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여행 2일 (8/1-1)>
보스포러스 해협과 아타튀르크 무스타파 케말파샤 터키 초대 대통령.
5-6-7 (5시 기상, 6시 식사, 7시 버스 출발)이었으나 6명 탑승 정원인 엘리베이터 고장으로 내려 오는데만 20분 이상 걸려 출발이 지연되었다. 첫번째 일정은 보스프로스 대교를 건너 유럽쪽 이스탄불로 가서 크루즈로 보스포러스 해협을 통과하며 아시아쪽, 유럽쪽 이스탄불 관람하기였다. 남은 일정은 배에서 내린 후 톱카프 궁전, 블루(술탄 아흐멧) 모스크 관람 후 점심을 먹고 사프란 볼루 대신 베이파자리市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보스포러스 해협 크루즈에 승선한 후 선상에서 아시아, 유럽을 이어주는 보스포러스 대교, 갈라타 대교 등을 보았다. 다리 아래를 통과한 것은 마지막 전날 야경을 관람한 갈라타 대교였고, 가까이 보인 현수교는 골든 혼이라 불렀는데 정식명칭은 보스포러스 대교가 아닌가 싶다.
<이스탄불>은 인구 1,500만의 터키 최대 도시, 경제의 중심지라는 점 외에 고대와 현대,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역사도시이기도 하다. 보스포러스 해협을 중심으로 유럽과 아시아로 나뉘며, 보스포러스 북쪽에는 흑해, 남쪽에는 마르마라해(에게해)가 있다. 유럽쪽은 구 도심으로 하기야 소피아, 블루(술탄 아흐멧) 모스크, 야경의 제왕 술레마니에 모스크, 톱카프 궁전(박물관) 등이 있다. 아시아쪽은 신 도시로 갈라타 탑, 돌마바흐체 궁전, 탁심광장 등이 있다. 새파란 보스포러스 해협을 배경으로 바다 양쪽으로 늘어선 이스탄불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풍경은 여타의 도시와 비교하기 힘든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
<보스포러스 해협 (Straits of the Dardanelles and the Bosphorus>
보스포러스는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위치한 해협으로 흑해와 마르마라해(에게해)를 연결하고 있다. 길이가 약 30km, 넓은 곳의 폭이 3500m, 좁은 곳이 700m로 물 흐름이 세고 소용돌이 치는 곳이 많다. 고대, 중세만 해도 지중해와 흑해간의 대부분의 무역은 이 해협을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으며 현재에도 매년 38,000여척의 배들이 이곳을 통과한다.
♣ 보스포러스 해협을 통과하는데는 몇 가지 조건이 있으며, 평상시와 전시로 구분되어 있다.
- 평상 시엔 모든 나라의 15,000톤에 9대까지 모든 상선이 통과할 수 있고
- 흑해 주변국은 위와 관계없이 통과할 수 있으며
- 전시, 터키와 교전 중인 국가에 대해 터키는 적대국의 군함이나 배의 통과를 막을 수 있는 권한이 있다.
-------------------------------------------------------------------------------------------------------------------------
<터키 초대 대통령이자 국부 아타투르크 무스타파 케말파샤>
케말파샤는 '완벽한 장군' 이란 의미이며 터키 초대 대통령으로 국부로 불린다. 이전에 그리스땅이었던 데살로니카 출신으로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형편이 어려워지자 비석을 보고 글을 터득했다. 어머니가 아들의 앞날을 위해 재혼하면서 형편이 풀렸다. 수학선생님과 무스타파란 이름이 같았는데 선생님이 수학을 완벽하게 한다하여 무스타파 케말로 바꿔 불렀다. 사관학교 졸업 후 절대권력을 쥐고 있던 황제로부터 자유를 부르짖다 변방으로 쫓겨났으나 그 때 강력한 사병을 양성했다. 1차 세계대전 발발 후 황제에게 중립을 주장했으나 돌마바흐체 궁전을 짓느라 독일에 진 부채가 많았던 황제는 그 빚을 탕감받는 조건으로 독일,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고 참전했다. 1923.10. 오스만 투르크의 황제를 폐위시키고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아타투르크 무스타파 케말파샤의 업적은
♣ 그리스군과 전투에서 패한 후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다른 모든 지역을 포기하고 3%의 유럽쪽(보스포러스해협)만 소유하는 현명한 판단을 했다. 그 3%의 유럽쪽 땅(이스탄불)은 터키의 관광명소가 되었으며, 열망하던 유럽의 일원이 되는 근거가 되었다. 100년간 평화협정 기간은 100년으로 현재 5년이 남은 상태이다.
♣ 이슬람을 국교에서 해제 시키고 일부다처제를 폐지시켰으며,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고, 자신의 성을 만들게 하고(이전엔 가족 이름을 앞에 줄줄이), 이슬람력을 태양력으로 바꾸고, 독일어, 영어를 차용하여 현재의 터키문자 만들었다.
