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완주 위봉산성, 위봉폭포, 위봉사

큰누리 2024. 6. 23. 02:37

 

 

사적 ≪위봉산성≫ 

위봉산성은 숙종 원년(1675)부터 숙종 8년(1682) 사이에 쌓았고, 순조 8년(1808)에 고쳐지었다. 돌로 쌓은 대규모의 산성으로 둘레는 약 8.6km, 높이는 1.8~2.6m이다. 

산성은 보통 변란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군사시설이다. 그러나 위봉산성에는 이외에도 유사시에 전주 경기전(사적 제339호)에 모신 태조 이성계의 어진과 전주 이씨의 시조인 이한공의 위패를 모셔서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이를 위해 산성 안에 행궁을 함께 만들었으며 이외에도 위봉사, 내성장, 장대, 위봉진, 장교청, 군기고 등도 설치하였다. 실제로 전주가 동학 농민군에게 함락되자 태조 어진과 위패를 이곳에 모셔 왔다. 하지만 행궁을 지은 지 오래되어 어진과 위패를 행궁에 모시기에는 마땅치 않아 임시로 위봉사 대웅전에 모셨다고 한다.

현재 위봉산성은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성벽과 여장, 총안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기록에 남아 있는 성문 터 4곳 중 3곳이 확인되었으며, 이중 전주로 연결되는 서문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이외에도 암문지 6곳, 포루지 13곳, 적의 움직임을 살피기 위해 높게 쌓은 장대터 2곳을 비롯해 성밖으로 물을 빼기 위한 수구지 1곳과 우물지 2곳 등이 확인되었다.

 

<위봉산성> 

 

 

<위봉산성과 서문 안의 영세불망비 5기>

 

 

<위봉산성과 서문>

'완주 BTS 힐링 성지'란 안내문과 BTS 멤버 5명의 캐리커처가 돋보인다. 그런데 왜 이곳은 멤버가 5명으로 되어 있는지? 

 

 

<위에서 본 위봉산성 서문과 소나무>

 윗 사진의 도로 건너편 왼쪽의 황토길에 끊어진 성벽이 약간 보인다.

 

 

<위봉산성 성벽>

왼쪽 사진의 성벽과 오른쪽 사진의 성벽은 중간에 도로가 지나 끊어졌고, 오른쪽 사진 성벽 아래에 위봉산성에서 유일하게 남은 서문이 연결되어 있다. 그나마 성벽 위도 시멘트로 보강을 해서 원형이 손상된 상태이다.

 

 

<아래에서 본 위봉산성 서문>

BTS 팬이 올린 글에서 보니 이 서문 아래와 위의 오른쪽 사진 성벽 위에서 BTS 멤버들이 사진촬영을 했다. 온전한 서문이었다면 이 석축 (문) 위에 누각이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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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승 ≪완주 위봉폭포 일원≫

완주 위봉폭포는 위봉산에서 시작한 물줄기가 60m 높이의 바위 절벽으로 떨어지는 2단 폭포이다. 위봉폭포는 예로부터 자연경관이 빼어나 원산 8경 중 하나로 꼽혔으며, 조선 8대 판소리 명장인 권삼득이 득음하려고 수련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처럼 위봉폭포와 그 일원은 주변의 울창한 숲과 기암절벽이 어우러져 사계절 내낸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아낸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21년에 국가유산청에서 명승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위봉폭포 입구의 마실길 여행 안전수칙>

이런 안내문이 있을 정도로 위봉폭포 주변이 외진 곳이란 뜻이렸다!

 

 

<진입로에서 본 위봉폭포와 계단 250여 개>

빽빽한 풀숲 사이로 길다란 위봉폭포가 보인다. 도로에서 대략 250여개의 계단을 내려가야 위봉폭포가 있다. 이름조차 처음이었는데 상당히 깊은 산중에 길이(높이)가 긴 폭포가 있는 것이 신기해서 완주란 곳에 대해 다시 생각했을 정도이다. 

