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수. 5일째 일정>
오르차 성(Orcha Fort)의 자항기르 마할, 라자 마할, 쉬시 마할 - 오르차 Amar Mahal리조트에서 점심식사 - 잔시 역에서 아그라행 특급열차 - 아그라 Crystal Sarovar호텔 투숙
<오르차 성(Orcha Fort)의 역사>
지금은 한적한 소읍이지만 17세기 후반에 오르차 지역은 분델라(Bundela) 왕조의 수도였다. 1602년 무굴제국의 왕자였던 살림(Salim, 자항기르)이 아버지인 악바르 황제에게 반란을 일으켰다 실패하여 이곳으로 도망친다. 당시 분델라 왕국의 왕은 악바르 황제의 보복 위험을 무릅쓰고 살림 왕자를 거두었고, 악바르 황제는 3년 뒤에 죽었다. 아버지 뒤를 이어 무굴제국의 황제가 된 살림 왕자(자항기르 황제)는 은혜를 갚기 위해 분델라 왕국을 비호했다. 그 덕분에 분델라 왕국은 자항기르 집권 22년간 오르차, 잔시 부근에 55개의 성을 지을 정도로 전성기를 이루었다. 자항기르 황제 사후 두 나라의 관계가 나빠지자 분델라의 왕은 반란을 일으켰지만 실패하고 손자인 아우랑제브 황제 때 멸망하고 만다. 이후 분델라 왕국은 파괴되고 오르차 성도 역사에서 잊혀졌다.
자항기르 황제는 도피생활을 할 때 자신을 거두어준 데 대해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분델라 왕국을 방문했다. 오르차 성은 단 한 번 방문한 자항기르 황제를 위해 22년에 걸쳐 만든, 3층 규모에 100여개의 방이 있는 대규모 궁전이다. 붉은 사암을 주재료로 한 자항기르 궁전 외에 쉬시 마할, 라자 마할 등 3개의 궁전이 있었으나 멸망한 후 400년 동안 방치되었다. 게다가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복원이나 지원이 없다보니 궁전들은 폐허처럼 변했다.
<오르차 성(Orcha Fort)의 현재>
가장 큰 동쪽의 자항기르 궁전은 문 기둥과 주변을 코끼리와 공작, 꽃, 기하학적 무늬들로 섬세하게 조각하였는데 돌을 깎아 만들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고 아름답다. 궁전은 폐쇄된 정사각형 형태이고, 내부 중정에는 사각형의 큰 연못과 그 주변에 작은 연못들이 있다. 또 더위를 피하기 위해 좁은 창들과 작은 구멍들을 촘촘히 뚫었는데 돌이 아니라 금속으로 만든 것처럼 섬세하게 표현했다. 폐허 같은 자항기르 궁전이지만 처음으로 기품 있는 인도 궁전의 정석을 보았기 때문에 오르차 성에 대한 여운이 길었다. 뒤에 본 보존상태가 거의 완벽한 아그라 성이나 자이프르의 암베르 성도 기본 구조는 오르차 성과 비슷했다.
남쪽의 라자 마할은 왕의 궁전이라고 하니 왕과 왕비의 주거지였을 것이고, 북쪽의 쉬시 마할은 왕비 궁전이라고 하니 후궁들을 위한 궁전이었을 것이다. 쉬시 마할은 우리나라라면 상상도 못할 상황인, 기업에서 인수하여 호텔과 레스토랑으로 바꾸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북쪽의 라자 마할은 자항기르 마할보다 웅장한 맛은 적지만 레이스 같은 3단 아치와 겹겹이 늘어선 열주들이 아름다운 궁전이었다. 알현실 천장의 그림도 아쉽게 훼손된 곳이 많았지만 남아있는 그림은 아주 섬세하고 사실적이었다.
