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금. 이집트 4일>
에드푸의 호루스 신전 관람 후 룩소르로 이동 - 중간에 에스나 시(?)에서 크루즈로 갑문식 도크 통과 - 룩소르에서 내려 룩소르 신전 관람.
이집트에서 나일강을 기준으로 동쪽은 산자, 서쪽은 죽은 자의 땅이다. 룩소르 신전과 카르나크 신전은 왕과 신을 위한 곳으로 동쪽에 위치하며, 왕가의 계곡은 죽은 자의 영역으로 나일강 서쪽에 위치한다. 카이로가 현재 이집트의 수도이지만 룩소르는 2000년 전 이집트 왕국의 수도였으며, 당시에는 ‘테베’라 불렀다. 룩소르에는 왕들의 계곡, 핫셉수트(Hatshepsut) 여왕의 장제전, 룩소르 신전과 카르낙 신전 등 수많은 유적지가 있어 도시 전체가 박물관 같다.
<룩소르 신전(Temple of Luxor)>
이집트 룩소르에 있으며, 테베의 삼위신인 아문(Amun)과 아내 무트, 그리고 그들의 아들인 콘수를 위한 신전이다. 신왕조 시기인 제18왕조 Amenhotep 3세(BC 1417-1379) 때 건축을 시작하여 제19왕조 Ramses 2세(재위 BC 1304-1237) 때 탑문(Pylon)이 완공되었다. 즉, 신전 안쪽의 광장 및 아문(Amun) 신 성소는 아멘호텝 3세 때 건축되었으며, 바깥쪽 탑문(pylon,파일론)과 광장은 람세스 2세 때 증축되었다.
룩소르 신전은 폭 40m~70m, 길이 180m~200m의 규모이며, 넥타테보 1세 가 건설한 2km 정도의 ‘스핑크스의 길’을 통해 카르나크 신전과 연결되어 있다. 탑문(오벨리스크 1기, 람세스 2세 석상 5개) – 람세스 2세 광장 – 아멘호텝 3세 열주 – 아멘호텝 3세 광장 – 아문 신 성소의 순서로 배치되어 있다.
룩소르 신전 탑문 왼쪽 앞에는 기원전 1300년, 제19왕조의 파라오 Ramses 2세가 세운 높이 24m의 오벨리스크가 서 있다. 원래는 두 개였으나, 1개는 1829년 무하마드 알리 왕이 프랑스의 루이-필립 왕에게 선물하여 현재 파리의 콩코드 광장에 있다. 탑문 앞에는 중앙에 대형 Ramses 2세 석상 좌상 2개, 동서 양쪽 바깥에 입상 4개가 있었으나 현재 5개만 남아있다.
신전 탑문(외벽, 파일론) 외벽에는 Ramses 2세가 히타이트족을 격퇴한 카데시(Kadesh) 전투 장면이 벽에 새겨져 있다고 하는데 기억에 없다. 탑문 안쪽은 ‘Ramses 2세 광장’으로 람세스 2세가 건축한 신전의 74개 기둥이 2중으로 둘러싸고 있다. 광장 안에는 Tuthmosis 3세(재위 BC 1504 ~ BC 1450) 때 세운 성소와 후대에 세운 Abu El Haggag 모스크가 있다.
그 안쪽에 16m 높이에 파피루스 기둥머리를 한 14개의 기둥이 있는 'Amenhotep 3세'의 열주가 있고, 람세스 2세의 석상이 기둥 사이에 있다. 열주를 지나면 다시 32개의 기둥이 2중으로 둘러싼 다주식 광장(Hypostyle)인 '아멘호텝 3세의 광장'이 있다.
광장 끝에 룩소르 신전 아문 신 성소가 있고, 광장 모서리에 로마인들을 그린 벽화가 있는 벽면이 있다. 성소는 8개의 기둥이 있었던 제1 전실(Ante Chamber)과 4개의 기둥이 있었던 제2 전실로 나뉘고, 가장 안쪽에 아문(Amun) 신의 성소가 있다. 제1 전실(Ante Chamber)은 서기 4세기에 콥트 교도들이 기둥을 제거하고 예배실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성소는 이집트 기둥과 벽화, 로마식 벽 장식이 섞여 있다. 성소는 아멘호텝 3세가 태어난 곳이라고 하는데 정확하지 않다.
<Luxor 港에서 본 크루즈 여객선들과 룩소르 신전>
나일강쪽 크루즈에서 촬영한 첫번째 사진은 왼쪽의 룩소르 신전 탑문부터 오른쪽 끝의 아문신 성소까지 정확하게 일렬로 보인다. 룩소르 신전의 배치는 사전에 철저히 조사를 하지 않는 한 거대한 규모 때문에 현장에서는 파악하기 어렵다. 나 역시 다녀온 후 사진정리를 하면서 겨우 알았다.