♣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57세에 병으로 별세했다. 터키의 국기가 빨간색인 것은 케말 파샤가 마지막으로 영국군과의 해전에서 죽어간 용사를 기리기 위해 만든 것이다. 친구 이녀뉴에게 대통령직을 넘겨주면서 2차 대전에 참전하지 말 것과 자신을 위한 영묘를 못 만들게 했지만 후에 국민들이 15,000평 규모의 영묘를 만들었다. 그는 죽을 때 자신을 지원한 지주들 때문에 토지개혁을 못한 점을 후회했다고 한다.
♣ 무스타파 케말을 욕하는 자는 5년의 징역에 처하는 법을 제정했다고 하니 아타튀르크 무시타파 케말파샤에 대한 국민들의 깊은 존경심을 알 수 있다.
---------------------------------------------------------------------------------------------------------------------
2차 세계대전 때 중립을 지킨 이유로 미, 영에게 왕따를 당했으나 1950년 한국전쟁 때 미, 영에 이어 세번째로 큰 규모로 참전하면서 관계가 개선되었다. 마르마라 해협 민스키다라에서 배로 출발하여 25일만에 한국에 도착하여 6.25때 참전했으며, 700명이 몰살 당하며 중공군 저지에 크게 기여했다.
<간단한 터키 인사>
♣ 카르데시! (피를 나눈 형제여!). 자신의 부모가 6.25때 죽었기 때문에 부모가 묻힌 나라이므로 형제라는 논리. 시신을 못 가져온 이유는 이슬람교에서 매장만 인정하기 때문에 부산의 터키군 묘역에 안장되었다.
♣ 싸울! (고맙습니다!)
♣ 메라바! (안녕하세요!)
♣ 귀나이덴! (아침인사)
♣ 오케이는 따봉(손가락 표현)으로 표현.
♣ 강한 거절은 '쯧' (혀 차기)
♣ 사우나나 하맘을 할 때는 남녀공용이므로 반드시 수영복 착용할 것.
<이스탄불 QUA호텔 창으로 본 새벽 풍경>
<이스탄불 QUA호텔 로비>
<이스탄불 QUA호텔 1층 식당>
치즈, 떠먹는 요거트, 야채, 과일 등 대체로 풍성하며 유제품과 과일, 야채류는 어느 호텔이나 풍성했다. 이번 여행에서 호텔식은 대체로 괜찮았고, 바깥 식당에서 먹은 식사는 내용물이 빈약하고 맛이 없어서 실망스러웠다.
<이스탄불 QUA호텔의 아침 식단>
<유럽 최대의 이스탄불 버스 터미널>
이 터미널에서 시리아로 건너가 lS로 넘어간 김군 때문에 한국인은 버스를 탈 수 없고, 비행기로만 이동 가능하다고... 이 터미널 외에 이스탄불에서 출발하여 이집트 카이로까지 이어지는 오리엔탈 특급 기차역도 있다.
<이스탄불 보스포러스 해협 크루즈 승강장>
터키 여행에서 3번의 크고 작은 배를 탔다. 이스탄불, 안탈리아에서 소형 유람선을, 트로이(아이볼릭)에서 게리볼루로 이동할 때 비교적 큰 여객선을 탔다.
--------------------------------------------------------------------------------------
--이하 사진은 이스탄불 보스포러스 해협 크루즈에서 촬영한 것---
<골든 혼(보스포러스대교)>
<이스탄불 보스포러스 해협 크루즈 출항지>
<술레마니에 모스크>
성 소피아 성당과 블루 모스크를 합쳐 놓은 것 같은 모스크로, 외관도 아름답지만 갈라타 브리지(대교)에서 이곳을 배경으로 보는 야경은 환상적이다.
<갈라타 브리지(대교)와 블루(술탄 아흐멧) 모스크>
블루(술탄 아흐멧) 모스크는 유명세와 달리 내부는 단조로웠고, 외부도 공사 중이라 어수선해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터키 관광 포인트 중 하나였다.
<터키 국기와 갈라타 브리지(대교)>
<갈라타 브리지와 블루(술탄 아흐멧) 모스크>
갈라타 대교는 배가 통과하는 중앙의 1/3 정도를 제외하고 다리 아래 양쪽으로 상가가 있어서 관광객에게 인기가 높다. 다리는 건너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그 아래가 상가나 관광지가 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우리는 마지막 밤에 이곳에서 보스포러스 해협을 낀 이스탄불의 환상적인 야경을 즐겼다. 다리 위는 낚시꾼들로 붐빈다.
