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굴산사지 당간지주>
* 소재지 :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1181번지
* 시대 : 통일신라
* 지정 : 보물 (1960.01.21)
신라 문성왕 9년(847) 범일국사가 창건한 굴산사의 옛터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당간지주이다. 굴산사는 당나라 유학시 왼쪽 귀가 떨어진 승려가 고향에 자신의 집을 지어달라는 청으로 지은 사찰이라고 한다. (중략)
두 지주의 4면은 아무런 조각이 없으며, 밑면에는 돌을 다룰 때 생긴 거친 자리가 그대로 남아있다. 깃대를 고정시켰던 구멍은 상·하 두 군데에 있고, 정상은 끝이 뾰족한 형상이며, 남쪽 지주의 끝부분은 약간 파손되었다. 전반적으로 소박하나 규모가 거대하여 웅장한 조형미를 보인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에서 퍼옴---
<굴산사지 당간지주에 대한 현지의 안내문>
강릉 굴산사지 당간지주는 신라 문성왕 13년(851) 범일국사가 개창한 신라 하대 구산선문 중의 하나인 사굴산문의 중심사찰인 굴산사에 세워진 불교 건축물이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돌로 만든 당간지주 중 규모가 가장 크다. 고대 사찰에서는 법회 등의 중요한 행사를 할 때 불화를 그린 깃발을 높이 매달아 행사를 널리 알렸다. 천이나 종이 등에 그린 불화를 '당(幢, 깃발)'이라 하고, 당을 다는 긴 막대기를 '간(竿, 깃대)'이라 한다. 이 당간을 받쳐 세우는 2개의 돌기둥이 '당간지주'이다. 대개 사찰 입구 양쪽에 세우며, 그 안쪽이 신선한 영역임을 나타내기도 한다.
굴산사지 당간지주의 맨 꼭대기는 뾰족하고, 깃대를 고정했던 구멍이 위 아래 두 군데에 뚫려있다. 4면에는 조각을 전혀 하지 않고 돌을 다듬을 때 생긴 거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전체적으로 소박하면서도 규모가 거대하여 웅장한 조형미를 보인다.
* PS / 구산선문(九山禪門) : 통일신라 이후 불교가 크게 흥할 때, 승려들이 중국에서 달마의 선법을 받아가지고 와 그 문풍(門風)을 지켜온 아홉 산문으로 실상산문, 가지산문, 사굴산문, 동리산문, 성주산문, 사자산문, 희양산문, 봉림산문, 수미산문이다.
현장에서 본 굴산사지 당간지주는 모든 문서에서 우리나라 최대의 돌 당간지주라고 언급한 것처럼 "크다!"였고, 무심하게 툭툭 다듬은 것처럼 투박한 것이 아주 현대적인 조형물처럼 보인다는 점이었다. 안내문에 언급된 구산선문 때문에 오랜만에 중·고등학교 국사시간에 배운 뒤 잊었던 구산선문을 다시 들여다 볼 기회가 되기도 했다. 또한 굴산사지 개창자인 범일국사를 나는 처음 들었지만 강릉, 특히 당간지주 주변에는 그분과 관련된 일화나 장소들이 제법 많았다.
<굴산사지 당간지주 앞의 경고문>
실제로 가까이 접근하면 경고방송이 나온다고... 왕릉 같은 곳도 일정 거리 이상 접근하면 경고방송이 나와서 망신 당한다.
<굴산사지 당간지주와 안내문>
<시계 방향으로 360˚를 돌며 본 굴산사지 당간지주>
당간지주의 크기를 확인하기 위해 일행 중 한 분이 모델로 섰다. 아무렇게나 툭툭 다듬은 것 같은 자연스러움이 놀랍고, 그 때문에 통일신라의 당간지주가 아니라 현대에 조성한 조형물처럼 보였다. 옆에 뚫린 구멍 2개에 깃대를 고정했다.
<굴산사 당간지주 주변의 익어가는 벼>
굴산사가 지어질 당시에 첫번째 사진의 산을 향한 방향 일대가 모두 굴산사였을 것이다. 세 번째 벼 사진은 시커먼 낱알 색으로 미루어 찰벼(찹쌀)일 듯.
<굴산사지 석불좌상 안내문>
부근에 굴산사지 석불좌상이 있지만 볼 게 없다고 해서 생략했다. 이렇게 넘어가면 나중에 후회하는데 실제로 지금 그렇다.
'강원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척 해가사의 터, 공양왕릉 (0) | 2024.11.19 |
---|---|
테라로사 커피공장 강릉본점, 구정면 강보리밥 (0) | 2024.10.23 |
강릉 김씨 시조 김주원의 명주군 왕릉 (0) | 2024.10.21 |
강릉 소나무누리유아숲체험원 주변의 숲과 야생화들 (0) | 2024.10.20 |
치악산 국형사와 동악단, 원주 도래미시장 (0) | 2024.06.17 |