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쿠바

멕시코, 쿠바여행18 - 멕시코 소칼로광장, 템플로 마요르,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큰누리 2018. 6. 1. 00:01

<멕시코, 쿠바 6>

1/16 저녁에 짐 분실로 인해 처음으로 약 복용을 못해서인지 수도 없이 자다 깨고 뒤척였다. 호텔 밖 바로 아래의 대규모 빌딩공사를 12시 가까이 해서 소음을 일으키더니 새벽엔 5시쯤 다시 공사를 시작하여 또 굴착기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우리 나라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뭐 이런 나라가 다 있지?

 

멕시코는 쿠바보다 1시간 느린 시차 때문에 칸쿤에서 쿠바 갈 때는 1시간 30, 쿠바에서 칸쿤 올 때는 30분 걸린다고 한다. 오늘의 주요 방문지는 멕시코시티 주변으로 테오티우아칸 유적, 소칼로광장(템플로 마요르), 과달루페대성당, 민예품시장이었다. 우리가 멕시코에서 들른 곳은 멕시코 원주민 유적과 스페인 식민통치기의 유적, 독립 이후의 근현대 볼거리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멕시코 원주민 관련 유적은 치첸잇사, 테오티우아칸, 소칼로광장의 템플로 마요르 유적, 토난친틀라 산타마리아 인디오 성당 등이었고, 스페인 통치기의 유적은 소칼로광장의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푸에블라 역사지구의 푸에블라대성당과 산토 도밍고 성당, 과달루페 성모 대성당, 촐룰라 치유의 성모 성당 등이었다.

현대적인 볼거리로 들른 곳은 차플테펙(Chapultepec : 멕시코 나우아틀어로 '메뚜기'란 뜻) 거리국립 멕시코인류학박물관, 누에바 플랑코의 수마야미술관 외관 및 카를로스 슬림 부동산 왕국, 원주민의  배를 개조해 만든 소치밀코 뗏목 투어 등이었다.

 

정복자 에르난데스 코르테스의 情婦 말린체(말린친)

700여명의 군대로 중남미 전역을 정복한 스페인의 에르난데스 코르테스를 도운 원주민 여인이다. 멕시코 원주민 부족 추장의 딸이었으나 어렸을 적에 버려져 노예로 팔려다니며 다양한 원주민의 언어를 익혔다. 정복전쟁 과정에서 패한 마야족이 공물로 보낸 노예 중의 1명으로 르테스 부하에게 바쳐졌지만 그 총명함이 알려져 코르테스가 차지했다. 도냐 마리아란 이름으로 기독교로 개종한 말린체는 처음에는 코르테스의 통역관으로 활동했다. 이후 총명함과 젊음으로 코르테스의 정부가 되었고, 코르테스는 말린체를 나의 혀로 부르며 총애했다. 둘 사이에서 스페인, 멕시코 최초 혼혈인 돈 마르틴 코르테스가 태어나고, 모자는 현재 멕시코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메스티소의 원조가 되었다. 

 

700여명의 스페인 군대가 아즈텍을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즈텍과 주변부족의 상태를 꿰고 있던 말린체의 공이 컸을 것으로 판단된다. 각 부족들의 약점을 알아내어 스페인 군대가 점령하기 쉽게 앞잡이 노릇을 했기 때문에 현재 멕시코인들은 그녀를  배신자의 대명사로 부른다. 반면 말린체가 정부 코르테스를 설득해 원주민 학살과 희생을 줄였다고 긍정적으판단하기도 한다. 

 1529년 코르테스가 스페인으로 돌아간 후 말린체(말린친)는 후안 하라미요라는 사람과 결혼하여 딸을 낳았다. 사망 연대는 불분명하다.

 

에르난데스 코르테스가 700명여의 군대로 아즈텍 제국을 멸망시킬 수 있었던 이유

♣ 첫째, 을 탄 스페인 정복자를 고대 전설 속의 케찰코와트(신, 깃털 달린 뱀) 비슷하다고 여겨 신이 보낸 사자로 오판을 했다. 

 둘째, 변변한 서양식 개념의 칼조차 없었기 때문에 총과 대포 등 불을 뿜는 신식 무기에 대항할 수 없었다. 중남미에는 말이 없었는데 커다란 말 위에서 칼과 불을 뿜는 총을 휘두르며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정복자들을 원주민들은 경외의 대상으로 오판한 것이다. 

 세째, 정복자들과 함께 들어온 천연두, 페스트, 홍역 등의 전염병이었다. 위 전염병에 한번도 노출되지 않아 면역성이 없었던 중남미 원주민들은 그야말로 떼죽음을 당했다.