<갈라타 브리지와 유럽쪽 이스탄불(구 도심)>
<갈라타 브리지 아래에서 본 술레마니에 모스크>
<갈라타 브리지를 통과한 후 본 블루(술탄 아흐멧) 모스크>
지상에서 보는 것보다 이곳에서 보는 것이 블루(술탄 아흐멧)모스크 전체를 파악하는데 더 도움이 된다.
<성 소피아사원(아야 소피아, 하기야 소피아)>
현재 용도는 성 소피아성당박물관이다. 성 소피아성당박물관 옆의 비슷한 느낌의 건물이 상당히 유명한 지하성당 수로박물관이었던 것 같은데 당시엔 전혀 몰랐다.
<성 소피아성당과 톱카프 궁전>
고대 유적이 많은 성 소피아성당박물관 쪽은 구 도심(유럽쪽) 이스탄불이다. 성 소피아 성당 왼쪽 무성한 숲속(두번째 사진 유람선 뒤쪽)에 톱카프 궁전박물관이 있다. 톱카프 궁전은 우리나라의 창경궁, 19세기에 독일에 빚을 지어가며 신 도심(아시아쪽 이스탄불)에 지은 돌마바흐체 궁전은 경복궁 같은 느낌이었다.
<블루(술탄 아흐멧) 모스크와 술레마니에 모스크>
두 모스크는 이스탄불 보스포러스 해협의 크루즈 - 갈라타 브리지를 중간에 두고 양쪽에 있다.
<블루 모스크(구 도심, 유럽)쪽 이스탄불>
<신 도심(아시아)쪽 이스탄불>
아래 건물은 골든 혼(대교) 근처에 있으며 신 도심쪽 건물 중 돌마바흐체 궁전의 1/2 정도 되는 큰 건물인데 용도나 이름을 모르겠다. 대학이나 도서관 같기도 하고, 국립병원 같기도 하고...
<신 도심쪽 대형 쇼핑센터, 돌마바흐체 궁전 모스크와 시계탑>
시계탑 오른쪽에 돌마바흐체 궁전이 있고 궁전은 바다를 따라 길게 이어진다.
<신 도심(아시아)쪽 돌마바흐체 궁전>
<신 도심쪽 대형 쇼핑센터, 돌마바흐체 궁전>
앞의 유람선은 우리가 탄 것과 같은 배로 뒤편에 돌마바흐체 궁전이 가려져 있다.
<신 도심(아시아)쪽 이스탄불>
오른쪽 끝의 고층건물은 쇼핑센터인데 유람선에서 본 건물 중 가장 높았다.
<마르마타 대교(?)와 군함>
골든 혼(다리) 근처에서 유람선을 타고 돌마바흐체 궁전 앞쪽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동안 모두 3개의 다리를 보았다.
<이스탄불 신 도심(아시아쪽)과 터키 국기>
여행 내내 엄청난 규모, 엄청난 양의 크고 작은 터키 국기를 볼 때마다 빨간 바탕과 별 때문에 사회주의 국가 국기가 연상되었다. 초승달은 이슬람교를 상징한다. 터키는 정말 국기를 사랑하거나 국기 게양을 좋아하는 나라이다! 멀리 갈라타 탑이 보이고, 해변의 간판(!)이 파란 물과 어울려 아름답다.
<이스탄불 신 도심(아시아쪽)과 갈라타 탑>
과거에는 감옥이었고, 현재는 전망대로 사용된다고 한다. 갈라타 탑의 정확한 존재와 용도, 신 도시를 대표하는 건물이라는 것은 사진정리를 하면서 알았다. 갈라타 탑 근처에 탁심광장이 있고, 1875년대에 개통된 1정거장 짜리 지하철(튀네르)이 있다.
<갈라타 브리지(대교)와 이스탄불 구 도심(유럽쪽)>
<이스탄불 보스포러스 해협 골든 혼>
인도와 차도가 있는 갈라타 대교와 달리 이 현수교는 기차 전용 다리인 듯 하고, 마침 열차가 지나는 중이다. 배에서 내린 후 톱카프 궁전, 블루(술탄 아흐멧) 모스크 관람, 점심을 먹고 베이파자리市로 이동했다.
'터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터키 여행6. 베이파자르 구시가지와 시장, 나스콘 사피레 온천호텔 (0) | 2018.10.18 |
---|---|
터키 여행5. 이스탄불 블루(술탄 아흐멧) 모스크, 히포드롬 터의 오벨리스크 (0) | 2018.10.14 |
터키 여행4. 우리나라의 창덕궁 같은 이스탄불 톱카프궁전(Topkapi Palace) (0) | 2018.10.10 |
터키 여행2. 이스탄불 그랜드 바자르, 누루오스마니에 모스크, QUA호텔 (0) | 2018.10.03 |
터키 여행1. 기본정보 및 기념품, 쇼핑품목 (0) | 2018.09.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