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오스트리아·체코

헝·오·체 여행19. 체코 프라하 야경

큰누리 2024. 2. 16. 23:01

≪프라하 입성 후 야경 투어≫

맥주의 도시 플젠에서 프라하로 들어섰는데 처음으로 교통체증이 있었다. 프라하는 백탑(100개의 탑)의 도시로 불리며 아름다운 건축으로 유명하다. 우리는 유람선이 지나가는 블타바강의 어느 다리 근처에서 내렸는데 도심(구시가지)으로 버스 진입을 통제하기 때문에 프라하 시내에서는 무조건 걸어서 이동해야 했다. 개인적으로 여행한다면 트램을 잘 활용하면 좋을 듯하다. 

 

프라하 한인 현지 가이드와 합류해 번화가에 있는 한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메뉴는 된장찌개와 돼지고기 고추장볶음, 김치, 잡채였는데 모두 맛있었다. 공기밥 양이 약간 작다 싶었는데 일행 중 몇 명이 공기밥을 추가했다. 그랬더니 공기밥 한 그릇 가격이 무려 3유로였다! 하지만 김치는 추가시 무료였다. 

 

식사 후 바로 1시간 정도 현지 가이드를 따라  프라하 야간 투어를 했다. 버스로 진입할 때 도시 전체가 어두컴컴해서 유명세만 요란한 게 아닐까 의심했는데 웬걸, 서울만큼 화려한 불빛은 아니지만 도시 대부분의 건축들 규모와 질이 대단했다. 건축학도들이 공부하러 이곳으로 온다는 이유가 공감이 되었다. 스케일, 정교함, 양호한 보존상태 등 뭐 하나 빠질 것 없이 모두 훌륭했다. 특히 우리나라로 치면 동대문, 서대문쯤에 해당하는 화약탑, 카를교 탑 사이에 집결된 문화유산들의 수준이 대단했다. 무엇 하나 허투로 지나칠 게 없을 정도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건물들이 대부분이었다.

체코에서는 카를교 입구에 동상이 서있는 카를 4를 우리나라의 세종대왕만큼이나 꼭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카를교, 성당 등 프라하에서 유명한 건축들이 이 양반에 의해 건축되었기 때문이다.

 

야간 투어 후 프라하 도심에 못 들어오는 버스를 타러 20분 걸려 카를교 옆의 Manes 다리를 걸어서 건너 우리 버스와 만나 노베메스트의 레지던스 Emmy 호텔로 갔다. 호텔은 한인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버스 안에서나 내릴 때 우리 가이드는 물론 크로아티아인 버스 기사마저 소매치기 조심하란 말을 여러 차례 했지만 여행하는 동안 일행 누구도 소매치기를 당한 적도 없고 별로 신경들을 안 썼다. 혼자 방을 쓰는 나는 7층에 배정되었다. 

 

 

≪체코 호텔의 불편한 점들≫

호텔에서 여권은 걷지 않았지만 2명의 주소를 대라는 등 귀찮은 절차가 있어 대기 시간이 늘어졌다. 엘리베이터는 물론 호텔 현관문까지 카드를 대야 열리는 것도 불편했다. 헝가리, 오스트리아의 호텔과 달리 체코의 호텔들은 몇 가지 점이 불편했다. 호텔 시설은 깨끗하고 좋았지만 가장 불편하고 이해가 안 되었던 점은 어제의 호텔처럼 멀티 콘센트를 못 쓰게 장치를 해서 막은 것이었다 . 최악의 상황은 따뜻한 물이 안 나온 것! 10년도 더 전에 중국에서 겪었던 상황인데, 한꺼번에 여러 곳에서 물을 쓰면 물이 졸졸 나오거나 따뜻한 물이 안 나오는 구조라고 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것도 겨울에 찬물이라니...

 

 

<프라하 중심가와 트램>

프라하는 유명세 만큼 도시가 큰 편은 아닌 듯하고, 한강처럼 블타바강이 프라하를 양쪽으로 크게 나누는 점은 서울과 비슷하다. 강 건너편에는 성 비투스 대성당과 프라하 성 등 과거 왕족 중심의 유적이 모여있고, 나중에 개발되어 현재 프라하의 중심가인 강 이쪽편은 시청사나 국립박물관, 미술관, 성 니콜라스 교회, 틴 성당 등 수많은 유적이 있다. 유적이 집중된 지역의 강 양편을 이어주는 다리가 바로 카를교이다.

 

 

<저녁을 먹은 프라하의 한식당 MAMY>

된장찌개가 주메뉴인데 맛있다. 공기밥을 추가하면 3유로, 김치는 무료이다.

 

 

<프라하 시민회관(Municipal House)>

중앙 돔에 있는 그림이 체코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알폰스 무하의 작품이다.

 

 

<다음날 낮에 본 프라하 시민회관(Municipal House)>

 

 

<프라하 화약탑(동탑), Municipal House(시민회관)>

화약탑은 1475년에 세워진 65m의 구시가지 성문이다. 1886년에 카렐교 탑을 따라 리모델링을 했기 때문에 카렐교 탑과 비슷하다. 17세기 말에 화약창고로 사용된 적이 있어서 화약탑으로 불린다.