현장에서 보면 룩소르 신전이 나일강 (동쪽)에 붙어 있다는 것조차 잘 실감나지 않는다. 사진을 정리하면서 나일강가에 있다는 것을 정확히 인지했고, 2km의 스핑크스의 길로 이어진 카르낙 신전이 왜 고대에 5m까지 물에 잠겼는지 이해가 되었다. 신전 5m까지 종종 잠겼다는 카르낙 신전 입구에는 수위를 측정하는 나일로 미터가 있다.
새파란 나일강에는 크루즈 여객선과 펠루카(무동력선 돛단배), 모터 보트 등 다양한 배가 떠 있어서 날씨가 맑으면 풍경이 빼어나다. 특히 흰색의 긴 깃대에 달린 흰돛이 펴진 펠루카는 강물과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Luxor 크루즈 도크와 주변의 시민들>
햇살이 강한 이집트에서 비실용적인 파라솔이 독특하다. 그 주변에 삼삼오오 모인 여성들은 검은 전신 가리개인 차도르(이집트에서는 눈까지 망사로 가린 부르카를 입은 여성은 못 보았다!)를 입은 이도 있고, 가볍게 머리만 가린 히잡을 두른 이들도 있다. 다른 이슬람 국가에 비해 이집트나 터키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가리개인 히잡을 두른 여성들이 많다.
다른 관광지도 마찬가지이지만 룩소르의 벽이나 파라솔 받침대에는 고대 벽화 그림들을 일관성 있게 그려 놓았다.
<마차로 이동하며 본 Temple of Luxor(룩소르 신전) 옆 모습>
룩소르 신전 가장 남쪽 끝에 있는 아문(Amun) 신 성소가 있는 곳이다.
<마차로 이동하며 본 Temple of Luxor(룩소르 신전) 측면>
오른쪽의 높은 14개의 기둥은 Amenhotep 3세의 열주이고, 왼쪽의 낮은 기둥들은 아멘호텝 3세의 광장을 둘러싼 32개의 2중으로 된 기둥들이다. 앞의 해자 같은 통로는 신전 북쪽에 있는 신전 건축 당시부터 나일강물을 시내로 끌어들이는 장치였을 듯 하다.
두번째 사진은 해자 같은 통로를 지나치자마자 만나는 현대의 신전 앞 광장이다. 중앙의 기둥들은 Amenhotep 3세의 열주, 왼쪽은 Amenhotep 3세의 광장을 2중으로 둘러싼 기둥이다. 옆 사진을 보면 이렇게 간단한 배열이지만, 넓고 큰 현장에서는 어디가 어딘지 판단이 불가능해서 이렇게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는 것이다.
<광장에서 본 Temple of Luxor(룩소르 신전) 입구>
오른쪽부터 람세스 2세의 오벨리스크(그 아래로 람세스 2세의 왕관이 살짝 보인다), 탑문, 람세스 2세 광장 안에 있는 Abu El Haggag 모스크이다.
<Temple of Luxor(룩소르 신전) 입구의 비석>
얼결에 촬영은 했는데 용도나 이름을 모르겠다. 유물을 방치하다시피 하는 이집트에서 줄이라도 쳐놓은 걸로 보아 무언가 의미가 있는 비석 같다.
<Temple of Luxor(룩소르 신전) 앞의 스핑크스의 길>
룩소르 신전 탑문 에서부터 북쪽의 카르낙 신전까지 2km의 길이로 이어져 있다. 원래 1,000개의 작은 스핑크스가 길 양쪽으로 늘어서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몇 개 남아있고, 도로도 많이 파손되어 겨우 원형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Temple of Luxor(룩소르 신전) 배치도>
<룩소르 신전 탑문(파일론)과 오벨리스크>
18왕조의 아멘호텝 3세가 세운 기존의 아문 신 신전 앞에 이집트 최남단에 아부심벨 신전을 세운 19왕조의 람세스 2세가 탑문과 오벨리스크를 증축한 것이다. 탑문 앞에는 24m의 오벨리스크가 남아있는데 이집트에서 현존하는 오벨리스크(룩소르와 카르낙 신전에서 5개쯤 본듯) 중 가장 크다고 한다.
원래 탑문 양쪽에 있었으나 1829년 무하마드 알리 왕이 프랑스의 루이 필립 왕에게 선물하여 현재 파리 콩코드 광장에 있다. 대부분의 신전 앞에 있었을 그 많던 오벨리스크는 대부분 유럽 각지로 약탈 당하여 이집트 본토에는 몇 개만 남아있을 뿐이다.
