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성북동 북정마을과 서울성곽, 와룡공원

큰누리 2023. 10. 20. 21:38

 

 

≪성북동 비둘기와 성북동 개발≫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를 처음 접한 것이 중학교 때쯤이었을까? 성북동이라는 지명을 콕 짚어서 쓴 시라 관심은 갔지만 딱히 신경 써서 읽지 않았었다. 이 참에 제대로 음미하고 싶어서 성북동 비둘기를 적어보았다. 그랬더니 길지 않은 시 속에 성북동이 일제 강점기부터 주거지로 개발되면서 서울 외곽, 그것도 깊은 산중이었던 곳이 개발이란 명목으로 얼마나 정신 없이 파헤쳐지고 달라졌는지 구구절절이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 들은 성북동은 고급스럽고 커다란 저택이 모여있는 부자 동네였다. 그러나 맞은편 가파른 산자락에는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 같은 고만고만한 집들이 좁은 골목을 끼고 모여 있고, 아직 서울에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낡은 주택들이 많았다. 어떤 집은 지붕의 기와가 무너져서 비닐로 덮고 돌로 눌러놓은 곳조차 있었다. 그 주변을 북정마을로 부르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혹자는 만해 한용운 심우장이 일본인들이 싫어서 등지느라 집이 북향이라고 하고, 혹자는 산자락에 집을 지을 수 밖에 없는 여건이라 어쩔 수없이 북향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 알 수 없으나 서울성곽(한양도성)과 심우장 때문에 북정마을을 돌아보고, 산자락에 있는 집을 오르내리며 힘들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삶을 잠시 들여다 보았다. 

 

 

성북 비둘기 쉼터 벽에 있는 '성북동 비둘기'≫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세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직한 마당은 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 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성북 비둘기 쉼터>

우리는 덕수교회 안의 이종석 별장만해 한용운 심우장을 둘러보고 서울성곽(한양도성)을 보러 가는 도중에 이곳에 들렀다. 비둘기 쉼터는 심우장 바로 위에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개발 당시에 조성된 것이 아니라 국민대학교와 지역주민과의 연계를 통한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이루어진 북정 성곽마을 달빛스케치 일월축제 2009의 일환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성북 비둘기 쉼터에서 내려다 본 북정마을 풍경>

북정마을은 바로 위로 지나는 서울성곽(한양도성) 때문에 주택 신축이나 개발에 제한을 받는 듯하다. 

 

 

<북정마을 정상의 안내문과 이정표>

 

 

<심우장 반대편 쪽 북정마을> 

 

 

<북정마을에서 서울성곽으로 들어가는 문>

북정마을에서 이곳으로 서울성곽에 진입할 수 있다. 

 

 

 

≪서울 한양도성(서울성곽)≫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왕조의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성이다. 1396년(태조5)에 백악(북악산), 낙타(낙산), 목멱(남산), 인왕의 내사산 능선을 따라 쌓은 이후 여러 차례 고쳤다. 평균 높이 약 5~8m, 전체 길이 약 18.6km에 이르며,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래토록 (1396~1910, 514년) 성의 역할을 다한 건축물이다. 한양도성의 성벽에는 낡거나 부서진 것을 손보아 고친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으며, 성벽 돌에 새겨진 글자들과 시기별로 다른 돌의 모양을 통해 축성 시기와 축성 기술의  발달 과정을 알 수 있다. 

한양도성에는 사대문(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과 사소문(혜화문, 소의문, 광희문, 창의문)을 두었는데, 이 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없어졌다. 2014년까지 한양도성 전체구간의 70%가 옛모습에 가깝게 정비되고, 숙정문, 광희문, 혜화문은 다시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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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양도성(서울성곽) 완주에 대한 추억≫

2013년인가 한참 유적지 답사에 미쳐서 온갖 곳을 헤짚고 다녔다. 서울성곽은 물론 남한산성, 수원화성 등을 거의 답사했고, 그것도 안팎으로 돌았다. 성을 안으로 돌면 지키는(守城) 입장에서, 밖으로 돌면 공격하는(攻城) 입장에서 파악할 수 있어서 상당히 흥미롭다. 답사자 입장에서는 성밖으로 도는 것이 훨씬 더 힘들다. 

