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거창 개봉고분, 거창향교, 상림리 석조보살 입상

큰누리 2017. 7. 19. 23:15

<거창 개봉고분(開封古墳)>

지정 : 경상남도 기념물 제51호

소재지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대동리 181.

개봉고분은 거창에서 김천으로 가는 국도변의 능선에 자리잡고 있다. 모두 5기의 무덤이 있는데, 1, 2호 무덤은 복원 및 정화사업이 이루어져 외형상 거대한 무덤의 형태를 갖추었지만, 나머지 3기의 무덤은 외형상 많이 허물어져 있으나 본래는 상당히 규모가 큰 무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것은 지름이 무려 30m, 높이가 10m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 고분의 주변에 각종 토기 조각이 흩어져 있는 점으로 보아 이곳에는 이들 무덤 외에도 상당수의 옛 무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고분군에 대한 정식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수습된 토기조각과 대형 무덤인 점으로 보아 가야 후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까지 거창 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옛 무덤에 대해서는 크게 알려진 바가 없기 때문에, 이곳의 무덤들은 이 지역 토착세력의 사회, 문화상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닌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현지 안내문--

 

 

<거창 개봉고분(開封古墳) 입구>

 

 

<거창 개봉고분 앞에서 본 거창읍>

 

 

<거창 개봉고분(開封古墳) 1, 2호>

 

 

 

<거창 개봉고분(開封古墳) 1호>

사람과 비교하면 고분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거창향교(居昌 鄕校)>

지정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30호

소재지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가지리 318-4.

향교는 유교의 옛 성현을 받들면서 지역사회의 인재를 양성하고 미풍양속을 장려할 목적으로 설립된 조선시대의 지방 교육기관이다. 거창향교는 1415년(태종 15)에 대성전(大成殿)이 건립된 이후, 1574년(선조 7)에 명륜당(明倫堂)이 건립됨으로써 관학(官學)의 기능을 갖추었다.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를 하였으며, 현재의 모습은 대략 18세기 이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향교는 교육과 제례의 두 영역으로 나뉜다. 유생이 학문을 연마하는 명륜당과 일상생활을 하는 동, 서재(東, 西齋)는 교육기능을 담당하고, 공자와 저명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는 대성전 및 동, 서무(東, 西廡)는 제례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거창향교는 완만한 경사지에 터를 잡았고, 보기 드물게 명륜당과 대성전이 거의 나란히 배치(左學右廟)되어 있다. 이러한 배치는 공자를 모시는 대성전의 위계와 권위가 떨어진다 하여 잘 사용하지 않았다. 명륜당 뒤의 공간이 넓은 것으로 보아 어떤 연유인지 모르지만 어떤 시기에 대성전을 옮겨 지은 듯 하다. 그리고 동, 서무도 없어 대성전은 더욱 허전하게 보인다.

대성전은 높은 석축 위에 건물을 세워 위엄과 함께 당당한 외관을 갖추었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명륜당은 유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교육의 중심공간이다. 명륜당 앞의 정면 출입구인 춘풍루(春風樓)는 유생들의 여가 및 여름철 학습공간으로 이용되었다. 누각은 기둥 아래에 긴 주춧돌을 둔 탓인지 더욱 장대하게 보인다. 옆의 외삼문은 근래에 지어진 것으로, 원래는 춘풍루 아래의 공간을 이용해 출입하였다.   --현지 안내문--

 

 

<거창향교>

왼쪽 외삼문은 제례공간인 대성전 출입문, 오른쪽 누각형태의 외삼문은 교육공간인 명륜당 출입문 겸 휴식공간이다. 그 동안 본 향교들은 전학후묘(前學後廟 : 앞은 명륜당, 뒤는 대성전 배치) 형태였기 때문에 전면에서 보아 옆으로 펼쳐진 거창향교는 어마어마해 보였다. 일행 모두 규모에 놀랐다.

 

우리가 들른 날 향교문이 굳게 잠겨 있었지만 다행히 경사가 진 곳에 자리를 잡은 탓에 뒤로 돌아가 전체적인 배치와 외관을 볼 수 있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 함양의 서원(남계서원, 청계서원)과 향교(함양향교)가 대공사 중이거나 문을 닫았다(거창향교). 

 

 

<거창향교 바깥에서 보아 왼쪽의 대성전(右廟) 외삼문>

 

 

<거창향교 대성전 외삼문 틈으로 들여다 본 대성전 내삼문>

 

 

<거창향교 출입구인 춘풍루(春風樓)>

춘풍루는 유생들의 여가 및 여름철 학습공간이었다. 교육기관 출입문에 공부와는 거리가 먼 기생집 같은 '춘풍루'란 이름을 붙인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 현판 아래 뒤쪽으로 보이는 지붕은 강학공간인 명륜당, 좌우 건물은 유생들이 거처하는 동재와 서재이다.

