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이집트3 - 이집트 고고학박물관 (주로 투탕카멘, 아멘호텝 4세 유물)

큰누리 2019. 3. 17. 23:44

<1/15. 현지 도착 후 첫번째 일정 이집트고고학박물관2> 

이름이 알려진 이집트 고대 유물들은 우리가 추측한 것보다 많았다. 이어폰을 끼었음에도 불구하고 설명이 제대로 들리지 않거나 사람들 때문에 대상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유물 수도 워낙 많다보니 조금 유심히 들여다보면 일행이 어디론가 사라지기 일쑤였다.

현지 가이드 임인선 씨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유물 몇 개만 집어 설명을 했는데 나는 거의 놓쳤다. 몇 개만 집어서 보고 듣기엔 유물이 너무 많고, 어느 하나 눈길이 가지 않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명 듣는 것을 포기하고 내가 궁금한 것 위주로 (되는 대로) 보고 촬영했다. 내가 이름을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은 이집트 신화, 고고학 일부, 투탕카멘 왕에 관한 미미한 내용 뿐이어서 사진으로 촬영한 설명을 합친 것이다.

 

 

<투탕카멘 왕 미라를 둘러싼 금칠 관>

박물관 서쪽 출구에 있는 기념품 매장의 복제품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투탕카멘 왕의 관이고, 석관 바로 안쪽에서 미라 가장 바깥을 감싼 관이다.

 

 

<이집트고고학박물관 1층의 귀족 초상들>

재료는 고대 이집트에서 많이 사용된 설화석고인 듯 하다.

 

 

<이집트고고학박물관 1층 전시실, 고위 관리 미트리의 채색 목각상>

 

 

<살아 생전에 제작한 제사장 쉐이크 에프 발라드와 이집트 조각 구분법>

두 발을 모으고 있으면 죽은 뒤에 제작한 조각이고, 왼발을 내밀고 있으면 살아서 조각한 것이라고 한다. 가슴에 주먹을 쥐고 두 팔을 여미고 있으면 죽은 사람을 의미한다. 수염이 있으면 왕, 없으면 귀족의 초상이다.

 

 

<에드푸의 호루스 신전에서 발굴한 페피왕 조각>

당시에는 몰랐는데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에드푸의 호루스 신전 입구에 서 있던 서로 다른 매 석상이 생각났다. 매 2마리 석상을 제외하면 현장에 벽이나 기둥에 그림만 있었는데 원래 이런 조각도 있었던 모양이다. 훼손된 것인지 왕관이 없다.

 

 

<하이집트의 멘트호텝 네페프트레 왕 조각상>

양발을 모으고 양팔도 가슴으로 모았으니 죽어서 제작한 조각이다.

 

 

<이집트고고학박물관 신왕조의 왕 전시실>

왕들의 어머니, 투탕카멘 왕, Rameses 2세 등 꽤 여러 기의 신왕조 파라오 조각상이 있다.   

 

 

<신왕조의 왕 전시실의 왕의 어머니 조각상>

 

 

<이집트고고학박물관 신왕조의 왕 전시실> 

 

 

<이집트고고학박물관 투트모시스 3세像> 

 

 

<이집트고고학박물관 신왕조의 왕 전시실>

신왕조 왕들과 부인(여왕), 모후들의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다. 

 

 

<신왕조의 왕 전시실 앞에 있는 핫셉수트 여왕 조각상>

처음엔 안에 투탕카멘 관련 조각상들이 많아서 투탕카멘 왕이 아닐까 추측했는데 최근(2019. 5/8) 자료조사를 하다 핫셉수트 여왕상이란 것을 확인했다. 사진 오른쪽 입구의 유리상자 안에 핫셉수트 여왕 스핑크스가 보인다.

 

 

<신왕조의 왕 전시실 앞 핫셉수트 여왕 스핑크스> 

전체적으로 스핑크스 모양에 수염을 단 남성의 모습이다.  아버지는 투트모스 1세, 남편은 사촌동생인 투트모스 2세인데 남편이 일찍 죽자 양아들인 투트모스 3세를 사위로 삼아 왕위에 올리고 섭정을 하다 스스로 최초의 여왕이 되었다. 경제 발전과 무역에 힘썼고, 건축에도 신경을 많이 써서 조각상이 더러 남아있지만 파괴된 것이 대부분이다. 

 

 

<이집트고고학박물관 아멘호텝 4세 전시실

이 전시실에서 현지 가이드는 제법 오래 지체했다. 당시엔 설명을 놓쳤지만 글을 올리는 과정에서 이 전시실, 즉 아멘호텝 4세(이크나톤, 아케나텐) 왕이 이집트 역사에서 얼마나 비중이 큰 지 새삼 확인했다.

