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국립공원 장수대 탐방로 입구>
장수대 탐방로 분소에 주차한 후 사진 왼쪽의 탐방로(두번째 사진)로 들어간다. 대승폭포는 입구에서 0.9km밖에 되지 않지만 계속 올라가는, 짧지만 빡센 코스이다. 시간은 폭포 전망대까지 오르는데 40분, 하산하는데 30분이라고 했지만 부실한 내가 낀 우리 팀은 등산에 1시간, 하산에 40분이 걸렸다.
<탐방로 개방 시간>
전체 탐방로 03:00 ~ 13:00
대승폭포 03:00 ~ 16:00
문의 : 설악산국립공원 장수대 분소 033-801-0984
이곳은 설악산 중에서도 쉬운 코스부터 가장 힘든 코스까지 모두 연결되는데 우리가 들른 날(2020. 8/17.)은 직전까지 54일이나 계속된 장마로 탐방로가 유실되어 대부분의 구간이 탐방 금지상태였다.
<설악산 탐방로, 설악산과 나의 짧은 인연>
장수대 탐방로는 사진으로 보니 내설악 구역이었다. 고등학교 때인가 대학 초년쯤인가, 외설악은 울산바위까지 올랐던 기억이 있다. 폭포, 혹은 등산을 목표로 설악산을 마지막으로 찾은 것은 40여년 전이다. 대학 시절인 1980년, 군부 쿠데타로 휴교라서 속초의 친구 집에 묵으면서 그림을 그리러 들른 곳이 남설악의 오색폭포, 용소폭포였다. 그 뒤로 호텔이나 절 등 설악산 입구쪽은 가끔 들렀지만 건강 때문에 등산을 하러 들른 적은 전혀 없었다.
아래 사진은 인제군 종합관광 안내도인데 등산은 불가능해도 들른 곳이 몇 곳 되었다. 원대리 자작나무숲, 곰배령, 백담사, 그리고 이번에 대승폭포와 박인환문학관을 들렀다.
<설악산국립공원 장수대 탐방로, 소승폭포 부근>
소승폭포는 입구에서 가까운 곳에 있고, 딱히 안내문은 없지만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코로나 19로 등산객들이 거의 없었다. 날씨가 상당히 덥고 가파른 계단 때문에 숨이 가빠 마스크를 쓰지 못하고 가끔 마주치는 등산객들은 서로 얼굴을 돌리는 정도의 매너만 지켰다.
<설악산국립공원 장수대 탐방로의 계단>
워낙 오랜만(!)이라 설악산의 등산로에 대해 아는 바가 없지만 적어도 장수대 코스는 등산로가 상당히 잘 정비되어 있었다. 가끔 첫 번째처럼 다듬어진 돌 계단이 있고, 가파른 길은 대부분 타이어 재질의 미끄럼 방지가 된 목도가 설치되어 있었다. 두 번째 사진은 같은 목도를 위로 올려다 본 것이고, 세 번째 사진은 내려다 본 것이다.
<설악산국립공원 장수대 탐방로에서 본 설악산>
당시엔 잘 몰랐지만 나중에 보니 대승폭포를 바라보고 윗 사진은 귀때기청봉이나 한계령 방향인듯 했다. 아래 사진은 장수대쪽을 되돌아본 풍경이니까 남설악 어디쯤 되지 않을까?
<설악산국립공원 장수대 탐방로에서 본 좌우 풍경>
윗 사진은 귀때기청봉이나 한계령 방향, 아래 사진은 반대편인 안산이나 설악산생태탐방원 방향인듯... 사진의 희끗한 부분들은 우리가 지나온 장수대 탐방로를 지나는 도로이다. 세 번째 사진은 계단 옆의 늙은 소나무와 신갈나무들이다. 계단 주변에는 신갈나무와 며느리밥풀꽃이 가장 많았다.
<설악산국립공원 장수대 탐방로의 좀더 높은 곳에서 본 좌우 풍경>
윗 사진과 똑같은 풍경인데 좀더 위로 오른 상태에서 본 것이다. 중간의 전망이 괜찮은 곳에 설악산과 관련된 한시(漢詩)를 설치해서 가뿐 숨을 쉬어가는데 도움이 되었다.
<드디어 대승(한계)폭포가 보인다!>
왼쪽의 모양 좋은 바위 군락이 보이면 오른쪽 원경으로 대승(한계)폭포가 보인다. 그전까지는 가파른 계단과 약간씩 틀어진 계단(길) 때문에 '이놈의 폭포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싶은데 바위가 아름답다고 느낀 조금 뒤에 풍경 중앙에 대승폭포가 나타났다.
