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이집트2 - 이집트 고고학박물관 (이름을 알아 낸 전시물)

큰누리 2019. 3. 17. 00:11

<1/15. 현지 도착 후 첫번째 일정 이집트고고학박물관 탐방>

- 임인선 현지 가이드 1/15. 예정 시각보다 30분 늦은 10:10 미팅.

- 원래 일정을 변경하여 피라미드 탐방 대신 카이로의 이집트 고고학박물관, 올드 마켓(칸 엘칼릴리), 올드 카이로 투어 후 야간 침대열차로 아스완行

 

 

<이집트 약사(略史)>

1. 이집트 고대역사는 크게 고, , 신왕조로 구분하며 피라미드는 주로 고왕조 때 건설.  

2. 기원 전후하여 그리스(마케도니아 알렉산더), 동로마 문화 유입되고 600년간 기독교 문화 지배. 로마시대엔 바빌론으로 부름.

3. 이후 이슬람교 들어오고 969년부터 파티마 후손들이 점령하면서 카이로(승리자)로 부름.

4. 올드 카이로로마시대의 성채가 있던 곳, 고대엔 오온(성경에 등장)으로 불림. 카이로는 오래된 도시라 확장이 불가하여 고가도로가 많고, 지하철은 3개 운영. 현대 로템에서 차량 교체 중.

5. 이집트 문명이 수메르 문명보다 시기상 뒤지지만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인식되는 것은 남은 기록(신성문자/히에로글리프) 때문.

- 건조한 기후와 돌판에 글을 새겼기 때문에 현재까지 기록이 제대로 남아 최고의 문명이 됨.

- BC 30년 왕조가 몰락하자 고위층만 문자를 점유한 까닭에 사어가 되었다가 19세기 말 샹폴리옹의 문자 해독으로 인해 고대문명이 되살아남.

6. 19세기 말,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점령할 때 동행한 160여명의 학자가 2년 간 체류할 당시 1792년 로제타석 발견

- 고대 이집트어는 몰랐으나 병기된 그리스어를 보고 히에로글리프(Hieroglyph, 神聖文字)를 푸는 실마리를 파악.

- 신성문자를 푸는 계기가 된 것은 카르트슈(파라오의 이름은 네모나 타원형에 기록한 점).

- 샹폴레옹이 콥트 문자로 나머지 문자를 해독함.

 

 

<카이로 이집트 고고학박물관>

♣ 입장권 : 180 LE (10.5$ = 12,600원), 사진 촬영권 5$)

 2층 규모이고, 피라미드 내부나 왕릉에 있던 소장품을 주로 전시함.

 각종 미라, 스핑크스, 왕 무덤이나 신전 내부의 부장품과 벽화 등을 보았고, 총 2시간 걸림.

♣ 촬영 불가능 한 곳 : 투탕카멘 왕실, 18왕 미라실(13달러 별도 지불)

 이집트 고대문화의 꽃인 투탕카멘  전시실은 작지만 별도로 있고, 앞의 남쪽 복도의 1/2 가량도 부장품 전시실로 사용. 투탕카멘 왕 전시실은 관과 미라 제외한 왕가의 계곡에서 발굴한 물품 대부분을 전시하고 있는데 내용물이 다양하고 화려하함. 투탕카멘 왕 목걸이, 장신구 등이 진열된 전시실 내부는 촬영금지이지만 복도의 가마, 왕의 의자, 장기 보관용기(카노푸스), 기타 부장품은 오픈 전시. 룩소르의 왕들의 계곡에 있는 투탕카멘 왕 무덤은 18달러(15달러?)를 내고 옵션으로 관람 가능.

마지막으로 13달러를 별도로 내고 왕들의 미라 특별전시실에서 람세스 2세,  아멘호프1,2,3세, 하셉수트 여왕 미라 등 18구의 미라를 봄. 일반 미라들은 햇빛까지 비치는 통로쪽 선반에 층층이 놓여있어서 보관상태에 경악을 금치 못함.

 

 

<카이로 이집트고고학박물관 외관>

규모는 전시물 양에 비해 작은 편이다. 그래서 복도나 벽 모서리에 유물들이 방치되다시피 놓여있는 것이 많다.

