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거창 둔마리 벽화고분, 양평리 석조여래입상, 아침식사

큰누리 2017. 7. 19. 00:09

<거창 둔마리 벽화고분>

지정 : 사적 제239호

소재지 :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둔마리 산 298-1.

거창 금귀봉이 동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등성이에 자리잡고 있는 고려시대의 무덤이다. 꼭 하나의 무덤만이 들어설 수 있는 좁은 산등성이 양쪽으로 급한 경사를 이룬 깊은 계곡으로 풍수지리적으로 좋은 자리라 한다. 근처에는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된 고려, 조선시대의 민묘(民墓)가 흩어져 있다.

 

벽화고분은 이중의 벽으로 된 돌방무덤으로, 땅을 파서 판석으로 벽을 두르고, 그 안에 돌방(石室)을 설치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이다. 서쪽 돌방에는 1개의 나무관(木棺)이 있었지만 동쪽 돌방은 비어 있었다. 양쪽 돌방의 모든 벽은 회칠하고 그 위에 흑, 녹, 갈색으로 인물을 그렸다. 동쪽 돌방의 동쪽 벽에는 6명의 선녀가 그려져 있고, 북쪽 벽에는 희미하게 글자가 보이고 있다. 서쪽 돌방의 서쪽 벽에는 여자 2명, 남자 1명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벽화는 악기를 연주하는 그림으로 붓의 움직임이 자유롭고 생기가 있다. 불교사상을 중심으로 도교적 요소가 가미된 내용이다.

고려시대의 고분형식과 종교사상, 생활상을 보여주는 얼마 되지 않는 귀중한 유적이다. 비슷한 시대와 내용의 벽화고분으로는 북한 개성시의 공민왕릉수락암동 1호분이 있고, 2000년에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고법리에서 발견된 박익공묘(朴翊公墓)가 있을 뿐이다.   --현지 안내문--

 

 

<거창 둔마리 벽화고분 주차장과 화장실>

일행들 모두 사당으로 착각했을 정도로 품위있는 화장실이다. 내부는 전통가옥 구조의 푸세식 좌변기인데 냄새도 안 나고 깨끗하다. 바로 옆에 '둔마리 벽화고분 안내문'과 '벽화고분 발견 시 도면 안내도'가 있다. 이곳에서 둔마리 벽화고분까지는 5분 정도 산등성이로 올라야 하고 고분 근처는 가파른데 길이 잘 닦여 있다. 오르는 길 주변에 무리지어 핀 노란 산괴불주머니꽃과 괴불주머니꽃들이 아름다웠다.

 

 

<거창 둔마리 벽화고분 주차장 위에서 본 화장실과 녹음이 아름다운 주변풍경>

 

 

<거창 둔마리 벽화고분으로 오르는 길의 산괴불주머니>

 

 

<거창 둔마리 벽화고분으로 오르는 길 중간쯤에 있는 홍예교>

 

 

<거창 둔마리 벽화고분 바로 아랫길>

가파른 왼쪽 언덕 위에 벽화고분이 있고 오른쪽 아래쪽으로는 고려, 조선시대의 민묘 몇 기가 있다. 

 

 

<거창 둔마리 벽화고분 화장실 옆에 있는 벽화고분 발견 당시 도면>

 

 

<거창 둔마리(居昌 屯馬里) 벽화고분 앞의 안내도>

고려시대 거창지역 유력한 지방 호족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분벽화이다. 고분형태는 네모진 형태의 장방형 쌍곽묘(雙槨墓)이다. 내부에는 245cm ×90cm ×90cm(높이)의 석관형 무덤방 2개가 중간벽을 함께 하고 동서방향으로 놓여 있다. 벽화는 각 벽면에 회칠을 한 후 천녀주악상(天女奏樂像 :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 남녀가 어울려 무용하는 그림 등이 프레스코 기법으로 활달하게 그려져 있다. 그 내용은 죽은 사람의 혼을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모습이다. 묻힌 자의 이름, 신분 등을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그 당시 복식 및 생활모습 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일대는 석장(石葬)골, 또는 재궁(梓宮)골이라 불리던 곳으로 벽화고분은 1971년 처음 발견되었고, 다음 해 발굴 조사 후 보존 관계 때문에 폐쇄하였다. 현재 실물 크기의 모형이 거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사진 상의 안내문--