성 맞은편 서쪽은 해자 너머에 큰 마을이 있고, 그 뒤로 5개의 뾰족탑 같은 건물로 된 차투르부즈 사원(Chaturbhuz Mandir)이 있었다. 오르차 성과 마을 사이에 있는 해자 위의 다리 난간에 있는 작은 가마 같은 석조물의 용도가 궁금했지만 결국 알아내지 못했다. 오르차 성은 외떨어진 곳에 있어서 세계문화유산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의 방문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일행이 버스에서 내렸을 때 주민들의 시선이 쏠렸고, 성안에서 만난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은 우리 일행과 사진을 찍느라 야단법석이었다. 마을과 장터를 지나 성까지 가는 동안 성에서 놀던 원숭이만큼 현지인들이 우리를 신기해 하며 함께 사진을 찍었고, 수줍은 젊은이는 우리를 배경으로 몰래 셀카를 찍기도 했다.
♣ '마할'의 뜻 : 인도의 궁전에는 끝에 '마할' 이란 단어가 붙는데 '궁전' 이란 뜻이다. 대표적인 예로 '타지 마할' 을 들 수 있다. 기타 라자(라지) 마할은 왕의 궁전, 쉬시 마할 은 왕비의 궁전 을 의미하는 일반 명사이다. 따라서 제법 틀을 갖춘 궁전에는 반드시 라자(라지) 마할과 쉬시 마할이 있다.
♣ 몽골의 후예인 무굴제국의 왕자들이 부친 황제에 대해 반란이 잦았던 이유는 장자 계승이 아니라 능력이 있는 왕자가 황위를 계승하는 원칙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자항기르도 반란을 일으켰지만 다행히(!) 3년만에 아버지가 죽음으로써 결론적으로 황위를 계승했다.
샤자한과 뭄타즈 마할(타지마할의 주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우랑제브는 다른 아들을 후계자로 점 찍자 일찌감치 반란으로 황위를 찬탈했고, 아버지인 샤자한은 18년이나 아그라 성에 위폐되어 있다가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했다. 아버지가 소금기가 섞인 물을 먹어도 방치할 정도로 학대했던 이유는 자신을 후계자로 삼지 않은 것도 있지만 종교적으로 노선이 달라서였을 것으로 추측해 본다. 샤자한은 힌두교나 타 종교에 대해 비교적 관대했지만 아우랑제브는 살벌할 정도(!)로 엄격한 이슬람 원리주의자였다.
<오르차 성을 놀이터처럼 휘젛고 다니던 원숭이>
크고 주인이 없는 오르차 성은 원숭이들의 안락한 서식처였다. 성벽을 넘나들며 무리와 장난을 치던 한 녀석이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고 있다.
<용도가 궁금한 해자 위의 다리 난간에 있는 작은 가마 같은 석조물>
<오르차 성(Orcha Fort)의 정문>
문 뒤로 보이는 건물은 자항기르 궁전이다. 우리 일행은 유적을 찍느라,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은 우리와 사진을 찍느라 서로 바쁘다.
<오르차 성 정문 쪽에서 본 마을 뒤쪽의 차투르부즈 사원(Chaturbhuz Mandir)>
마을 뒤에 있던 원경에 보이는 이 사원이 몹시 궁금했는데 그냥 지나쳤다. 자유여행을 한 이들은 이 성 너머의 강에서 아이들과 놀기도 하고 그곳에서 하루 묵으며 식당에서 음식을 사먹었다고 했다. 성을 둘러싸고, 혹은 뒤쪽에 큰 마을이 또 있다는 의미이다.
<오르차 성 라자 마할과 쉬시 마할>
유수 기업에서 호텔과 레스토랑으로 개조 중인 오른쪽의 쉬시마할은 고성으로서의 기능은 이미 상실했다. 우리나라라면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오르차 성 쉬시 마할과 자항기르 마할>
이 방향에서 보면 왼쪽 쉬시 마할의 망가진 모습이 더 잘 보인다. 오른쪽 건물이 자항기르 마할이다. 조금만 더 시간과 정보가 있었더라면 무리를 해서라도 꼭대기 층까지 올라갔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지금도 아쉽다! 조망했다면 자항기르의 전체적인 짜임새와 오르차 소읍 주변을 좀더 자세히 볼 수 있었을 텐데...
