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이집트9 - 아스완 채석장과 미완성 오벨리스크, Aswan High Dam

큰누리 2019. 3. 25. 22:35

<1/17. . 이집트 여행 3>

7시 기상- 8시 식사, 아침은 오믈렛, , 과일, 요플레로 식사. 음식은 입에 잘 맞고, 직원들이 친절해서 좋았다

♣ 일정 : 9:50 아스완 채석장으로 출발- Aswan 채석장 - Aswan High Dam - JAZ REGENCY 크루즈에서 점심 - 콤옴보 악어신전, 악어박물관 - JAZ REGENCY 크루즈에서 숙식

 

17LE(EGP, 리블 이집션 파운드, 이집트 파운드)는 1$이다. 오벨리스크는 '꼬챙이' 란 으로 발상지인 이집트에는 온전한 것이 3개 밖에 없다. 이집트에 수많은 신전이 있고, 그 앞에 2개씩 서 있었다고 생각하면 남아있는 갯수가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다. 로마의 조반니의 광장에 서 있는 오벨리스크가 33m로 가장 높으며, 로마에 20여개로 가장 많이 있다. 터키의 이스탄불 블루 모스크 앞 히포드롬 터에도 2개가 있는데 그 중 1개는 이집트에서 약탈한 것이었다. 프랑스의 콩코드 광장에 서 있는 오벨리스크 1기도 룩소르 신전 앞에 있는 람세스 2세가 세운 2개의 오벨리스크 중의 하나인데 그것은 당시 이집트 왕이 자발적으로 선물한 것이다.

10:00, 근처의 채석장에 들러 미완성 오벨리스크 및 대형 채석장을 관람했다가장 유명한 하셉수트 여왕의 미완성 오벨리스크 외에 통바위를 물에 불렸다 자르기 위한 구멍들, 자르다 만 석관 등을 보았다. 하셉수트 여왕의 오벨리스크는 가로로 완성한 상태에서 떼어내기 직전에 금이 가서 그 자리에 방치된 것이라고 한다. 시내의 낮은 돌산이어서 조망에 좋으나 겨울 기온 특성 상 안개 스모그가 대단해서 마치 우리나라 4월의 황사현상 같았다. 나오는 길에 손에 가방 몇 개를 들고 판매하는 할머니한테 2달러를 주고 벽화 그림이 프린팅 된 면 가방 샀다.

 

 

<정박 중인 JAZ REGENCY 크루즈 옥상에서 본 아스완의 아침 풍경>

누런 모래 먼지가 잔뜩 섞인 짙은 안개가 나일강과 시내를 뒤덮고 있다.

 

 

 

 

<JAZ REGENCY 크루즈의 조식>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계란말이, 아주 맛있어서 매번 먹었다. 전형적인 이집트인 얼굴의 밝고 건장한 즉석 요리사는 계란을 뒤집다 찢어뜨린 것을 보고 '수전증'이라는 내 동작 놀림도 잘 받아줘서 즐거웠다.

 

 

<아스완의 콥트교회>

 

 

<아스완 채석장 매표소의 미완성 오벨리스크 안내도>

아스완 채석장 입장 시간은 07:00~16:00, 입장료는 EGP 80.

 

 

<아스완 채석장과 입장권>

돌 단면이 예리하고 미끄러워서 넘어지면 상당히 위험하다현지 가이드는 몇 차례나 운동화를 신어라,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했다.

 

 

 

<아스완 채석장의 미완성 오벨리스크>

 

 

<아스완 채석장과 아스완 시내>

 

 

<아스완 채석장의 미완성 오벨리스크>

하셉수트 여왕이 만들던 으로 돌에 금이 가서 중도 포기한 것이라고 한다. 직선상에서 보아 그렇지 현장에서 보면 상당히 길고, 완성되었다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긴) 오벨리스크였을 거라고 한다.

 

 

<아스완 채석장과 근처의 민가>

 

 

<아스완 채석장의 돌을 쪼개기 위한 구멍>

현재 남아있는 채석장도 제법 규모가 있는데 신전이나 피라밋 등 대규모 공사에 사용되었으니 초기에는 엄청난 규모의 채석장이었을 것 같다. 사진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을 판 후 나무쐐기를 박아 그 나무에 물을 부으면 나무가 팽창하고, 그 압력에 의해 돌이 잘라진다.

