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공주 계룡산 갑사

큰누리 2024. 5. 27. 18:27

 

≪계룡산국립공원≫

계룡산은 1986년 경주, 한려해상과 함께 제2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계룡산은 '닭 볏을 쓴 용'이라는 상서로운 뜻을 담고 있다. 계룡산 동쪽의 동학사, 서쪽의 갑사, 남쪽의 신원사는 천년고찰로 각 사찰의 고유한 역사와 특색을 가지고 있다. 생물자원으로는 멸종 위기종 수달, 삵, 담비를 포함하여 약 3,750여종의 동식물들이 서식 중이며 대륙이동설의 근거인 이끼도롱뇽이 사는 곳이기도 하다. 

 

≪계룡산 갑사(甲寺)≫

갑사는 백제 구이신왕 원년(420)에 아도화상(阿道和尙)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위덕왕 3년(556)에 혜명대사(惠明大師)에 의해 크게 확장되었다. 그후 신라 헌안왕 3년(859)에 의상대사가 중수하여 화엄종 10대 사찰의 하나로 번성하였다. 현재 대적전 주변의 정교한 초석, 승탑(보물 제257호), 철당간(보물 제256호) 등에서 당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그 후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침입한 왜군들에 의해 사찰이 소실되었다가 선조 37년(1604) 대웅전 중건을 시작으로 다시 재건되기 시작하였고, 효종 5년(1654)에 크게 증축이 이루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갑사로 가는 길>

일주문~사천왕문 사이의 아름다운 길이다.

 

<계룡산국립공원 및 공원내 사찰 안내도>

 

<계룡산국립공원 깃대종>

깃대종은 특정 지역의 생태·지리·문화적 특징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야생 동·식물을 말한다. 계룡산국립공원 깃대종은 호반새와 깽깽이풀이다.

 

<계룡 8경 주요경관 안내도>

 

<계룡산 갑사 일주문>

올해 4월 30일에 촬영한 일주문, 사천왕문 사진은 주변의 신록으로 가린 곳이 있어 작년 10월 1일 촬영한 사진으로 대체.

 

<갑사 사천왕문과 사천왕상>

사천왕문 아래 사진은 사천왕상이다. 왼쪽은 남방증장천왕-서방광목천왕, 오른쪽은 북방다문천왕-동방지국천왕이다. 동방지국천왕(持國天王)은 안민(安民)의 신으로 왼손에 칼, 오른 손바닥에 보석을 올려놓고 있다. 서방광목천왕(廣目天王)은 부릅뜬 눈으로 나쁜 것을 물리치며 왼손에 보탑, 오른손에 삼지창을 들고 있다. 남방증장천왕(增長天王)은 만물을 덕으로 베풀겠다는 서원을 세운 천왕이며 오른손에 용, 왼손에 여의주를 들고 있다. 북방다문천왕(多聞天王)은 부처님의 도량을 지키면서 설법을 듣는 천왕으로 왼손에 비파를 들고 있다.

 

<갑사 전각 입구>

사진의 계단을 오르면 갑사 강당(2층은 지장전) 누대가 있고, 누대와 같은 높이의 좌우에 범종각과 갑사 동종(보물 제478호)이 있다. 계단을 하나 더 오르면 그 위에 대웅전을 비롯한 전각들이 있다. 

 

<갑사 종합안내도>

붉은 글씨는 그 자체가 보물이거나 보물을 둔 곳이고, 파란 글씨의 관음전과 그 앞의 월인석보 수장고는 안내도에서 누락되어 추가했다. 

 

<갑사 강당과 범종각>

 

<갑사 강당과 안뜰의 연등>

강당 내부에는 지장보살과 작은 불상들, 윤장대가 있다. 화려한 초파일 연등도 강당 앞 등은 죽은 이들을 위한 하얀 등이다.

 

<갑사 대웅전 서쪽 아래의 진해당>

왼쪽은 진해당 정면(23.10.01 촬영), 오른쪽은 대웅전 모퉁이에서 본 옆면이다. 진해당은 1919년 3월 12일에 계룡공립보통학교로 인가를 받고, 6월 17일에 이곳에서 개교했다가 11월 1일에 이전했다고 한다. 임시로 사용한 듯하다. 