 

서울성곽은 기억에 17km가 넘는데 부실한 건강으로 동대문, 낙산에서 시작하여 남산, 인왕산을 거쳐 북악산을 한 바퀴 돌아 원점인 동대문으로 되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나는 부실한 건강 때문에 당연이 도중에 아웃되었고, 나중에 개인적으로 남은 구간을 돌았다. 하지만 일행이 있는 첫번째 일정에서 힘들게 따라붙다가 무리를 해서 가슴 연골에 손상이 왔고, 병원에서 처방한 약을 먹으며 한동안 고통스럽게 숨을 쉬며 지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식한 내 모습(가슴에 연골이 있는 것도 당시에 처음 알았다!), 혹은 열정이 우습지만 그 때 그렇게 안 했으면 지금쯤 가끔 여행사를 따라다니며 적당히 즐기는 수준에서 끝났을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열심히 쫓아다닌 결과 나름 내 답사 활동에 만족하는 생활을 하며 10년 넘게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 맛보기처럼 낀 서울성곽(한양도성) 답사는 나를 추억에 잠기게 했고, 성곽을 보는 것 자체가 반갑고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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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정마을에서 진입한 후 본 서울성곽(한양도성) 담장>

윗사진부터 아래, 옆, 위쪽으로 본 서울성곽(한양도성)의 모습이다. 성북동은 성곽(한양도성) 밖에 있고, 안쪽에는 바로 아래에 성균관대학교를 비롯하여 서울국제고, 서울과학고, 혜화문이 이어진다.

 

 

 

 

<서울성곽(한양도성)과 북정마을>

오른쪽 사진은 서울성곽이고, 왼쪽은 그 위치에서 본 심우장 쪽 북정마을이다. 

 

 

<와룡공원으로 오르며 본 서울성곽(한양도성)과 북정마을>

 

 

 

<와룡공원으로 오르며 본 서울성곽(한양도성)>

 

 

 

<와룡정과 와룡공원>

 

 

 

<와룡공원에서 북정마을로 내려가는 통로>

이곳으로 나가면 서울성곽을 따라 바깥쪽으로 길이 이어진다. 이 문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우리가 북정마을 심우장 위에서 서울성곽으로 진입한 문이 나온다. 아래의 작은 사진들은 이 문밖에서 본 성북동과 서울성곽 바깥 모습이다.

 

 

<서울성곽(한양도성) 실명제 증거, 각자성석 南陽>

각자성석(刻字城石)은 성을 쌓는 과정과 관련된 기록이 새겨진 성돌이다. 한양도성(서울성곽)에 남아있는 각자성석은 천자문의 글자로 축성구간을 표시한 각자(14세기)와 축성을 담당한 지방의 이름을 새긴 각자(15세기), 축성 책임 관리와 석수의 이름을 새긴 각자(18세기 이후)로 나눌 수 있다. 한양도성(서울성곽)에는 이처럼 다양한 시기에 만들어진, 다양한 유형의 각자성석이 190개 이상 남아있다.

이 각자성석은 세종 4년(1422)에 경기도 남양현(지금의 화성시 남양읍) 백성들이 공사를 담당한 구간의 시작점을 표시한 것이다. 세종 때에는 성벽을 쌓은 이들이 어느 지방 사람인지 새겨 두었다가 성벽이 무너지면 서울에 와서 다시 쌓게 했다. 일종의 실명제인 셈이다.   

 

 

<성북동 서울성곽길 조망 지점 부근>

 

 

 

 

<북정마을 위 서울성곽>

 

 

<북정마을에서 서울성곽(한양도성)으로 통하는 문>

 

 

<북정마을 쪽 서울성곽(한양도성) 출구에서 본 성북동>

왼쪽의 빨간 지붕 뒤 흰색 건물은 간송미술관이다.

 

 

<서울성곽(한양도성) 출구의 길냥이>

북정마을 쪽 서울성곽 출구의 여장(성가퀴)에서 평화롭게 잠이 든 길냥이이다. 얼마나 탁월한 선택인가! 아무리 고양이라도 접근하기 쉽지 않은 위치인데 사람이나 비 바람으로부터 안전한 이곳을 용케 선택해서 터를 잡은 듯하다. 부디 안전하게 잘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