 

 

<아스완 하이 댐(Aswan High Dam)수에즈 운하, 그리고 외세의 개입>

이집트 아스완주()에 있는 댐으로 높이 111m, 제방 길이 3.6km,저수량 1,570억m3, 저수지 길이 500km이다. 아스완 부근 나일강() 급류를 막아 건설한 세계 최대의 록필(rock-fill)댐이다. 1902년 영국인이 나일강의 홍수조절과 관개용수 확보를 위하여 아스완에 댐을 만든 이후 1960년에 러시아의 기술 원조로 공사에 착수하였고, 1971년에 완공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스완하이댐 [Assuan High Dam] (두산백과)

 

아스완 댐은 1902년 영국인이 홍수를 조절하고 관개용수 확보를 위해 처음 건설했지만 수요량에 턱도 없이 못 미치는 양이었다. 그 후 이집트 2대 나세르 대통령이 댐 상류 지점에 수요량 충족을 위해 새로운 하이 댐 건설을 시작했다수에즈 운하 건설 때에도 영국의 도움을 받았으나 이집트 면화 가격 폭락으로 영국의 빚을 못 갚자 간섭이 심화되었다. 수에즈 운하는 완성 후 이집트는 프랑스와 공동 운영 했으나 나세르가 자원 확보를 위해 1956년, 일방적으로 국영화를 선포하고 프랑스, 영국을 밀어냈다. 이후 소련을 끌어들여 기술, 자본의 지원 받아 아스완댐 공사를 시작했다. 1968년 완성 직전 나세르 대통령이 심장병으로 사망하여 3대 대통령 사다트가 완공식에 참석했다. 나세르는 현재까지 이집트의 자존심을 살린 인물로 숭상 받고 있다.

 

이집트는 1953년 6월 18일. 무하마드 나기브 혁명위원장이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고 이집트공화국 1대 대통령이 된 이후 가말 압델 나세르 - 안와르 사다트 - 호스니 무바라크 - 무함마르 무시를 거쳐 현재 압둘팟타흐 시시가 2014년 6월 8일 이후 대통령으로 재직 중이나 잦은 쿠데타로 정국이 불안한 상황이다.

 

아스완댐(나세르 인공 댐 안에 아스완댐이 있음) 완공 직후에는 이집트 전력의 50%를 담당했으나 현재는 15% 정도 조달하고 있다아스완 하이댐 공사에서 가장 이슈가 되었던 것은 BC 13세기에 연안의 절벽을 파서 만들었으나 수장될 위기에 처한 아부심벨 신전이었다. 이집트는 유네스코에 도움을 요청하였고, 신전을 구성하는 바위()를 톱질하여 20∼30톤의 블록으로 절단한 다음 현재의 위치로 옮기는데 성공했다. 

 

 

<아스완 하이 댐 건설로 주변의 상류로 자리를 옮긴 신전 중 하나>

아스완 하이 댐, 나세르 인공호수 건설로 수몰될 뻔한 20여 개의 신전을 옮겼다 한다.

 

 

<아스완 하이 댐의 시설들>

 

 

 

<아스완 하이 댐 안내판과 초석(!)>

 

 

 

<아스완 하이 댐 배치도>

 

 

<아스완 하이 댐의 화단>

 

 

<아스완 하이 댐 상류>

 

 

<Aswan High Dam 기념탑>

 

 

<아스완 하이 댐의 전시물들>

초기 댐을 건설할 때 독일, 러시아 등으로부터 원조를 받은 시설, 차량 등에 대한 전시이다.

 

 

<아스완 하이 댐 '화단 안의 화단'>

나무나 화초가 많은 곳은 부자 동네 말이 있을 정도로 이집트의 화단은 일일히 물을 공급해야 한다. 특히 화초류는 어떻게 생명, 혹은 푸르름을 유지하는지 알 수 있는 '화단 안의 화단'이다.

 

 

<아스완 외곽의 공동묘지>

이슬람교 장례는 화장 문화가 없고 모두 매장 문화이다그 때문에 고대 카이로에는 현재 우리나라의 1개 구(區)를 능가하는 규모의 무덤마을이 있고, 그곳에서 300만명의 빈민들이 살고 있다.

 

 

<아스완 스타디움>

 

 

<아스완 시내의  삼발이 차>

 

 

<아스완 Military Hospital>

 

 

<아스완 시내의 서양인으로 보이는 동상>

 

 

<아스완 크루즈 도크 앞의 아이스크림 차량>

 

 

<크루즈 도크에서 메카를 향해 점심 기도를 올리는 무슬림들>

점심을 먹으러 크루즈와 연결된 사다리를 건너는데 바로 옆의 빈터에서 무슬림들이 바닥에 천을 깔고 신을 벋은 채 경건하게 기도를 하고 있다.

 

 

<나일강의 펠루카>

모래 바람 때문에 세상이 온통 누렇다. 펠루카는 무동력 풍력 보트로 크루즈와 함께 나일강을 대표하는 유람선이다. 룩소르에서 펠루카를 탔는데 순수하게 바람만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속도가 더디고 바람이 없으면 운행이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