 

<갑사 대웅전> 보물.

대웅전은 석가모니를 모시는 공간이다. 공주 갑사 대웅전은 원래 지금의 대적전 근처에 있었는데, 정유재란 때 소실되어 선조 37년(1604)에 갑사 전체를 다시 지으면서 지금의 자리에 세워졌다. 그러나 병자호란을 거치며 또 훼손되어 효종 5년(1654)에 보수를 마쳤고, 이후 고종 12년(1875), 고종 22년(1885)에 24칸 건물로 증축했으나 지금은 15칸만 남아 있다. 

건물 안에는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 사보살입상이 모셔져 있고, 뒤에는 삼세불(과거, 현재, 미래에 출현하는 모든 부처)을 그린 불화가 있다. 

 

<갑사 대웅전 내부의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 사보살입상> 

 

<갑사 대웅전 뒷쪽>

왼쪽은 향적당 위의 주차장과 대적선원으로 통하는 문이고, 오른쪽은 그 문에서 내려다 본 삼성각과 대웅전 뒷모습이다.

 

<갑사 삼성각>

충청남도 문화유산 자료.

삼성각은 칠성(七星), 산신(山神), 독성(獨星)을 모신 전각이다. 칠성(七星)은 북두칠성으로 별나라의 주군이며 인간의 복과 수명을 관장하고, 독성(獨星)은 홀로 인연의 이치를 깨닫고 성인이 되어 말세 중생에게 복을 내리는 존재이다. 산신(山神)은 우리 민족 고유의 토속신으로 호랑이와 함께 하며 재물을 담당한다. 각각 도교, 불교, 토속신앙의 표현으로 불교가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여러 신앙이 합쳐진 형태이다. 본래 각각의 건물을 지어 모시나 갑사 삼성각에서는 한 곳에 모셨다. 

 

<삼성각에서 본 진해당과 대웅전>

 

<갑사 관음전>

 

≪월인석보판목(보물 제582호)≫

월인석보목판(보물 제582호)은 월인석보를 새겨 책으로 찍어내던 판각으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것 중 유일한 판목이다. 「월인석보」는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하여 세조 25년(1459)에 편찬한 불교대장경이다. 「월인석보」는 본래  57매 233장으로 모두 24권이었으나 현재는 21권 46매만 남아있다. 이 판목은 선조 2년(1569) 충청도 한산에 사는 백개만(白介萬)이 시주하여 활자를 새기고, 충남 논산 불명산 쌍계사에 보관하였다. 현재 갑사에 소장되어 있는데 70여 년 전에 입수하였다고 한다.

계수나무에 돋을새김으로 새겼고, 판목의 오른쪽 아래에 시주자와 새긴 이의 이름이 있다. 내용 표기에 있어서는 방점과 글자획이 닳아 없어져 변모된 부분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불교대장경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15세기 당시의 글자와 말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국어변천을 알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관음전 앞 전각의 월인석보판목(보물 제582호) 사진>

월인석보판목 수장고는 갑사 안내도에 2개가 별도로 있었는데 어디에 보관되었는지 모르겠다. 환기를 위한 것으로 보이는 플래카드 뒤의 나무창살과 아래의 구멍으로 보아 현재 이곳에 있지 않을까 추측...

 

<적묵당 뒤에서 보물 동종각으로 내려가는 통로>

 

<갑사 동종(보물 제478호)>

갑사 동종(보물 제478호)은 왕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선조 17년(1584)에 만들어졌다. 종의 표면에는 지장보살과 종의 내력을 적은 글이 있는데, 1583년에 북방 오랑캐가 난을 일으켜 충청, 전라, 경상도에 있는 사찰의 종을 모아 무기를 만든 탓에 이듬해 갑사에서 철 8천근을 들여 다시 종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있다. 또 여기에 '갑사사(甲士寺)'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를 통해 갑사가 과거에 갑사사로 불렸음을 알 수 있다.

