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요르단

이스라엘, 요르단 여행18 - 베들레헴 예수탄생기념교회

큰누리 2017. 4. 3. 00:38

이스라엘 요르단 여행 7일째인 1/18의 일정은 베들레헴 Oriental Palace Hotel - 베들레헴 예수탄생기념교회(The Church Nativity)헤로디움(Herodium) - 베들레헴 목자들의 들판교회(The Shepherd’s Field Chapel) - 목자들의 들판교회 앞 Bo'az Field Souvenir Shop에서 쇼핑 - 레스토랑 Grotto에서 현지식 점심 - 예루살렘 유대인 학살 추모관(야드바셈) - 예루살렘 올드 시티 투어 - 비아 돌로로사 코스 - 골고다 성묘교회 - 예루살렘 바위돔, 통곡의 벽 - 베들레헴 Oriental Palace Hotel에서 저녁 식사 및 숙박

 

 

<이스라엘 건국 소사, 베들레헴의 현 위치>

AD 70년 로마에 의해 멸망당한 이스라엘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2천년 가까이 세계 각국을 떠돌며 사는 디아스포라 신세였다유대인이 떠난 자리에 아랍인이 들어와 뿌리를 내린 팔레스타인 지역에 19세기 들어 유대국가를 재건하려는 시오니즘이 일기 시작했다.

 

1947년 세 종교가 얽혀 있고, 유대인과 아랍인이 섞인 요르단 서안에 유엔의 중재로 민족별로 2개의 나라를 세우려 했으나 유대인은 동의하고 아랍인은 반대하는 가운데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포했다이에 주변의 7개 아랍국이 연합하여 이스라엘과 전쟁을 일으켰으나 패배하였고 1956년 수에즈 전쟁, 19676일 전쟁, 1973년 욤 키푸르 전쟁, 1982년 레바논 공습 등 수 차례의 전쟁이 이어졌다.

1964년 유대인에게 밀려난 요르단 서안의 아랍인들이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조직하고 테러로 대항하자  이스라엘은 그에 대한 보복을 반복하면서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유엔과 미국 등의 중개로 오랜 협상 끝에 1993년 평화협정을 맺고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는 요르단강 서안지구(웨스트 뱅크)와 지중해 가자지구에 대한 자치권을 얻었다하지만 현재까지도 분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베들레헴 1967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점령하였으나 199512월 팔레스타인에게 반환하였다인구는 4만 명이며 현재 웨스트뱅크 지역(서안지구)에 속하는 곳으로 팔레스타인 정부가 관할한다고 한다. 이스라엘, 요르단은 들여다 볼수록 역사가 복잡한 나라였다. 외국인들이 대치 상태인 우리나라를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만 치안면에서는 세상 어느 나라보다 안전한 것 만큼 두 나라 또한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들레헴 예수탄생기념교회와 입구를 같이 쓰는 모스크와 군인들의 살벌한(!) 경비>

모스크 맞은편인 이쪽에 예수탄생기념교회가 있다. 빨간 베레모를 쓴 군인들이 삼엄하게 경비를 선 이유는 우리가 방문한 이날(1/18), 폴란드 대통령이 교회를 방문하고 아르메니아인들의 성탄절이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테러가 잦다'는 편견을 가졌기 때문에 바짝 긴장을 했지만 대통령이 방문하는데 이 정도의 경비는 사실 기본적인 것이다. 모스크와 교회 중간(사진 오른쪽 차일)에 있는 안내소로 보이는 곳의 이름도 Peace Center이다.

 

 

<베들레헴 예수탄생기념교회(The Church Nativity)의 역사>

원래 탄생지 위에 예수탄생기념교회가 들어섰다가 무너졌기 때문에 이중으로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교회 내부, 특히 중앙 제단 주변은 정신 사나울 정도로 이콘이 많고 제단의 방울, 등 장식 등도 그리스 정교회 방식이었다바닥의 초창기 모자이크는 6세기에 세워진 요르단 느보산 모세 성지 교회 터에서 본 패턴 무늬 모자이크와 비슷했다보수중인 천정의 모자이크화는 더 후대의 것(6세기)이라고 하는데 산 비탈레 성당에서 본 것처럼 성인 초상화와 식물무늬가 어울린 형태였다예수 탄생 동굴 입구 위에 걸린 퇴색했지만 작은 성화들과 입구, 벽기둥의 비교적 큰 성인상, 촛대장 등도 기억에 남는다.

 

135년경 로마의 하드리안 황제는 제2차 유대인 반란을 진압하고 베들레헴에 있는 예수탄생 동굴 위에 아도니스 신전을 세웠다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인 339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 황후는 신전을 헐고 그 자리에 예수탄생교회를 세웠다현재 교회 바닥에 특별히 설치한 나무로 된 문을 열면 비잔틴 시대 교회 바닥의 모자이크가 남아있다.

529년 사마리아인의 반란으로 교회가 불에 타버리자 565년 유스티니안 황제가 재건했다614년 페르시아군이 침입했을 때 팔레스틴의 다른 교회들은 모두 불에 탔지만 이 교회가 화를 면한 이유는 교회 입구에 장식된 페르시아 복장을 한 동방박사들 장식 때문이었다고 한다현재의 모습은 십자군 점령 후 개축한 모습이다.

