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터키 여행26. 이스탄불 성 소피아성당 박물관(Ayasofya Museum)

큰누리 2018. 12. 3. 23:10

<마지막날(8/7) 일정3>

5 - 6 - 7:15 출발폴리코사놀, 주엽나무 열매, 장미오일, 기념품 쇼핑- 돌마바흐체 궁전 관람- 성 소피아성당 박물관 관람공항으로 이동하여 출국.

 

<아야소피아 박물관(Ayasofya Museum, Ayasofya Camii Müzesi) 略史>

성 소피아 성당의 정식명칭은 아야소피아 박물관(Ayasofya Museum)이다AD 313년 기독교를 최초로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325년에 콘스탄티노풀(현재의 이스탄불)에 세운 성당인데 화재로 소실되었고532~537년까지 5년 동안 유스티아누스 황제(유스티니아누스 1, Flavius Petrus Sabbatius Iustinianus, 483-565, 재위 527-565)10만 명을 동원해 콘스탄티노플 대성당(cathedral of Constantinople)이란 이름으로 재건했다.

AD 762 서로마 제국과 동로마제국이 분리되자 하기야 소피아성당은 그리스 정교회의 총본산이 되었고, 황제의 의식이 치러지는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1520년 스페인의 세비야 성당(Seville Cathedral)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이 완성(1590)되기 전까지 1000년 동안 세계 최대의 성당이자 비잔틴 예술의 최고걸작이었다.

 

1453콘스탄티노플 오스만 제국 메흐메드 2세에 정복 당하면서 성 소피아 성당은 모스크로 그 용도가 바뀌었다성당 밖에 4개의 미나레트가 세워지고, 성당 내부 벽의 성화 모자이크는 회칠로 덮였으며 그 위에 쿠란 글귀와 식물무늬들로 덧칠되었다1935 아야소피아 박물관(Ayasofya Museum)으로 정식 명칭을 바꾸면서 복원작업이 진행되었다. 두꺼운 회칠이 벗겨지면서 비잔틴시대의 화려한 금 조각으로 만든 모자이크 벽화들이 흔적을 드러났다1935년 이후엔 내부에서 일체의 종교적 행위가 금지되었다.  

 

하기아 소피아(Hagia Sophia)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로 신성한 지혜(Holy Wisdom)’를 의미한다유스티아누스황제에 의해 대대적으로 재건될 당시 로마의 아치, 동양의 돔 지붕, 모자이크 기법이 적절히 혼합되어 비잔틴 예술의 정수를 만들어냈다. 1453년 비잔틴제국을 점령한 오스만제국의 술탄 메흐메드 2세는 성 소피아 성당을 파괴하지 않고 이슬람사원으로 개조해서 사용하도록 했다.

  

< 하기아 소피아 박물관(Hagia Sophia, Ayasofya Museum)의 내부>

본당의 넓이는 7,570 평방미터, 천장높이는 55.6m, 돔의 지름은 33m이며, 40개의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오는 구조로 밖에서 본 아기자기함과 달리 웅장하다1층은 남성, 2층은 여성들이 예배장소였기 때문에 황후가 탄 가마가 올라갈 수 있도록 계단 대신 나선형으로 돌며 올라가게 되어 있다얼마나 올라다녔는지 나선형 돌바닥은 움푹 파이고 반들거린다. 황후의 좌석은 2층 중앙제단 맞은편으로 바닥에 원형 표시가 되어 있다.    