입구에서 입장권을 살 때 5달러를 내고 디카 촬영권을 구입하는 것을 강추한다(내부에서는 구입 불가). 전시물들 양도 어마어마하고 특별실 외에 복도에 줄줄이 놓인 탁월한 유물들을 디카로 촬영하려면 별도로 5달러를 내야 하지만 사실은 50달러도 아깝지 않다. 몇 푼 아끼려고 도촬을 시도하면 어느 틈엔가 전통복을 입은 감시인(!)들이 귀신같이 나타나 들킬 때마다 1달러씩 삥을 뜯는다.

 

 

<카이로 이집트고고학박물관 배치도>

윗 사진은 1층, 아래 사진은 2층 배치도이다. 1층에는 시대별로 대형 석관과 일반 석관, 왕들의 조각, 서기나 제사장 인물상, 스핑크스와 신 조각 등이 전시되어 있다. 여러 개의 방에는 특정 왕(쿠푸왕, 아멘호텝4세, 핫셉수트 여왕 등)과 관련있는 유물이나 인물상을 전시해 놓았다.

2층에는 왕가의 계곡에서 발견된 유물 YUYA, THUYA 무덤 출토 유물들, 미라, 투탕카멘왕실, 18왕의 미라실 등이 있다. 특히 복도에 다양한 미라와 황금관들이 진열되어 있다.

 

 

 

<이집트 전도와 이집트 여행>

윗쪽의 지중해, 카이로에서부터 국토 최남단(수단과의 접경) 나일강변에 있는 아부심벨 신전까지 이집트 전도이다. 이집트 여행은 나일강을 따라 내려갔다 북으로 되돌아 올라오는 일정이 대부분이며 국토 중간 쯤에 있는 동쪽 홍해의 후루가다가 추가된다.

 

크루즈로 나일강을 따라 아스완-룩소르 왕가의 계곡, 신전 등을 거치며 위로 올라오다 버스로 동쪽 홍해에 위치한 이집트 최대 휴양지 후루가다에 들렀다. 후루가다에서 아름다운 홍해를 보고 보트 스노클링을 하며 1박을 하며 쉬었다. 이후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긴 사막을 통과하여 카이로에 도착한 후 멤피스와 사카라의 피라미드, 기자의 피라미드를 들른 후 이집트 여행을 마무리했다.

 

 

<이집트고고학박물관 내부 중앙의 로제타석과 프랑스 학자 샹폴리옹>

이집트고고학박물관의 로제타석은 모사본이며 원본은 대영박물관에 있다. 1799년 당시에 이집트를 점령한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인에 의해 나일강 서쪽 지류 하구의 로제타에서 발견되었다. 프랑스가 발견하고 해석한 로제타석이 대영박물관에 있는 이유는 1801년 이집트에서 양국 간에 전투가 벌어지고, 영국군이 이기면서 그들에게 넘어갔기 때문이다. 

 

로제타석은 이집트 신성문자를 푸는 열쇠가 된 기념적인 비석으로 196년 프톨레마이오스 5세의 칙령이 세겨져 있다. 이집트 히에로글리프(신성문자) - 데모틱(이집트 민중문자) - 고대 그리스어로 같은 내용이 병기되어 있는 것을 프랑스의 학자 샹폴리옹이 고대 그리스어를 이용해 표음문자인 신성문자를 해독 이집트 역사의 폭을 수천년도 더 넓혔다.

 

 

<이집트고고학박물관의 나르메트 팔레트(이집트의 통일을 다룬 석판)>

같은 크기, 재료의 팔레트가 3개인가 더 있고 석판 양면에 그림과 기록이 있다. 아래 석판의 내용은 나르메트 상이집트 왕(위로 둥근 흰 모자)이 적의 머리채를 잡고 내려치는 모습으로 이집트의 통일 과정을 표현한 것이다. 호루스를 상징하는 하이집트를 상징하는 파피루스 위에 앉아 있고, 신성시한 소는 판넬 가장 위쪽에 새겨져 있다.

