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인천

광주 추곡리 백련암 부도

큰누리 2020. 9. 13. 23:35

<2015년 여름의 답사를 추억하다 1>

해마다 습관처럼 갔던 해외 여행을 이번 여름엔 코로나 19로 포기해야 했다. 여름엔 좀 시원한 곳으로, 겨울엔 좀 포근한 곳으로 떠나곤 했는데 2020년 1월의 인도여행을 마지막으로 이젠 언제가 될지 기약할 수 없는 해외 여행이 되어 버렸다. 형편은 국내 여행도 마찬가지지만...

 

그래서 지난 10년 넘게 미친 듯이 돌아 다녔던 사진들을 그 동안 자료백업 드라이브에서 찾아보니 일단 컴퓨터 안에는 2014년부터 현재까지 사진들이 모두 저장되어 있었다. 2014, 2015년은 본격적으로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여행을 돌린 시기이고, 국내 답사도 열심히 다녔던 시기이다. (양이 너무 많아) 대충 훑어보다가 답사 다녀온 후 대부분은 블로그에 포스팅을 했는데 당시에 너무 바빠서인지 글로 정리하다 만 경기도 지역의 부도, 불상 사진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어떤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요즘에 정리하지 못한 내용들을 글로 옮기기로 했다. 기억은 또렷하지만 벌써 정확히 5년이 흘렀으니 이제는 그곳들도 많이 달라졌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게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글로 정리하는 첫번째 이유는 그냥 보고 넘어가는 것보다 정확하고 오래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시간도 많은데 누락된 것들을 정리도 하고, 슬프지만 지금은 체력이 달려 힘들어진 답사나 여행을 추억해야겠다.

 

 

<2015년 광주시 추곡리 백련암으로 올라가는 길고 험한 오르막길>

목표는 백련암이 아니라 절에 있는 부도를 보기 위해서였다. 백련암으로 올라가는 길이 어찌나 가파르고 길던지 오르느라 고생한 기억이 생생하다. 거친 자갈과 가파른 돌길이 위험해서 산길 간간히 오른쪽에 설치한 밧줄을 잡고 올랐다. 가장 가팔랐던 곳은 주차장에서 내린 후 초입 진입로였는데 지금은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기억에 40여분을 계속 올라갔는데 '길을 잘못 든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코스가 길고 험했다. 올라가는 내내 최근에 세운 부도와 비석 1쌍을 제외하곤 아무 것도 없었지만 주변 숲은 그런대로 볼만 했다. 특히 절 바로 아래 쪽에 뽕모시풀이 무성했고, 가파른 돌길 사이로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이 통과하기도 했다.

 

 

 

 

<백련암으로 오르는 길 중 특징적인 것 2개>

사진의 돌탑무착당(無着堂)이라 적힌 부도, 무착당법정대종사(無着堂法淨大宗師)라고 적힌 비석이다.

 

 

 

<다시 이어지는 백련암으로 가는 거칠고 꼬불꼬불한 산길>

 

 

 

 

<험한 산길로 40여분 오른 끝에 도착한 백련암>

이곳은 그간 다닌 수많은 답사지 중 손가락에 들 정도로 거칠고 긴 오르막길 때문에 힘들었다. 맨 왼쪽 건물에서 절 관계자(!)와 신도 몇 분이 둘러 앉아 점심을 먹는 것이 뒤쪽에서 대청으로 보였다. 당시에 백련암은 세운지(혹은 재건한지) 얼마 안 되는 것 같았고, 주변에 건축 자재들이 흩어져 어수선했다.

 

사진 오른쪽부터 종각, 중간과 왼쪽은 요사채 용도인 듯 했고, 뒤로 얼핏 보이는 높은 곳의 건물은 대웅전(오른쪽)과 이 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한 칸짜리 참선방(?)이다. 우리의 목표인 부도는 종각 오른편에 어수선한 건축 자재들과 섞여 있었다.

 

 

 

<백련암 요사채(!)로 판단한 신축 건물 2채와 백련암 조감도>

당시에는 조감도와 비교해볼 때 신축한 건물은 아직 단청을 하지 않은 상태였고, 위치도 종각과 다르게 그려졌다. 종각과 두 건물은 분명히 같은 높이였고, 대웅전과 사진의 건물 사이에는 한층이 더 들어갈 정도의 공간이 전혀 없었다. 조감도에는 부도도 없다.

 

 

 

<백련암 종각 옆의 부도 2기>

앞의 법승당(法勝堂)이라 적힌 부도는 최근 것이고, 뒤(왼쪽)의 이끼 낀 부도가 바로 우리가 찾은 부도이다.

 

 

<추곡리 백련암 부도>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53호

소재지 :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추곡리 산25-1.

조선 시대의 전형적인 종 모양 부도이다. 탑신부만으로 이루어진 종 모양의 부도는 인도의 복발탑에서 유래된 것으로 고려 시대 후기부터 조선 시대에 걸쳐 유행한 형식이다.

백련암의 연혁은 알 수 없으며 유일하게 부도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부도는 사각형의 지대석 위에 놓여 있으며 지대석의 각 면에는 직사각형의 액(額)을 만든 뒤 그 안에는 초화문(草花文)을, 옆에는 안상(眼象)을 새겼는데 지대석에 안상을 표현한 드문 예이다. 그 위에 연꽃 모양을 새긴 받침을 놓고 부도를 올렸다. 부도의 아래 면에도 받침과 일치되게 연꽃 문양을 조각하여 대칭을 이루고 있다. 부도 위에는 복발(覆鉢)과 보주(寶珠)를 놓았다. 

 

 

 

<요사채와 종각, 부도 윗단에 있는 대웅전과 수도처(?)>

첫번째 사진 오른쪽은 백련암의 주 불전인 대웅전, 처마만 보이는 왼쪽은 방 한 칸짜리 건물이다.

 

 

 

<백련암 대웅전>

 

 

 

 

<백련암 대웅전 옆 모습과 한 칸짜리 건물>

사진 뒤쪽의 한 칸짜리 건물은 벽에 줄줄이 걸린 목탁이나 위치로 보아 혼자 수도를 하는 공간인 듯 한데 명칭은 모르겠다.

 

 

<백련암 대웅전 왼쪽의 도량처(참선방?)로 보이는 한 칸짜리 건물>

그을음이 오른 벽과 솥단지, 목장갑을 걸어 놓은 나무로 만든 장대 걸이, 깨진 풍경, 목탁들이 모두 정겹다. 당시에 이 절에서 가장 내 눈길을 끌었던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