 교회 바닥에 상당한 양의 모자이크화가 남아있다. 남아있는 모자이크 양으로 따지면 모자이크 성지 지도가 남아있는 마다바의 성 조지 교회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내 기억으로 이곳에서 본 모자이크화들이 가장 양이 많고 상태가 좋아 인상적이었다. 4면에도 발굴한 모자이크화를 벽화처럼 재구성한 것으로 보이는 모자이크화가 걸려있다중앙 제대는 열려 있고 벽과 천장이 둥근 형태이다바닥 중간 중간에 장방형으로 유리를 씌운 곳이 몇 군데 있는데 지하의 중요한 유적이거나 모자이크화들이었다.

 

 

<모세 기념교회 내부 바닥 유리 안의 유적>

 

 

<느보산 모세 기념교회 중앙 제대>

 

 

<모세 기념성당 양쪽 벽면의 기둥들과 모자이크화>

 

 

 

<모세 기념성당 동쪽 기둥과 안쪽 바닥, 벽면의 모자이크화>

 

 

<모세 기념성당 동쪽 바깥쪽(제의방 터) 바닥, 벽면의 모자이크화>

벽의 다양한 패턴 형태의 모자이크가 아름답다. 하지만 느보산 모세 기념성지 유적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풍경, 사냥도이다. 시골 풍경과 사냥하는 모습을 표현한 바닥의 모자이크는 회화처럼 정교하고 아름답다. 바닥의 십자형 구조물의 용도가 궁금했지만 알아내지 못했다.

  

  

  

 

 

<모세 기념성당 기둥과 서쪽 바닥, 벽면의 모자이크화>

 

 

 

<모세 기념성당 출입문쪽 바닥의 모자이크화>

 

 

 

<모세 기념성당 출입문 밖의 비잔틴 시대의 교회 부재들>

 

 

<모세 기념성당 서쪽의 비잔틴 시대 교회 터>

 

 

<모세 기념교회 입구의 박물관>

규모는 작지만 모현재 세 기념교회가 들어서 있는 6세기의 비잔틴 교회 구조와 그 안에 남아있는 모자이크화를 총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도면, 비잔틴 교회 터에서 발견된 유물, 발굴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모세 기념교회 입구의 박물관 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