 

초기 이집트는 나일갈 상류의 상이집트와 나일강 하류의 하이집트로 나뉘어 있었고, BC 3,100년 상이집트의 나르메르 왕에 의해 통합되었다. 상이집트를 상징하는 은 연꽃과 흰색의 위로 긴 타원형 파라오 이고, 하이집트를 상징하는 파피루스와 원통형으로 된 붉은 색의 파라오 이다. 통일된 이후에 파라오 관은 빨간 하이집트 관 속에 하얀 상이집트 관을 겹쳐서 썼다.

 

 

<카이로 이집트고고학박물관, 기자의 피라미드의 쿠푸왕실의 의자>

이 의자 말고도 2층에 투탕카멘왕의 의자를 비롯해 몇 개의 왕의 의자가 더 전시되어 있다. 기동적인 구조로 보아 야외 행차 때 사용한 것으로 추측도딘다.

 

 

<미라 제작을 할 때 왕의 내장을 보관하는 도자기(카노푸스)>

미라는 뇌나 내장 등을 모두 제거하고 만드는데 대리석이나 상아로 보이는 밝은색 그릇에 따로 담아 미라와 나란히 묻었다.

 

 

<이집트 카르낙의 아케나텐 궁전 마루 장식과 작은 피라미드>

이집트고고학박물관 중앙에 전시된 마루 바닥에 그려진 그림으로 아케나텐은 아멘호텝 4세의 다른 이름이라고 되어 있다.

마루바닥이 전시된 중앙에 작은 피라미드와 그에 딸린 인물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 파피루스와 오리, 메소포타미아쪽 인물로 보이는 남자상이다. 두 번째 사진의 작은 돌 피라미드의 용도는 잘 모르겠고, 피라미드를 둘러싸고 왕들의 석관이 놓여 있다.

 

 

 

<카이로 이집트고고학박물관 1층 통로>

왕의 미라 석관과 왕의 조각상, 미라  주변의 부장품 등이다. 왕의 미라는 바깥의 석관과 그 안에 목관, 금관, 또 다른 얇은 금판 등으로 여러 겹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집트고고학박물관 2층 복도에 있는 1905년에 발굴된 YUYA, THUYA 무덤 내부 배치도>

YUYA, THUYA 무덤 1400년 경, 왕들의 계곡 등의 설명으로 보아 신왕조 시대 왕들의 무덤 중의 하나로 추측된다. 우리가 아는 투탕카멘(Tutankhamun) 왕, Rameses2세와 Rameses란 이름을 가진 왕들(9세까지 확인했음), Merenptah 왕 등이 이 시대에 해당된다. 

 

 

<이집트고고학박물관 2층 복도, YUYA의 왕의 미라 황금 마스크>

 

 

<이집트고고학박물관 2층 복도, YUYA의 왕의 무덤 발굴품>

샌들과 작은 상자 등이다.

 

 

<이집트고고학박물관 2층 복도, YUYA 무덤 출토 나무의자와 가마>

 

 

 

<이집트고고학박물관 2층 복도, YUYA 무덤 출토 석기와 침대>

룩소르 왕들의 계곡 무덤이나 기자의 피라미드 내부가 모두 도굴되어 남아있는 것이 없다고 들었는데 이렇게라도 남아있는 것이 신기하다.

 

 

 

<이집트고고학박물관 2층 복도, YUYA, THUYA 무덤 출토 황금 관과 내부의 미라>

황금 관으로 보아 틀림없는 왕의 미라인데 관 내부에 남아있는 미라황금색 머리카락, 손톱 등 모든 것이 너무 생생하다!

 

 

 

 

<이집트고고학박물관 2층 복도, 동물들의 미라>

 

 

<이집트고고학박물관 2층 복도, YUYA, THUYA 무덤 출토 황금 관들>

줄무늬에 따른 특별한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없으나  YUYA, THUYA 무덤 출토 황금 관은 황금색과 검정 바탕에 황금 줄이 있는 두 종류가 있다. 투탕카멘 왕은 무늬가 없는 황금관이었다. 