아야소피아 박물관의 하이라이트는 2층 (통로) 갤러리에 있는 모자이크 성화로 회칠로 가려졌던 모자이크를 30여 년간 복원한 결과물이다금박 모자이크 성화들은 복원하다 현재 중단된 상태인데 비잔틴 제국 500년과 이후의 이슬람 사원으로서의 긴 역사를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진이나 방송에서 보기에는 모자이크 성화가 꽤 될 것 같은데 모자이크 성화는 제단 중앙의 성모자상을 비롯해 모두 5개 밖에 없었다. 더 있는데 이슬람 부분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발굴(!)을 멈춘 것인지 9세기 경의 성상 파괴운동 때 이미 훼손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모자이크화보다 비잔틴 양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아치형 회랑들과 대리석 기둥상인방과 천장에 그린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노랑, 파랑의 거친 식물장식이 눈에 들어왔다화려하고 아기자기한 대리석 기둥과 섬세한 기둥머리 장식은 비잔틴 양식, 그 위를 덮은 노랑 바탕 위의 식물무늬 장식은 이슬람 양식이다기둥 외에 바닥, 벽도 다양한 무늬의 대리석들로 장식되어 있었다2층을 떠받치는 30여개의 대리석 기둥은 셀주크의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빼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황금칠 바탕이 배경인 중앙천정의 성모상 아래에 미흐랍이 있고, 그 앞쪽 4곳에 이슬람 선지자들의 이름을 날렵한 필체로 쓴 검은 대형 원형 현판의 글씨가 있다천장의 중앙에도 쿠란의 글귀가 적혀 있다크기로만 보면 대형 원형판의 이슬람 문자와 원래 성당에 회칠을 하고 그린 노란 바탕에 파란 식물무늬가 눈에 띄지만 중앙제대 2층의 갤러리의 모자이크화들과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갈색 벽돌과 대리석으로 만든 통로들, 아름다운 대리석 기둥과 기둥머리의 섬세한 장식들은 비잔틴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만나 조화를 이룬 흔적이기도 하다.  

 

성 소피아 성당은 지진 발생 시 대피소로 이용되지만 기둥 4개로만 유지되는 중앙 ()에 문제가 생기면 건물 전체가 무너지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50분의 시간이 주어져 개인 관람을 했다생각보다 사원이 넓고 부분적으로 막힌 곳이 있는데다 군데군데 볼거리가 너무 많아 성당의 하이라이트인 2층 갤러리를 찾는데 애를 먹었다2층 서편 창으로 블루 모스크가 보였는데 오스만의 술탄이 하기야 소피아보다 큰 모스크를 짓고자 세운 것이고, 그 때문에 큰 정원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하고 있다블루 모스크는 푸른 색: 회색인데 비해 성 소피아성당은 전체적으로 붉은 색이고, 여러 겹씩 아치형의 창이 겹쳐 있는 독특한 구조였다.

 

 

<성 소피아 성당(Hagia Sophia) 모자이크화>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오스만투르크의 술탄 메흐메트 2세는 아름다운 성 소피아 성당을 없애지 않고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하는 대신 종교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벽의 모자이크화를 회칠을 하여 덮었다1935년부터 1cm 정도 되는 회칠을 긁어내고 모자이크화 일부를 복원하였다. 우리가 예상한 것 만큼 수가 많은 것이 아니고 예술적인 가치를 무시하고서도 작품 모두 충분할 볼거리와 이야기가 담겨있다.

 

♣ 1층 출입문(황제의 문) 위쪽 모자이크는 예수상을 중심으로 왼쪽 원은 성모(Virgin Mary), 오른쪽 원은 대천사 가브리엘(Archangel Gabriel), 예수 발밑에 엎드린 사람은 레온 6(Leon , 886~962)나 바실 1(Basil , 867~886)로 추측된다.

♣ 2층 갤러리의 휘장 뒤 모자이크는 가려져 못 보았다. 안내문에 의하면 10세기에 제작된 알렉산드로스 황제(The Emperor Alexsandros) 초상이라고 한다.

♣ 2층 서쪽 첫 번째의 반만 드러난 모자이크는 13세기에 제작된 <Deisis, Intercession(청원)이다. 비잔틴 시대 최고 걸작으로 꼽히며,  성모 마리아와 세례자 요한이 고개를 숙이고 손을 내밀어 전 인류의 사면을 청원하는 중재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 2층 중앙제대 앞쪽의 예수를 안은 성모와 2 콤네노스 황제 가족 12세기에 제작되었다봉헌하는 존2세 콤네노스(JohnKomnenos) 황제와 이레네(Eirene) 황후, 아들 알렉시오스(Alexios)의 초상이다.   

♣ 2중앙제대 뒤쪽의 모자이크는 11세기에 제작되었다. 그리스도와 여(황)제 조에(Zoe), 그녀의 세 번째 남편 콘스탄틴 9세 모노마쿠스(Constantine Ⅸ)의 초상이다. 헌금 기부자 명단을 든 조에 황제와 봉헌물을 든 남편,  왼손에 성경을 들고 오른손으로 두 사람을 축복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이스탄불 성 소피아성당 박물관(Ayasofya Museum) 외관>

두 번째 사진의 붉은 돔들은 박물관 안내도로 보아 술탄 셀림 2세, 메흐메드 3세의 영묘가 아닐까 추측되지만 확실하지 않다. 맞은편의 블루 모스크(술탄 아흐멧 모스크)가 회색과 푸른 색이라면 아야소피아(성 소피아)박물관은 상대적으로 분홍색 외관이어서 구분이 쉽다. 성 소피아 박물관부터 맞은편의 블루 모스크에 이르기까지 꽃분홍색의 배롱나무를 심은 것이 인상적이다.