 

 

<거창 둔마리 벽화고분 앞 모습>

갑자기 가팔라진 산등성이에 꼭 1기의 무덤이 들어갈 공간이다.

 

 

 

 

<거창 둔마리 벽화고분 동쪽 석상>

 

 

<거창 둔마리 벽화고분 서쪽 석상>

 

 

<거창 둔마리 벽화고분 후면>

 

 

<거창 둔마리 벽화고분 맞은 편의 고분과 석상>

 

 

<거창 둔마리 벽화고분에서 되돌아 나오는 길>

 

 

<거창 양평리 석조여래입상 입구 화단의 붓꽃>

양평리 석조여래상 옆에는 딱히 절이랄 만한 건물이 없고(지도에는 금용사로 되어 있다.) 대웅전이라고 쓰인 건물만 1동이 있는데 주변이 온통 화사한 꽃밭이었다. 붓꽃, 자주달개비, 꽃양귀비, 수레국화 등을 누군가가 공들여 키운 흔적이 역력했는데 눈이 즐거웠다.

 

 

<거창 양평리 석조여래입상 입구 화단의 자주달개비와 수레국화>

 

 

 

<거창 양평리 석조여래입상 앞의 공조팝나무>

 

 

<거창 양평리 석조여래입상 앞의 찰피나무>

 

 

<거창 양평리 석조여래입상 앞의 일본목련>

 

 

<거창 양평리 석조여래입상 앞의 블루베리꽃>

 

 

<거창 양평리 석조여래입상(居昌 陽平里 石造如來立像)>

지정 : 보물 제377호

소재지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양평리 479-19.

 화강암으로 만든 석가여래입상으로 전체 높이는 3.7m이고 불상 높이는 2.75m이다. 몸은 머리에 비해 약간 가늘어 보이지만, 늘씬한 체격으로 세련된 조각과 전체적인 조화는 9세기 통일신라시대 불상조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둥근 얼굴에 뚜렷한 이목구비, 반쯤 뜬 두 눈과 입가의 미소는 부처의 자비를 느끼게 한다. 짧고 굵은 목에는 윤회의 인과를 뜻하는 삼도(三道)를 선으로 새겼고, 머리에 비해 약간 좁은 어깨 양쪽에는 대의(大衣)가 걸쳐졌다. 대의 아래에 입은 긴 치마 모양의 군의(裙衣)는 접힌 것까지 표현되었다.

오른손은 밑으로 내려 군의 자락을 쥐고, 왼손은 집게손가락을 곧게 폈다. 여래를 받치는 둥근 대좌에는 연꽃잎이 두텁게 조각되었다. 머리 위의 천개는 근년에 올려진 것이다. 불상 주위에 주춧돌과 기와조각들이 확인되고 있어, 노혜사(老惠寺), 또는 금양사(金陽寺)가 있었다는 전승을 뒷받침하고 있다.   --현지 안내문--

 

 

<거창 양평리 석조여래입상을 사방에서 본 모습>

 

 

 

 

 

<아침을 먹은 거창의 식당>

금성장여관 부근에 있는 식당인데 원래 들리려던 식당이 이른 시각이라 문을 안 열어 부근의 식당에 무작정 들어갔기 때문에 상호를 놓쳤다. 순두부찌개와 두부전골을 나누어 시켰는데 밑반찬을 포함하여 모두 맛있었다. 이번 함양, 거창답사에서 먹은 음식은 (크게 기대를 안 했음에도) 모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