 

사진의 벽화 같은 부조는 아멘호텝 4세가 다신교였던 이집트에서 얼마나 파격적인 종교관을 가졌고, 혹은 이단아 같은 존재였는지 알 수 있다. 그는 기존의 아문 신을 버리고 유일신인 태양신 아톤(아텐)을 섬기도록 했는데 아텐 신은 방사선 모양의 빛줄기로 표현된다. 그 아래에서 태양신을 우러르는 아멘호텝 4세는 여성처럼 가슴과 엉덩이가 불룩하고 얼굴의 특징이 과장되어 한 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독특함이 있다. 왕과 그 가족은 신이라는 주장을 펼치며 완전한 신이 되기 위해 양성을 소유한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아멘호텝 바로 뒤에 선 그의 부인이자 이집트를 대표하는 미인인 네페르티티조차 파격적인 왕의 모습 앞에서 평범해 보일 정도이다.

 

신권을 줄이고 왕권을 강화하려던 아멘호텝 4세의 노력은 당대에서 끝났고, 수도와 종교 모두 아들인 투탕카멘 왕에 이르러 원 위치로 돌아갔다. 그 뿐 아니라 치부라고 생각하는 역사는 깨끗이 지워버리는 이집트인들의 역사관 때문에 아멘호텝 4세에 대한 기록은 최소화되고 초상은 훼손 당했다.

 

 

<아멘호텝 4세 전시실의 아멘호텝 4세

카르낙의 아멘호텝 4세(아케나텐)이라고 적혀있다.  카르낙의 신전에서 발견된 아멘호텝 4세의 조각상이다. 태양신 아톤(아텐)을 유일신으로 선포하고 자신의 이름도 이큰+아톤, 아켄+아텐으로 바꿨다. 역사책이나 미술작품 관련 책에서 이집트 고대 유물이 맞나 몇 번이고 확인했을 정도로 파격적이고 현대적인 조각상이다. 자신이 신처럼 완벽한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여성 + 남성상으로 표현했다.

이 전시실에 아멘호텝 4세의 어머니인 TYIE 여왕像과 출토 당시의 사진 있었고, 파격적으로 길고 모던하고 여성적인 몸매를 지닌 왕의 조각만 3개 있었다. 아들은 투탕카멘, 부인은 이집트의 최고 미인으로 불리는 네페르티티이다

 

 

<아멘호텝 4세실에 있는 아멘호텝 4세의 미라 안쪽 과 훼손된 얼굴 부분>

다른 곳은 온전한데 얼굴 장식이 많이 손상되었다. 설명을 놓쳤지만 아멘호텝 4세 전시실 있는 것으로 보아 아멘호텝 4세의 미라 케이스(!)이다. 미라는 4겹의 관 안쪽에 있는데 관의 가장 안쪽에 있는 황금 마스크 바로 바깥쪽을 둘러싼  관이므로 4개의 미라 케이스(!) 중 밖에서 3번째 미라 케이스이다.

 

미라나 신전에서 얼굴이나 신체를 파낸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그 사람이 부활하지 못하게 하려는 일종의 해꽂이이다. 아멘호텝 4세는 이전까지의 다신교였던 이집트에서 태양신인 아톤을 유일신으로 추앙하도록 했기 때문에 다른 종파의 미움을 받았다. 그래서 아멘호텝 4세는 이집트 역사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고, 업적이 축소되고 왜곡되었을 뿐 아니라 미라 케이스의 얼굴까지 훼손되었다.

 

 

<아멘호텝 4세실, 아멘호텝 가장 바깥쪽 미라관>

이 관보다 더 밖에 있는 관은 이집트3편 글가장 앞에 있는 사진 - 투탕카멘 왕의 황금색 관이다.

 

 

<아멘호텝 4세 전시실의 TYIE 여왕像> 

아멘호텝 3세의 부인이자 아멘호텝 4세의 어머니로 이집트 왕조에서는 보기 드물게 왕족 출신이 아니다(이집트는 대부분 근친결혼으로 심한 경우 아버지가 딸과 결혼한 경우도 흔하다). 게다가 다른 초상을 보면 분명한 흑인이다. 티에 여왕 외에 파라오 중에도 의외로 흑인 혈통을 받은 이들이 많았다.

 

 

<이집트고고학박물관 2층의 투탕카멘 전시실>

이집트고고학박물관 2층의 상당 부분은 투탕카멘 왕을 위한 전시공간이다. 아버지 아멘호텝 4세 사후 9세(?)에 파라오에 올라 18세에 두개골 파열로 죽은 소년왕이 대단한 업적을 남겼을 리 없다. 하지만 그가 이집트 역사에서 손꼽히는 왕으로 남은 것은 유일하게 온전히 발굴된 파라오 무덤이란 점과 상상을 초월하는 화려한 무덤의 부장품들 때문이다.