  

 

 

<이스탄불 성 소피아성당 박물관(Ayasofya Museum) 왼쪽의 출입구 방향>

사진 왼쪽 끝에 매표소가 있다.

 

 

<이스탄불 성 소피아성당 박물관(Ayasofya Museum) 입구의 샘>

황금색 구조물을 아래에 수도가 있는 것으로 보아 사원 입장 전 손을 씻는 곳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추측이 맞다면 블루 모스크(술탄 아흐멧 모스크)의 같은 장치에 비해 엄청 사치스럽다.

 

 

<이스탄불 성 소피아성당 박물관(Ayasofya Museum) 입구>

입장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사진 왼쪽에 초창기 비잔틴 성당이었을 때의 유적일 성 싶은 기둥들이 보인다. 

 

 

<이스탄불 성 소피아성당 박물관(Ayasofya Museum) 배치도>

 

 

<이스탄불 성 소피아성당 박물관(Ayasofya Museum) 출입구(황제의 문)쪽의 버팀목>

 

 

<이스탄불 성 소피아성당 박물관(Ayasofya Museum) 1층 복도>

아래 사진처럼 벽돌로 꾸민 쪽과 대리석으로 꾸민 쪽, 2개로 나뉜다. 두 번째 사진은 대리석으로 꾸민 중앙 출입문(황제의 문) 쪽이다. 중앙 출입문 주변은 바닥과 벽이 다양한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고, 천장은 화려한 금색 바탕에 식물무늬를 그려넣었다.

 

 

 

<성 소피아성당 박물관(Ayasofya Museum, Hagia Sophia) 1층 중앙 출입문(황제의 문)>

1층 중앙 출입문(황제의 문)과 그 너머의 모습이다. 성 소피아 성당 박물관의 가장 중앙이며 문 너머로 중앙제대 위 천장의 성모자상, 메카를 향한 미흐랍이 보인다.

 

 

<성 소피아 성당(Hagia Sophia) 1층 출입문(황제의 문)의 모자이크 성화>

화려한 금박 바탕에 예수상을 중심으로 왼쪽 원은 성모(Virgin Mary), 오른쪽 원은 대천사 가브리엘(Archangel Gabriel), 그리스도 발밑에 엎드린 사람은 레온 6(Leon , 886~962)나 바실 1(Basil , 867~886)로 추측된다중앙 돔의 성모자상 부분과 더불어 장식이 가장 화려한 곳이다.

 

 

<성 소피아성당 박물관(Ayasofya Museum, Hagia Sophia) 1층 내부 중앙>

성당 안을 두루 볼 때 가장 인상적인 것 중의 하나가 공중에 꽃처럼 떠있는 등불(전기불)이다. 특히 2층에서 내려다보면 무척 아름답다! 천장, 중앙 돔과 성모자상, 미흐랍, 천사 날개 4개, 작은 돔들을 모두 볼 수 있는 위치이다.

확인은 못했지만 안내도로 보아 오른쪽의 휘장 안은 큰 원을 30개씩 작은 원이 둘러쌌다는 비잔틴제국의 심장부일 것이다. 오푸스 알렉산드리움(Opus Alexandrium)이라 불리며 황제의 대관식, 중요한 셰례식이 성당 안 이곳에서 열렸다고 한다.

 

 

 

<성 소피아성당 박물관(Ayasofya Museum, Hagia Sophia) 중앙 천장>

성당이었을 땐 우리가 상상하는 웅장한 성화가 그려져 있음직 하다. 현재의 모습은 중앙 천장의 성모자상과 사방의 천사날개(1개만 얼굴이 일부 보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모스크 모습이다. 특히 천사의 날개가 사방에서 둘러싼 초록색을 띤 대형 돔의 중앙엔 금색으로 쿠란 글귀가 있다.

 

 

 

<성 소피아성당 박물관(Ayasofya Museum, Hagia Sophia) 왼쪽(동쪽)과 오른쪽(서쪽)>

1층 중앙에서 좌우로 본 것으로 윗 사진은 왼쪽(동쪽), 아래 사진은 서쪽(오른쪽)이다.