 

 

<베들레헴 예수탄생기념교회(The Church Nativity)>

우리는 이 교회와 연결된 공사중인 그리스 정교회 성당과 제단, 그 아래에 있는 예수탄생 동굴(마구간)을 보았다. 예수 탄생지라는 역사적인 중요성 때문인지 이 교회와 주변 교회는 소유(관리, 권리)면에서 이스라엘의 역사 만큼이나 복잡했다.

 

 

<베들레헴 예수탄생기념교회(The Church Nativity) 입구>

사진 오른쪽의 녹슬은 가림막은 성당 신자석에 해당하는 윗 사진 아래 부분이고, 정면 중앙이 입구이다. 참 복잡하고 특별한 출입구이다. 

기독교에서 의미가 있는 곳(예수탄생 마굿간, 골고다 언덕 등)일수록 교회는 하나인데 그 안이 갈갈이 쪼개져 심하게는 6개의 교단에서 관리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숨진 골고다 성묘교회 11, 12처는 로마 카톨릭과 그리스 정교회가 1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서로 관리(소유)자가 바뀌기도 한다.

 

 

<베들레헴 예수탄생기념교회(The Church Nativity) 출입문 : 겸손의 문>

교회문은 몇 차례 고친 자국이 보인다. 아치형 위쪽의 사각형(문 흔적)은 유스티니안 황제 시기, 아치형은 십자군 시대, 1.2m의 가장 작은 네모난 문은 16세기경에 지은 것이다만인의 왕인 예수 탄생지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게 만들어서 일명 '겸손의 문'으로 불린다.

 

 

<베들레헴 예수탄생기념교회(The Church Nativity) 중앙 제단>

교회는 길이 53m, 24m이며 내부는 코린트 양식의 기둥머리로 된 돌기둥이 4열로 늘어서 있다. 교회 정면에는 그리스 정교회 제단이 있으며 제단 아래에 예수탄생 동굴(마굿간)이 있다.

 

 

 

 

<예수탄생기념교회(The Church Nativity) 중앙 제단에서 탄생 동굴로 이어지는 측면>

 

 

<예수탄생기념교회(The Church Nativity) 동굴 입구의 촛불을 켜는 곳과 이콘들>

 

 

 

 

 

<예수탄생기념교회(The Church Nativity) 동굴 입구 정면의 이콘들>

 

 

 

<예수탄생기념교회(The Church Nativity) 동굴(마구간)>

 

 

<예수탄생기념교회(The Church Nativity) 동굴(마구간) 앞에서 제례를 기다리는 관광객들>

 

 

<예수탄생기념교회(The Church Nativity) 동굴(마구간) 내부>

베들레헴 예수탄생교회는 예수가 탄생한 마굿간을 콘스탄티누스황제 모후인 헬레나가 발굴했다고 하는데 그리스 정교회 제단 아래쪽에 있는 동굴 같은 곳이다예수탄생 동굴(마굿간)은 제단 오른쪽 아래 계단을 통해 출입하게 되어 있으며 일정 시간마다 일반인에게 내부를 공개한다동굴 내부의 예수탄생 지점에는 14개로 갈라진 은별이 있는데 그 위에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났다 1717’이라고 적혀있다고 한다.

 

예수탄생 지점 맞은편에 있는 구유의 제단은 아기 예수를 말구유에 눕힌 곳이다다른 편에는 동방박사의 제단이 있고 그 위에 황금, 몰약, 유향을 드리는 성화가 있다동굴 안의 3곳 중 동방박사의 제단만 로마 가톨릭 소속이라고 한다.

 

 

 

 

<예수탄생기념교회(The Church Nativity) 동굴(마구간) 예수 탄생 지점 사진>

동굴 내부를 직접 보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포기하고 성당의 판매대에 있는 엽서를 촬영한 것이다동굴 내부의 예수탄생 지점에 있는 14개로 갈라진 은별이다.

 

 

<예수탄생기념교회(The Church Nativity)>

565년 유스티니안 황제가 재건한 당시의 교회일 것이다. 현재 보수 중이다.

 

 

 

<예수탄생기념교회(The Church Nativity) 바닥의 모자이크>

6세기에 재건될 당시의 교회 바닥 모자이크와 이후 시기(십자군 전쟁 이후)의 교회 바닥이다.

 

 

 

<예수탄생기념교회(The Church Nativity) 벽면의 모자이크>

6세기 이후의 모자이크화이다.

 

 

 

 

<관람하고 나오는 길의 예수탄생교회 맞은편 모스크>

 

 

<예수탄생교회 맞은편 모스크 입구, 군인들의 삼엄한 경비>

 

 

<예수탄생교회 맞은편 모스크 입구를 경비하는 군인들>

 

 

<예수탄생교회 아래의 벽화>

성모 마리아의 수태고지부터 헤롯의 학대를 피해 마리아와 요셉이 나자렛을 떠나는 장면, 예수 탄생과 동방박사의 경배 장면이 모자이크로 표현되어 있다.

 

 

<베들레헴시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