기타 고대 전설, 내부의 반란을 교묘히 이용하였다. 아즈텍 제국은 52년마다 새로운 태양이 뜨므로 재물을 바쳐야 된다는 신앙 때문에 인신공양을 하기 위해 무리하게 주변 부족을 점령했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그 점을 이용하여 이간질하자 서로 싸우고 반란이 일어났다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거대한 대륙은 700여명의 말을 탄 정복자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멕시코시티에 대한 간단한 관광 정보≫

 멕시코시티의 대표적인 대중교통은 지하철200원, 빨간 2~3칸 짜리 메트로 버스는 500원으로 상당히 저렴하다. 하지만 최저임금은 8시간 당 90페소(5,000원 정도)로 소득이 낮다.

멕시코시티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지만 빈부격차가 심해 빈민들이 도시 외곽의 산꼭대기까지 무허가로 주택을 건축했다. 푸에블라나 테오티우아칸으로 나가는 길에 고속도로를  경유했는데 고속도로 주변의 주택은 언제나 알록달록한 포스트 잇을 붙여놓은 것 같았다. 그 집들은 완성형이 아니라 돈이 생기면 이어 짓는 진행형 집이라서 지붕, 옆구리에 철근 등 골조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벽에 보라, 초록, 분홍 등의 원색을 칠하고 고속도로의 방음벽 등 긴 벽면은 낙서 아트를 해 놓아 눈 맛이 즐거웠다.

  

Tenochtitlan(테노치티틀란)과 아즈텍 문명

'멕시코'란 명칭은 메시카 문명에서 유래했으며, 메시카는 아즈텍 문명 말한다이전 문명은 중앙 사막지역에서 발생한 올맥문명이다.

현재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시티 주변은 분지이지만 1591년에 스페인의 에르난 코르테스가 방문했을 때만 해도 텍스코코라는 이름의 호수가 넓게 자리 잡고 있었다호수 속에 떠 있는 섬 위에 도시가 존재했는데, 바로 아즈텍의 수도인 테노치티틀란이었다. 당시 멕시코 고원지방에 살았던 치치멕이라 불리는 수렵민족의 일부인 아즈텍족은 12세기 중반 고원 중부로 진출해서 14세기 무렵에는 아마카피츄틀 왕의 주도로 현재의 멕시코시티에 테노치티틀란을 건설했다테노치티틀란은 국왕을 정점으로 15~30만 정도의 주민이 살았던 멕시코 고원 최대 도시로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아즈텍과 사이가 나쁜 주변 국가들과 손을 잡은 에르난데스 코르테스는 테노치티틀란을 정복하고 장대한 고원 도시를 완전히 파괴해버리고 말았다그 후 새로운 정복자 스페인인들은 폐허가 된 테노치티틀란 위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면서 호수를 메워버렸다그 때문에 테노치티틀란은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역사 속의 도시로 잊혀지고 말았다.

1978년 공사 도중 조각을 비롯한 몇몇 유물들이 발굴되면서 전설로만 남아 있던 아즈텍의 대신전도 발견되었다이후 멕시코 고고학 연구소 주도로 대규모 발굴조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서 테노치티틀란에서 다수의 유물들이 발견되었다현재 테노치티틀란이 존재했던 곳은 멕시코시티 중심 구역이기 때문에 당시 유적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아즈텍 왕국은 대도시 주민들의 식량을 해결하기 위해 서쪽에 있는 담수지를 제방으로 막아 농지를 조성했다또 주민들에게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두 개의 수로를 놓아서 어느 한쪽이 청소를 하거나 보수 중일 때도 물을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습지를 메워서 건설한 도시였기 때문에 주민들은 청결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고 한다스페인인들의 기록에 따르면 도로는 정기적으로 청소를 했고, 쓰레기는 큰 배에 실어서 바다에 멀리 버렸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테노치티틀란 [tenochtitlan] 참조--

 

 

<멕시코시티 갈레리아 호텔의 조식>

멕시코에서는 외부식보다 호텔식이 차라리 나았다. 국제적이어서 덜 낯설고 예측할 수 있는 맛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올리브를 꽂은 작은 샌드위치와 과일, 오믈렛을 먹었다.

 

 

<레 포르마 도로의 멕시코 기념탑(천사탑)>

관광버스가 갈레리아 프라자호텔 뒷편의 길로 들어서면 우리나라의 광화문앞 도로처럼 넓고 기념물과 기념탑이 늘어선 레 포르마 도로가 있다. 단연 돋보이는 것은 1921년의 독립을 기념해 제작한 꼭대기에 금빛천사가 있는 멕시코 기념탑이다.