 

 

 

<이집트고고학박물관 2층 복도, YUYA, THUYA 무덤 출토 미라 황금 마스크>

투탕카멘 왕으로 미루어 짐작하면 관의 가장 안쪽에 있는 미라에 직접 씌워진 마스크일 것이다. 갸름한 얼굴, 부드러운 곱슬머리 등 인물의 전반적인 인상이 그리스계일 것 같다.

 

 

<이집트고고학박물관 2층 전시실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들>

황금색 새, 수직으로 올린 양팔, 관의 엇갈려 가슴에 얹은 손 등은 모두 죽음, 혹은 죽은 자를 상징한다.

 

 

<이집트고고학박물관 2층, 사자의 서 아래에 늘어선 나무조각 인물들>

앞에는 죽음의 신 오시리스 앞에서 심판을 받는 왕의 조각상(아래 사진)이 있고 뒤로 예물로 보이는 물건을 든 사람들 조각상이 줄지어 있다. 

위에는 긴 파피루스 두루말이를 펼친 <사자의 서>가 전시되어 있다. <死者의 書>는 이집트고고학박물관에서 3개 이상 본 것 같고, 왕들의 계곡에 있는 KV11 Rameses3세의 무덤에는 글이 아닌 그림도 있었다. 왕의 살아 생전 업적이나 생활모습을 파피루스에 적은(혹은 그린) 두루말이이다.

 

두 번째 사진은 저승의 신 오시리스를 중심으로 죽음과 비탄의 여신 네프티스(Nephthys, 좌)과 모성, 생산의 신인 이시스(Isis, 우)이다. 셋은 남매이지만 오시리스와 이시스는 배우자이고, 네프티스는 오시리스를 죽인 세트의 배우자이면서 자식인 아누비스의 아버지는 오시리스이다.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남매끼리의 결혼은 물론 딸들과도 결혼을 한 파라오, 혹은 이집트인들의 결혼관이 신화에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집트고고학박물관 2층, 死者의 書 전체 내용>

 

 

<死者의 書 앞과 뒷 부분>

첫 부분은 죽음의 강을 건너 토트(따오기, 지혜의 신) 앞에서 제대로 인생을 살았는지 죽은 자의 심장과 깃털을 양팔 저울에 놓고 측정하는 장면이다. 저울이 심장쪽으로 기울면 인생을 잘못 살았기 때문에 신에게 잡아먹힌다.

뒷부분은 심판 과정을 통과한 왕이 네프티스 여신, 이시스 여신, 오시리스 앞에 서 있는 장면으로 무사히 심판대를 통과하여 저승으로 인도된 모습이다.

 

 

 

<이집트고고학박물관 2층, 무덤 출토 생활용품들> 

첫 번째 사진 망치, 식물로 만든 그릇, 돌 그릇, 장식품이나 신분패로 보이는 돌패 등 생활용품이다.

두 번째 사진은 주로 청동기이다.

세 번째 사진은 짚이나 유리, 나무로 만든 생활용품으로 나무에 짚을 이은 물건은 가축을 이용할 때 사용된 도구로 보인다.

 

 

 

 

<이집트고고학박물관 2층, 왕의 무덤 출토 부장품으로 보이는 물건들>

유리병, 돌병 일상용품과 달리 크기가 작은 것으로 보아 단순한 부장품, 혹은 이집트에서 특별히 발달한 향수를 담는 병으로 추측된다. 푸른 청석은 왕을 상징하는 타원형 안의 글로 보아 왕 무덤에서 출토된 부장품으로 추측된다.

 

 

 

<이집트고고학박물관 2층 계단에서 내려다 본 1층 북쪽 복도> 

주로 왕의 석상이나 관들이 있고, 동쪽에는 여러 개의 방과 복도가 있고 복도에는 스핑크스, 네모난 관 등의 전시물이 있다.

 

 

<이집트고고학박물관 야외> 

마당에는 비석, 잘린 오벨리스크 등이 있고, 건물 바로 앞에는 왕의 조각상이 몇 개 있다. 아래 사진은 얼결에 찍었는데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 이집트 문명 발굴에 기여한 인물들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