 

그의 무덤이 테베(룩소르)의 왕들의 계곡, 아니 이집트 전역에서 유일하게 도굴 당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후대의 왕이 투탕카멘 왕의 무덤 위에 자신의 무덤을 쓰면서 작업장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투탕카멘의 무덤은 도굴을 피할 수 있었다. 또한 투탕카멘의 아버지인 아멘호텝 4세(이크나톤, 아카나텐)이 강력하게 추진한 태양신 유일신 정책을 기존의 신관들이 어려서 즉위한 아들 투탕카멘을 회유해 원래의 신앙으로 되돌릴 수 있었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각별하게 예우를 해서 일반적인 파라오보다 훨씬 화려한 부장품, 미라가 남아있다고 한다. 

 

 

<복원한 투탕카멘 왕의 모습> -핀터레스트에서 퍼옴-

사인은 두개골 파열인데 암살되었다고도 하고, 말을 타다 떨어진 것이 원인이 되어 죽었다고도 한다. 그 외에 그는 근친결혼 후유증으로 인해 목발을 짚어야 할 정도로 왼쪽 다리에 상당히 심한 장애가 있었다.

 

 

<이집트고고학박물관 2층, 투탕카멘 왕 초상>

 

 

<박물관 2층, 최초로 발견했을 당시의 투탕카멘 왕 무덤 사진>

 

 

<이집트고고학박물관 2층, 투탕카멘 왕 두상>

 

 

<고고학박물관 2층 복도, 투탕카멘 왕 부부가 새겨진 황금의자>

이전에는 촬영조차 금지됐던 엄청난 양의 황금으로 제작된 의자라고 한다. 우리가 들렀을 때는 특별한 제재 없이 복도에 놓여있었다. 투탕카멘 왕의 중요하거나 값진 유물들은 대부분 유리 상자에 들어있어서 난반사가 심해 사진 상태가 썩 좋지 않다.

 

 

<고고학박물관 2층 복도, 어린 시절의 투탕카멘 왕 초상>

 

 

<고고학박물관 2층 복도, 투탕카멘 왕 무덤 출토품>

 

 

<박물관 2층 복도, 투탕카멘 왕 무덤에서 출토된 투탕카멘 왕과 안케세나멘 부부> 

이집트는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왕족끼리 결혼하는 것은 당연했고, 아버지(왕)가 친딸과 결혼하거나 남매가 결혼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투탕카멘과 안케세나멘도 이복 남매이다.

 

 

<박물관 2층 복도, 투탕카멘 왕의 카노푸스(장기 단지)>

 

 

<박물관 2층 복도, 투탕카멘 왕의 카노푸스(장기 단지) 궤 1면>

여신으로 추측되는 윗 사진의 여성의 뒤태가 몹시 관능적이고 아름답다! 작은 카노푸스를 보관한 궤로 보기엔 너무 커서 우리나라의 가마 같은 용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박물관 2층 복도, 투탕카멘 왕의 카노푸스(장기 단지) 궤의 또 다른 면>

네프시스(Nephthys)와 이시스(Isis) 여신 자매가 날개를 펼쳐 궤를 보호하고 있다.

 

 

<박물관 2층 복도, 투탕카멘 왕의 의전용 의자>

 

 

<이집트고고학박물관 2층, 18왕들의 미라실 앞 우샤브티들>

우샤브티는 다양한 용어로 해석되었는데 죽은 왕의 시중을 들기 위한 시종, 혹은 '무덤의 부장품'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크기가 작고 귀여운 것이 많아 도굴 대상이었을 것 같은데 전혀 도굴되지 않은 투탕카멘 왕 무덤의 부장품 중에 이런 소소한 것들이 많았다.

 

 

<이집트고고학박물관 2층, 18왕들의 미라실>

전면의 방에 18구의 왕의 미라가 전시되어 있고, 13달러의 입장료 별도로 지불해야 관람할 수 있으며, 사진 촬영 금지이다. 이집트고고학박물관에서 사진촬영 금지 구역은 이곳과 투탕카멘 왕 부장품 중 보석(장신구)를 모아 놓은 방, 2곳이다. 도굴이 유난히 극심했던 이집트에서 어떻게 수집했는지 모르지만 람세스 2세, 아멘호프 1, 2, 3세, 핫셉수트 여왕 등 우리에게 익숙한 왕들의 미라가 대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