 

 

<레 포르마 도로의 콰우테모(멕시코 마지막 왕) 동상, 현대적인 분수와 말 동상>

콰우테모(멕시코 마지막 왕) - 현대적인 분수와 말 동상 - 예술의 전당 기능을 하는 예술의 궁전이 소칼로 광장까지 이어진다.

 

 

 

<예술의 궁전>

1921년 혁명으로 건설이 중단됐다 1930년 재개하여 완공되었다. 내부에 화려한 벽화, 전시물들이 있고, 규모도 생각보다 컸지만 우리는 외관만 스쳤다. 바로 앞쪽에 위치한 도로 너머의 구시가지는 유네스코문화재로 그 중심에 템플로 마요르와 그 유적을 살짝 짓누르고 세운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이 있다.

 

 

멕시코시티의 중심지 소칼로 광장

멕시코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광장으로 멕시코시티에서 문화유산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이다. 아즈텍 문명의 수도였지만 스페인 지배 후 신전, 유적 위에 성당 등 건물을 지어 눈에 띄는 유적이 없었다가 최근에 매트로폴리탄 대성당 주변에서 신전 터(템플로 마요르)가 발굴 중이다.

1571-1778년에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은 아즈텍 신전이 있던 곳을 허물고 템플로 마요르 유적 좌측에 건립되었다매트로폴리탄 대성당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성당으로 건축에만 240년이 걸렸다고 한다. 다른 남미의 성당처럼 천장이나 벽화는 따로 없고, 중앙제대 쪽 천장은 둥근 돔 형태이며, 중앙제대는 스페인 본토의 성당처럼 금으로 장식되어 화려하다. 

 

템플로 마요르(Templo Mayor)

템플로 마요르의 쿠클칸() 신전의 화산암으로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을 건립했다고 하니 템플로 마요르의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의 멕시코시티로 소칼로에 위치한 템플로 마요르는 아즈텍인에게 가장 중요한 사원이었다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의 중심인 북쪽 티오판 지구에는 티오카리라는 성역에 있었고, 그 안에 우리가 현재 템플로 마요르라고 통칭하는 유혈의 신전이 있었다남북의 길이는 84m, 동에서 서쪽으로 77m, 높이는 45m로 규모가 컸다.

사원에는 히칠로폭틀리, 틀라톡을 주신으로 모시고, 중앙의 첨탑에는 에헤카틀, 케찰코아틀 신을 모셨다신전 제단 위에서 인신공양을 했는데 신관은 희생자가 산 채로 심장을 꺼냈다고 한다아즈텍에서는 큰일이나 행사가 있을 때마다 산 제물을 바쳤기 때문 언제나 신전 주변에서는 도살장에서 나는 악취가 풍겼다고 한다.

Huitzilopochtli(히칠로폭틀리) 테노치티틀란 사원의 최고신이며 전쟁, 불과 태양의 신이다. Tlaloc(틀라록)비와 번개, 농업의 신으로 별도의 계단이 있는 피라미드 꼭대기에 모셨다. 중앙에 있는 첨탑에는 바람의 신이면서 대지, 하늘, 인류를 창조한 Ehecatl(에헤카틀)과 뱀 형상의 지혜의 신케찰코아틀(Quetzalcoatl)을 모셨다.

--[네이버 지식백과] 테노치티틀란 [tenochtitlan] 참조--

 

템플로 마요르는 아직도 발굴 중인데 소칼로 광장의 중심인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아래 구간에 묻혀 있는데다 주변에 대통령궁 등 워낙 주요건물이 있어서 발굴 한계가 명확한데 얼마나 제 모습을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멕시코시티는 지진이 잦고 2,300여m의 고산지대임에도 불구하고 호수를 매립한 곳이라 지면이 기운 곳이 많다광장의 멕시코 국기는 독수리가 선인장을 물고 있는 것을 발견한 장소로 도시 건립의 중심이 된 곳이다멕시코 대통령궁은 사진 왼쪽 뒤쪽에 있다.