<룩소르 신전 탑문(파일론)의 람세스 2세 석상들>
모두 5개가 있는데 가장 왼쪽의 1개는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 중앙의 2개는 좌상, 바깥쪽의 4개는 입상이다. 모두 통일된 이집트 파라오가 쓰는 통합 왕관을 쓰고 있다. 탑문 앞에 있는 5개의 석상 외에 안쪽에 기둥들 사이에도 2쌍이 더 있다.
<오벨리스크와 룩소르 신전 탑문(파일론)의 람세스 2세 석상>
사진 맨 왼쪽의 입상 1개는 없어졌다. 이집트 신전의 일반적인 특징은 신전 주인공(대부분 신전을 세운 파라오)의 석상이 1개가 아니라 여러 개씩 있고, 좌우 대칭으로 배치한 경우가 많다.
두번째 사진은 탑문 오른쪽 중앙의 석상으로 얼굴이 많이 훼손되었다. 석상마다 옆면에 신성문자와 부조 조각들이 있다. 기록에 관한 한 이집트는 현대인의 눈으로 보아도 선진국이다. 문제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역사나 싫어하는 내용은 철저히 삭제했다는 점이다.
<룩소르 신전의 람세스 2세 광장>
룩소르 신전에 등장하는 파라오는 Ramses 2세, Tuthmosis 3세, Amenhotep 3세 등 모두 3명이다. 그 중 Ramses 2세 신전(광장)이 가장 앞에 있고, 중앙 통로쪽의 열주만 2열이 남아 있을 정도로 훼손이 심하다. 심지어 후대에 지은 Abu El Haggag 모스크까지 있다.
<룩소르 신전의 Ramses 2세 광장>
윗 사진은 탑문 안쪽의 람세스 2세 광장과 서쪽 열주이다. 석상이나 기둥의 모두 많이 훼손되었고 이쪽이 그나마 좀 남아있는 것이다. 두 번째 사진은 아멘호텝 3세 열주이며, 입구에 람세스 2세로 추정되는 거대한 석상이 2개가 있다. 그 뒤로 신전의 기둥들이 늘어서 있는데 중앙 부분만 남아있고 나머지는 기단부만 남아있다. 기둥에는 부조들이 새겨져 있고, 기둥머리는 파피루스 모양이며 훼손이 심하다.
<룩소르 신전의 아멘호텝 3세 열주의 부조>
주변에 람세스 2세 석상이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람세스 2세 부인인 네페르타리이거나 딸로 추측된다.
<룩소르 신전의 아멘호텝 3세 열주 속의 석상>
처음엔 람세스 2세의 석상으로 생각했는데 성소인 듯 하다.
<룩소르 신전의 람세스 2세 부부로 추측되는 석상>
자주 본 일반적인 람세스 2세 부부의 얼굴과는 좀 달라보인다. 이집트고고학박물관에서 본 투탕카멘 왕 부부(투탕카멘과 안키세나멘 여왕) 초상과 많이 닮았다.
<룩소르 신전의 아멘호텝 3세 열주>
신전에서 높이가 가장 높으며, 기둥머리는 파피루스 모양이다. 많이 훼손되었지만 기둥에는 부조들이 촘촘이 새겨져 있다.
<룩소르 신전의 아멘호텝 3세 광장에서 되돌아 본 아멘호텝 3세 열주>
아멘호텝 3세 열주(기둥)은 14개이다. 오른쪽에 원경으로 보이는 모스크는 람세스 2세 광장 동북쪽 모서리에 있는 후대에 세워진 Abu El Haggag이다.
<룩소르 신전의 아멘호텝 3세 광장>
32개의 기둥이 2중으로 둘러싼 다주식 광장(Hypostyle Hall)인 아멘호텝 3세의 광장이다.
<룩소르 신전의 아멘호텝 3세 광장에서 입구쪽으로 되돌아본 모습>
근경부터 아멘호텝 3세 광장 북쪽의 16개의 다중식 열주 - 신전에서 가장 높은 14개의 아멘호텝 3세 열주 - 람세스 2세 탑문이 차례로 보인다.
<룩소르 신전의 아멘호텝 3세 광장 남동쪽 모서리의 동로마 채색벽화>
동로마제국 지배 하에 있을 때 룩소르 신전이 사용되었던 증거로 이집트 부조 벽화 위로 동로마인들이 그린 채색화가 일부 남아있다.
