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공주 계룡산 동학사

큰누리 2024. 5. 31. 19:54

≪계룡산 동학사(東鶴寺)≫

동학사(東鶴寺)는 713년 신라시대에 당나라 스님 상원(上願)조사가 지은 상원암(上院庵)에 연원을 두고 있다. 상원암은 은혜를 갚으려는 호랑이 덕분에 여인을 만난 상원조사가 여인과 의남매를 맺고 함께 도를 닦았던 곳이다. 성덕왕 27년(724) 회의(懷義) 화상이 두 분을 기리기 위해 쌓은 탑이 현재 상원사지에 남아있는 남매탑(보물 제1284호 공주 청량사지 오층석탑, 보물 1285호 공주 청량사지 칠층석탑)이다. 

고려 태조 3년(920)에 도선(道詵)국사가 지금의 동학사 자리에 사찰을 중창한 뒤 태조의 원당이 되었다. 고려 태조 19년(936), 신라가 망하자 류차달이 이곳에 신라의 시조와 박제상을 제사하기 위한 동학사(東鶴祠)를 건축하였고, 이후 사찰이 번창하자 절 이름도 동학사(東鶴寺)로 바꾸었다. 동학이라는 이름은 동쪽의 학 모양의 바위에서 유래한다고 전한다. 

영조 4년(1728) 신천영의 난으로 사찰과 사당 모두가 소실된 것을 순조 14년(1814)에 월인선사가 신축하였으며, 고종 원년(1864) 만화 보선선사가 전각 40칸과 초혼각 2칸을 새로 짓는 증 중창하였다. 초혼각은 1904(광무 8) 숙모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절의 건물이 모두 불타 없어졌다가 1960년 이후 서서히 중건되다 1975년에 다시 지었다.

 

현재 전각은 대웅전, 삼성각을 비롯하여 조사전, 육화료, 강설전, 화경헌, 범종각, 염화실, 실상선원 등이 있다. 산내 암자는 18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석봉암, 천장암, 마쇄암, 보현암, 실상암, 옥천암, 극락암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관음암, 길상암, 문수암, 미타암, 귀명암(심우정사), 상원암 등이 있다.

 

<계룡산 동학사 입구>

이곳이 매표소이고 입장료를 받는다는데 현재 공사 중이라 특별히 받는 곳이 없었다. 주차장에서 주차한 후 이곳까지 한참 걸어 올라와야 한다. 아래 내용은 이곳에 있던 계룡산국립공원 입산 가능시간과 국립공원 내 행위 금지 내용 등이다. 문화재 보호구역 입장료는 다른 곳에서 발췌한 것.

 

 

<계룡산 동학사 홍살문과 일주문>

사찰 입구에 뜬금 없이 홍살문이 있는 이유는 동학사 안에 사당인 동학삼사(삼은각, 동계사, 숙모재)가 있기 때문이다. 동학삼사는 신라의 충신, 고려말의 충신 삼은, 조선의 단종과 사육신 등 신라, 고려, 조선 3왕조의 충신을 모신 곳이다.

 

 

<동학사 일주문 안쪽의 조형물들>

 

 

<동학계곡과 신록>

학바위 앞에서 관음봉고개에 이르기까지 약 3.5km의 계곡으로 신록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갑사 입구 만큼 나무들이 다양하지 않지만 숲이 무성하고 계곡이 아름다웠다. 밧줄을 친 아래 사진은 계곡이 깊어 출입을 금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주차장에서 동학사까지는 계곡을 따라 상당히 걸어 올라가야 한다. 

 

 

<동학계곡의 나무들>

윗단은 일본목련과 굴참나무, 아랫단은 굴피나무와 까치박달이다. 일본목련은 계곡이 아니라 주차장에 있던 것이다.

 

 

<동학사 문수암 입구>

 

 

<동학사 관음암>

전각이 커서 이곳이 동학사인 줄 알았다. 관음암은 동학사에 딸린 암자로 입구부터 관음암-길상암-미타암이 위로 이어져 있고 마지막 (가장 윗쪽)에 동학사가 있다. 이 구조 때문에 현장에서 헷갈렸다. 게다가 3개의 암자와 동학사 사이에 충신들 사당인 동학삼사까지 끼어있다.  