 

나랑 비슷한 시기에 멕시코를 여행한 지인은 멕시코에 대해 ***멕시코항공의 실수로 짐을 잃은 나 만큼이나 여러 면에서 치를 떨었다. 짐 잃은 것은 기본이고, 그 중 가장 불쾌해 했던 부분이 이 소칼로 광장에서의 환전이었다는데 500달러라면 우리 돈으로 55만~60만원 정도이다. 크다면 크고, 여행 길에 흔쾌히 풀 수도 있는 금액인데 위조지폐로 환전을 해 주고 따지는 지인에게 나 몰라라로 일관했던 부분에 대해 점잖은 그 분은 소칼로에서는 가능하면 환전을 하지 말고, 부득이하게 하려거든 지폐를 꼼꼼히 확인하라는 전달을 내게 여러 번 부탁했다.

 

 

<멕시코시티 소칼로(중앙광장)>

 

 

<템플로 마요르의 쿠클칸() 신전의 화산암으로 세운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정면에서 측면으로 돌며 본 모습>

양식은 스페인의 영향을 받았지만 멕시코 성당이나 건축은 기본적으로 석재가 다르기 때문에 느낌도 다소 다르다. 규모는 크게 밀리지 않으며 스페인 성당의 외관을 약간 단순화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내부는 스페인 성당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화려한 황금제대와 몇 개의 큰 제대, 입구 양쪽으로 늘어선 작은 카필라들(개인성당, 기도소)... 다른 점이라면 귀중한 보물의 집약체인 성체현시대를 못 보았고, 천장이 단조롭다는 것이다.

 

 

 

 

<소칼로 메트로폴리탄대성당 측경>

붉은색을 띤 왼쪽 부분이 앞쪽이다. 사진 앞쪽의 철책 안쪽 아래에 발굴 중인 템플로 마요르 유적이 있다.

 

 

<소칼로 메트로폴리탄대성당 정면 바닥의 원주민 유적>

 

 

<소칼로 메트로폴리탄대성당 앞의 아즈텍의 수도 Tenochtitlan(테노치티틀란) 모형도>

미니어처 오른쪽 아래쪽의 신전이 템플로 마요르 관련 부분이다. 당시의 방대한 도시 규모를  짐작할 수 있으며, 현재 메트로폴리탄 대성당과 템플로 마요르의 관계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소칼로 메트로폴리탄대성당 앞의 아즈텍 문명 템플로 마요르를 확대한 것>

내 판단에 정면 뒤쪽 중앙을 제외한 유적은 모두 없어지고, 왼쪽 유적 일부를 발굴한 것이 현재 모습인 것 같다.

 

 

<소칼로 템플로 마요르 유적 발굴현장 사진>

 

 

<소칼로 템플로 마요르 유적 발굴현장>

이후 멕시코 원주민 유적에서 본 케찰코아틀(깃털 달린 뱀), 계단, 신전  터, 좌우 배치 등을 미리 볼 수 있다.

 

 

 

<소칼로 템플로 마요르 옆에 건립된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다신교 아즈텍 신전이 있던 곳을 허물고 신전의 화산석으로 지은 가톨릭 대성당이다. 외부장식도 섬세하지만 내부장식은 스페인을 연상시킬 정도로 화려하고 정교했다. 특히 화려한 제단장식, 개인성당(기도처)인 카필라(경당)는 구조가 비슷해서 반갑기조차 했다.

 

 

<소칼로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정면제대쪽에서 본 천사상과 카필라들>

 

 

<황금으로 장식된 소칼로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정면제대과 앞의 예수상>

기독교의 원조인 서양에서 본 것보다 훨씬 더 비극적인, 혹은 비참한 모습의 예수상이다.

 

 

 

<제2의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제대>

 

 

<소칼로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파이프오르간 아래 장식> 

 

 

<소칼로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파이프오르간과 아래 장식>

 

 

<제3의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제대>

 

 

<제4의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제대>

 

 

<제3의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벽면 장식>

과달루페 대성당에 안치된 성모상 사진이 중앙에  걸려있다.

 

 

<제3의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제대>

 

 

<제3의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의 개인 성당(기도처)인 카필라>

 

 

<멕시코시티 외곽>

이 즈음부터 벽화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우리나라보다 수준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속도로 진입 후 때깔만 화려한 양쪽의 빈민촌들>

멕시코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지만 빈부격차가 심해 빈민들이 도시 외곽의 산꼭대기까지 무허가로 주택을 건축했다. 푸에블라나 테오티우아칸으로 나가는 길에 고속도로를  경유했는데 고속도로 진입로 주변은 언제나 알록달록한 포스트 잇을 붙여놓은 것 같았다. 산꼭대기의 집은 완성형이 아니라 돈이 생기면 이어 짓는 진행형 집이라서 천장, 옆구리에 철근 등 골조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벽에 보라, 초록, 분홍 등의 원색을 칠해서 멀리서 보면 나름 운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