 

 

 

<성 소피아성당 박물관(Ayasofya Museum, Hagia Sophia) 중앙 출입문(황제의 문)을 안쪽에서 본 모습>

다양한 대리석으로 꾸며 중후하면서도 아름답다. 이 부분은 이슬람 모스크로 용도가 바뀔 때 손을 안 댄 부분일 것이다.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하면서 덮은 식물장식을 뚫고(!) 드러난 비잔틴 시기의 십자가>

 

 

<성 소피아성당 박물관의 계단을 대신하는 비탈길>

성 소피아성당 박물관은 돔을 제외하고 2층이지만 현대식 층고로 따지면 5층에 해당하는 높이라고 한다. 2층은 여성들의 예배공간이었기 때문에 황후를 태운 가마가 오르기 편하도록 계단 대신 경사로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경사로에 비친 벽돌과 외광의 강렬한 붉은색, 반질거릴 정도로 닳은 바닥돌이 인상적이었다.

윗사진은 성 소피아성당 박물관 2층으로 오르는 길이고, 두 번째 사진은 내려오는 길이다. 차곡차곡 쌓아올린 벽돌, 반질반질한 바닥돌, 완만한 경사, 창문 모두 인상적이었다.

 

 

 

 <갤러리로 불리는 성 소피아성당 박물관의 2층 복도(회랑)>

모스크로 바뀌면서 도색을 하고 식물무늬를 그린 것인데 칠이 벗겨지고 상태가 많이 나쁘다. 2층 복도(회랑)을 통째로 갤러리라 칭하는데 그걸 모른 채로 올라갔다가 모자이크화를 찾느라 한참을 헤맸다. 주어진 50분이란 시간이 너무 짧은데다 사전에 전혀 조사를 하지 않아 많은 것을 놓쳤고, 그 사실도 사진정리를 하면서야 알았다.

 

 

 

 <성 소피아 성당 박물관 2층의 기둥과 아치에 그린 아라베스크 무늬>

아치의 단면과 안쪽의 검정 바탕에 그린 무늬가 엉망으로 퇴색이 되었음에도 장엄한 느낌이 있다. 장례장 분위기가 물씬 나지만... 

 

 

 <지붕의 돔을 받치는 유스티아누스 황제 이니셜이 투각된 기둥머리>

두 번째 사진의 기둥머리 투각장식(아칸서스 잎) 중간의 원형에 유스티아누스 황제 이니셜이 있다. 성 소피아성당을 대대적으로 증축한 황제로 이니셜은 1개가 아니라 여러 개 있었던 것 같다. 윗사진과 아래 사진의 사이에 황후가 앉아서 예배를 본 자리(2층 오른쪽=동쪽 앞)가 있고, 그 자리는 원형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나는 그것을 놓쳤다. 위치 추정은 공사 중인 골조를 보고 판단한 것이다.

 

 

<2층 중앙에서 본 성 소피아 성당 박물관(Ayasofya Museum) 중앙제대>

위에서부터 중앙천장의 쿠란 글귀, 중간 작은 돔의 성모자상, 미흐랍이다. 중간에 4개의 천사상 중 유일하게 얼굴이 드러난 천사가 제대로 보인다. 정중앙의 미흐랍 앞 오른쪽 계단과 이어진 작은 문은 민바르(Minbar)라고 부르며 예배를 마친 후 이맘이 설교하는 곳이다. 오른쪽 아래의 휘장을 친 부분은 비잔틴 시기에 황제 즉위식 등 중요한 행사를 한 오푸스 알렉산드리움(Opus Alexandrium)이다.

 

 

<성 소피아 성당 박물관(Ayasofya Museum) 2층의 Gallery>

2층에서 볼 수 있는 황후의 예배 자리, Marble 도어, 3개의 모자이크화들이다. 황후 예배석은 다른 이들의 블로그에서, 마블 도어는 오른쪽 위의 성화(Deisis, 간청) 뒤에서 겨우 찾았다. 3개의 성화는 비잔틴 시대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Deisis(Intercession 청원), 예수를 안은 성모와 2 콤네노스 황제 가족그리스도와 조에(Zoe) 여(황)제 부부이다. 