<룩소르 신전 가장 안쪽(남쪽)의 아문 신 성소 입구>
<룩소르 신전 가장 안쪽의 아문 신 성소 벽화>
<룩소르 신전 아문 신 성소 벽화와 로마식 아치형 문>
이집트 벽화는 채색까지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 동로마 점령 후 비슷한 용도로 사용되었고, 그 뒤에 다시 콥트 교도들의 예배소로 용도 변경된 점을 생각하면 대단한 결과이다.
<룩소르 신전 아문 신 성소와 벽화들>
벽화는 얼굴을 쪼아낸 것도 일부 있지만 이민족(로마)이 수백년 동안 지배한 것을 감안하면 상태가 훌륭한 편이다.
<룩소르 신전 아문 신 성소의 훼손이 심한 부분>
벽화 뿐 아니라 벽 자체가 사진처럼 훼손된 부분이 성소에 2곳 정도 있었다. 사진을 정리하고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지만 당시엔 잘 모르고 쫓아다녔기 때문에 정확한 성소의 위치 파악을 못했다.
<룩소르 신전 아문 신 성소의 이집트식 기둥>
매끈한 기둥에 섬세한 부조가 새겨진 것과 골이 깊게 파인 튼실한(!) 이런 기둥이 대표적인 이집트 신전 기둥이다.
<석양의 룩소르 신전-카르낙 신전 사이의 스핑크스의 길>
오후 늦은 시각에 들렀기 때문에 룩소르 신전 사진은 모두 불그스름하다. 1시간 정도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밖은 석양이 내리고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사진은 자그마한 스핑크스 몇 개와 훼손되어 파편만 남은 '스핑크스의 길' 잔해들이다.
<석양에 물든 룩소르 신전-카르낙 신전 사이의 스핑크스의 길>
<야간 룩소르 마차 투어>
룩소르 신전 밖 광장에 줄 지어 대기 중인 관광용 마차들이다. 1시간, 40달러 옵션인데 일행 모두 타고, 실제로 마차를 탄 시간은 40분 정도였던 것 같다. 이집트 관광 옵션은 어느 여행사나 일반적으로 3개이고, 가격이 동일하며, 나일강 주변에 모여 살 수 밖에 없는 지리적 여건 때문에 여행 코스도 동일하다.
예상보다 마차 승차감이 좋고, 온도나 밤 분위기가 마차 타기에 적당하고, 좁은 시장을 통과하면서 현지인들의 생활을 볼 수 있어 가격대비 만족도가 높았다. 반면 마차들이 대체로 불결하고(다른 곳도 마찬가지이다), 사전에 공통으로 팁이 지급되었는데도 마부들은 틈만 나면 팁을 요구했다. 일반 상인들과 관광객들이 접했을 때, 상인들이 끊임없이 요구하는 팁과 바가지는 일상적이어서 이집트 관광에서 가장 불쾌하고 불편한 부분이다.
<야간 룩소르 마차 투어 중 본 룩소르역과 이집트 상인들의 상술>
이집트 여행 - 룩소르를 검색하면 마차투어가 나오고, 투어 중 촬영한 아래의 룩소르 역 사진이 나온다. 이집트의 유명한 관광지 기차역은 대체로 룩소르역과 비슷하게 생겼다.
우리 마부는 바가지에 전혀 관심이 없는지 아무런 부가 설명을 안 했고, 따라서 팁도 크게 요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투어 중 친절하게 설명을 한 마부나 그에 대해 짧은 영어로 한 마디라도 대꾸한 일행은 예외 없이 팁 바가지를 썼다고 했다. 여행사에서 이미 팁을 지불했기 때문에 한 푼도 안 주어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이집트 일반 상인들은 목숨을 건 것처럼 팁을 뜯어내려 했다. 그 사람들의 힘겨운 삶도 나름 공감이 되었지만 사소한 일로 실랑이를 벌이는 것을 싫어하는 내게 이 점이 피곤하고 싫었다. 하지만 이집트는 상인들이 거리에서 판매하는 싸구려 상품 중에 이집트의 특징이 제대로 표현된 것이 제법 있다.
<야간 룩소르 마차 투어 중 본 시장 풍경>
야간 룩소르 마차 투어는 이집트인들의 일상을 단편이라도 볼 수 있는 점, 생각보다 시간이 넉넉한 점은 좋았다. 하지만 마차 1대가 가까스로 통과할 정도로 좁은 시장통을 통과하는데 상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마차 통과하는 것을 비켜주는 상황이 불편했다. 그들에게 마차가 '갑툭튀' 하는 것이 일상인 듯 했는데, 관광이라는 명목으로 남의 힘든 삶에 원치 않게 불쑥 끼어드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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