갑사 동종은 종의 가장 위쪽에 있는 용의 모습을 한 고리인 용뉴(쇠줄을 연결하여 종을 매다는 장치)가 잘 남아있으며, 현재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종의 상태가 양호하다.

 

<갑사 공우탑(功牛塔)>

'공우탑'은 소의 공적을 기린다는 의미로, 갑사 공우탑은 조선 후기 갑사의 중건 과정에 얽힌 전설에서 비롯되었다. 갑사는 나라에서 토지를 내려줄 만큼 크고 중요한 절이었으나 1597년 정유재란으로 건물 몇 채만 남게 되었다. 선조 37년(1604)에 나라의 지원을 받아 대웅전과 진해당 등을 다시 세웠다. 전설에 따르면 당시 주지 스님의 꿈에 황소가 나타나 절을 지어주겠다고 약속했고, 그날 이후 소 한 마리가 나타나 매일 공사에 필요한 재목을 등에 싣고 왔다. 이에 스님들은 갑사 중건에 도움을 준 소의 공을 기리고자 이 탑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아래의 계곡이 아름다운 갑사 간성장>

 

≪갑사 대적전(大寂殿)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갑사 대적전은 대적광전이라고도 하며, 대적광전이란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삼신불(석가모니, 아미타불,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법당이다. 그러나 부처를 모시는 단에는 아미타불과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을 모셨다. 갑사는 통일신라 후 화엄종 10대 사찰의 하나로 크게 번성하였는데 당시 절의 중심인 대웅전이 바로 이 자리에 있었다. 주위에 남아 있는 주춧돌이 그 흔적이다.

갑사는 불교를 억제하던 조선시대에도 잘 유지되었지만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일본군에 의해 약탈 당하고 불타버렸다. 그후 병자호란과 화재를 몇 번 겪으면서 가람 배치에 변화가 생기며 대웅전 자리에 대적전이 들어섰다. 대적전의 현판에 '도광육년사월 목암서(道光六年四月 牧岩書)'라고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늦어도 순조 26년(1826)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지붕은 매우 화려하고, 건물 내부의 부처를 모신 단 위에 천장을 한 단 높여 닫집 효과를 내고 있다.

 

<갑사 대적전(大寂殿)>

 

<갑사 대적전(大寂殿)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갑사 대적전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은 본존인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로 이루어져 있다. 갑사는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1654년(효종 5)에 다시 고쳐 지었는데, 이때 삼존불도 함께 제작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미타불은 죽은 사람을 서방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영혼을 구제하는 부처이고, 관세음보살은 자비를 상징하며, 대세지보살은 중생의 구제를 의미한다. 

 

<갑사 대적전(大寂殿)과 승탑>

 

<공주 갑사 승탑(僧塔)>

보물 제257호.

승탑은 훌륭한 승려의 사리를 담은 작은 탑으로 신라 말 고려 초에 많이 만들어졌다. 이 시기의 승탑은 갑사 외에 대안사, 쌍봉사, 보림사에도 남아 있다. 공주 갑사 승탑은 팔각지붕이며 건축양식이 독특하고 승탑의 여기저기에 사천왕상, 연꽃잎, 사자상 등이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다. 이 승탑은 고려시대의 승탑 가운데에서도 조각이 뛰어나 고려 초기의 승탑을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유산으로 평가받는다. 원래 갑사의 뒷산 중사자암에 있었으나 1917년 현재 위치로 옮겼다.

 

<공주 갑사 철당간(鐵幢竿)>

보물 제256호.

당간( 幢竿)은 깃발을 달아 두는 깃대이다. '당'은 깃발을, '간'은 긴 기둥인 장대를 말한다. 당간은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이용되는데, 갑사에 있는 당간은 철로 만들어져 철당간이라고 부른다. 공주 갑사 철당간은 통일신라 중기 문무왕 20년(680)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893년에 벼락을 맞아 28개의 통 중에 4개가 사라져 현재의 모습만 남게 되었다. 비록 훼손되었지만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것 중 남아있는 유일한 당간으로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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