<오르차 성 자항기르 마할 중정 왼쪽>
계단과 아래 좌우의 통로로 미루어 사진으로 담지 못한 궁전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왼쪽 처마 밑의 뭉툭한 장식과 그 아래 문의 장식은 일반적인 자항기르 마할의 장식이다.
<오르차 성 자항기르 마할 3면 중 1면을 정면에서 본 모습과 중정(마당)의 복잡한(!) 연못>
건물은 정확하게 대칭이지만 한쪽에만 위로 오르는 비스듬한 계단이 있는 점이 다르다. 인공 연못도 1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중앙에 사각형의 큰 연못이 있고 주변에 4개의 작은 팔각형 연못들이 있다.
<오르차 성 자항기르 마할의 장식이 아름다운 쪽문>
<오르차 성 자항기르 마할의 섬세한 궁전 출입문과 장식>
첫번째 문은 공작(가루다?), 두 번째 문은 코끼리 장식이다. 일반적으로 문도 돌(사암)인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금속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돌 조각도 워낙 섬세해서 바로 앞에서 보아도 돌인지 금속인지 구분이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자항기르 마할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암으로 조각한 중앙 출입문>
이 문의 섬세함은 자항기르 궁전 중에서 가장 탁월하며 궁전을 다시 돌아보게 할 정도이다. 재료가 돌(사암)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섬세하고 아름다운 장식이다. 이어서 본 아그라 성도 이 문과 스타일이 비슷한 사암 조각이다.
<오르차 성 자항기르 마할의 섬세한 궁전 출입문 옆의 장식들>
윗 사진의 중앙문 좌우에 있는 코끼리 조각과 그 아래의 무늬를 확대한 것이다.
<자항기르 마할의 천장 그림>
섬세한 사방연속 무늬 그림인데 보존상태 불량으로 아쉽게 뭉개졌다.
<자항기르 마할의 출입문 안쪽 벽면>
안쪽은 바깥과 분위기가 전혀 다른 단순한 장식을 했다. 좌우의 벽감같은 미흐랍은 등불을 넣었을 것 같다.
<밖에서 내려다 본 오르차 성의 라자 마할과 출입구>
<오르차 성 라자 마할 알현실의 아름다운 겹아치>
크게는 아치형이지만 자세히 보면 레이스 같은 미흐랍 모양인 인도 건축 특유의 기둥 양식을 볼 수 있다. 자항기르 마할이 섬세한 조각이 특징이라면 라자 마할은 레이스 같은 아치가 줄지어 서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 외에 알현실 천장에 그림들이 꽉 차게 그려져 있지만 훼손된 것이 많다.
<오르차 성 라자 마할의 또 다른 모양의 아치>
라자 마할에는 윗 사진의 레이스 모양의 아치형 기둥과 아래의 미흐랍 모양의 아치형 기둥, 두 종류로 되어 있다.
<오르차 성 라자 마할의 비교적 온전한 천장화>
사방연속무늬 같은 꽃무늬와 중앙의 추상적인 무늬, 하단의 사실적인 기록화 등 다양한 그림이 섞여 있다. 나는 이 사진과 두 어개만 건졌지만 다른 이들의 사진을 보니 다양한 그림들이 있었다.
<라자 마할의 중정과 연못으로 보이는 공간>
돌로 만든 것 같지 않은 부드러운 곡선의 레이스 아치가 아름답다. 이 궁전의 중정(안마당)에도 연못이 있다. 두 번째 사진은 위치로 보아 남근상(링가) 같기도 하고 그냥 연못 같기도 하다. 이런 것까지 현지 가이드에게 기대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니 안내 책자라도 잘 구비되어 있으면 좋으련만...
<오르차 성 라자 마할의 마당(중정)과 안쪽 모서리>
<라자 마할 중정의 문들>
두 번째의 문은 실질적인 문이 아니라 특별한 용도의 문이었을 것 같다. 자항기르 궁전 안의 위로 오르는 계단 옆에도 비슷한 시설이 있었다.
<라자 마할과 출입문>
<오르차 성 성문>
많이 훼손되었지만 성문의 모습은 그런대로 남아있다. 이 문을 보면 어느 나라나 근대 이전의 성문은 모양이 비슷한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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