 

 

<거창향교 춘풍루쪽에서 본 전경>

 

 

<거창향교 서쪽의 쪽문>

출입문으로는 상당히 실용성이 있어 보인다. 문의 구조상 안내문에 있는 '근래에 지어졌다는 외삼문(外三門)'은 설마 아닐 테고...

 

 

<서쪽 담장 너머로 본 거창향교>

향교 동쪽은 거창중앙고가 자리하고 있어 외관상 접근이 불가능할 것 같다. 중앙의 춘풍루가 이 방향(서쪽 언덕)에서는 의외로 왜소해 보인다. 사진 왼쪽 건물은 창고일 듯 하고, 오른쪽 건물은 유생들의 숙소인 서재(西齋)이다.

 

 

<서쪽 담장 너머로 본 거창향교>

왼쪽 앞은 서재, 원경은 동재, 중앙 오른쪽의 주건물은 명륜당, 오른쪽 뒷건물은 대성전이다.

 

 

<서쪽 담장 너머로 본 거창향교>

왼쪽은 명륜당, 분홍색 벽의 중앙건물은 대성전, 오른쪽 건물은 용도를 잘 모르겠다. 문은 잠겼고, 향교에 대한 정보라고는 안내문뿐이라 자세한 구조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없어 답답했다. 

오른쪽의 창문이 없는 붉은 칠을 한 건물은 도대체 어디에 사용된 건물일까? 대성전의 제향 때 사용되는 제기 등을 보관한 전사청 용도?

 

 

<북쪽 담장 너머로 본 거창향교 후면>

오른쪽에서부터 시계침 반대 방향으로 대성전, 전사청으로 추정되는 건물, 명륜당, 서재(西齋)이다. 벽에 붉은 칠을 한 건물 뒤편의 공간이 넓은 것으로 보아 원래 명륜당 뒤에 있던 대성전을 현재(사진상의 오른쪽)의 위치로 이동했다고 추정한다.

 

 

<거창 상림리 석조보살입상 입구>

바로 옆에 관음사란 절이 있고, 주변의 길은 좁은데다 막히고, 석조보살입상 소재지로 들어가는 입구가 민가 뒤에 틀어박혀 찾아가는 길이 약간 복잡하다. 석조보살은 사진 중앙의 골목길 끝나는 지점 바로 왼쪽에 있다.

 

 

<거창 상림리 석조보살입상 입구의 탱자나무와 탱자>

 

 

 

<거창 상림리(上林里) 석조보살입상>

지정 : 보물 제378호

소재지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미륵길 19-61(상림리).

화강암으로 만든 3.05m 높이의 관음보살입상은 배 위로 올린 왼손에 연봉오리다리 옆으로 내린 오른손에 정병(淨甁)을 가볍게 쥐고 팔각의 연화좌 위에 서 있다. 인체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는 석주형(石柱形) 신체는 어깨가 높고, 팔이 가늘고 길며, 가슴은 양감이 없어 밋밋하다. 정수리에는 큼직한 보계가 높고, 머리에는 별도의 보관(寶冠)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긴 얼굴에 침울한 인상, 두꺼운 목에 두 줄의 삼도(三道) 등 표현이 투박하고 세련미가 결여된 지방화의 모습이 역력하다. 나신의 상체에는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허리로 가로지르는 옷자락과 양 어깨에 숄처럼 천의를 걸쳤으며, 허리에는 치마를 입고 굵은 띠로 묶었다. 띠 옷주름 등의 특징은 통일신라시대의 보살상을 계승한 고려불상의 조형감을 보여준다.

이 상은 원래 인근 건흥사(建興寺)에서 봉안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경상도 지역에 남아 있는 고려불상으로는 규모도 크고, 우리나라 불교조각의 흐름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가치가 높다.   --현지 안내문--

 

 

<거창 상림리 석조보살입상을 사방에서 본 모습>

 

 

 

 

 

 

<거창 상림리 석조보살입상 앞의 패랭이꽃>

색깔이 연하고 수수해서 야생의 패랭이로 착각하기 쉬우나 원예종이다. 화려한 원예종 틈에서 색이 은은해서 역설적으로 눈에 잘 들어왔는데 서울한강공원 양화지구 생태순환길에서도 눈에 많이 띄었다.

 

 

<거창 상림리 석조보살입상 앞의 둥글레꽃>

 

 

<거창 상림리 석조보살입상 입구의 만개한 보리수나무꽃>

이렇게 촘촘하게 꽃이 핀 보리수나무는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이것도 원예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