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오스트리아·체코

헝·오·체 여행4. 부다페스트 부다 성(왕궁)과 성에서 본 다뉴브강 야경

큰누리 2023. 12. 25. 18:49

부다 성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있는 헝가리 국왕들이 살았던 성으로 과거에는 왕궁, 또는 왕성으로 불렸다. 부다 성은 중세와 바로크, 19세기 양식의 가옥들과 공공건물들로 유명한 부다 성 지구(Várnegyed) 남쪽 꼭대기에 지어졌다. 부다 성은 1987년 지정된 부다페스트 세계문화유산의 일부이다.

 

1241, 헝가리의 벨라 4세는 몽골의 침략으로 에스테르곰에서 이곳으로 피신해 온 후 성과 요새를 겸한 왕궁을 건설하고 수도로 삼았다. 14세기에 라요슈 1세가 고딕양식의 왕궁으로 증축하였고, 15세기 후반에 헝가리 르네상스를 연 마차시 1가 르네상스 양식으로 개축하였다. 이 시기에 헝가리는 중앙유럽 르네상스의 중심지로 영화를 누렸으나 16세기에 오스만 제국과 전쟁에서 패하여 왕조가 멸망하였다.

 

17세기에 합스부르크 왕가의 도움으로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해방되었으나, 합스부르크 왕가가 헝가리 왕을 겸하게 되었고, 이 시기에 바로크 양식의 궁전을 신축하였다. 18세기에 합스부르크 왕가 여왕인 마리아 테레지아의 명으로 증축하여 203개의 방을 갖춘 거대한 궁전이 되었으나 19세기 후반의 대화재로 왕궁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이후 다시 개축하여 1904년에 완공하였으나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으로 다시 큰 타격을 입었고, 1956년 헝가리 혁명 당시 소련군에 의해 파괴되었다.

 

지금의 건물은 1950년대에 재건하였고, 1980년대에 완성되었다. 현재 왕궁은 국립미술관과 부다페스트 역사박물관, 2만 권의 장서가 있는 국립 세체니 도서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위키백과의 내용을 요약)

 

 

<부다페스트 부다 성 셔틀버스>

 

 

<부다페스트 부다 성 지구의 건물 유적들>

 

 

<부다 성 지구의 대통령 집무실과 총리 집무실>

수많은 관광객이 오가는 길목에 있는데 오가며 본 경호원이나 근무하는 경찰은 대통령 집무실에 2명뿐이어서 신기했다.  

 

 

<부다 성 앞의 푸니쿨라 상부 정류소>

대부분의 관광객은 다뉴브강쪽에서 푸니쿨라를 타고 여기에서 내린다.

 

 

<부다 성(왕궁) 입구와 헝가리의 나라 새 투룰>

투룰은 헝가리 건국에 등장하는 새이자 국조로 거대한 독수리 모양을 하고 두 발톱으로 칼을 붙들고 있다. 투룰은 헝가리 방위군, 대테러센터, 헌법수호청 등의 문장 도안으로 사용된다.

 

 

<부다 성 내부, Hunyadi(후냐디) Court>

 

 

<부다 성에서 조망한 다뉴브강과 건너편의 페스트 지역>

부다 성은 부다페스트 지역으로 묶여 1987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중앙에 세체니 다리가 있고 왼쪽의 국회의사당부터 성 이슈트반 대성당, Ferris Wheel of Budapest(대관람차) 등 페스트 지역이 모두 조망된다. 

 

 

 

<부다 성과 낚시하는 아이들의 샘 분수>

 

 

≪사보이의 유진 왕자≫

사보이의 유진 왕자(1663~1736) : 17세기, 18세기에 신성로마제국과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군사령관이다. 파리에서 태어나 루이 14세의 궁정에서 자랐고, 귀족 가문의 막내는 사제가 되는 관례에 따라 성직자가 될 준비를 하다가 19세에 군에 입대하고자 했다. 그러나 왜소한 체구와 어머니의 스캔들 때문에 프랑스군 복무를 거부당하자 오스트리아로 이주하여 신성로마제국 군인이 되었다.