 

 

<다음날 낮에 본 프라하 화약탑(동탑)>

 

 

<프라하 구시청 시계탑과 구시가 광장>

프라하 구시청은 시계탑 때문에 프라하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이다. 프라하에 있는 수많은 탑의 지붕은 위의 화약탑이나 아래의 시계탑처럼 모양이나 색깔이 거의 비슷하다.

 

 

<프라하 구시가 광장과 성 니콜라스교회(좌), 틴성당(우)>

 

 

<프라하 구시청과 시계탑>

왼쪽은 광장쪽에서 본 구시청사와 시계탑, 오른쪽은 구시청사 옆면에 붙은 시계탑이다.

 

 

<프라하 구시청사 아래의 The House at the Minute>

사진의 중앙 건물(The House at the Minute)은 벽면을 스그라피토 기법으로 장식했다. 스그라피토(sgraffito) 기법은 밑색을 칠한 벽을 긁어서 모양을 만드는 일종의 스크래치 기법인데 그 때문에 검정색 바탕을 긁어서 표현한 인물이나 말 그림이 부조처럼 입체적으로 보인다.

 

 

<프라하 시가지 풍경>

윗단은 전통시장으로 유명한 하벨시장인데 다음날 낮에도 들렀지만 시장이 작아서 특별한 볼거리는 없었다. 대신 다양한 굴뚝빵을 이곳에서 많이 보았다.

 

 

<프라하 카를교 입구의 카를 4세 동상>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보헤미아왕국의 국왕인 카를4 카를교, 성당 등 프라하에서 유명한 건축들을 세웠고 체코의 중흥기를 이끈 왕이다.

 

 

<카를교 탑의 양면>

왼쪽은 프라하 시내쪽에서 본 모습이고, 오른쪽은 카를교에서 본 모습이다. 쌍벽을 이루는 화약탑은 전체적인 크기나 모양은 비슷하지만 벽 장식은 전혀 다르다.

 

 

<프라하 카를교, 블타바강, 성 비투스 대성당과 프라하성>

카를교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보헤미아왕국의 국왕 카를 4세 통치기인 1357년에 건설하기 시작하여 1402년에 완성되었다. 1841년까지 프라하 올드 타운과 그 주변을 잇는 유일한 다리였다고 한다. 강 건너편의 가장 높은 건물은 성 비투스 대성당이고, 그 주변이 프라하 성이다.

 

 

<카를교 난간의 성인상들>

카를교에는 총 30개의 성인상이 세워져 있다. 좀 어두워서 실루엣처럼 대충 보고 정확한 사진은 다음날 낮에 촬영했다. 맨 윗줄 왼쪽은 '성 이보(St.Ivo)', 오른쪽은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와 성 베르나르도(St.Bernard)'이다. 

두 번째 줄은 '수난의 예수 십자가(Calvary)', 세 번째 줄 왼쪽은 '성 치릴(st.Cyril)와 성 메토디오(st.Methodius) 형제' 오른쪽은 '세례자 요한(st. Jan the Baptist)'이다.

 

 

<카를교 난간의 성 얀 네포무츠키(sv.Jan Nepomucky)>

죽음으로 고해성사의 비밀을 지킨 사제로 카를교의 30개 성인상 중 핵인싸이다. 

 

 

<카를교에서 본 블타바강과 성 비투스 대성당, 프라하 성>

 

 

<카를교에서 본 카를교 탑>

 

 

<프라하 루돌피눔(음악 공연장)>

카를교를 끝까지 돌아본 후 호텔로 가기 위해 강 건너편 외곽에 있는 우리 관광버스를 타러 걸어가면서 본 건물이다. 

 

 

<Manes 다리에서 본 Marina Ristorante, 카를교>

유적 보호를 위해 버스는 프라하 진입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 관광버스는 이 다리 건너편 외곽에 정차해 있었는데 좀 걷긴 했지만 덕분에 Manes 다리에서 본 카를교와 주변 풍경은 무척 아름다웠다.  

 

 

<카를교 옆 다리 Manes교와 다리 양쪽의 조형물>

 

 

<프라하 Rezidence Emmy 호텔 로비와 복도>

 

 

<프라하 Rezidence Emmy 호텔>

방도 넓직하고 시설도 비교적 준수한데 사람들이 한꺼번에 많이 샤워하면 따뜻한 물이 안 나왔다. 게다가 멀티 콘센트를 끼울 수 없도록 방지 장치가 되어 있어 하나씩 충전을 하려니 몹시 피곤했다.

 

 

<프라하 Rezidence Emmy 호텔의 아침 식사와 외관>

투숙객은 많은데 3명만 탑승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2개라 7:50에 늦지 않기 위해 미리 내려와야 했다. 우리와 함께 투숙한 한국팀만 4팀이었다는데 식사나 출발 시각 등이 겹치니 모든 것이 전쟁 같았다. 샤워 도중에 쏟아진 찬물, 걸핏하면 문이 잠기는 시스템, 멀티 콘센트 방지 콘센트 등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호텔'이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호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