 

 

<동학사 관음암 아래 뜰의 모습>

5층석탑과 석판을 쌓아 만든 작지만 독특한 석불, 담장 사이 작은 칸에 모신 석불, 석등 등이 아기자기해서 눈길을 끌었다. 들렀을 당시(24.4/30)에 철이 약간 지났지만 여전히 활짝 핀 모란꽃들이 아름다웠다. 두 번째 사진 왼쪽은 말발도리, 오른쪽은 백당나무이다. 

 

 

<동학사 관음암>

 

 

<동학사 관음암 불전>

이 글 맨 마지막에 관음암, 길상암, 미타암 불전과 동학사 대웅전의 불상들을 묶어 비교해 놓았는데 대웅전을 제외한 세 암자의 불상과 협시불은 똑같았다. 사진 왼쪽 협시불이 지장보살인 것만 확실하고 나머지는 자신이 없어서...

 

 

<동학사 관음암의 식물들>

관음암 마당의 모란과 차가플록스, 붓꽃이다. 붓꽃은 동학사 화경헌 밖에 있었다.

 

 

<동학사 길상암>

석가탄신일을 보름 앞둔 때라 절 마당마다 초파일燈이 가득하다.

 

 

<동학사 길상암 불전과 옆모습>

이곳을 보고 있는데 스님들이 나와서 비구니승 사찰인 것을 확인했다.

 

 

<동학사 길상암의 초파일燈>

 

 

<동학사 길상암 주변의 졸방제비꽃과 금낭화>

 

 

<동학사 미타암> 

 

 

<동학사 미타암 불전>

 

 

<동학사 미타암 옆 모습과 문창살>

 

 

<동학사 입구 세진정과 대시주 김달환, 김정숙 송덕비>

 

 

<동학사 입구 범종루>

관음암, 길상암, 미타암을 차례로 보고 올라오면서 '동학사는 전각 배치가 참 특이한 절이구나'라며 다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범종각과 전각들이 다시 나타나서 놀랐다. 게다가 범종루 아래(동학사 입구)에 동학삼사라는 사당까지 있어서 더 놀랐다!

 

 

<동학사 입구의 사당, 동학삼사(東鶴三祠)>

동학삼사는 계룡산 동학사의 초혼각지에 세워진 숙모전, 삼은각, 동계사를 말한다. 신라의 충신 박제상, 고려 말의 충신 정몽주, 이색, 길재, 그리고 조선의 단종과 사육신 등 신라, 고려, 조선 3왕조의 충절 인물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특히 숙모전은 신분과 관계없이 국왕, 재상, 관료, 학자, 서민, 노비 등 351위를 기리면서 왕을 모신 '전(殿)'이라는 명칭이 갖는 권위가 있으며, 유교와 불교가 어울려 제사하는 특별한 전통을 지닌 곳이다.

 

 

<동학삼사(東鶴三祠) 인재문과 내부 전각들>

인재문은 숙모전의 정문으로 서무, 동무의 옆면만 보이고 숙모전은 보이지 않았다. 아랫단의 작은문은 삼은각과 동계사쪽의 문이고, 내부 전각 중 왼쪽은 삼은각과 동계사, 오른쪽은 숙모재이다. 

 

 

<동학사 대웅전 입구에서 본 승가대학(육화료)과 종루>

1956년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비구니 강원이 개설되었고, 7년 후인 1963년 대교고가 졸업생을 배출한 이래 지금까지 수많은 비구니 학승과 수행자들을 배출했다.

 

 

<동학사 대웅전>

 

 

<동학사 삼층석탑> 

동학사 삼층석탑은 계룡산 남매탑이 있는 청량사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전설에는 신라 성덕왕 22년(723)에 동학사를 지을 때 만들어졌다고 하나, 탑의 모습으로 볼 때 고려시대 석탑으로 보인다. 원래 탑의 1층과 2층 부분만 남아있었는데 2008년 기단부와 3층을 복원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1층 한 면에 자물쇠 모양이 조각되어 있다.