 

 

<위봉폭포>

폭포 아래의 자갈이나 바위는 울퉁불퉁해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폭포 줄기가 굵지 않지만 한 번 꺾이면서 몇 갈래로 나뉘어 떨어지는 것이 위봉폭포의 포인트이다. 주변이 깨끗하고 물이 맑으며 가물어도 마를 일은 없을 것 같다.

 

 

<위봉폭포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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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추줄산 위봉사 일주문>

 

 

<완주 위봉사 사천왕문과 사천왕상>

사천왕상 중 왼쪽은 북방다문천왕(비파)과 동방지국천왕(칼), 오른쪽은 남방증장천왕(용과 보주)과 서방광목천왕(탑)이다. 

 

 

<완주 위봉사 봉서루(지장전) 밖과 안>

 

 

<완주 위봉사 전경>

관음전(요사), 보광명전, 나한전과 사진 이쪽에 봉서루(지장전)와 종각이 있다. 절의 면적에 비해 전각이 몇 개 안 된다. 

 

 

<완주 위봉사의 위봉소나무>

우리나라 소나무는 일제 시대에 일본학자 우에키에 의해 지역별로 동북형, 금강형, 중남부평지형, 위봉형, 안강형, 중남부고지형 등 6개로 나뉘었다. 그 중의 하나인 위봉형소나무이다.  

 

 

<완주 위봉사 요사(관음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스님들의 거처인 이 건물은 주불전인 보광명전의 오른쪽에 있다. 요사이지만 앞면 중앙은 대청마루를 둔 법당으로 '관음전'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 좌우에 스님들의 실제 거처인 요사체를 두어 건물 평면이 I자를 이룬다. 고종 5년(1868)에 절 확장을 위한 큰 공사가 있었는데, 건물의 짜임새로 보아 이 요사도 그때 지은 듯하다. 조선 시대의 주택 구조를 취하면서도 일부는 법당 형식으로 장식하였다. 관음전과 승방, 부엌 등은 지붕의 높낮이가 서로 다른데 그 기능에 따라 차이를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과 삼불원(三不願) 원숭이상>

삼불원(三不願) 원숭이상은 사악한 것(예가 아닌 것)은 말하지 말고, 듣지 말며, 보지 말라'는 자세를 취한 원숭이를 말한다.

 

 

보물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은 위봉사의 중심 전각이다. 이 건물이 처음 지어진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정유재란 때 피해를 입어 17세기 초에 다시 지었고, 조선 후기에도 여러 차례 정비한 것으로 보인다. 현판은 헌종 4년(1838)에 보수할 당시 제작된 것이며, 현재의 건물은 한국전쟁 후 다시 지은 것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중요 부분마다 굵은 목재를 써서 조각했으며 화사한 단청과 벽화로 치장하여 웅장한 느낌을 준다. 헌종 14년(1873)에 조성된 내부 단청은 도료 배합 등 이 분야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

보광명전 불단에는 본존불인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양옆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모셔져 있으며, 용과 여의주 등으로 장식한 닫집이 설치되어 있다. 또한 불단의 뒷벽과 좌우 벽체에는 흰옷을 입은 관음보살을 그린 백의관음도 1점과 부처님께 음악으로 공양을 올리는 것 같은 모습을 그린 주악비천도 6점이 있는데, 힘이 넘치게 선을 그은 것과 인물을 아름답게 표현한 것에서  조선 후기 벽화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현지 안내문--

 

**현지 안내문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만 협시한 것처럼 적혀 있는데 실제로는 4분의 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주불 오른쪽에 있는 지장보살과 대세지보살(로 추정) 2분의 보살이 누락된 듯하다.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 측면과 내부>

 

 

<완주 위봉사 나한전과 내부>

 

 

<보광명전 앞에서 본 위봉사 종각과 봉서루(지장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