 

60여 년 동안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레오폴드 1, 요제프 1, 카를 6세를 섬기며 1683년 오스만 제국과의 전투를 시작으로 9년 전쟁에 참전하여 사촌인 사보이 공작과 함께 싸웠고, 1697년 젠타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유럽 전역에 명성을 떨쳤다. 1704~1709년에 프랑스군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두었고, 1716~1717년에 오스트리아-투르크 전쟁에서 더욱 명성을 얻게 되었다. 말년에는 제대로 활약하지 못했지만 프랑스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오스트리아를 지키는데 상당한 공헌을 했다. 17367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부다 성 헝가리 국립미술관과 사보이의 유진 왕자 동상>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군사령관 동상이 이곳 헝가리의 성(왕궁)에 있는 이유는 헝가리가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던 시절에 유진 왕자가 이곳을 중심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헝가리나 체코는 신성로마제국 시절에 오스트리아와 묶이거나 지배를 받았는데 두 나라 모두 오스트리아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부다 성에서 조망한 다뉴브강과 겔레르트 언덕>

부다 성에서 왼쪽 사진의 대관람차부터 오른쪽 사진 끝의 겔레르트 언덕까지 조망한 모습이다. 흰색 줄 지지대가 있는 다리는 당시 유럽 최고의 미녀이자 헝가리 왕비였던 엘리자베스의 이름을 딴 엘리자베스 다리이다. 귀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마지막 전 날 다시 부다페스트로 돌아와서 야간에 유람선 투어를 하고 이튿날 혼자 성 이슈트반 대성당에서부터 시내를 훑어보고, 엘리자베스 다리 앞에서 세체니 다리까지 걸으며 반대 위치에서 이곳 부다 성을 보았다.

 

이곳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은 아련하고 운치가 있는 반면 반대편 강가에서 올려다 보는 부다 성은 웅장하고 장엄해서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부다페스트 세체니 다리≫

세체니 다리는 부다페스트의 서쪽 부다 지구동쪽 페슈트 지구 사이에 있는 다뉴브강에 놓인 현수교로 1849년에 개통된 다뉴브강 최초의 다리이다. 다리의 이름은 다리 건설의 주요 후원자였던 헝가리의 국민적 영웅 세체니 이슈트반에서 따온 것이다.

템즈강의 런던 다리를 건설한 영국의 설계 기사 클라크(William Tierney Clark)건축가 애덤 클라크(Adam Clark)를 초빙해 건설하였다. 장식물들과 구조는 주철로 만들었으며, 잔잔한 기품과 안정적인 모습을 발산하여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밤이 되면, 380m의 케이블로 이어진 수천 개의 전등이 다뉴브강물에 반사되어 아름답다.

 

 

<부다 성에서 조망한 세체니 다리와 페스트 지역, 성 이슈트반 대성당> 

 

 

<부다 성에서 조망한 다뉴브강과 페스트 지구>

 

 

<부다 성에서 조망한 다뉴브강과 국회의사당> 

첫 번째 사진 오른쪽은 세체니 다리, 두 번째 사진 원경은 마르기트 다리이다. 다뉴브강에 비친 페스트 지구 건물들의 불빛은 모두 아름답지만 특히 국회의사당과 세체니 다리의 불빛은 환상적이다. 아마도 다뉴브강을 낀 이런 야경 때문에 관광객들이 줄지어 부다페스트를 찾을 것이다. 

 

 

 

 

<부다 성에서 조망한 페스트 지구의 성 이슈트반 대성당>

 

 

<부다 성 헝가리 국립미술관과 사보이의 유진 왕자 동상 야경>

 

 

 

** 이하 풍경은 나오는 길에 본 부다 성 모습들이다.

<부다 성 헝가리 국립미술관(Hunyadi Court)>

 

 

<부다 성 헝가리 국립미술관(Hunyadi Court)과 마티아스 왕의 분수>

 

 

<부다 성 부다페스트 역사박물관, 국립 세체니 도서관(Hunyadi Court)>

 

 

<부다 성 맨 뒤(아래)의 Royal Riding Hall(승마장)>

 

 

<뒤에서 본 부다 성 야경>

중앙의 계단이나 그 아래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부다 성을 감상한다.

 

 

<부다 성을 떠나며 본 뒤쪽 모습>

오른쪽 건물은 국립 세체니 도서관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