 

 

<동학사 대웅전과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공주 동학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목조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양옆에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가 앉아 있는 삼세불이다. 삼세불은 모든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는 부처를 뜻한다. 즉 석가여래는 현재의 부처이면서 이 세계의 부처이고, 약사여래는 東方의 부처이면서 과거의 부처이며, 아미타여래는 西方의 부처이면서 미래의 부처이다. 

2010년 불상의 금박 작업을 하던 중 불상의 내력을 적은 발원문과 고려 말, 조선 초에 만들어진 사경, 경전류 등 78건 136점의 복장유물이 발견되었다. 전하는 기록에 따르면, 이 불상들은 17세기 전반에 승려 조각각 각민(覺敏)의 주도로 1605년부터 1606년에 걸쳐 계룡산 청림사 대웅전에 봉안하기 위해 제작되었다고 한다. 불상을 동학사로 옮겨온 시기는 1883년 무렵인 것으로 추정된다.

 

마침 스님이 저녁 예불을 드리는 중이라 내부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줌으로 촬영했다.

 

 

<동학사 대웅전 석등과 삼불원(三不願) 동자상들>

불상과 '천상천하유아독존' 자세의 갓 태어난 석가모니불 등이 조각되어 있는 등이 2기가 있다. 그 아랫단에는 사악한 것(예가 아닌 것)은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며, 말하지 말라'는 삼불원(三不) 자세를 취한 귀여운 동자상이 있다. 일본 사찰에서 원숭이가 자세를 취한 것을 본 이래 처음이다.

 

 

<동학사 대웅전 옆면의 녹원전법상과 쌍림열반상>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깨달음을 얻은 부처가 중생들이 끝없는 생로병사의 고통으로 허덕이는 것을 보고 녹야원에서 수행한 다섯 제자를 위해 설법하는 장면이다.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은 석가모니가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들자 가섭존자가 '생과 사가 둘이 없다 하시더니 왜 滅을 보이시는지' 묻자 석가모니는 관 밖으로 발을 보이며 '형상은 없어지지만 나의 가르침은 항상 너희 곁에 있을 것'이라며 화광삼매에 들었다.

 

 

<동학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 풍경>

동학사 대웅전 옆에서 본 화엄료(左), 화경헌과 강설전(원경), 삼성각과 조사전(右)이다. 동학사와 그 아래의 관음암, 길상암, 미타암 등 전각 하나하나가 모두 깔끔하고 아름다워서 관음암 마당에서부터 이미 비구니스님들의 사찰이란 느낌이 왔다. 건물끼리 어우러진 곳은 이곳이 가장 아름다웠다.

 

 

<동학사 화엄료(왼쪽), 화경헌, 강설전(원경)과 조사전(오른쪽)> 

왼쪽 앞 건물은 화엄료, 그 앞의 원경 건물은 화경헌, 오른쪽 건물은 조사전이다. 조사전 옆의 삼성각까지는 문이 열려 있었지만 조사전부터는 나무 덧문이 있어서 출입이 불가능해 보였다. 삼성각도 마당은 들어갈 수 있지만 전각은 잠겨서 내부는 못 보았다.

 

 

<동학사 화경헌 담벽>

 

 

<동학사 화경헌 담벽의 예술적인 나뭇가지 장식>

산길의 돌탑처럼 누군가가 나뭇가지를 꺾어 바위와 돌 틈에 끼우기 시작했고, 다른 이들이 뒤를 이은 듯한데 재미있다.

 

 

<동학사 입구의 갑사 부도(보물 제257호)>

왜 이곳 동학사 아래에 있는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갑사 부도'이다.

 

 

<동학사 암자의 불상들과 동학사 대웅전의 불상>

윗단은 관음암과 길상암의 불상, 아랫단은 미타암과 동학사 대웅전의 불상이다. 암자의 불상들은 수인은 다르지만 동일한 불상과 협시불로 보이며, 대웅전의 불상은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약사불과 아미타불의 목조삼세불이다. 배경의 탱화와 천장이 모두 다르지만 공통점은 새로 조성한 것처럼 깔끔하고 화려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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