<잘 생긴 바위 군락쪽의 멋진 소나무와 향나무>
장수대 탐방로에서 대승폭포 전망대 사이에는 입구쪽만 곧은 소나무가 있고, 탐방로 주변은 이런 소나무들이 많다. 장릉의 소나무처럼 쭉쭉 뻗은 소나무도 아름답지만 이런 소나무도 상당히 운치가 있었다.
<대승폭포 전망대 앞의 九天銀河 각자(刻字)>
'河'자는 알아보기 어렵지만 나머지 글자는 선명했다. 대승(한계)폭포 주변의 九天銀河 각자는 중국의 시인 이백(二伯)이 지은 '望廬山瀑布'의 구절에서 빌려온 것이다. 대승(한계)폭포의 장쾌함이 여산폭포에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을 표현한 구절이다. 글씨를 쓴 사람이 누구인지 확정할 수는 없지만, 임적(1686~1728)은 자신이 쓴 한계폭포기에서 곡운 김수증의 글씨라는 기록을 남겼다. --현지 안내문 요약--
<대승(한계)폭포 전망대에서 되돌아본 아름다운 좌우 경치>
대승폭포에서 되돌아본 귀때기청봉이나 한계령 방향, 아래 사진은 반대편인 안산이나 설악산생태탐방원 방향으로 추측. 산세가 아름다워야 당연히 풍경이 아름답지만 근경에 멋진 바위와 나무가 곁들여지면 금상첨화이다! 이 즈음부터 우리쪽은 맑은데 맞은편 산에 운무가 끼기 시작했다.
≪설악산 대승(한계)폭포≫
이 정도인데 우리나라의 3대 폭포라고라? 좀 의아스럽긴 하지만 여하튼 지금까지 본 우리나라의 폭포 중 길이가 가장 길긴 했다. 비가 온 끝인데도 폭포 줄기가 가늘어서 솔직히 좀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주변 풍경은 오랜만에 찾은 산이라서 그런지 많은 힐링이 되었다.
≪대승폭포의 또 다른 이름 한계(寒溪)폭포≫
조선시대 금강산의 구룡폭포, 개성의 박연폭포와 함께 3대 폭포로 알려진 대승폭포는 '한계폭', 또는 '한계폭포'로 불렸다. 당시에는 대승폭포를 품은 산이 현재의 설악산이 아니라 한계산(寒溪山)으로 불렸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현재의 대청봉 주변과 그 북쪽만을 설악산(雪岳山)이라 하였고, 울산바위 주변은 천후산(天喉山), 대청봉 서쪽 일대는 한계산(寒溪山)이라 하였다. '한계(寒溪)' 지명이 가장 오래전에 쓰여진 기록은 647년(신라 진덕여왕 1년) 현재 한계리 주변에 창건된 寒溪寺라는 사찰 이름이다. 이후 지리지, 고지도, 유람기 등에 한계山, 한계城, 한계동 封山, 한계폭포, 한계川, 한계嶺 등의 지명이 폭넓게 사용되어 오고 있다.
대승폭포(大勝瀑布, Daeseung Falls) :
장수대 입구에서 0.9km지점에 위치한 대승폭포는 높이가 88m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서려있다. 한계리에 대승이라는 총각이 살았는데 하루는 폭포가 있는 돌기둥 절벽에 동아줄을 타고 내려가서 돌버섯을 캐고 있었는데 절벽 위에서 "대승아! 대승아!" 하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외침이 들려 동아줄을 타고 올라갔으나 어머니는 간 곳 없고 신짝만한 지네가 매달려 동아줄을 뜯어 막 끊어지려는 참이었다. 대승은 동아줄을 급히 타고 올라 무사히 살아날 수 있었다. 후세 사람들은 죽어서도 아들의 위험을 가르쳐준 어머니의 외침이 메아리 친다 하여 이 폭포를 대승폭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현지 안내문--
<설악산 대승(한계)폭포 동영상>
전망대와 폭포 사이에는 거리가 꽤 되고 다른 각도에서 보는 것도 불가능하다. 장수대 탐방로에서는 더 이상 폭포로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무엇보다 아래쪽의 소(消)가 보이지 않아 유감스러웠다. 작년에 본, 폭포 앞과 옆, 뒤쪽에서도 볼 수 있는 중국 구이양(貴陽)의 세계적인 황과수대폭포가 잠깐 생각났다.
<설악산 대승(한계)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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