 

 

<성 소피아성당 박물관(Ayasofya Museum) 2층 갤러리의 모자이크화 Deisis(Intercession 청원)>

13세기에 제작되었으며 비잔틴 시대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기독교 미술 주제의 하나로 대체로 성모 마리아와 세례자 요한을 좌우에 거느린 옥좌의 예수와 최후의 심판장면을 묘사한다. 성 소피아사원 박물관의 <Deisis(Intercession 청원)>은 성모와 세례자 요한이 고개를 숙이고 손을 내밀어 전 인류의 사면을 청원하는 중재자의 모습이다. Intercession(도고, 禱告)은 타인을 위한 중재의 기도를 의미한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오스만투르크의 술탄 메흐메트 2세는 성 소피아 성당을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하면서 벽의 모자이크를 회칠을 하여 덮었다오른쪽 아래에 회칠 덮은 것을 알 수 있도록 네모 모양으로 파놓았는데 두께가 1cm 정도이다모자이크화 아래 부분이 훼손된 이유는 무슬림들이 훼손한 것이 아니다. 십자군 전쟁 당시 금으로 된 성화조각을 몸에 지니면 안전하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어 뜯어갔기 때문이라고 한다예수님의 눈은 어느 방향에서 보던 눈이 맞는다고 한다.

 

 

<성 소피아성당 박물관 2층 갤러리의 모자이크화 예수를 안은 성모와 2 콤네노스 황제 가족 >

12세기 제작2세 콤네노스(JohnKomnenos) 황제와 이레네(Eirene) 황후가 봉헌하는 모습과 아들 알렉시오스(Alexios) 가족이다. 중앙의 성모 품에 안긴 아기 예수는 복음이 적힌 두루말이를 쥐고 있다황후 이레네는 헝가리 왕 라디슬라우스 1세의 딸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고 한다. 두 번째 사진은 꺾인 기둥에 모자이크한 아들 알렉시오스, 세 번째 사진은 클로즈업한 것이다.

 

 

 

 

<성 소피아성당 박물관 2층 갤러리의 모자이크화 그리스도와 여황제 조에부부>

11세기에 제작되었으며 중앙제대 뒤쪽에 있다. 그리스도와 여제 조에(Zoe), 그녀의 세 번째 남편 콘스탄틴 9세 모노마쿠스(Constantine )이다. 남편의 머리 위에는 로마의 군주 콘스탄틴 모노마쿠스라 적혀 있고, 여황제 조에의 머리 위에는 조에, 가장 독실한 오거스타라고 적혀 있으며 손에 든 두루마리는 헌금 기부자들의 명단이라고 한다.

 

그리스도는 왼손에 성경을 들고 오른손으로 축복을 내리는 모습이다그리스도의 시선이 조에 여황제를 노려보는 것 같은 모습인데 그녀의 바람기를 힐난하는 것이라는 뒷이야기가 전한다다른 모자이크화와 달리 이 그림의 얼굴은 금박들이 많이 없어졌는데 이유는 조에 황제는 젊게 보이려고 그림으로 성형수술을 했고, 남편의 얼굴 부분이 온전하지 못한 이유는 조에 황제가 재혼을 할 때마다 얼굴을 바꾸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 소피아성당 박물관 2층 갤러리의 천사날개>

4개의 천사상 중 1개이며, 1개만 얼굴이 일부 발굴된 상태이다. 나머지는 모두 중앙을 별처럼 그려 넣었다.

 

 

<성 소피아성당 박물관 중앙제대 천장의 성모자상>

성 소피아성당 박물관은 워낙 넓고 커서 일반 카메라로는 높은 천장에 있는 그림을 클로즈업하기가 쉽지 않다. 가장 근접해서 촬영한 것이다. 성당을 장식할 때 총 9톤의 황금이 들어갔다 하며 가장 많이 금가루가 발라진 곳이 이곳이다.

 

 

<성 소피아성당 박물관(Ayasofya Museum) 2층 갤러리 창문으로 본 블루 모스크(술탄 아흐멧 모스크)> 

바로 밑의 돔은 오스만제국 황제들의 영묘로 추측된다. 첨탑이 있는 원경의 돔이 블루 모스크이다. 

 

 

<성 소피아성당 박물관(Ayasofya Museum) 밖에서 본 블루 모스크(술탄 아흐멧 자밀)>

 

 

<블루 모스크 정문 앞 히포드롬 터의 이집트 오벨리스크 디킬리타스(Dikilitas)>

 

 

<블루 모스크 정문 앞 히포드롬 터의 오벨리스크 오르메 수툰(Orme Sut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